기사 (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우강 김병욱 우강 김병욱 우강(愚岡)김병욱은 영남일대에 큰 족적을 남긴 서예가이다. 김병욱은 거제가 낳은 서예의 대가 성파 하동주선생의 문인으로 추사체의 마지막 전수자이다. 살아생전 그는 추사 김정희의 필법과 정신세계를 널리 알리기 위해 수십년동안 전국을 무대로 서예전을 열었다. 이 같은 행적으로 한국서단에서는 그를 ‘추사체의 전도사’라고 불렀다.1965년, 당시 서예가 오제봉은 김병욱의 서예전에 참석,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심(心)이 정(正)하여야 필(筆)이 정(正)하다 하였으니 과연 서도에 있어서는 초연한 인격을 지니고 고난의 과 거제인물열전 | 거제시민뉴스 | 2016-01-29 15:43 소남 신용우 소남 신용우 제2의 우장춘 박사 ‘신용우’신용우의 호는 소남이요, 본관은 영산으로 하청면 하청리 성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공부를 하다 50리 거리에 있는 거제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부친의 뜻에 따라 진주농업학교로 진학했고 제1회 졸업생으로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성실했다.신용우는 성품이 온순한 반면 고집이 세고 집착력이 강했다.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와 농촌 개척의 선구자로 가난한 농촌사람들의 희망이 된다. 1927년 일제가 농촌 정책의 일환으로 모범 영농인을 일본에 산업시찰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이 신용우에게는 농촌운동의 거제인물열전 | 거제시민뉴스 | 2015-11-20 10:14 서순영 재판장 서순영 재판장 반민특위 서순영 재판장서순영은 1914년 거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학을 수학했다. 24세에 부친 사망으로 가계를 책임지면서도 면학에 힘썼던 중 29세때 동경유학(동경 동아상업고등학교)길에 올랐다. 곧이어 일본대학 전문부 법학과에 입학, 2년 후 졸업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고성 옥천사에서 고등문관 시험을 준비했으나 2번 실패하고 4년 후인 1939년 6월과 11월에 조선변호사 시험과 고등문관 사법과 시험에 동시에 합격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9세였다. 곧바로 변호사로 개업하고, 대구에서 4년 동안 활동했다. 서순영은 변호사로 활동하 거제인물열전 | 거제시민뉴스 | 2015-10-29 10:43 진석중 국회의원 진석중 국회의원 진석중은 동부면 출신으로 학동 여양 진씨문중으 대표적인 인물이다. 학동부호 진치주씨의 5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거제보통학교로 유학의 길에 올랐다. 그때는 대부분 서당에서 한문을 조금 배우다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선친 진치주씨는 당시 격변하는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진석중에게 신학문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학교에 입학한 진석중은 초창기 학동에서 거제까지 무려 왕복 60리 길을 걸어 다녔다(집안 사람이 동행함). 그러다가 4학년 무렵 거제 읍내에서 하숙을 했다.신식교육으로 학문에 눈을 떤 진석중은 졸 거제인물열전 | 거제시민뉴스 | 2015-06-17 14:01 양명(梁明)…비운의 독립운동가 양명(梁明)…비운의 독립운동가 양명은 한국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사회주의 역사에 있어서는 김일성의 족적을 훨씬 뛰어 넘을 뿐 아니라 박헌영(남로당 당수)에 앞서는 전력을 갖고 있다. 초창기 조선공산당은 그의 손에 의해 완벽한 틀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밖에 6·10만세운동, 신간회 창건, 일제에 대항한 농민·노동자투쟁(10회) 등 독립운동의 족적 또한 어느 독립운동가에 못지않다.하지만 양명은 1945년 거제 동부면 학동에서 모습을 보인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 1945년 양명은 건국준비위원회 72인 거제인물열전 | 거제시민뉴스 | 2015-04-03 10:22 여산 양달석, 거제의 예술혼 ‘소와 목동의 화가’ 여산 양달석, 거제의 예술혼 ‘소와 목동의 화가’ 독창적이고 향토적인 작품으로 민족애를 일깨우고 근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서양화가 여산 양달석 화백(黎山 梁達錫.1908~1984)그는 거제 사등면 출신으로 미술 활동 50여 년 동안 모두 2600여 점의 다작을 남기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고통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는 양달석 화백의 말처럼 그의 삶은 고통과 불안과 초조의 연속이었다.한의사 집안의 4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4세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누님이 동생들을 맡게 되면서 친척집들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얻어먹게 된다. 거제인물열전 | 거제시민뉴스 | 2015-03-05 14:19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