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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우체국의 '살아있는 전설'…안경근 집배원
고현우체국의 '살아있는 전설'…안경근 집배원
  • 원용태 기자
  • 승인 2014.04.01 14:34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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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화려한 경력에 인간미까지 '물씬'

오매불망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절, 누구보다 기다렸던 집배원의 등장에 가슴이 뛰고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정성과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가득안고 한자 한자 꾹 꾹 써 내려 가던 손 편지의 추억은 이메일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이제는 유물로 남겨진 건지도 모를 만큼 보기 힘들다.

이 같은 설레임을 전달하는 집배원의 업무는 무척 힘들다. 많은 우편물을 구석구석 배달하려면 힘도 좋아야 하고 두뇌도 명석해야 한다.

자전거로 우편배달을 하던 시절부터 현재 100cc의 이륜차로 배달 업무를 맡고 있는 30여년의 화려한 경력, 고현우체국의 ‘살아있는 전설’ 안경근(53) 집배원을 만나 그 전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안씨는 1962년 통영 산양읍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을에 자전거를 능수능란하게 타고 다니던 집배원을 보며 안씨도 원 없이 자전거를 타보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집배원의 길을 택했다.

83년 통영우체국에서 임시직으로 시작, 그 다음해 거제면 동상우체국에 특채로 입사해 거제에서 집배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안씨는 첫 근무지인 거제면 동상우체국에서 5년, 동부면우체국에서 1년을 거쳐 현재 고현우체국에서 24년째 집배원 일을 하고 있다.

안씨는 오전 7시 반에서 오전 9시까지 일반우편물을 배달한다. 이후 우편집중국에서 도착한 등기‧택배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 고현시내 5개의 담당코스에 순차적으로 배달한다. 배달업무가 끝나면 오후 4시부터 오후 7시까지 다음날 배달할 일반우편 분류작업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한다.

30년의 경력 속에 그간에도 집배원 업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84년 입사 당시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1985년 50cc 이륜차가 보급되기 시작해서 현재 100cc의 이륜차로 우편배달을 하고 있다.

우편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안씨가 1984년 거제면 동상우체국에 재직당시 주된 우편물은 군대에서 온 편지, 연애편지, 안부편지, 전화요금 고지서, 신문 등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편지를 기다리는 마을 주민들은 안씨의 등장에 맨발로 벗고 나와 맞이했다. 그 당시 안씨는 최고 인기스타였다.

또한 전화국에서 우체국으로 걸려온 전화내용을 전보로 바꾸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특히 안부, 축하 등을 전하는 연말, 연시, 졸업시즌에 많았다. 각 가정에 전보를 가져다주면 마을 주민들은 고맙고 수고한다며 반갑게 맞이하며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게다가 안씨는 마을의 심부름꾼 역할도 자처했다. 마을의 요금고지서를 모아 대신 납부도 도와주며 멀리까지 못가는 노인들을 위해 생필품 등도 대신 사다주고, 집도 수리하는 등 마을에선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예전엔 편지를 배달하면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지요. 맛있는 음식도 대접받고 그 시절이 정감 있고 일하는 보람도 많이 느꼈지요. 요즘은 각종 요금고지서 우편물이 대부분이라 직접 배달해도 본체만체 하는 경우가 많아 서운한 경우도 한번 씩 느낍니다”며 옛 시절을 회상했다.

요즘은 일반우편물보다 등기‧택배가 주 업무다. 고현시내 5개 코스를 1코스부터 순차적으로 배달해야 제시간에 일을 마칠 수 있다.
안씨는 등기‧택배 배달 업무를 출발하기 전 고객들에게 방문시간을 문자로 보낸다. 일부 고객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오후로 예정이 돼있는 자신의 택배를 이른 아침부터 배달해 달라고 한다.

“물론 빨리 갖다 주면 좋지요. 하지만 코스 순서대로 배달 업무를 해야 하는데 막무가내로 빨리 가져다 달라는 고객 때문에 결국 일이 뒤엉키고 다른 분들도 그만큼 늦게 택배를 받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며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안씨는 바쁜 업무와중에도 고현우체국 집배원 38명으로 구성된 ‘365봉사단’을 이끌고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으로 10년 전부터 연초 실로원, 베네스다의 집, 작은예수회 고현 공동체 등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목욕, 청소, 음식, 각종 생필품 등을 지원하는 봉사활동을 1년에 1, 2회씩 펼쳐오는 등 사회 불우이웃돕기에도 열심이다.

또 안씨와 동료 집배원들은 지난 2001년, 4개월 동안 거제 전 지역의 취약계층 및 노인들 가구를 대상으로 일요일도 쉬지 않고 무료로 우편 수취함 2,300여개를 설치했다. 이후 우편 수취함의 설치 개수가 늘어 현재 거제 전 지역은 100%의 설치완료율을 자랑한다.

게다가 안씨는 7년 전 고현동 삼성하이츠 근처에서 배달하다 5살 어린이가 자전거를 타다 체인에 발이 끼어 있는 것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가 자전거를 분해시켜 발을 빼낸 적이 있었다. 이후 고맙게 여긴 어린이의 부모는 아직도 안씨를 보면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넨다.

이 말고도 여러 선행이 있다고 동료들이 말을 해라고 부추겼지만 안씨는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말을 아꼈다.

안씨는 현재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장평동 광우아파트에 살고 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집배원 업무를 존경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집배원 업무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안씨는 “정년까진 7년이 남았습니다. 내 몸, 내 힘닿는 데까지 그저 열심히 배달 업무를 할 예정입니다”며 앞으로의 각오를 밝혔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진행한 진솔한 대화를 마치자마자 안씨는 곧바로 집배원실로 내려가 내일 배달할 우편분류 작업을 하기에 바빴다. 바쁘고 정확한 손 놀림에 그간 30년 경력 베테랑의 혼이 그대로 실려 있다.

우체국 한켠에서 불철주야 고생을 하는 집배원의 노고에 집으로 배달되는 편지 한통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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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용 2014-05-14 20:01:29
늘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이너무좋습니다항상 웃음잃지않고 묵묵히일하시는모습에 존경을표합니다..항상건강하시고 오래토록우리곁에 머물길바랍니다....

수월동 2014-04-01 21:35:09
이런 기사는 좋네요.
흠~~이분들 고생 많습니다. 권시장 께서도 삼성이나
대우 선주들 하고만 칵테일 한잔 하지 마시고,
지역에서 정말 피땀 흘려 일하시는 이런분들을 모셔 가지고
짜장면 이라도 한번 대접하세요.
그렇다고 선주들을 푸대접 하라는건 아닙니다. 우리 거제 경제를
뒷받침 하니까요.하지만 이런분들...
정말 고생하십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비둘기 2014-04-01 16:59:05
30년이란 세월동안 한가지 직업으로 오랜세월에 임했다는 자체가 훌륭하십니다. 건강한 미소가
참 아름다우십니다. ^^

화이팅입니다 2014-04-01 16:00:21
정말 이런 분들이 사회에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나마 요즘은 택배회사 들이 있어서 많이 개선이 되었지만,
고생 많습니다.
힘내시고 항상 운전 조심하세요.
고맙습니다.

봄소식 2014-04-01 14:54:46
오랜세월의 경력만큼 어려운 이웃에 관심도 많으시고 봉사활동도하시고... 얼굴에 모든게 묻어있는것 같습니다. 오토바이 사고없이 무탈히 정년까지 건강히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