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5:35 (금)
'패앵낭꺼레'
'패앵낭꺼레'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4.15 16: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안태고향과 할머니

언어는 아무래도 어머니나 외할머니로 내려오는 모계적인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거제도는 산이 많고 골도 깊고 포구도 많아, 지역에 따라 쓰는 어휘도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대략 거제도의 동부지역은 부산과의 교류가 많았고, 서부지역은 통영과 중부지역은 창원(마산)과 교류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은 세밀하게 본다면, 거제도 안에서도 방언의 분화가 약간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 이러한 점은 <제1장>에서 소개한 박정수 교수의 “동부 방언권과 서부 방언권의 영향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개연성”의 토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지, 종속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거제는 거제 그대로의 멋진 어휘들이 많이 있고, 오히려 그런 거제의 어휘들이 육지의 인근 지역에 역으로 도움을 많이 주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외가는 대대로 거제시 동부면에서, 친가는 대대로 거제시 일운면에서 살아왔다.

안태(安胎)고향

필자의 안태고향은 일운면 망치리이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거제도의 중심인 고현으로 이사 와서 성장하였다.

‘안태’는 사투리가 아니며, 경상도 전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유독 거제에서 많이 쓰며, 중요하게 따진다. 원래 ‘안태(安胎)’는 일반 서민의 용어가 아니다. 왕가(王家)에서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그의 태를 태실(胎室)에 안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요즈음에 아기의 탯줄을 소중하게 보관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들었는데, 옛날의 왕가에서는 풍수를 따져 태실을 지어서 태를 안치하고, 또 묘의 이장처럼 태실을 옮겨 가기도 했다.

거제에서는 태어난 고향을 ‘안태(安胎)고향’이라 칭한다. 그러면 나의 안태고향에서 나의 태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나는 새벽에 태어났다고 들었다. 동트기 전이었다. 아마도 할머니나 큰어머니가 나의 태를 짚으로 싸서 자그마한 배 모양으로 만든 다음에, 이슬을 헤치고 ‘홍골’(홈골, 홈이 파여진 골)을 지나 ‘윤돌섬’이 빤히 보이는 ‘엔장’(뒤에 설명)으로 내려가 바닷물에 나의 태를 띄웠을 것이다. 그리고 손을 비비며 무병, 무탈의 축원을 하였을 것이다.

‘패엥낭꺼레’

어렸을 적에 할머니로부터 ‘패엥낭꺼레’를 들었는데, 도무지 왜 그런 명칭이 붙었는지 수십 년 동안 몰랐고, 궁금해 하였다. 그 ‘패엥낭께레’가 둥구나무인 포구나무가 있는 주위를 말하는 것은 어린 나이라도 잘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십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것이 팽나무였다. ‘그래! 포구나무가 팽나무 아닌가? 그렇다면, 낭께레는 무엇일까?’. ‘그것은 남걸(나무의 옛말)에 일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할머니의 말은 ‘팽남걸에’ 또는 ‘팽남걸거리에’를 나타내는 말이었던 것이다.

‘엔장’

망치리의 양지마을 정면은 정남으로 수평선이 아득하고, 오른쪽은 해금강, 왼쪽에는 외도, 윤돌섬을 바라보고 있다. 그 왼편, 윤돌섬 가까운 지점은 ‘비렁’(벼랑)으로 절벽과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엔장’또는 ‘왜엔장’이라 어른들이 불렀는데, 그 호칭이 왜 그런지 궁금하였다.

최근에야 그 이유가 짐작이 되었는데, 그것은 ‘왼편에 있는 엉장’(낭떠러지)으로 결론 내었다. ‘왼엉장’이 ‘왜엔장’, ‘엔장’으로 발음된 것으로 판단한다. 망치의 몽돌밭에서 ‘작은 엔장’, ‘큰엔장’을 지나면 ‘구조라해수욕장’이다.

‘엉장’의 ‘엉’은 사전에 ‘낭떠러지’, ‘언덕’, ‘벼랑’의 방언으로 나타나 있고, <전남방언사전>에는 ‘엉’은 ‘벼랑’이며, 승주, 광양, 영암, 장흥에서 사용한다고 적혀있다.

‘엉장’은 <전남방언사전>이나 <부산사투리사전>에 나오지 않으며, <표준국어대사전>에 ‘낭떠러지’의 방언(제주)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