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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노모가 내민 아들의 ‘찬조금’박경민/거제시 상문동 행정민원담당

'고려장’이란 풍습이 있던 시절, 한 관리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가 눈물로 절을 올리자 노모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는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곳곳에다 표시를 해두었다.” 자식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생각하는 노모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국법을 어기고 봉양하게 된다.

그 무렵 중국 사신이 똑같이 생긴 노새 두 마리를 끌고 와 어느 쪽이 새끼 말인지 알아맞히라고 하여 모두 풀지 못했는데, 그 관리의 노모는 “두 말을 굶긴 다음 여물을 주렴. 먼저 먹는 말이 새끼란다”며 문제를 해결했다. ‘노모의 지혜’라는 설화 내용이다.

지난 주 우리 동 통장님 몇 분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이날 이야기 주제는 어버이 날 ‘경노잔치’였다. 어버이날에는 통장과 부녀회에서 마을 경로당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한다. 우리는 어떤 음식을 장만했고, 얼마나 많은 어르신들이 오셨는지 자랑한다. 새벽 일찍 시장에 나가 생선회를 장만하고, 아침 일찍부터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 마을 통장님의 이야기에 모두들 공감했다.

우리 동 삼거마을은 자연부락으로 백여 세대가 거주하는데, 대부분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들이다. 이 마을에는 어르신과 그 자식들의 전화번호를 모아 만든 전화번호부가 있단다. 통장은 외지에 나간 자식들에게 부모님의 근황을 문자로 알려주고, 마을 행사도 전달한다고 한다. 통장의 지혜와 정성에 새삼 감탄할 뿐이다.

자연부락에서는 봄, 가을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경로관광’을 간다. 연로한 어르신을 모시는 일이라 관광을 책임지는 통장은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안전사고를 걱정하지만, 어르신들은 정기적으로 치르는 관광을 거르면 서운해 하신단다. 나도 아직까지 여행을 즐길 수 있음을 알리고 싶은 듯이.

넉넉지 않은 마을 형편에 관광 경비를 어떻게 조달하는지 궁금하여 물었더니, 놀랍게도 매번 경비가 남는단다. 통장이 관광 계획을 알리면 어르신들은 어김없이 약속이나 한 듯이 봉투를 한 장씩 가지고 통장을 찾아온다고 한다. 그 봉투의 겉면에는 자식의 이름이 적혀있고 그 안엔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짜리 몇 장이 담겨 있단다. 어르신들은 평소에 모아둔 용돈을 자식의 이름으로 ‘찬조금’을 내는 것이다. 외지에 나간 자식이 마을행사에 ‘찬조’하지 않아 무시당하면 안 된다는 듯이.

외지에 나간 자식만 생각하며 우리들의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부모님. 그리고 그들과 묵묵히 살아가며 마을의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통장님. 그들의 자애로운 삶과 사랑이 5월의 햇살처럼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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