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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조경에서 풍수는 어떤 위치였나?
한국의 전통 조경에서 풍수는 어떤 위치였나?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7.0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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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가 넘은 고령으로 아직까지 세계적 무용가로 활동하는 조원경 박사란 분이 있다. 조박사의 춤 철학은 ‘멋은 겉 모양새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온다’라고 할 만큼 독특하다.

특히 근본은 한국 전통에 두었으나 전통 춤의 답습에 머물지 않고 현대인도 감동할 수 있는 춤을 개발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서양 사람의 가슴마다 마치 모를 심듯이 심고 다닌다.

그가 한 번은 ‘강가의 창녀’에 대한 이야기를 춤으로 꾸몄다.

어느 날, 잘 생기고 건강한 청년이 손님으로 와 두 사람은 밤을 세워 만리장성을 쌓았다. 하지만 아침이 오자 눈앞의 이별만은 어쩔 수 없는 법. 그날부터 창녀의 긴 기다림은 시작됐다. 강가에 배만 닿으면 창녀는 부리나케 강가로 달려가지만 님은 오지 않았다.

이때까지 관객은 춤과 이야기가 중국 것인지 혹은 일본이나 한국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다만 동양의 한 가련한 여자의 체념과 슬픔에 눈시울만 붉힐 뿐이었다.

핵심은 창녀가 뱃 손님을 훔쳐보는 마지막 장면에 있었다. 치마는 온통 소낙비에 젖었고 더 이상 내릴 손님도 없었다. 그때 한 줄기 강한 바람이 그녀의 몸체를 휘감더니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관중은 한 구석에서 아! 하는 탄성이 신음처럼 터져 나왔다. 걷어 올려진 치맛 자락안으로 핑크빛 속곡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일본 기생이라면 분명히 맨발에 게다를 신었을 것이고, 중국 기생이었다면 허벅지까지 길게 찢어진 치마 안쪽에 속살이 그래도 비쳤을 것이다.

걷어 올려진 치마 안쪽에 보인 핑크빛 속곳, 속곳처럼 한국성을 더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었을까? 마지막 장면에 비친 생경한 한국적 아름다움에 관객은 감격했던 것이다.

자연과 호흡하는 미

한국의 전통정원은 분명히 서양이나 중국 그리고 일본의 조경에 비해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이 담겨 있다. 그것은 한반도라는 특별한 장소를 바탕으로 이뤄진 종교나 철학, 그리고 사상이 다른 나라의 그것들과 구별되고, 또 한국 조경 자체도 그런 한국적 풍토 속에서 재창조된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사상은 중국의 그것과 어느 정도 뿌리가 같기 때문에 명확히 한국적 고유성을 차별지어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령, 고려청자의 경우도 제작 기법은 중국 당‧송을 통해 전래됐다. 하지만 독창적 기형이나 비색(翡色) 그리고 상감문양기법만은 가장 고려적인 아름다움으로 정착됐다.

한국 조경의 사상적 바탕이 늘 자연에 들어가 자연과 함께 즐기려는 ‘자연주의’에 있듯이. 고려청자 역시 바탕을 숨기지 않는 순순함에 약간의 파격을 준 자연과 호흡하는 미이다.

이렇듯 한국 조경과 예술의 철학적 뿌리는 일차적으로 ‘자연과의 조화’에 있고, 나아가 자연을 경외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보름날에 샘물에 떡을 바치며 가족의 건강과 무사고를 비는 마음이나, 나무에 돌을 끼워 시집보내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 등은 모두가 우리만의 ‘정 많은 자연관’이 표출된 경우다.

이와 같이 한국의 조경관은 바로 자연과의 조화를 밑바탕에 두고 신선사상, 풍수지리사상 그리고 은일(隱逸)과 유교사상 등이 장소적 특성에 복합적으로 투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 조경은 자연을 그대로 모방해 축소시킨 중국 정원과도, 자연을 인공적으로 다듬어 집안에 들여다 놓은 일본 정원과도, 자연은 인간과 대립의 개념으로 파악해 인간 의식속에 자연을 구겨 놓고 즐기는 유럽식 정원과도 뚜렷이 구별되면서도 질적으로 대단히 우수한 조형성을 표출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질곡의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조경에 담긴 전통 사상이나 철학도 정지 내지는 소멸돼, 현대의 조경에서 알토란같은 한국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이 시대의 조경 작품들이 한국적 정체성을 도외시하고 형식적 심미성과 기능적 편리만을 추구한 서양적 사조에 잠식당했거나 또는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

어떤 경우는 전통 사상이나 자연관의 이해 또는 공간 특성의 분석도 없이 그저 전통을 맹종하는 풍토까지 낳았다.

이에 한국 조경도 이제는 전통을 어떤 방식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와 나아가 삶의 질을 이해하면서 환경 보전과 생태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공통의 화두로 삼을 시점에 이르렀다.

이에 풍수지리사상이 우리의 전통 조경에 어떤 차별성으로 영향을 미쳤는가와 또 기능론적으론 미래의 생태 조경학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이고도 실증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전통 조경에 담긴 풍수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고, 나아가 미래의 조경에 풍수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의 방향을 찾아보는 일이다.

풍수는 우리의 옛친구

그렇다면 과연 풍수란 무엇인가?

풍수는 음양오행론에 바탕을 두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종의 자연과학이며 경험과학적 학문이다.

복을 구하고 화(禍)를 피하는 목적 때문에 다소 초현실적인 요소도 가미돼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연환경적 경험을 바탕으로 기후의 변화와 땅의 이용에 따른 다양한 사례를 일정한 확률로 통찰함으로써 보다 좋은 거주환경을 선택하자는 진보적 학문이지 결코 미신은 아니다.

중국 천진대의 샹구오(Shang Kuo) 교수는 풍수가 역사적인 진리를 가득 담고 있으며, 현대의 조경학과 생태 건축학의 기본방향 및 원칙에 부합되는 풍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고려대 심우경 교수는 생태적 조경은 과학적 접근보다는 자연 철학적 접근이기 때문에 자연관이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며, 동양의 대표적인 자연관인 풍수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현대 조경학자들이 전통 조경에서 찾아낸 풍수적 요소는 거의가 마을이나 주택의 부지선정에 공헌한 사상 정도에 국한돼 있다. 즉 장풍이 잘된 터를 선택하는데, 부지의 뒤쪽에는 주산이 있어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고, 좌우에는 청룡과 백호의 산자락이 감싸 안아 부지 내에 바람을 가둬 주고, 전면에는 넓은 논밭과 강물이 돌아 흘러 물과 먹거리를 얻을 수 있고, 마지막엔 안산과 조산이 시원한 풍경을 선사하는 그런 터를 길지로 주목한다.

한마디로 배산임수를 말함인데, 이것은 풍수가 전통 조경이나 부지선정에 미친 사상적 배경의 편린(片鱗)에 불과할 뿐이다.

지리학은 자연에서 연료와 곡식을 구하기 위한 학문이라면 풍수는 산과 물에서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찾는 생활 경험적 지혜임을 먼저 밝혀 둬야 할 것이다.

자연의 순환과 풍수

풍수의 본질은 생기(生氣)에서 출발한다. 생기란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또 그것을 성장시키는 빛, 온도, 산소, 양분, 물이 혼합된 에너지를 가리킨다. 그럼 생기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자연적 상태라면 빛을 제외한 모든 요소는 흙 속에 존재하며 또 흙을 따라 흐르되 음양의 기운이 잘 갈무리 된 곳에 멈춰 응집된다.

풍수에서는 그곳을 혈(穴)이라 부르며, 혈 위에 살거나 조상을 묻어야 산 사람이나 후손이 건강과 번영을 누린다고 본다. 그런데 생기가 출발한 산세는 웅장하면서 신비한 위용을 갖춰야 좋고, 그곳에서 뻗은 산줄기는 굴곡과 기복을 보이며 변화무쌍하게 뻗어야 생기가 충만하다고 여긴다.

풍수 경전인 ‘장경(葬經)’은, 생기는 물을 만나면 멈추고 바람을 받으면 흩어진다고 했다. 즉 땅 속을 흐르는 생기는 물을 만나면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한 채 응결돼 혈을 맺으니 물을 얻어야 하고, 또 응집된 생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니 바람을 가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은 비단 자연의 물만을 가리킨 것은 아니고, 정적(靜的)이며 음기인 땅을 기계적‧화학적으로 변화시키는 동적인 양기의 총칭으로 바람까지 포함한다.

자연은 냉혹할 정도로 일정한 순환궤도를 가지며 그 원리에 따라 만물은 창조되고 또 사멸되는데, 그 순환원리에 인간의 삶을 맞추는 것 역시 자연과 동화된 삶의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 즉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기온과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달의 인력에 따라 바닷물이 밀물과 썰물로 바뀌듯이 생명체 속에 있는 물이나 땅 속에 있는 지하수까지도 인력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자연의 순환 원리를 인간의 삶에 적용 시킨 것이 풍수의 ‘좌향론’이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의 삶이 조화를 이루는 터는 산줄기와 생기가 응집된 혈과 바람을 가두는 주변의 산봉우리와 땅을 변화시키고 만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물과 만물의 생명적 특성에 따라 자연의 순환이기를 이롭게 선택하는 방향으로 구분지어 살펴야만 전통 조경 내에서 풍수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현재는 이 중에서 바람을 가두는 산봉우리에만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또한 풍수는 생기를 충분히 받도록 주거 환경이나 묘 터를 인위적으로 바꾸거나 이용한다면 인간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즉 불행한 운명을 수동적인 자세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기를 이용해 건강하고 행복 된 삶으로 바꾸고자 하는 운명 개척론이 풍수에 속한다.

속리산에 있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은 우산을 펼친 듯이 수형이 단아하며 수령이 대략 6백년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의문은 그 나무의 주변에도 많은 나무들이 있었을텐데 어떻게 유독 그 나무만이 오래도록 살아남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주위의 같은 환경 하에서도 오직 그 나무만이 병충해를 견딜 수 있는 강한 생기를 끊임없이 공급받았고, 또 태풍이나 가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수적으로 좋은 집터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가 서 있는 자리가 최고의 명당이며, 지방마다 명당으로 소문난 집에는 한결 같이 고목이 들어 차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조경과 풍수적 과제

사서삼경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던 옛날 선비에게 풍수이론은 꼭 노력해서 배워야 할 공부는 아니었고, 주역에 나타난 천문‧지리‧물상(物象)을 음양의 원리에 따라 해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곁가지 학문에 불과했다.

그 결과 ‘경국대전’에 음양과를 통해 선발하는 풍수사는 대개가 중인이나 몰락한 양반의 신분이 많았다.

그렇지만 과거 시험에 채택된 ‘장경’, ‘청오경’, ‘명산론’, ‘호순신’ 등은 한문에 밝아야 볼 수 있고, 특히 ‘청오경’과 ‘장경’은 책을 보지 않고 돌아서서 외워야 ‘배강’했으니, 점쟁이나 무당과 달리 사회적으로 예우를 받았다.

따라서 학문에 깊은 사대부라면 집안에 정원을 꾸미거나 혹은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 마음을 쉴 정자를 세울 때도 해박한 풍수 이론에 비춰 부족함이 없도록 주변 자연 환경을 배려해 조영했을 것이다.

이에 한국 전통 조경에 내재한 풍수 사상이 조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그 실체를 고찰하려면 먼저 생기가 충만한 부지를 어떻게 찾았는가 하는 풍수 이론적 접근이 필요하고. 둘째는 흉(凶)함이 있는 터라면 길, 연못, 건축물, 담장 및 조경 부속물(수목‧괴석‧화계‧석조)을 이용해 어떻게 그 피해를 줄이거나 길지로 변화시켰는가를 세부적으로 해부하고 종합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한국 조경 철학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치마 안에 입은 핑크빛 속곳’처럼 한국 전통 조경을 중국과 일본의 조경과 구별짓는 뚜렷한 한국성의 확인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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