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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예산전쟁’의 야전사령관…박태문 거제시기획예산담당관
[사람들]‘예산전쟁’의 야전사령관…박태문 거제시기획예산담당관
  • 원용태 기자
  • 승인 2014.08.28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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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푼이라도 더 따내야한다… 지자체마다 ‘총성 없는 전쟁’

기획예산담당관실 탄탄한 ‘팀워크’로 ‘예산전쟁’ 첨병역할 ‘톡톡’
 

 

거제시의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예산담당관실은 요즈음 피가 마른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편성 작업이 최종 검토과정에 들어가면서 단 한 푼이라도 더 국비를 확보해야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동안 중앙예산부서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구애작전’을 펼쳤지만, 각 지자체마다 ‘죽기 살기’로 국비 확보에 매달리고 있어 쉽사리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국비 없이는 엄두도 못내는 거제시의 굵직한 현안사업은 지천에 널려 있다. 풍족한 예산을 확보해 모든 사업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도 기획예산담당관실은 ‘힘들다’고 엄살을 떨지 않는다. 어려운 사안은 서로 소통하며 정중동(靜中動)속에서 해결책을 찾아낸다. 그 조직내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런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탄탄한 ‘팀워크’가 돋보인다.

박태문 담당관을 주축으로 청사 내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난’ 옥미연 기획담당, 김태근 예산담당, 김환규 광특정책개발담당, 김성겸 경영평가담당, 그리고 7~9급 주무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의 업무상 노하우(know how)를 전수하며 어떤 사안도 척척 해결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기획예산담당관실, 선봉장 박태문담당관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비(國費)만 준다면 개인의 자존심은 ‘잠시 집에 묻어 둔다’

 

기자는 지난 26일 거제시의 기획예산담당관실의 박태문담당관을 비롯한 담당관실 직원들을 만나 ‘총성 없는 국비확보 전쟁’의 현 실태와 애로사항, 그리고 박태문 담당관의 공직생활의 포부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

기획예산담당관실의 선봉장 박태문담당관은 우선 외모에서 덕장의 면모가 물씬 풍긴다. 7척(尺) 거구답게 업무 스타일도 선이 굵다. 청사 내 몇몇 동료들은 “시대를 거슬려 조선시대 쯤 태어났더라면 ‘장군감’이다”고 말한다.

그런 그도 거제시의 모자라는 곳간을 채우기 위해 정부 예산부처에 매달릴 때는 체면이나 염치는 일단 접었다. 그리고 당분간 ‘乙(을) 모드’로 자신을 전환시키고 한 없이 낮추기로 결심했다.

“이 업무를 맡고 있다면 누구나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제시의 현재 재정 상태로는 시민들의 편익과 직결되는 도시기반시설 사업 추진이 어렵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부처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산을 받기 위해) 비굴할 정도로 보여도 괜찮습니다.” 그의 말의 곱씹으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공격적 전략이 묻어난다.

그렇다고 앞 뒤 안 가리고 무조건 돌진하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목적을 위해 논리보다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며 우회적으로 호소하는 면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큰 덩치에 ‘애교(?)’가 간단치 않을 법한데 어쨌든 그는 그렇게 한다.

지난 6일 그는 오직 한 끼 점심식사를 위해 세종시 정부청사로 향했다. 승용차로 왕복 7시간 거리(568㎞)를 달려 먹는 밥이다. 그 점심식사 상대는 기획재정부 예산 담당 사무관이다. 담당 사무관의 출장여부는 확인했지만, 사전 약속도 없었다. 일종의 모험에 가까운 세종시 행차였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세종시 행’이었지만 그만큼 거제시가 쓸 돈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박 담당관의 입장에서는 진땀나는 ‘점심’이였던 셈이다. 더욱이 권민호 시장까지 선봉에 섰던 터라 행여 만나지 못하면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가까스로 기재부 예산담당관을 만나 냉면집에 앉아 물냉면 한 그릇을 먹었다고 한다.

식사자리에서 단 한마디 ‘예산타령’은 없었다. “그냥 뵙고 싶어왔다. 점심을 함께 하고 싶었다”고 했다. 오히려 어리둥절 한쪽은 기재부 관계자였던 셈이다. 물냉면 한 그릇하자고 몇 시간 거리를 달려온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

3시간30분을 달려 불과 30분도 안 되는 식사시간을 가졌다. 자리를 끝내고 돌아오는데, 기재부 관계자가 박담당관에게 또다시 물었다. “정말 저하고 점심 한 그릇 먹기 위해 시장님까지 오신 것입니까?” 권시장과 박담당관의 답은 짤막했다. “그렇습니다”

예산담당 사무관은 빙그레 웃으면서 사무실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미소를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을 할 때 말없이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더니 가섭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에 비유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총성 없는 예산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첫째도 정성, 둘째도 정성이다
‘예산 따내기’는 결국 ‘사람관리’에서부터 시작 된다

 

본격적인 ‘예산 따내기 전쟁’은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편성지침이 시달 된 이후 각 지자체가 예산요구서를 기획재정부에 본격적으로 제출하는 매년 5월 말쯤부터다.

기재부는 각 부처를 통해 올라 온 예산요구서에 대한 소요액 산출을 마치고 기재부 예산심의회와 장관협의회 등을 통해 조정하고 이를 국무회의심의의결을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다음 회계연도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볼 때 각 지자체는 5월부터 9월말까지 필요한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여기에다 국회 심의의결 과정에서 예산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을까 끝까지 지켜보아야하니 정말 죽을 맛이다.

그뿐 아니라 현안사업을 위해 해당부처에 올린 국고지원비가 기획재정부로 올리는 과정에서 행여 누락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의 수는 276곳이다. 한정된 정부 예산을 놓고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한 푼의 돈이라도 더 타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를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각 지자체가 이런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예산을 따내 ‘금의환향’ 할 수 있는 것은 예산요구에 대한 논리와 설득력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 결과를 바둑 두듯 복기하면 ‘일은 사람이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고 한다.

 

이 말은 ‘인맥’과 '사람 관리‘가 일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실 박태문담당관에게 큰 인맥은 없다. 그것도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쥐락펴락하는 인사들과는 혈연, 학연, 지연 등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섬사람 특유의 투박함과 때로는 겉모습에 어울리지(?)않는 섬세함으로 승부한다. 그리고 단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업무를 떠나 철저히 관리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수차례에 걸친 예산요청에도 꿈적도 않던 기재부 예산담당자가 7억 원이라는 돈을 선뜻 내려 보낸 것이다.

박담당관은 전화통화와 공문서로는 도저히 씨알이 먹히지 않자 기재부 관계자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썼다고 한다. 예산의 필요성부터 개인사까지 구구절절하게 담아 보냈는데, 그 내용이 기재부 관계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획예산 업무를 보면서 도움을 입은 중앙부처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역의 특산물인 멸치, 유자청, 굴 등을 보내 ‘작은 성의’를 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앙의 인맥을 파악해 활용하는 수완도 뛰어나다. 그리고 이들과 연관된 주변 인물을 찾아내 이를 활용하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마산시 출신의 예산부처 관계자를 불쑥 찾아 그들로부터 ‘감동 모드’를 형성시킨 다음 예산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읍소’에 가까운 사정을 한 적이 있다.

 

권민호시장, ‘예산 따내기’ 선봉에서 직원들에게 헌신적 도움
“권시장의 특권의식을 버린 소탈한 모습에서 동기부여가 된다”

특히 그는 예산을 따내기 위해 중앙으로 다니는 과정에서 보여준 권민호시장의 헌신적인 모습은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다.

서울 출장 중에 거제행 막차를 놓쳐 버스터미널 인근 여관에서 함께 숙박을 했던 것부터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함께 애쓰는 직원들의 모자라는 여비를 충당하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일에 대한 애착이 더욱 생겨났다는 것.

 

그 뿐만 아니라, 출장 여비규정에도 시장의 경우 해외출장 시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으나, 이를 마다하고 직원들과 같이 일반석을 타고 장장 13시간을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특권의식’은 찾아 볼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박담당관은 권시장의 이런 모습을 교훈 삼아 자신과 동고동락하는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투영시키고 싶다고 했다.

박담당관은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로 배정되는 정부 예산의 불합리성에 대해 지적했다.

거제시의 올해 당초 예산 6,058 억 원 중에 복지예산비율이 30%를 차지하면서 도로 등 사회간접시설 사업 등에 투자할 돈은 항상 모자라는 형편이라는 것. 여기에다 시장이 사업비로 슬 수 있는 가용재원은 올해의 경우 730억 원에 불과해 도시계획도로개설 등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들어 줄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거제시의 자체세입(1,700억 원)과 지방교부세(700억 원)을 합하면 2,400억 원 정도 된다.

반면 합천시, 산청군, 함양군 등 자체세입 6~700억 원 정도 되는 합천, 산청, 함양군 등은 가만히 앉아서 연간 2,000 억 원에 달하는 지방교부세를 지원받고 있다는 것. 거제시보다 연간 1,300억 원이 넘는 돈을 받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정부에서 연간 4,000억 원에 달하는 국세를 거제시에서 거두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지방교부세 부분에서 거제시가 상대적으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거제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정부에 국세 인센티브를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고 있다는 것.

박담당관 또한 지방교부세의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해 모 국회의원의 보좌관에게 국정질의를 요청했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무산된 적이 있다고 했다.

 

2년 여 남은 공직기간동안 딱! 한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현재 포로수용소유적관 이전 사업, 최소한 공론화 됐으면...”

 

박담당관은 지난 1978년 거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35년째를 맞는다. 그는 공무원으로서 그동안 여러 분야를 거쳤지만 유난히 거제시의 문화 관광 부서에서 많은 일을 했다.

현재 거제시해양관광개발공사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포로수용소유적관은 그가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인 일종의 ‘작품’이다. 그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사업을 맡아 장장 13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가 각종 자료를 수집했던 일과 독일, 폴란드 등에 산재해 있는 포로수용소 유적지를 찾아 ‘벤치마케팅’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고 했다.

그는 이제 2년 남짓 공직생활을 남겨놓고 있다. 그런 탓인지 그는 “남은 기간 동안 거제발전을 위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주장이)최소한 공론화되어서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관광 분야를 맡았던 거제시의 최장수(4년)과장으로서 경험을 한번 살려 보고 싶다”고 의욕을 불살랐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일이다. 현재의 포로수용소유적관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유적관 자리를 매각하면 최소한 5~600억 원이 될 것으로 추산 된다”면서 “이 재원으로 지금의 포로수용소유적관 보다 넓고 교통이 원활한 부지(구체적 장소는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릴 수 있어 일단 밝히지 않음 )를 확보하고 각종 시설물을 확충한다면 영화촬영장으로서 학생들의 수련장소로서 여러 가지 기능을 갖춘 관광시설이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세계적으로 포로수용소 유적을 가진 곳은 거제를 비롯해 독일과 폴란드가 유일한데다, 포로수용소 유적사업은 우리 거제시만이 구상하고 개발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주장이 지역사회 안팎에서 한번 쯤 공론화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재차 역설했다.

박태문담당관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공무원)의 지난날 경험과 현재의 열정이 적절하게 조화 될 때 거제시의 앞날은 밝다”고 말했다. 그의 이 한마디는 그가 영락없는 공무원임을 증명하는 ‘공무원증’ 같다.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예산 전쟁’에서 투박하고 묵직한 그의 업무 스타일이 찬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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