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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내 일에서 조금 보태는 거라서 쉬운 것이다”
[사람들]“내 일에서 조금 보태는 거라서 쉬운 것이다”
  • 배종근 기자
  • 승인 2014.09.03 14:5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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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M안경점 정영만 대표, 10여 년째 성로원 아이들에게 ‘안경’으로 봉사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건전하게 자라는 아이들 보면서 보람 느껴
대학 진학하는 아이들 장학금 마련 위해 주변에 구좌 개설 요청

 

VOM안경점 정영만 대표

“당장 주머니에서 50만 원, 100만 원을 꺼내는 것은 힘들지만 내가 하는 일에서, 말하자면 식당하는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밥 한 그릇 더 놓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쉽게 하는 거지.”

기자는 ‘정영만’이라는 사람을 깊숙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친분이 있었고 고현동에서 운영하는 안경점에도 자주 들리곤 해서 그가 그처럼 비밀스러운 작업을 10여 년째 해오고 있으리라고 짐작조차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이 현장을 목격하고 그런 사실을 알려왔을 때에는 서운한 감정마저 들었다.

“이게 생색낼 게 뭐 있노. 내가 하는 일에서 조금 보태는 거라 별 표시가 안 나니까 쉽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봉사로 치자면 직업봉사가 아닐까. 그보다는 생활형 봉사로 보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모르긴 몰라도 이런 일들은 아주 많은데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병원이나 그런 곳 등에서….”

정영만(VOM안경점 대표)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10여 년째 남 몰래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다. 평소에도 친절하고 다른 사람을 소중히 대할 줄 아는 성격에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리지 않는 품성까지 고려한다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그의 고향이 거제면이고 보면 또래의 친구들도 거쳐간 ‘성로원’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낌없이 주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정영만 대표가 처음 안경점을 했던 안동을 떠나 고향인 거제에서 개업한 게 16년 정도 된다. 따라서 적어도 15년 이상은 생활형 봉사를 해왔음이다.

그가 안경 관련한 일을 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거기에 운도 따라 안동의 한 대학교 내에 있던 안경점을 인수한 시기가 결혼할 무렵인 1990년대 중반이다. 그렇게 안경점을 잘 운영하고 있던 그의 귀향은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제에 내려와 안경점을 개업하고 정착을 위해 정신없이 보낸지 6개월쯤 해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정 대표는 “(돌아가시기 전에)같이 있고 싶으셨던 것 같다”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직업이다 보니 봉사활동에 어려움은 없어

이 때를 전후한 시점이 그가 자신의 직업을 통해 사회복지시설인 ‘성로원’에서 생활형 봉사를 시작한 시기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성로원에 친구들이 있었고 선후배들도 많고. 그리고 거제면에서 성로원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먼저 (성로원에)제안했다.”

성로원에서 생활하는 원생들 중 상당수가 시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된 그가 가장 현실적으로 선택한 것이 무료로 안경을 맞춰 주는 일이었다. 그의 직업이다 보니 어려움도 없었다고 한다.

“처음엔 모두 무료로 안경을 맞춰줬다. 그런데 애들에게 뭔가를 얻어가는 게 아니라 어떤 물품이던지 대가를 주고 사가는 모습을 보여주자. 교육적 차원에서도 좋을 것 같았다. 애들도 대가를 주고 사가니까 당당할 수 있겠다 싶어서 선생님(사회복지사)께 제안했다. 그래서 계산하기 편하게 모든 제품을 1만원에 하기로 했다.”

정 대표는 안경을 맞추는 아이들이 대가를 지불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게 되면서 이전보다 당당해진 모습이 대견스러웠다고 한다. 시력이 많이 나쁜 아이들의 경우 렌즈 가격만 20만 원에 육박해 1만 원을 받는다는 것은 정 대표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안 받고 하는 게 더 낫겠지만 애들이 지불하고 당당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고 또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너무 받는데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을 구입하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했는데 효과가 좋았다.”

대신 정 대표는 아이들이 비용으로 지불한 돈을 다시 영화표나 후원금 등으로 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하면서 지도교사들도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소비자로 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성로원 아이들 외에도 통영의 사회복지관에서 요청해 와서 같은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통영의 사회복지회관에서 힘들다고 도움을 요청해 와서 거기까지만 해주고 있다. 그래서 몇 년째 해오고 있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복지관에서 통영시장상을 만들어 놨더라. 나는 받으러 안간다고 했더니 가져왔는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사실 하는 게 없고 특별한 게 없는데….”

친절한 정영만 대표로 인해 안경점을 찾는 어르신들은 편하게 쉬어갈 수 있고 고장난 안경을 고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안경에서 시작해 장학금 마련으로 확장

“특별할 게 없다”고 정작 정 대표 스스로는 격하했지만 안경을 통해 시작된 봉사활동은 크지는 않지만 후원금을 모으는 형태로 발전했다. 성로원을 방문하고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어려움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성로원에 가서 이렇게 확인해 보면 후원금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필요한 것은 개인후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고등학생들의 대학진학에 대한 후원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장학금으로 발생시키면 좋겠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은 것이 정 대표가 가입한 단체를 통해 장학금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몇 번의 성과가 있었다. 이 방법과 함께 주변 친구들에게도 성로원을 후원하는 구좌를 개설하도록 요청하기 시작했다는 정 대표.

“친구들이 모이면 아무 의미 없이 카드놀이 하는데 10여만 원을 쓴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런데 쓰지 말고 5천원부터 구좌를 개설할 수 있으니까 한 3만 원 정도 내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친구가 여럿 있다.”

이처럼 그가 성로원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은 먼데서 찾는 게 아니라 항상 주변에서부터 찾고 실천할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가 하는 봉사는 생활의 일부가 돼버린 셈이다.

“사실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애들이 학비문제가 제일 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성인이 되기 때문에 성로원에서 지원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개인후원이 필요한 것이고 당장의 현실이다.”

대학진학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들을 보면 ‘턱’ 하고 학비를 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도 현재 대학진학을 앞둔 아이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등 형편이 넉넉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항상 주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개인후원을 장려하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제대로 안경이 고쳐졌는지 직접 씌워주며 확인하는 세심한 배려까지.

마음껏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늘 갖고 있는 정영만 대표는 그래도 잘 자라 주는 성로원 아이들과 그들을 올바르게 이끄는 지도교사를 보면서 흐뭇함도 느낀다고 덧붙였다.

“요즘 선생님들이 괜찮은 사람들이 참 많다. 애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애들도 대학에 갈 때 보통 사회복지학과를 많이 가고 있다. 베풀려는 생각을 갖고 사회복지학을 선택하는 애들을 보면 참 건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성로원에 있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서 그런 것 같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바르게 자라는 아이들과 그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사회복지사들은 그가 보이지 않게 봉사활동을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결정할 때 자기 형편 때문에 미리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개인후원 구좌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계속 성로원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개인에게 지원될 수 있는 구좌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주변사람들을 설득해야지.”

작은 것도 부풀려 큰 봉사인 것처럼 떠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그리고 아주 세심하게 배려하는 봉사자들도 많을 것이다. 정영만 대표는 그럴 것이라 믿으면서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십시일반하면 작은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지론이었다.

“식당하는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밥 한 그릇 더 놓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정영만 대표가 말했던 것처럼 ‘봉사’라는 게 아주 쉬운 일이며 보편화되는 그날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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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사람 2014-09-04 09:25:08
한방에 1,004만원후원하는 사람 보다 지속적인 후원자가 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거제 2014-09-03 15:14:11
오~~~잘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