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이라 할까요? 거제에서 농고를 나와 농대까지 졸업하고 언제나 고향으로 가고픈 맘을 항상 품고 살았습니다.”
거제시 동부면 부춘리에서 흑염소 이백여마리를 사육하는 귀농 5년차 여수원(49)씨를 찾아 두 번째 기획 “사람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씨는 거제도 하청이 고향이다. 농고를 나와 농대까지 졸업한후 인천의 구몬 학습지 지도교사로 19년간 장기근속했다. 꽤 높은 연봉에 퇴사하기 전까지 우수사원으로 여러번 선정돼 일본연수를 12번이나 갔다올 정도로 인정받는 엘리트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귀소본능’이 항상 맘에 자리잡고 있어 직장에서 최고의 정점에 있을때 퇴사를 결심하고 귀농을 선택했다.
여씨는 퇴사 직후 고향인 하청으로 내려와 흑염소 스물다섯마리로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귀농초부터 여덟마리가 산으로 도망가는가 하면, 초보적인 축산 지식은 염소 사육을 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고향사람들의 ‘매마른 인심’ 이었다.
어느날, 여씨가 키우는 흑염소가 이웃이 재배하는 두릅나무 밭에 들어갔는데 다음에 한번 더 들어오면 고발한다는 애기를 듣자 야속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씨가 예전 고향에 있을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오가던 논두렁은 현재 그 주인이 막아 1년에 한번씩 통행료를 받는다고 한다.
20여년 만에 찾은 고향이지만 여씨는 이방인에 불과했다. 마을 사람들과 염소 축산업 때문에 잦은 민원이 발생하면 여지없이 이방인으로 취급당했다. 여씨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축산 하우스가 필요했다.
여씨는 고향에 내려온지 10개월후 때마침 동부면 부춘리에 보다 좋은 위치에 이전보다 더 큰 규모의 축산 하우스를 구해서 흑염소 서른일곱마리로 축산업을 이어갔다. 2012년 6월경에 현재 축산 하우스로 옮겼고 이백여마리 의 흑염소로 늘었다.
“염소는 죽어가는데 초보때는 해 줄게 없었습니다. 그냥 죽어가는 모습만 보는게 다였습니다. 이후부터 더욱더 공부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여씨는 귀농전부터 공부를 게을리 않았다. 열권이 넘는 노트에다 질병관리, 폐사율 낮추기, 축사짓는 법 등 흑염소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섭렵해 귀농 5년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응급조치 등도 꿰뚫고 있다.
여씨의 흑염소는 약쑥효소를 먹고 자란다. 그래서 인지 국내 일반 새끼 폐사율이 30%인데 반해 여씨 농장의 새끼 폐사율은 13%이다. 추후 10% 이내로 폐사율을 줄이는게 목표이다. 품질도 좋아 고객들이 알아서 생체를 사러 온다고 한다. 현재 염소가 부족한 상태라 다른 곳에서 분양해 더 키우고 싶지만 고객들은 여씨 농장에서 태어난 염소가 아니면 구입 하지 않을 정도로 품질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솔직히 힘들어요. 하지만 우리애들, 염소들이 항상 보고싶고 애들을 보살피려면 할 일도 엄청나게 많아요. 한번은 새끼 염소가 금방 죽을 듯이 태어났어요. 제 새끼마냥 간절한 마음으로 숨을 불어가며 가까스로 새끼 염소를 살린 적이 있었지요. 그 때의 벅차 오르는 감동이 아직도 전해옵니다. 힘든 점을 잊게 하는 여러 가지 재미가 있어 일을 계속 하는거지요. 일만 보면은 너무나 힘들어서 금방 포기합니다.” 라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여씨의 축산 하우스에서 이백여마리의 흑염소가 자라고 있다. 현재 시설로 오백마리까지 늘리는게 목표다. 최종 목표는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대규모 염소농장을 짓는게 꿈이다.
“손은 거짓말을 안합니다. 지금 하는 일에 따라 손 모양이 변하지요. 이런 거친 손이 지금 저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입니다.”라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에서 국내 흑염소 축산업의 든든한 미래가 보였다.
흑염소 와함께 하고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