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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도우면 나도 행복해집니다”
“남을 도우면 나도 행복해집니다”
  • 원용태 기자
  • 승인 2014.12.10 13: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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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권선이 거제시 자원봉사센터장

마하트마 간디(인도·1869~1948)-“보상을 구하지 않는 봉사는 남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행복하게 한다”

어학사전에서 봉사란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애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난 7월1일부터 거제시자원봉사센터장과 거제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회장을 겸하고 있는 권선이(60)씨를 만나 반평생 동안 남을 위해 자신을 나눴던 아름답고 따스한 손길 속으로 빠져 본다.

또 하나 새롭게 주어진 내 삶…남을 위해 평생을 바칠터

권 센터장은 1955년 거제 사등면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나 가정형편으로 인해 18세까지 통영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다시 거제로 돌아왔다.

“당시 통영은 거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잘 발달 된 도시였죠. 특히 식생활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거제를 잘 먹고 잘 사는 지역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어요. 아마 이때부터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권 센터장이 22세가 되던 1977년, 시댁에서 출산 후 원인도 모를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체중이 26kg가 불면서 심장도 나빠졌다. 설상가상으로 노출된 연탄가스도 마셔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고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건강은 악화돼 갔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보름동안 강화약쑥 1000장을 단전에 뜸뜨는 등 갖은 치료방법을 동원한 끝에 1년 후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건강을 회복했다.

권 센터장은 죽을 고비를 한번 넘기게 되면서 이때부터 “새롭게 주어진 제2의 인생, 남을 속이지 말고 후회 없이 봉사활동을 해보고 살아보자”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치면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 권선이 거제시자원봉사센터장

“누구나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은 보람과 눈물, 재미가 있습니다”

권 센터장은 17년 전 여성봉사단체인 초록회 초대회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자원봉사활동을 펼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을 몇 가지 꼽았다.

팔색조 라이온스 회장을 맡고 있던 2008년 어느 날, 빗길에 미끄러져 복숭아 뼈가 세 조각으로 깨지면서 백병원에 입원한 권 센터장. 당시 문동 컨테이너에서 화재로 사망한 모녀와 한 노인 등 모두 3명이 무연고로 사망한 채 병원에 방치돼 있었다.

권 회장은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영정사진을 들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통영 화장장으로 고인을 모셔가 화장을 치르고 유골가루를 직접 뿌리기도 했다. 또 대한 1차 아파트에서 구두닦이를 하다 사망한 무연고 할아버지도 화장을 치뤘다.

이처럼 무연고 고인을 위해 자주 장례를 치뤄주는 이유를 묻자 권 센터장은 “가족도 없이 쓸쓸하고 외롭게 돌아가시는 무연고 사망자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봉사를 떠나서 마지막 가시는 길 편히 보내드리고 싶어서 몇 번 한 것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권 센터장은 지난 1996년 신현중학교 어머니회장 당시 인근 다방을 돌면서 학생들을 계도하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다방에서 성매매를 했고, 남자는 여자애들을 오토바이로 인근 배달지로 데려다 주는 등 빗나간 생활을 하던 학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했다. 현재 성인이 된 당시 10명의 학생들은 최근 권 센터장의 생일에도 같이 참석해 축하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양발가락이 6개인 어린이도 봉사단체를 통해 성공적인 수술 후 정상인과 같이 현재 대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면서 4년 전 거제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총무가 급성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에 몹시 마음을 아파했다.

권 센터장은 5년 동안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총무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긴 슬럼프에 빠지면서 봉사활동을 접을려고도 생각했지만 마음을 다 잡고 그녀의 몫까지 봉사활동을 펼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봉사활동으로 소홀한 가족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아려옵니다”

권 센터장은 12시에 잠들어 새벽5시에 일어난다. 6시에 집을 나와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가서 청소 등 간단한 일을 도와주고 8시30분까지 사무실로 도착해 9시부터 본격적인 일과를 시작한다.

퇴근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 늦은 밤 시간에 귀가하는 편. 주말에도 항상 스케줄이 잡혀있기 때문에 가족에게는 소홀한 편이라고 한다.

따뜻한 국을 좋아하는 남편이 있지만 바쁜 봉사활동으로 인해 10년 동안 제대로 된 점심과 저녁을 차려주지 못해 미안한 감정이 든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에 다니는 아들(34)을 향한 엄마의 애틋한 사랑도 드러냈다.

“아들은 고등학교 3년과 회사기숙사 7년 등 10년 동안 집밖에서 살면서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한 채 살아왔지만 투정 없이 잘 커 준 것이 대견스럽습니다. 부인과 엄마로서 가족에게 당연히 신경을 써야 되지만 봉사활동으로 인해 해준 것이 없어서 항상 마음 한 켠이 아려옵니다. 건강을 되찾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부인, 엄마보다는 남을 위해 봉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소중한 가족들의 이해와 믿음 때문입니다.”

▲ 권선이 거제시자원봉사센터장

“남을 위한 봉사가 곧 나를 위한 봉사입니다”

권 센터장은 현재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후원처 상당수가 이전에 봉사단체에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업에 실패해 사회와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재기에 성공해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사회는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남을 도우면 내가 행복하게 되고, 내가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해집니다”

인터뷰 도중에도 쉴 새 없이 휴대전화가 울리면서 도움을 주려는 단체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저는 금전보다는 마음이 넉넉합니다. 17년 동안 초록회를 운영해오면서 제가 펼친 봉사가 다시 사회로 환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 합니다”

오는 12월 말 권 센터장은 거제시자원봉사센터 1층에서 불우이웃을 위한 장학금과 생활용품 기금마련 1일 호프집을 운영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간다는 권 센터장. 마지막으로 거제시민들에게 꼭 부탁드린다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자원봉사활동을 좋게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간혹 곱지 않은 시선이나 툭 던진 시샘의 말로 상처를 깊게 입습니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진실한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응원과 격려의 한마디가 저희에게 큰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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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장 2014-12-10 15:28:41
자원봉사센터장인지 자원봉사센터회장인지 구분이 안가는가 보구만
센터에는 회장이 없는데 어디 회장이고? 좀 잘알고 기사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