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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39살에 하늘의 별을 딴 늦깎이 거리 정화마법사
[사람들] 39살에 하늘의 별을 딴 늦깎이 거리 정화마법사
  • 원용태 기자
  • 승인 2015.01.20 09: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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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자원순환과 환경미화원 김경식 씨
▲ 거제시 자원순환과 환경미화원 김경식(49) 씨

“괜찮으시다면 아주동으로 가서 대화를 이어가도 되겠습니까? 같이 가시죠”

16일 오전 9시 30분, 거제시 자원순환과 민원처리담당을 맡고 있는 환경미화원 김경식(49) 씨는 전화 한 통을 받자마자 인터뷰 도중 시청에서 급히 목적지로 동행할 것을 부탁했다.

이날 김 씨는 각종 쓰레기 민원업무와 불법 쓰레기 단속을 맡고 있는 본인의 임무 외 기동수거팀의 현장 지원요청으로 긴급 출동 했다.

청소차량으로 20여 분이 걸려 도착한 곳은 아주동 대동다숲아파트 인근 원룸밀집지역. 원룸건물과 건물 사이의 100평 남짓한 공터에 기동수거팀 직원 3명이 서 있었지만 그보다 널려있는 각종 쓰레기들이 눈에 먼저 들어와 미간을 찌뿌리게 만들었다.

“형님 오셨습니까?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치워야 할지 답답했던 기동수거팀 윤기원 씨가 김 씨를 보자마자 외친다.

김 씨는 “일단 담배한대 피고 하자”면서 나이어린 동료직원들에게 담배를 권하지만 정작 본인은 끊은 지가 20년도 넘었다. 김 씨는 동료들이 담배를 필 동안 그들의 관심사를 애기하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서로 직급 명칭 없이 형 동생 하면서 격이 없는 친형제처럼 보였다. 김 씨와 기동수거팀은 쓰레기 처리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오전 10시. 드디어 청소가 시작됐다. 전날 내렸던 비로 진흙범벅이 된 공터였지만 김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맨손과 갈고리를 이용해 스티로폼과 폐운동화, 라면봉지 등 각종 쓰레기들을 100ℓ 투명 봉투 안으로 순식간에 쓸어 담았다.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이 바삐 움직이자 어느새 청소차량 박스 안은 쓰레기가 담겨진 봉투로 가득 찼다. 이날 네 명이 한 시간 반 동안 치운 쓰레기의 양은 20여 봉투, 500kg 정도.

드디어 모자를 벗고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닦으면서 환한 웃음을 보이며 동료들에게 고생 많았다고 격려하는 김 씨. 맑고 깨끗한 거제시를 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거제의 거리 정화 마법사, 김 씨를 만나본다.

▲ 거제시 자원순환과 환경미화원 김경식(49) 씨

25:1의 경쟁률을 뚫고 하늘의 별을 따다
39살 늦깎이로 가로청소 환경미화원 데뷔

김 씨는 거제시 덕포동에서 태어나 덕포초, 연초중, 거제고를 거쳐 울산전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울산 효성그룹에서 8년 동안 근무하다 홀어머니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1994년 5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 대우해양조선 외주업체에서 자재관리업무를 3년간 맡았지만 박봉이었다. 생계를 짊어져야 했던 김 씨는 능력껏 벌 수 있는 자동차 영업맨으로 직업을 전향하면서 월 1500만원 까지 벌 정도로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월급으로 월 200만원까지 수익이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해지자 홀어머니와 처자식을 부양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검었던 머리카락이 온통 백발로 변한 것.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김 씨는 6년간의 자동차 영업직을 그만두고 정년까지 보장된 직장을 찾다 환경미화원에 지원했다.

당시 환경미화원 4명 모집에 혈기왕성한 20대들을 포함 1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 25:1의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 보통 3수는 기본, 하늘의 별따기라는 환경미화원 시험에 김 씨는 1차 서류전형, 2차 체력시험, 3차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하면서 39살의 나이로 늦깎이 환경미화원을 시작하게 됐다.

▲ 거제시 자원순환과 환경미화원 김경식(49) 씨

폭염 속 고된 청소보다 환경미화원에 대한 사람들의 따가운 ‘갑질’ 시선이 힘들어

김 씨는 아주동 재활용 선별장에서 2년 4개월, 장승포동과 옥포동에서 4년 5개월 동안 가로청소 환경미화원을 거쳐 지난 2013년 6월 3일부터 거제시 자원순환과에서 즉시민원처리 단속 업무를 맡고 있다.

오전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 민원전화가 걸려오면 즉시 현장에 출동해서 민원을 처리하면서 불법 쓰레기 단속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관련 부서의 지원업무도 자주 나가는 편이다.

토요일과 공휴일을 빠짐없이 출근하면 연봉은 세후 3500만 원 정도. 일반 공무원과 복지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공무원 연금이 아닌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정년(60세)까지 보장된 무기계약직이다.

김 씨는 현재 맡고 있는 단속업무보다 가로청소 환경미화원의 업무 강도가 더욱 높다고 말했다.

특히 가로청소 환경미화원으로 일할 당시 여름이면 조금만 움직여도 쉴 새 없이 흐르는 땀 때문에 매일 반팔 셔츠 세 장을 항상 여벌로 챙겨가서 일하는 도중 수시로 갈아입어야 했다. 또 거리에는 꿈틀거리는 구더기와 함께 심하게 썩어있는 음식물쓰레기를 치우면서 수분이 옷에 튀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김 씨는 종일 흘린 땀 냄새와 음식물 악취가 뒤범벅이 된 상태로 식당을 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고 했다. 민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에서 나는 냄새가 자신도 코를 막을 지경이어서 가로청소를 할 당시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항상 김밥이나 빵으로 혼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그러나 고된 청소보다도 더 기운을 빠지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장승포동 가구가 밀집된 골목길에서 가로청소를 하던 어느 날 새벽. 인근 집 주인이 왜 대문 앞 쓰레기를 치우지 않느냐 면서 김 씨에게 따졌다. 분리배출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쓰레기를 치울 수 없다는 이유를 설명하고 다음 가로 청소구역으로 옮길 찰나 “내가 내는 세금이 얼만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라는 말이 뒤에서 또렷이 들려왔다고 했다. 아직까지도 이 같은 ‘갑질’의 현상을 심심찮게 겪을 수 있어 녹초가 된 몸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고 한다.

김 씨는 “한 겨울 새벽, 시민들이 환경미화원에게 건네주는 커피 한잔은 큰 위로가 된다”면서 “힘든 노동을 녹여줄 따뜻한 시선과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인력 증원에 대한 바람도 있었다. 입사하던 해 2005년 56명이던 환경미화원 수는 2014년에는 53명으로 줄었다. 대신 60세 이상의 기간제 근로자가 10명이 추가됐다. 그러나 기간제 근로자보다 환경미화원의 업무강도가 훨씬 높은 편. 김 씨는 인구가(19만5000여 명→26만2000여 명) 증가한 만큼 쓰레기도 늘어났기 때문에 그 수에 비례해서 환경미화원도 증원되길 희망했다.

▲ 거제시 자원순환과 환경미화원 김경식(49) 씨

“재활용품 분리배출과 종량제봉투사용 이 두 가지는 꼭 지켜주세요”
“시민여러분의 마이더스의 손을 통해 쓰레기가 돈으로 변합니다”

시가 한 해 평균 재활용품으로 벌어들이는 세외수익금은 약 10억 원 내외. 그러나 종량제봉투에 넣어진 쓰레기들은 재활용품이 포함돼 있더라도 내용물에 관계없이 전량 소각된다.

김 씨는 “시민들이 조금만 신경 써서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배출 한다면 담당 공무원도 한결 일이 수월하고, 거리도 깨끗해지고, 세외수입도 더욱 증대되면서 다양한 이점이 생깁니다. 꼭 정확한 재활용품 분리배출과 종량제 봉투사용을 꼭 지켜주세요”라고 거듭 당부했다.

또 “쓰레기를 자원이라고 명칭을 바꿔야 합니다. 생각에 따라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소중한 자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정확한 재활용품 배출요령으로 내용물의 확인이 가능할 수 있게 투명한 봉투에 ▲스티로폼은 이물질 제거 후 묶어서 배출 ▲고철류는 플라스틱재질 분리 후 철만 배출 ▲플라스틱류는 페트병과 플라스틱으로 분류 후 배출 ▲병류는 뚜껑을 제거 후 내용물을 비우고 배출 ▲종이류는 반듯하게 편 후 묶어서 배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쓰레기 민원의 80%는 고현동․장평동․옥포동․아주동 등 원룸이 밀집돼 있는 지역이 대부분. 종량제 봉투 사용과 분리배출 방법 등을 지속적으로 홍보하지만 시민의식 부족으로 분리 안 된 각종 쓰레기들이 강한 바람에 이리저리 날라다니며 거리 미관을 해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불법․얌체 주차로 좁아진 거리에 노면 청소차가 진입하지 못해 충분히 깨끗할 수 있는 환경도 더럽게 방치돼 있는 상황이어서 시민들의 성숙한 주차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거제시 자원순환과 환경미화원 김경식(49) 씨

업무 만족도 90%이상…흰 머리카락이 검게 돌아오다

김 씨는 다행히 홀어머니의 건강이 좋아져 현재까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다 함께 덕포동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김 씨는 “요리사는 집에선 요리를 안 한다죠. 솔직히 저도 가정에선 청소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부인에게 재활용품 배출방법과 음식물쓰레기 처리하는 방법을 꼼꼼히 일러주며 잔소리로 청소를 합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어 검은 머리카락을 보여주며 “원래 환경미화원을 하기 전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백발 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고부터 제 손으로 만든 깨끗한 거리를 거제시민들이 기분 좋게 걷는 것을 바라 볼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적당한 노동과 일에 대한 만족감이 저의 흰 머리카락을 검게 만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불평 한마디 없이 동료들과 웃으면서 쓰레기를 치우던 김 씨. 삶에 큰 욕심 없이 거제시를 내 손으로 깨끗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사명감에 불타올라 있는 김 씨는 거제에 없어서는 안 될 진정한 보물이자 인재다.

▲ 거제시 자원순환과 환경미화원 김경식(49)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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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2015-01-20 16:37:40
이런분들에게 대통령 표창장을 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