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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 질 나자 보리 떨어진다.
방구 질 나자 보리 떨어진다.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1.2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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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밥’의 재미

여름이 되면 길어진 일조시간과 따뜻한 날씨로 소를 먹이는 등, 산과 들을 쏘다니게 마련인데, 이때에 놀이의 재미를 더하는 것이 군밥이다. 군밥은 주로 집에서 몰래 가져온 쌀을 계란껍질이나 통조림 깡통에 물과 같이 넣어 불 위에 올려놓아 밥으로 만드는 것이다. 덜 익기도 하고 고두밥이 되기 일쑤였지만, 그 재미만큼은 대단했다. 숨어서 해먹는 것도 주요한 재미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 ‘군밥’의 ‘군’은 군것질, 군소리, 군말, 군임석(군음식)의 ‘군’과 같다. 이는 ‘쓸데없는’ 또는 ‘가외로 더한’을 뜻하는 접두사인 것이다.

개떡이 있었다. 보릿겨 중에서 고운 가루에 밀가루를 조금 섞거나 하여 물 반죽으로 사카린을 조금 넣고 손으로 빚어 쪄내는 것이다. 개떡은 못생기고 맛없고 진짜 떡이 아니라는 뜻이다. 쑥버무리도 있었다. 쑥으로 만든 개떡과 재료는 비슷하지만, 물 반죽을 하지 않고 시루떡 방식으로 보풀하게 쪄낸 것이다. 등겨는 ‘딩기’로 부르고, 왕겨는 ‘왕딩기’ 또는 ‘메지미’라 불렀다.

방구 질 나자 보리 떨어진다.

배고픔의 시절에 그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들이 녹아있는 추억의 속담들을 <거경문학>에 수록된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겅구 많은 집에 남아나는 게 없다.”는 속담이다. ‘겅구’는 ‘건구’를 자음동화로 발음하는 것이며, ‘건구’는 ‘건사해야 할 식구(食口)’를 나타낸다고 본다. 사람의 입이란 참으로 무서워서 식구가 많으면 남아나는 게 실제로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밥 퍼기 기다리는 게 사흘 굶기보다 힘들다.”란 속담도 실려 있다. 배가 무지하게 고팠을 사람과 열린 솥뚜껑으로 밥 김이 올라오는 냄새가 느껴진다. 아무리 그 순간이 힘들어도 사흘 굶기만 하랴마는, 말하는 사람의 그 급한 성격까지 아울러 나타내는 표현이다.

“방구 질 나자 보리 떨어진다.”는 가장 널리 쓰였던 속담이다. 쌀은 귀한 식량이라 보리를 많이 먹게 되는데, 이때의 보리는 물에 불려 ‘도구’(절구)로 찧은 것이어서 지금의 하얀 보리쌀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질’은 ‘길’의 구개음화된 발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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