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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개(犬)는 분명 존재했다…①회
거제개(犬)는 분명 존재했다…①회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2.06 17: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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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당시 거제개 팔순이·암캐
거제개는 실존했는가?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거제개는 있었다. 필자는 거제 사람으로 거제개를 직접 사육했던 한사람이다.

필자가 12살이던 1958년, 두 살배기 우리집 개, ‘봇지’는 당시 거제군 둔덕면 상죽전리에 거주했던 왕고모댁, 5촌 당숙, 최홍안씨(72. 현 거제시 둔덕면 하둔리 거주) 집에서 얻어온 하얀색의 암캐였다.

지금의 진돗개보다 다소 덩치가 컸던 봇지는 우리의 산옆(찬샘골) 논에 모내기를 하던 날, 점심을 지고가던 친척집 아저씨를 따라가다 처음 노루를 잡기 시작해 간간히 산에 갈 때 마다 노루를 잡는 바람에 나와 나의 동생에게 수 없이도 맞았다. 당시 거제 일부지역에서는 노루를 잡으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이 있어 마구잡이로 개를 두들겨 패기만 했고, 봇지가 잡은 노루는 피난민들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가져가버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때문에 봇지는 노루 7마리를 잡은 이후 노루가 옆을 지나가도 잡는 것이 아니라는 듯 물끄러미 쳐다 보기만 하는 영리함을 보이기도 했다.

일간스포츠, 경남신문 등 각 신문에 수렵소설을 연재해 인기를 끌었던 김왕석씨도 그의 글 맹수와 명포수에 거제개의 실체를 증명하고 있다.

이책에서 그는 영리하고 투지력이 강한 거제개의 활약성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경북 선산의 한 작은 마을에 한 사냥꾼이 거제산 중견 두 마리와 잡종견 한 마리로 노루사냥을 하러갔다. 이 사냥개 세 마리가 산중턱에서 노루를 발견하고 노루를 내몰아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노루의 뒤를 쫓던 개는 두 마리 뿐이었다.

그 사냥꾼은 으례히 한 마리는 도중에 낙오한 줄 알았는데 이 얼마나 영리한가! 노루와 두 마리의 개가 일단 아래쪽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건너 산 위로 올라가는 동안 낙오한 줄 알았던 그 한 마리의 개가 산 허리를 가로질러서 건너산 중턱으로 달려가 있지 않은가. 마치 사냥꾼이 노루목을 잡아 지켜선 것 처럼 노루가 오는 목으로 직행한 것이다.

마침내 노루가 목까지 이르자 그 개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노루와 개는 한덩어리가 되어 뒹굴었다.』

필자는 거제개가 북방견의 일종인 몽고개와 우리나라 토종인 도서지방 개들의 혼합종으로 탄생된 하나의 별종으로 믿고 있다.

체구는 대형개와 중형개의 중간 사이. 수놈체는 52~55cm, 암컷은 48~50cm 정도로 우리나라 육지의 개들보다는 체구가 다소 컸고 색상은 백색, 황색, 검은색, 재색 등 혼색종이 다양하게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백색과 검은색, 그리고 황색계통이 흔했다는 것이 거제개를 길러 본 사람들의 주장이다.

진돗개와 흡사한 면도 있었지만 체구가 다소 컸던 거제개는 특히 송곳니가 길고 끝은 안으로 약간 휘어져 있었으며 사냥에 나서서는 표독스런 맹수로 돌변, 목표물을 끝까지 추적해 포획하는 지구력을 겸비했다.

오랫동안 거제개를 길렀던 거제시 사등면 장좌마을 조규봉(60)씨, 둔덕면 시목리 이재우(66)씨, 사등면 오량리 김경도씨, 신현읍 수월리 윤봉권(68)씨, 연초면 한내리 서영구(72)씨, 김건주(59.사등면 출신, 현 부산거주) 등 지역민들은 "거제개는 사냥감의 진로까지 예측할 줄 아는 등 그야말로 수렵에는 천부적인 능력을 가졌지만 가축들과는 함께 놀아 줄 만큼 친근감을 갖기도 했고, 특히 사람에게는 진돗개와는 달리 영악스러움보다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한 면이 있었다"고 이구동성(異口同聲), 입을 모으고 있다.

서영구씨는 “30여 년 전 우리 집에서 기르던 검은색 거제개는 내가 이웃에 모내기를 하러가면 어미잃은 우리집 고양이 새끼를 물고가 함께 밥을 먹어주었다”며 “부모들이 이웃집에 모내기를 하러가면 아이들이 따라가 점심을 함께 먹던 것 처럼 개도 주인이 모내기하는 집에 같은 식구를 데려가 밥을 먹일 만큼 영민함을 보였다”고 말 한다.

개에 얽힌 설화로는 ‘주인을 구한 개’ 가 연초면 설화로 전해져 오고 있다.

『사돈 집에서 사냥개 한 마리를 사와서 자기집에서 기르던 개와 함께 동부면 구천삼거리로 밤사냥을 갔었는데 개들이 굴 속으로 들어가고 한참 후 한 마리는 나왔으나 한 마리는 나오지 않았다. 주인이 개를 찾으러 굴 속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흙더미가 무너져 그만 갖히고 말았다. 이때 밖에 있던 개가 집으로 달려가 끙끙거리며 괭이와 소쿠리(흙을 담는 도구)를 물고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집에 있던 사람들은 주인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 것으로 짐작, 동네 장년 5명을 데리고 개를 따라가 굴속에 갇힌 주인을 구해 냈다. 그러나 굴속에 남아있던 개 한 마리는 끝내 구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개는 사흘 밤낮을 잠 자지 않고 짖어 댔다. 시끄럽다는 이웃들의 항의를 받고 주인은 개를 팔아버렸다. 개를 판 그날 밤 주인의 꿈에 개가 나타나 ‘내일 아침에 나는 죽는데 죽는 이유는 목신(木神) 때문이다.내가 사흘 밤낮을 짖은 것은 우리집 살구나무를 베어낸 곳에 목신이 있는데 그 목신이 주인을 데리고 가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모르고 나를 팔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어쩔 수 없이 죽는다’

잠에서 깬 주인은 아들을 시켜 개를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아들은 밤중에 갈 수 없으니 내일 아침 일찍 개를 찾아 오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개를 찾으러 간 아들은 이미 때를 놓치고 말았다. 개는 벌써 고기로 변해 있었던 것이었다. 이후 그 집의 가세는 기울었다고 한다.』

또한 장목면에서는 ‘주인의 아들을 구한 개’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해 첩을 들였는데 마침 본부인이 임신을 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기르던 개도 어느새 새끼를 베어 같은 달 출산하게 됐다. 하루는 부인이 개에게 밥을 주며 이렇게 말 했다.

“너와 내가 같은 달 출산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달 출산을 하거든 너는 다른 곳에서 새끼를 낳고 나는 사람이니 우리집에서 낳도록 하자”

얼마 후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다른 곳에서 새끼를 낳았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이 먼곳으로 다니러 간 사이 부인도 옥동자를 낳았다. 늘그막에 출산한 부인은 기진맥진해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이때 첩과 이웃 산파(産婆)가 짜고 죽은 아이를 출산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부인이 정신을 차리자 첩이 말했다.

“죽은 아이를 낳았으니 갖다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다? 더구나 서방님이 돌아오시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첩과 산파가 아기를 포대에 싸서 밖으로 나갈 때 어디선가 개가 나타나 이들을 따라 갔다. 그들은 돌무더기를 해치고 아기를 생매장했다. 사람이 떠난 후 개는 아기를 파내 포대기와 함께 자신의 새끼들이 있는 바위밑 동굴로 몰고 갔다. 그리고는 자기의 새끼들을 밖으로 물어 내고 주인의 아기를 품고 젖을 먹였다.

얼마 후 출장에서 돌아 온 남편에게 개가 꼬리를 흔들며 바지가랑이를 물고 끌어 당기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가자는 신호 였다.

남편이 따라 나서자 개는 아기가 있는 동굴로 향했다. 사람이 가다 멈추면 개는 다시 바지가랑이를 물어 끌며 따라 오라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동굴에 도착하자 개는 포대기 위에 놓인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남편은 그간의 정황을 눈치채고 아기를 안은채 집으로 돌아 왔다. 개는 아기를 보살피느라 자신의 새끼를 돌보지 못해 새끼는 모두 죽었다.』

이처럼 거제개는 주인에게 충직한 개로 평가 받아 왔다.

지난 1970년대초, 거제시 일운면 예구리 어느 할머니댁에서 기르던 ‘메리’로 불리던 노란색 수놈의 거제개는 할머니가 밭에 나갈 때면 어김없이 따라 다녔고 간혹은 할머니가 풀이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옷깃을 물고 일으켜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웃집에는 ‘매리’보다 체구가 두배나 되는 세퍼드 튀기를 사육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개를 묶어두고 키우지 않던 그 시절, 이들 개 두 마리는 자주 마주치며 싸움을 했지만 번번히 튀기의 판정패로 끝났다. 튀기의 주인은 할머니가 없는 틈을 이요해 메리와 자신의 개를 싸움시켰지만 단 한번도 이기지를 못했다.

튀기의 주인은 개에게 한달가량 인삼, 보약 등을 먹이고 적당한 운동까지 시킨 후 또다시 싸움을 걸었다.

동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구리 선창가에서 시작된 싸움은 상대방에 비해 왜소하기 그지없는 ‘메리’가 시종 밀리고 있었다.

튀기와의 싸움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메리는 그날 따라 맥도 못추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날카로운 이빨, 큰 체구, 억센 힘, 주인의 힘찬 격려의 목소리 까지 가세된 튀기는 사정없이 메리를 몰아쳤다.

메리는 주인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귀와 목덜미, 얼굴 등 무차별 공격을 받고 피투성이가 되며 차츰 선창끝으로 밀려갔다. 더 이상 튀기에게 덤벼들 용기조차 잃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일순간 메리의 눈이 빛나기 시작하며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이 동시에 일어났다. 선창끝까지 몰렸던 메리는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튀기의 목을 힘껏 물었다. 그리고는 살얼음이 깔린 바닷속으로 한덩어리가 되어 떨어졌다. 그러나 누구하나 개들을 끌어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1분, 2분 시간이 흘렀지만 개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간간히 물위로 핏빛 물거품이 솟아오르며 끄르럭, 끄르럭 비명소리에 물이 빨려드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3분이 가까워 올 무렵 튀기가 먼저 물위로 내밀었다. 그러나 힘없는 동공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5~6초가 지난 후 메리가 떠올랐다. 메리는 선창을 향해 헤엄치고 있었지만 튀기의 몸놀림은 정지된 채 물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후 메리는 우람했던 튀기의 도전을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같이 거제개는 싸움에서도 전략적 기지를 발휘할 줄 았았다.

며칠 후 메리는 커다란 돼지고기 덩어리 한 개를 주인에게 물고 왔다. 할머니가 자세히 살펴보니 고기의 전체가 푸릇푸릇 물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누군가가 개를 해치기 위해 극약을 묻혔다고 판단, 개 때문에 이웃간 정까지 변할 것을 우려해 이 개를 팔기로 했다. 이때 사등면 장좌마을 조규봉씨가 소식을 듣고 찾아가 메리를 인수했다.

메리는 할머니댁에서 4년 가까이 길러지며 수십마리의 노루와 오소리를 잡아 가난했던 할머니를 도왔던 것이다. 조씨 집으로 팔려 온 메리는 3일이 지난날 첫사냥에 나서 두 마리의 노루를 잡았고 그 이후에도 사냥에 나설때면 단 한번의 허탕 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 조씨의 증언이다.

메리는 5년가량 조씨집에 사육되며 30여 마리의 오소리와 1백여 마리의 노루를 포획했다. 그러던 어느날 김해에서 40대 중반의 사람이 찾아와 전국에서 가장 사냥을 잘하는 개를 자신이 기르고 있다며 소문난 거제개와의 사냥실력을 겨루자고 제의해 왔다. 그는 자신의 개는 생후 4년이며 외국 사냥개와 한국사냥개의 잡종개라고 소개했다.

사냥 장소는 하청면 앵산이며 대상은 노루나 오소리로 어느 개가 먼저 이들 사냥감을 발견해 잡느냐 하는 것이었다. 보름 후 역사적인 대결을 펼치기로 하고 그들은 떠났다.

누구보다도 거제인의 자존심이 강했던 조씨는 앞뒤를 가릴것도 없이 쾌히 승낙했으나 사실은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생후 9년이나 된 메리가 최근들어 사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간 백발백중이었던 메리의 사냥실력은 지난해 80%정도에 불과했고 올들어서는 70%에도 못미치고 있었다. 그처럼 지칠줄 모르던 연속적인 활동력도 이제는 하루 이틀 쉬어가며 사냥에 나서야 하는 식으로 힘이 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나이 많은 메리는 과연 젊은 사냥개를 이길 수 있을까? 만약에 진다면 수년간 사냥개로 명성을 떨쳤던 조씨 자신의 망신살은? 또한 거제개로 인한 거제인의 자존심은?...

조씨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1974년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거제개와 김해개의 역사적인 사냥대결이 하루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아침일찍 잠자리를 박찬 조규봉씨는 메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메리야 내일 사냥시합에서 꼭 이겨다오. 이번 시합은 너와 나의 자존심이 아니라 거제인의 자존심이 달렸단 말이다”

그러나 메리는 주인의 명령은 아랑곳 없이 꼬리만 살래살래 흔들고 있었다.

김해사람 일행 3명은 사흘전 거제에 도착해 개의 컨디션 조절 등 전반적인 시합준비를 하고 있었다. 메리보다 체구가 다소 큰 김해개는 백색계통의 잡종개였다.

사냥시합 날, 김해 사람들이 지프차에 자신의 개와 메리 등 두 마리의 개를 함께 태우고 하청면으로 향했다. 메리는 상대방 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김해 개는 몹시도 으르렁 거리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시합장소인 하청면 앵산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8시20분, 앵산자락은 서릿발이 무성했다.

차에서 내린 개들은 서로 날카로운 눈빛만 주고 받을 뿐 싸우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개들은 동성(同性)간에 마주치면 싸우는게 예사지만 명 사냥개들은 같은 수놈끼리지만 싸우지 않고 오직 사냥을 위해 이곳에 온 것 처럼 늠름하고 의젓한 사냥개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코를 땅에 끌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짐승의 냄새만 쫓아 다니던 두 마리의 개들은 3부 능선에 접어들 무렵 갑자기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두 마리의 개들은 같은 지점을 사이에 두고 몇 바퀴를 돌더니 동시에 북쪽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순간 조씨는 인근에 사냥감이 있음을 직감했다. 거제의 산들, 그리고 산길 굽이굽이마다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알고 있는 조씨는 개들이 뛰어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김해 사람 일행 3명도 조씨의 뒤를 따랐다.

얼마쯤 달려갔을 때 멀리 두 마리의 개들이 짐승을 쫓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개들보다 50여m 앞서 달리는 동물은 거제지역에서 흔히들 노루로 불리던 고라니가 아니라 지금은 거제지역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키가 2m에 이르는 진짜 노루였다.

산굽이와 능선을 넘어 크고 작은 산봉우리 3개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개의 뒤를 쫓아가고 개는 노루의 뒤를 따르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개와 노루 간 간격의 폭을 좁히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메리의 몸동작이 둔해지는 느낌을 조씨는 감지하고 있었다. 약간의 사이를 두고 거의 나란히 달리던 두 마리의 개중 메리가 약간 뒤처지는 것을 조씨는 눈치챈 것이었다.

젊은 김해 개의 동작은 민첩했으며 지칠 줄을 몰랐다. 경쾌한 발걸음은 9살의 메리보다 앞서 가고 있었고, 노루와 개들이 4번째 산굽이를 돌아 연초면 오비리 뒷산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메리보다 3~4백m를 앞서고 있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7~80고령에 이르는 9살의 메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냥감과 멀어지고 있었다.
<②회에 계속>

                                                                                       글 : 경남투데이 반용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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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2019-08-14 11:50:09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글 좀 퍼가도 될까요?
물론 저작권 표기는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