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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타임즈 박춘광사장 수필가로 ‘문단입문’ ‘
거제타임즈 박춘광사장 수필가로 ‘문단입문’ ‘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2.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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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제148호 신인상 수상-‘나의 일기’

(주)거제타임즈 편집인으로 재임 중인 박춘광 사장이 계룡수필문학회 활동하면서 작품 ‘나의 日記’로 수필과비평' 제148호를 통해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수필가로 등단 문단에 정식 입문했다.
그동안 몇차레 수필작품을 발표한바 있으나 취미생활 수준이거나 습작 과정이었으나 전문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문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나의 일기     박춘광
 당선소감
'묵묵히 나의 길을 가리라.'
다른 이들의 수상소감을 읽을 때마다 부러웠지만 정작 내가 수상소감을 쓰려니 얼굴이 붉어진다. 나름 노력했어도 부족한 점이 많다. 오로지 지도교수님의 따뜻한 가르침만 믿고서 수필의 길에 첫발을 내딛는다.

나는 고향 거제도를 무척 사랑한다. 추억과 삶과 영혼이 함께 할 곳이기에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벌써 고희를 앞에 두고 있다. 바닷가 엉게나무가 외롭게 서 있는 언덕너머로 바라보던 석양은 참으로 아름답다. 앞으로의 내 삶도 저녁 연기 속에 뜨는 노을처럼 그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늦깎이로 첫걸음을 걷는 이 순간이 두렵고 부끄럽다. 그러나 정진하리라.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며 인생을 예찬하리라. 격려해 주는 문우들과 심사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한다. 더 열심히 묵묵히 이 길을 걸어 갈 것임을 다짐한다.
   

 강돈묵 교수

 심사평 : 강돈묵<수필가/ 거제대학교수>
박춘광의 <나의 일기>를 신인상에 올린다. 일기는 아니로되 하루 속에 자신의 지나온 삶을 모두 담은 글이다. 고희를 앞에 두고 되돌아보는 삶은 회한이 서리기 마련이다. 이때에 사람들은 감상에 떨어지기 쉽지만, 작가는 그 삶을 객관화시키는 솜씨가 있다. 화자인 ‘나’를 끝까지 숨기고 기술해 나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구성에 있어서도 나름의 기교가 있다. 승용차에 앉아 차창으로 보이는 것은 현실이고 룸미러나 백미러에 비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장치이다. 그리하여 하루의 나들이처럼 되어 있으나 실은 작가의 세심한 배려 속에 짠 얼개이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지나온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나름은 따뜻하다. 한국동란 당시의 구걸과 젊은 날의 상실감과 고향의 공업화로 인한 안타까움이 분노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이다. 그러기에 바닷가에 서서 명경대 앞에 선 마의태자를 연상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떳떳하게 업경대 앞에 서길 소망한다.

장기간을 두고 글을 익힌 흔적이 역력하다. 앞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각만 유지한다면 세상을 밝혀주는 좋은 글을 많이 쓰리라 기대된다. 정진을 바란다.


   <수필과 비평 싱인상 당선 작품>

  나의 일기     박춘광
오랜만의 여유다. 세상을 내려놓고 차분한 시간을 갖고자 했다. 별 생각 없이 운전석에 앉고 시동을 건다. 언제나 순응하는 차는 앞으로 나간다. 집에서 나온 뒤로 길을 따라간다. 차는 어느새 해변을 따라 난 길을 달리고 있다.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그림, 바다도 들어오고 산도 들어온다. 나무도 보이고 바윗돌도 다가선다. 저 멀리서 갯바위에 파도가 부서진다. 하얗게 무너지는 파도가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밀려와서는 부서지고, 밀려와서는 다시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다가 속절없이 살아온 지난 삶이 자신을 움켜잡고 있음을 절감한다.

룸미러에 잠긴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까칠한 모습이 어디를 보아도 별 볼일 없는 늙은이다. 쓸어도 끝이 없이 쌓이던 겨울눈처럼 검게 칠해도 지치지 않고 솟아오르는 흰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심사에 거슬린다. 속이 숭숭 들여다보이는 머리하며 이마의 주름살에 좌절한다. 전에는 그렇게 선명하지 않던 흉터가 이제는 더욱 짙게 드러난다.

감추고 싶었던 젊은 혈기에 묻혔던 흉터는 이제 기력이 떨어진 것을 알고 제 마음대로다. 초등학교 시절 방패연을 날리다가 얻은 흉터다. 젊은 때는 보일 듯 말듯 조금 들어간 자국뿐이었는데 이젠 완연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하여 과거여행은 시작된다. 한참을 연 날리던 어린 날의 추억에서 나오니 차창에 포로수용소가 들어온다. 갑자기 좌회전하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비명을 지른다. 순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버지 손에 매달려 이모 댁으로 가면서 이곳에서 느꼈던 공포가 엄습한다. 수용소 안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더러 총성도 하늘로 솟아올랐다. 안에서는 아비규환이었다. 사리를 정확히 판단할 능력이 없던 소년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만 있었다.

실은 '양키'들이 던져 주는 초콜릿이 생각나서 아버지를 따라 나선 것이었지만, 엄청 무서웠다. 먼지 뿌옇게 날리는 신작로 길을 달려가는 미군 트럭을 뒤따라가며 "할로, 초코레트! 할로, 초코레트!"를 외쳤다. 그러면 예외 없이 까만 얼굴에 허연 이를 드러낸 흑인병사들이나 잘생긴 코쟁이 미군들이 초콜릿을 던져 주었다. 처음 본 흑인병사의 얼굴이 너무 검어서 괴물같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던져주는 초콜릿과 껌의 맛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차는 장승포항에 이른다. 백미러에 갯가가 들어앉아 있다. 물이 빠진 갯가, 그곳에서 소년은 갯돌 사이에서 해삼을 줍고, 문어를 잡는다. 더러 갯바위에 앉아 있을 때도 있다. 까까머리에 긴 대나무 낚싯대를 바다에 담그고 있었지만 그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심드렁한 표정이 왜 그랬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안쓰럽게 뇌리를 스친다. 과묵하고 언제나 깊이 생각하던 소년. 그 소년은 밤안개가 자욱한 여름밤의 장승포항을 좋아했다. 안개가 밀려와 돌담을 넘으면 그는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 문을 열고 포구로 나갔던 것이다.

등댓불이 있었으나 밤안개에 묻혀 제구실을 못했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어 방파제가 을씨년스럽다. 방파제를 밤안개는 휘젓고 다녔다. 소년은 익숙하게 방파제 넘어 너럭바위로 간다. 그곳엔 이미 소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단발머리 소녀는 소년이 도착하자 옆자리를 내준다. 저만치서 파도소리가 잦아들고 있다. 등댓불도 안개 속에 숨는다.

여객선 터미널을 지난다. 지금은 거가대교 개통으로 무용지물이 된 터미널. 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설렘 속에서 이 터미널을 이용했던가. 한 젊은이도 설렘 속에서 이곳을 떠난 적이 있다. 과묵한 성격에 속마음을 아무에게도 내놓지 못하던 그는 섬을 떠나 뭍으로 가고자 했다. 물론 청운의 이상과 가난이 그의 삶터를 옮기도록 한 것이다. 남들이야 부질없는 욕망이라고 탓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은 너무도 절박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길이었다. 뭍에 나간 젊은이는 의외의 복병에 시달린다. 가난이 지겨워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고 떠난 길이었건만, 다시 장승포항을 밟고 말았다. 타향살이가 훨씬 맵다는 것을 절감하고 깜박이는 등댓불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던 날 그를 맞아준 것은 갈매기도 동백꽃도 아니었다. 공룡처럼 버티고 서 있는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이었다.

그때 나이 마흔 후반. 인생의 반을 지워버린 후였다. 좌절하기에는 이르다고 해도 새 세계를 꿈꾸기에는 주춤거리지 않을 수 없는 나이였다. 빗나간 삶터에서 다시 쫓기어 고향에 돌아와 첫발을 딛는 순간은 처절하기만 했다. 그래도 부서지는 파도와 언덕배기에서 슬피 우는 으악새가 그리워 찾아왔는데, 괴물 소리만 내는 조선소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아직은 칩거하지 못하는 마음이 저녁의 한가함을 얻어 나서면 조선소 골리앗에 걸려 있는 초승달이 낚시의 미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차가 능포 바닷가에 도착한다. 잔잔한 바닷물이 시야로 들어온다. 외갓집과 무던히 사랑했던 소녀의 집이 있던 동네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 그 안에 낮달이 졸고 있다. 저쪽의 숲정이가 물밑에 가라앉는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방파제에 서니 영락없는 금강산의 업경대다. 문득 마의태자가 업경대 앞에 선 심정이 된다. 저 물에 자신의 지난 생을 비춰본다.

분별없이 사치와 좌절과 허영과 광기로 위험했던 젊은 시절의 얼굴도 있다. 분노를 참지 못해 스스로 장래의 길을 무너뜨린 후회의 순간도 보인다. 이별이라는 뼈저린 고통과 눈물마저 메말라 버리던 가난했던 월급쟁이의 무거운 퇴근길 발걸음도 있다. 소주병을 들고서 도심의 공원 벤치에 앉자 하염없이 허공을 응시하며 삶의 궤적을 지우고 싶어 하던 회한의 순간도 있다. 졸고 있는 가로등 아래서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도 끝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낸 아픔도 있다. 폐부의 깊은 심연에서 꿈틀거리는 아리아 같았던 잔인한 사랑의 유희도 지금은 없다.

업경대 앞에 선 자신이 부끄럽다. 촌스럽고, 후회스럽다. 지금까지 그까짓 삶을 지키기 위해 아근바근 살아왔다는 것이 허망하다. 다시 미혹의 안개가 엄습해 온다. 쫓기듯 차를 집으로 돌린다. 차창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칩거의 시간을 갖기 위해 방으로 들어선다. 언젠가는 떳떳하게 업경대 앞에 서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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