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백마 탄 왕자는 없다’

2021-09-23     이재준

1960년대 중반쯤의 일이다. 경상도 어느 지역 국회의원 선거 유세장에는 동네에서 모여든 청중들로 왁자지껄 했다. 한 중년 후보가 단상에 올라 유세를 시작하자 한 청년이 “아버지 그만 내려 오이소”라며 소리쳤다. 이후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기자가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들었던 기억의 한 조각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감’이 안 되는 후보자들의 출마를 희화화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게 사실이라면, 아들은 왜 아버지를 공개적으로 남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을까. 아버지가 명예와 권력을 쫓는 동네 졸부였는가. 아니면 아버지는 당선돼 어깨에 힘 좀 주고, 죽고 난 이후 묘소 앞 비석에 갓이라도 씌우고 싶어 출마했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어떨 결에 남 따라 장에 간’ 아버지가 그냥 창피했던 것일까.

거제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 뜻을 둔 인물들이 지역 언론 매체에 얼굴을 내민다. 주로 시장후보자들의 면면이다.지금까지 어떤 당은 후보자가 3명, 또 어떤 당은 후보자 10 여 명 정도가 거론된다. 웬만한 관심으로는 후보자들의 면면을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다. 후보자들은 언론 매체와 인터뷰 등 각종 홍보를 통해 얼굴 알리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어떤 이는 언론에 기고를 통해 자신의 식견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유권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설 요량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본선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탓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 인물이 그 인물이다”는 중론이다. 이들은 어제의 ‘용사’들이 오늘도 ‘용사’인양 얼굴을 들이밀고 ‘거제의 미래’를 논한다는 자체에 믿음이 안 간다고 꼬집는다. 또 ‘구관이 명관’이라는 논리로 시민들에게 그만 읍소하고, ‘있을 때 잘하지 못한’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무엇보다 일부 후보자들의 출사표에서 정치철학과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분석을 내 놓는다. 그들이 밝힌 거제발전에 대한 비전과 출마의 동기를 보면 아무렇게나 갈겨 쓴 메모장이나 일기장 같다고 평가절하 했다. 비전은 오늘과 내일을 연결시켜 주는 희망적 다리인데, 고민의 흔적과 의지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그저 정부나 지자체에서 밝힌 내용과 계획을 각색하는 수준에 불과하고 창의적인 큰 그림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매번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식상함에 입맛을 잃는 유권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먼저 우리는 광야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을 고래에게 쫓기는 멸치 떼 취급하는 후보자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아야 한다. 소위 꾼들을 기용해 유권자들을 멸치 떼 몰 듯 하면 당선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못하도록 말이다.

유권자들은 감정에 약하다. 흥분도 잘하고 눈물도 잘 흘린다. 그것은 감정이 풍부하고 정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에 약하다는 것과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과 다르다. 우리는 거제의 내일을 위해 일할 제대로 된 후보를 골라내는 매의 눈을 가져야 한다. 흔히 선거는 최선이 아니면 차악이라한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오직 명예와 권력을 쫓아 유세 단상에 오른 ‘아버지’를 뽑을 것인가.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