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거제, ‘관광 만능론’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거제는 배를 만드는 도시다.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했던 조선업의 심장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2018년 전후로 불어닥친 조선업 불황은 시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이 위기 속에서 구원투수를 자처한 수많은 리더가 내건 처방전은 한결같았다. 바로 "관광산업을 통한 산업 다변화"였다. 조선업 의존도를 낮추고, 굴뚝 없는 산업인 관광으로 거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과연 그들의 호언장담대로 거제는 관광 도시로 환골탈태하여 경제적 풍요를 되찾았는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자. 대답은 단호히 "아니요"다.
지난 8년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정치인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찬양해 마지않던 ‘여수’를 보라. ‘여수 밤바다’라는 낭만과 함께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듯 보였지만, 지금 여수가 겪는 명암은 뚜렷하다.
관광객 숫자가 곧 주민 삶의 질 향상으로 직결되지 않음을, 그리고 관광산업만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해서 창출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여수의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거제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관광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정작 거제를 지탱하던 허리인 청년층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인구 감소, 특히 청년 유출은 지역 경제의 축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경고음이다.
관광지 아르바이트로는 생계를 꾸릴 수 있어도,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설계할 안정적인 직장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관광산업의 태생적 한계이자, 이를 주력 산업으로 착각한 정책의 실패다.
지금 거제에는 단군 이래 최대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남부내륙철도(KTX)와 가덕신공항, 그리고 이를 잇는 광역교통망의 완성이다.
하지만 대다수 정치인은 이 거대한 인프라를 두고도 고작 "관광객이 오기 편해졌다"는 1차원적인 해석에 머물러 있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단견(短見)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여전히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천만 관광 거제"를 외친다. 이는 거제의 경제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無知)이거나,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해 시민을 현혹하는 기만(欺瞞)이다.
진정한 거제의 미래 성장동력은 KTX 역세권 개발과 가덕신공항 배후도시로서의 ‘물류(Logistics) 산업’, 그리고 이를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접목된 초격차 조선업’과 결합하는 데 있다.
우리가 살길은 흔들리는 조선업을 버리고 관광으로 갈아타는 것이 아니다. 조선업을 4차 산업 기술과 결합해 고도화하는 ‘정공법(正攻法)’에 있다. 스마트 야드, 친환경 선박 기술, 조선 신소재 생산 등 제조업 기반을 단단히 다지고 그 위에 고부가가치 기술 산업을 입혀야 한다. 그래야만 떠나간 청년들이 다시 돌아온다.
관광은 굳건한 제조산업과 4차 산업 기반 위에 얹어지는 ‘보조 엔진’이어야 한다. 튼튼한 경제 위에서 시민이 여가를 즐기고 외부인이 매력을 느끼는 ‘플러스알파’가 되어야지, 무너진 경제를 통째로 떠받치는 기둥이 될 수는 없다.
병의 원인은 ‘산업 경쟁력 약화’인데, 처방전으로 ‘관광 개발’만 내밀고 있는 정치인들은 돌팔이 의사와 다를 바 없다. 이제 거제 시민들은 더 이상 ‘관광이 밥 먹여 준다’는 환상에 속지 않는다.
지금 거제에 필요한 리더는 화려한 관광 조감도를 들고 오는 사람이 아니다. 거제의 DNA인 조선업을 어떻게 미래형 산업으로 혁신할 것인지, 어떻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구체적인 로드맵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거제시장이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멈춰 선 거제의 심장은 다시 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