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가 믿고(信) 내가 닦고(修) 내가 된다(成)

거제 장흥사 주지 세운(世運) 스님 법문

2026-07-28     거제시민뉴스

대신 살아주는 시대에

우리 시대는 '대신' 살아주는 시대다. 인공지능이 대신 생각하고, 유튜브가 대신 감동하며, SNS가 대신 관계를 맺는다. 종교마저 대신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지난 주말 거제 장흥사 법당에서 봉행된 금강신중불공 법회. 주지 세운(世運) 스님께서는 대한불교천태종 제2대 종정 대충대종사님의 세 마디 가르침을 화두로 삼으셨다.

"내가 믿고(信/신), 내가 닦고(修/수), 내가 된다(成/성)."

이 짧은 한 마디에 종교의 본질과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태도가 오롯이 담겨 있다.

"내가 믿는다(自信, 자신)" — 종교는 남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종교를 의탁의 대상으로 여긴다. 절대자에게 죄를 대신 씻어달라, 복을 대신 주십사 청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부처님께서는 내 안의 불성을 믿으라 하셨다. 밖에서 구세주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갖추어진 부처의 씨앗(종자)을 신뢰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불교의 가르침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최근 유럽의 지성인들이 열광하는 '명상'과 '마인드컨트롤'이 사실 우리 선(禪)의 이름만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믿음의 첫 자리는 '남'이 아니라 '나(自我, 자아)'다. 이것이 대충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믿는다"의 참뜻이다.

"내가 닦는다(自修, 자수)" — 마음이 곧 모든 것의 근본

세운 스님께서는 대종사님의 말씀을 이렇게 옮기셨다.

"한 마음(一心, 일심)이 선(善)하면 모든 선(善)이 이에 따라 일어나고,

한 마음(一心, 일심)이 악(惡)하면 모든 악(惡)이 이에 따라 일어나니,

마음(心, 심)은 모든 선악(善惡)의 근본(根本)이 되는구나."

마음은 본래 선도 악도 없다. 그러나 순간순간의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갈라진다. 부처님께서 법구경에 이르시길 —

"미워하는 사람(憎人,증인)을 만들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 만나서 괴롭고(苦,고),

사랑하는 사람(愛人, 애인)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 못 만나서 괴로우니라."

처음부터 미움도 사랑도 없다. 인연을 따라 섭섭함이 미움을 낳고, 사랑이 이별의 괴로움을 낳을 뿐이다. 닦음(수행)이란 밖의 대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自心, 자심)을 바꾸는 일이다.

스님께서는 인상적인 비유를 드셨다. 우리 마음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원숭이와 같다. 원숭이의 네 다리와 몸통, 꼬리까지 붙잡아야 도망가지 못하듯이, 내 마음도 관세음보살을 꼭 붙잡아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된다(自成, 자성)" — 성불은 남이 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가장 궁극의 자리가 "내가 된다(自成)"이다. 부처는 하늘에서 내려주지 않는다. 신이 손을 얹어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내가 믿고 내가 닦은 만큼, 내가 된다.

성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오늘 내가 지은 한 마음의 선이, 그대로 내일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스님은 "산 생전에 다 닦아 두어야 문제가 없다"고 거듭 당부하셨다.

왜 지금, 다시 이 법문(法門)인가

바로 이런 시대이기에 대충대종사님의 말씀은 더욱 서슬 푸르게 다가온다.

"내가 믿고(信), 내가 닦고(修), 내가 된다(成)."

누구도 나 대신 살아줄 수 없듯, 누구도 나 대신 부처가 되어 줄 수 없다. 내 마음의 원숭이는 오직 나만이 붙잡을 수 있고, 내 안의 불성은 오직 나만이 꽃피울 수 있다.

불교는 어렵고 먼 종교가 아니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사는 것 — 이는 종교이자 철학이며, 오늘부터 우리 모두가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수행이다.

이 뜨거운 여름날, 거제 장흥사 법당에서 울려 퍼진 법문이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모든 시민의 마음에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 세운(世運) 스님은

강원 평창 출생. 1978년 출가 후 동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불교천태종 종의회 의장을 지냈으며 부산 삼광사, 서울 삼룡사, 대구 대성사 등 20여 사찰 주지를 역임했다. 저서로 『마음 밭에 씨앗 하나』, 『상월원각』 등이 있다. 현재 거제 장흥사 주지로 신도 교화와 지역 포교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