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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나오는 샘
술이 나오는 샘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4.0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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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에 ‘주천(酒泉)’이라는 입맛 당기는 땅이름이 있다. ‘택리지(擇里志)’에 ‘산은 높지 않으며 물은 맑고 푸른데, 세상과 떨어져 있으니 난리를 피해 살기가 알맞다. 다만 논이 없어 유감이다’라고 쓰인 곳이다.

주야장천으로 술이 샘솟고 있다면 당연히 살 만한 땅이 아닌가. 이태백도 ‘하늘이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하늘엔 술별이 없었을 것이고,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 다면 땅엔 술샘이 없으리’라 읊어 술에 취해 신선이 됨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명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옛날에 한 현감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돌통에 담긴 물을 마셨더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그 돌통에 담겨 있던 물은 물이 아니라 귀하고 맛보기 어려운 청주(淸酒) 였던 것이다.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분에 따라 술맛이 전혀 달랐다.

가령 양반이 마시면 청주가 되고 상놈이 마시면 막걸리로 변했다. 한 상놈이 이를 분하게 여기더니, 마침내 벼슬을 사서 주천 현감이 됐다. 기대에 부풀어 돌통으로 달려갔으나 이상하게도 막걸리만 나올 뿐 청주는 나오지 않았다.

벼슬을 돈을 주고 샀으니 상놈은 역시 상놈이란 뜻이다. 화가 난 그는 돌통을 부숴버렸고, 그로부터 돌통에서는 물도 술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돌통에서 유래되어 마을 이름이 ‘주천’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그 신비한 돌통만은 온데간데 없다.

주천에 산다는 한 아낙네는 ‘좋은지 어쩐지 우린 평생 허리끈 풀어놓고 밥 한 번 실컷 먹어보지 못했으니까유’라고 심드렁하게 말한다. 열 다섯 마지기 농사 가지고는 아이들 공부는 커녕 입에 겨우 풀칠하기도 어려워 주천가에서 올갱이를 잡아 그럭저럭 산다는 것이다. 술에 취해 세상을 잊고 살 만한 땅도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님을 아낙네의 탄식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터의 입구는 좁고 안은 넓게

그럼 살기 좋은 땅이라면 어떤 곳일까? ‘정감록’에 나타난 십승지(十勝地)는 다분히 병란(兵亂)이나 탐관오리의 악랄한 토색질을 피해 살 만한 곳이 추천됐다. 그렇지만 현대에 와 그곳을 찾아보면 모두가 전답 없는 첩첩산중이라 사람이 둥지를 틀고 살기에는 적합지 않다. 이는 음양의 기가 잘 갈무리된 길지보다는 바깥 세상이 전쟁에 시달려도 그곳만은 배불리 먹고 불안에 떠는 일이 없을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택리지’는 풍수학적 입장에 먼저 지리를 꼽았다. 즉, 재물을 얻기 쉽거나 인심이 좋거나 산수가 수려하기보다는 자연환경이 사람 살기에 적합하냐 그렇지 않느냐를 우선시 했다.

사람은 비록 영물(靈物)이긴 하지만 초목이나 동물과 같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명 활동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빛, 물, 온도, 공기 그리고 먹거리가 조화를 이룬 터가 중요하다.

먼저 수구(水口)를 보고 그 다음은 들판의 형세와 산의 모양 그리고 흙의 빛깔, 앞산과 앞내의 순서로 바라본다.

수구가 엉성하고 널따랗기만 한 곳은 비록 넓은 밭과 넓은 집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까지 전해지 못한다. 그러므로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택지리-복거총론)

좋은 땅이란 초목이 무성히 자라고, 물은 깊으며, 흙이 부드러워 사람까지도 살기 적당한 곳을 일컫는데, 이런 땅도 끊임없이 바람과 물(양기)의 영향을 받는다. 즉 땅은 음(陰)이고 정(靜)이니, 양(陽)이요 동(動)인 양기의 흐름에 따라 풍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길지를 말하며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를 먼저 말한 것은 부지 내의 땅과 생명체에 영향을 준 양기가 최종적으로 빠져나가는 한계가 바로 수구이기 때문이다. 즉 수구를 지나 버린 양기는 부지 내의 생명체에 더 이상 어떤 변화의 기운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수구는 부지의 안과 바깥 공간을 격리시키는 역할도 하는데, 부지 안에 들어가면 갑자기 확 트인 경관이 있어 다른 세상에 왔다는 느낌이 와 닿아야 한다. 넓은 들판은 초목과 동물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며, 사람에겐 곡식을 재배할 수 있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을 생명의 단위인 국(局)으로 정하고, 그 국에 따라 별개의 독특한 개성체로 판단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수구의 모양새를 보아 부지내에 양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또 수구는 닫혀야만 안쪽에 펼쳐진 들판에 생명의 기운이 머물를 수 있다고 풍수는 본다.

터의 길흉을 논할 때에 풍수와 일반의 관점이 사뭇 다른 곳이 절터이다. 절터는 대개가 사방이 산으로 가려지고 좌우에서 흘러온 계곡물이 앞쪽으로 곧게 흘러가는 남향에 자리잡는다. 잠깐 다녀가는 사람에겐 남향에 자리 잡은 절터가 햇볕이 따사롭고 함지박처럼 오목한 느낌을 주는 곳이어서 마음이 안정될 뿐만 아니라 맑은 물이 흘러 매우 살기 좋은 곳처럼 여겨진다.

그렇지만 풍수적 관점으로 본다면 절터는 사람이 살기에 적당치 않은 곳이다. 사방이 산으로 가려 있으니 해사 늦게 뜨고 일찍 져 하늘의 양명한 기운을 충분히 받을 수 없다. 또 물은 밤낮으로 넘쳐 나는데 일조량은 적고 통품은 잘 안되니 음랭한 기운이 산 안개로 변해 사람이나 초목을 병들게 한다. 그리고 수맥파는 미세한 전기 기장을 보유한 사람의 몸에 민감하게 반응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데, 어느 절이나 약수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수맥이 지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살 만한 터라면 우선은 바람을 막아줄 산자락이 좌우에서 병풍을 친 곳이고, 그 안쪽에는 넓은 들판이 자리잡아 해와 달과 별빛이 항상 환하게 비쳐서 계절의 차고 더운 기운이 고루 퍼지는 곳이다. 또 앞쪽에는 입구를 막고 선 산자락이 있어 부지 내에 생기가 머물 수 있는 자연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계절과 호흡하는 정원
부지의 앞은 높고 뒤는 낮게
풍수가 전통 정원의 조영에 미친 영향은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기보다는 부지내에 자연성을 기능적으로 강하게 한 점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내부에 고유한 가치를 가진 자연도 우주의 섭리에 따라 생로병사를 거듭하는데, 풍수는 정원 내에 자연의 순환 원리가 유기적으로 유지 되도록 도와주어 자연이 영원성을 갖도록 한다. 즉, 풍수적 조영이란 자연과 사람이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보통의 전통 정원은 평야나 혹은 산을 배경으로 낮은 곳에 위치하는데, 풍수적으로 좋은 부지란 산과는 반대로 혈의 앞쪽은 높고 뒤쪽이 낮아야 한다. 즉 산지의 부지라면 혈 뒤쪽에 베개삼아 베고 자야할 산이 있어야 장수하는 후손이 난다고 하고, 평야의 부지라면 혈의 뒤쪽으로 물이 흐르도록 낮고 앞쪽은 점차 높아가는 형세여야 창고에 재물이 가득히 쌓이고 후손은 번성한다고 한다.

이는 하천이나 들판을 전경으로 삼아 탁 트인 시야를 갖추는 서양식 조경과는 배치되는 개념으로, 입구가 산으로 막힌 부지 내에서 사람은 심리상의 안정을 얻고 초목은 생기 왕성하고 번창함이 먼저라는 뜻이다.

이 경우를 그림으로 풀어 본다면, 좌우측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이 부지를 휘감고는 입구 쪽에서 서로 껴안 듯이 마주하는데, 그 옆에 출입문을 설치한다. 소박하고도 유연한 곡선을 그린 대문의 처마로 조롱박이라도 한창 줄지어 열렸으면 시골집이 그리워 질 것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곧 기화요초가 무성한 안산이 앞을 막는다. 그곳에 살구나무, 앵두나무, 모란, 작약들이 심어져 있다면 풍경화처럼 시선을 정겹게 메울 것이다.

오솔길은 자연스럽게 안산과 청룡, 백호 자락의 사이로 나고, 물도 길을 따라 흐른다. 길을 따라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고 도랑물에 이끼 낀 돌이라도 드문드무 있다면 물고기도 살 것이다.

모퉁이를 돌자 네모진 연못이 보이고 그 안에는 둥근 섬이 있는데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가 한낮의 뙈약볕을 우산처럼 가린다. 못에는 온통 큼직큼직한 연이 물을 덮고 있다.

주돈이는 “진흙 속에서 나와서도 진흙에 물들지 않고, 멀리 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 할 수 없는 데 향기가 멀수록 맑다.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라며 연꽃을 지극히 사랑했다.

이때부터 길은 작은 산봉우리 곁으로 차츰 낮아지며 내려가는 발길은 사뿐하기만 하다. 숲은 물과 흙을 보호, 유지하며 온도와 습도까지 조절하고 새에게는 지저귈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부지의 중심에는 핵심을 이룬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창문은 반투명의 은은한 창호지가. 시간과 계절에 따른 자연의 다채로움을 시시각각으로 비춰준다.

안마당의 장독대는 복을 비는 정한수가 얹어지고, 처마는 깊어 햇볕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후정(後庭)에는 개울이 흐르고 그물을 끌어들인 연지에는 정자가 아담하게 세워져 있다.

정자에 오르니, 대롱을 타고 못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루에 깔려 흐른다. 주변에는 꽃계단이 설치되고 한 쪽에는 자연을 닮아 천태만상인 괴석이 석분에 담겨서 생명을 띄운다. 대나무 숲을 스쳐 나온 바람도 상큼하긴 마찬가지다.

인걸은 지령이라 했다. 땅에 생생한 빛과 길한 기운이 없으면 인재로 나지 않는다. 새벽이면 물 한사발을 떠다가 조왕신께 올리는 우물도 있다. 토질은 사토(砂土)로서 단단하고 촘촘해야 우물에서 샘솟는 물이 맑고 차다고 한다.

만약 붉은 찰흙이나 누런 진흙이면 이는 죽는 흙이니 그 땅에서 나는 물도 역시 해로운 기운이 있다. 흘러드는 물은 산줄기의 좌향과 음양의 이치가 합당해야 하는데, 꾸불꾸불하고 길게 흘러드는 것이 좋고, 일직선으로 활을 쏘듯이 흘러오면 땅의 기운을 빼앗거나 파괴시켜 좋지 못하다고 본다.

풍수가 강조하는 부지 조성은 전경을 점차 높일 것을 요구하며, 만약 낮아진다면 자손이 곤궁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혈 130m 앞쪽에 흙더미로 궤짝이나 초승달 같은 모양의 산을 만들면 복을 불러오는 길한 산이 될 것이다.

그런데 풍수의 이상적 모식에 부합한 전통정원을 조성했다해서 풍수에서 말하는 길흉화복이 곧이곧대로 나타날지는 보장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합리적인 요소만을 찾아내 조영에 투영시킨다면, 이는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오행이 상생하는 자연주의적 생리에 부합됨은 틀림없고, 2천년의 긴 세월 동안 동양인이 자연생활 속에서 얻은 지혜를 오늘날 계승하는 일이다.

풍수는 연못을 산으로 본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남향의 전통 정원을 조성한다면, 가산(假山)과 연못은 어느 곳에 어떤 형태로 조성하는 게 적당한가? 핵심적으로 말해서 건축물이 남향이라면 물은 남동쪽에서 흘러와 앞쪽을 둥글게 감싸 흐르고는 동쪽의 좁은 수구를 통해 빠져나가는 것이 제일이다.

이때는 안산을 두어 전경을 점차 높아 지도록 하고, 길이나 도랑은 정면이나 남동, 남서방에서 중심을 향해 뻗어 들도록 한다. 그러면 부지 내에 생명의 기운이 크게 왕성해진다. 또 이 경우는 남동방에 수려하면서도 단정한 모양의 산이 꼭 있어야 하는데, 없다면 적법하게 보수하여 산을 만든다.

연못은 서북방에 두어 남동방에 있는 산과 서로 바라보도록 배치하는데, 건축물이 동향이라면 연못은 동북방, 서향이라면 남서방, 북방이면 서북방에 두는 것이 순리이며 그래야만 생명의 기운을 북돋운다. 연못의 형태는 주산의 모양새와 상생의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풍수는 연못을 산봉우리로 보기 때문이다.

연못은 보통 습지에서 조성되는데,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순리를 이용하여 썩지 않도록 순환시킨다. 그런데 전통 정원의 연못은 이상하게도 네모진 방형의 형태와 안쪽에 둥근 섬을 조성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를 두고 일부 사람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天圓地方)’라는 음양오행사상에서 비롯됐다고 보는데 틀린 말이다.

땅과 하늘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연못과 도랑물을 산으로 보는 풍수사상이 적용된 것이다. 풍수는 평야에서 산이 없으면 물로 산봉우리를 논하니, 연못은 곧 같은 형태의 산봉우리가 되고, 작은 개울은 뾰족한 산이 된다.

뾰족한 산은 문필봉(文筆奉)이라 하며 문안이 나고 장원으로 급제해 정승에 오르는 길산이다. 그런데 정원 내에 뾰조한 산이 있기 어려우니 계곡 물을 연못으로 끌어들이는 수법으로 문필봉을 자연스럽게 얻고자 한 것이다.

경희루의 연못이 방지(方池)인 것은 뒷산인 북한산이 화산(火山)인 관계로 서로 상생의 관계를 이루도록 연못을 토산(土山)으로 만들어 순응시킨 것이다. 즉 화생토(火生土)이고, 한국 대부분의 진산(鎭山)이 화산인 관계로 그에 따라 방지가 많다.

둥근 섬은 금산(金山)이니 주산과 연못과 섬을 모두 사능로 보아 화 토 금의 순환원리를 전통 조영에 적응 시켰고, 네모 섬이라면 그 역시 토산이니 큰 토산 속에 작은 토산이 안긴 셈이다. 만약 일본 정원처럼 곡선형의 연못인 수산(水山)을 설치한다면 주산인 화산과 상극의 관계에 놓여 매우 흉하다.

따라서 일본이나 중국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직선형 방지가 유독 한국 정원에만 많은 이유는 풍수가 전통 정원의 조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대변하며 그것이 한국 특유의 우수한 조형성 표출이다.

계절과 호흡하는 정원

우리나라는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이라도 50리만 뛰어 나가면 심산 유곡이 있어 산이 귀하지 않다. 구태여 자연을 집안에 들여놓고 감상할 필요까지는 없다. 마음이 번잡하면 반나절 되는 산수 좋은 곳에 들어가 마음 내키는 대로 시름을 풀고 돌아오면 그만이다. 따라서 지세를 허물거나 계단을 내면서까지 인공적으로 길을 만들지 않았고, 그저 계곡을 따라 여유있게 돌아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계곡을 따라 난 길을 오르다보면 흘러내린 물이 폭포로 변하기도 하고, 바위에 부딪혀 거품을 일으키기도 해 결코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다. 정원도 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여러 초목을 골고루 심어 계절과 관계없이 영원성을 가지도록 했다.

이것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유용할 수 있는 터와 부지를 구하는 방법으로써, 바로 우리가 오랫동안 실제 생활을 통해 얻은 풍수적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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