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때 부산광역시 여러 학자나 사학자들이, 독로국(瀆盧國)을 동래 지역에 있었던 고대 소국가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주장한 학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부산(영도)이 대마도와 직선거리가 거제도보다 더 가깝고, 옛 고분이 거제보다 동래가 몇 배나 많이 출토되고 있어 주장했다한다. 이에 그 오류에 대해,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서술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시 부산지역 대학 교수와 사학자들은 지역 이기주의와 지역 폐쇄성에 갇혀, ‘오분석(誤分析)’의 그릇된 판단을 저지르게 되었다. 또한 동래지역 고분에서 철기가 발굴되어 이를 주장했다거나, ‘독로’를 음독하면 ‘동내’ 또는 ‘동래’가 되어 그 미칭으로 ‘동래’가 쓰인 것으로 본다는 견해는 억지로 꿰맞추기일 뿐이다. 가장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불확실성 기법을 나열하여 주장하는 형태는 학자적 태도가 아니다. 이들은 중국어 발음이나 고대 우리말은 물론, 남부지방의 여러 정황에 따른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발생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에는 동래보다 거제도가 더 발달한 문화와 해상교통의 요충지였음을 인지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다. 조선중기 이후부터 일본과의 무역과 해상교통을 독점한 부산지역이 고대에도 그랬을 것이라는 추정이 역사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3세기 중엽에 편찬된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 기독로국여왜경계(其瀆盧國與倭境界)’ 즉, “변진에 독로라는 나라가 있는데 왜(일본)와 경계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서기 2세기 전후 독로(瀆盧)라는 말은 현재 우리말로 읽은 것이지, 당시는 음을 빌려 쓴 ’음차(音借)‘로, 瀆盧 한자어는 예나 지금이나 ’두루‘라고 중국말로 읽고 있다. ’섬‘이라는 단어는 조선초기에 처음 등장한 단어이고 고대에는 섬을 ’두루(빙 둘러 있다)‘라고 썼다. 그래서 중국말을 아는 분이나 중국 역사학자는 모두 거제도라고 비정하고 있는 이유이다. 동래가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왜와 접하고 있다.‘라는 뜻은 단순 거리가 아닌 해류와 조류, 바람(편서풍)을 이용한 현실적이고 실제 사용되고 있었던 거리를 말한다. 왜와 경계하고 있다는 말은 왜국으로 가는 경유지(기착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고대에는 부산에서 대마도로 건너가기가 어려웠다. 쓰시마 난류와 해풍의 영향으로 인해, 거제도에서 대마도로 향했다. 이는 항해술이 발달되기 전인 조선초기까지 지속되었다(몽고원정, 대마도 정벌, 15C조선통신사). 덧붙여 ’독로국‘의 또 다른 거제도 지명인 ‘주노국(周奴國)’은 ‘두루’ 周에 종 奴를 써서, ‘섬놈 나라’라고 비하하는 말이다. 이후 신라 문무왕대 설치된 상군(裳郡 섬 고을)은 치마 裳을 써, 빙 두른 섬이라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지명(周奴國, 裳郡)은 모두 한자어 뜻을 가져다 사용하는, 이른 바 ‘훈독(訓讀, 訓借)‘으로 표기한 것이고 ‘독로(瀆盧)’는 음을 빌려다 사용한, ‘음차(音借)‘로 표기한 것이다. 아무리 이런저런 여러 경우를 생각을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독로(瀆盧)를 동래라고 주장한 학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 다음은 각종 문헌에서 등장하는 거제도 비정설(比定說)을 살펴보자. 왜? 거제도인지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거제도가 독로(두루)의 이름을 얻고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변한 12개의 토호국이었던 삼한시대였다. 군장이 있어 제정을 통할하였고, 중국과의 교류도 활발하였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변진전(弁辰傳)기록에 의하면 삼한시대의 낙동강 유역 진한 12국, 낙동강과 섬진강 사이 변한 12국 등 변진 24개국 가운데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이라는 국명과 “기독로국여왜경계(其瀆盧國與倭境界)”라는 기록이 있다. 즉, "변진 독로국은 일본과 경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독로국의 위치가 어딘지에 대하여 부산의 동래설과 거제설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거제도임을 분명해 보인다.
① 거제도가 동래(부산 영도 제외)보다 일본에 실제 더 가깝기도 하지만, 당시 ㄱ) 진한의 땅인 동래에는 '거칠산국(居漆山國)', ‘내산국(萊山國) 또는 '장산국(萇山國)'이 있었음이 역사 기록에 뚜렷이 등장하기 때문이고, 또한 ㄴ) 고대인의 관점에선 일본과 가장 가까운 독로국(두루국)은 단순 거리가 아닌 해류와 조류, 바람을 이용한 현실적이고 실제 사용되고 있었던 거리를 말하기 때문이다. ㄷ) 왜와 경계하고 있다는 말은 왜국으로 가는 경유지(기착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고대에는 부산에서 대마도로 건너가기가 어려웠다. 쓰시마 난류와 해풍의 영향으로 인해, 거제도에서 대마도로 향했다. 이는 항해술이 발달되기 전인 조선초기까지 지속되었다(몽고원정, 대마도 정벌, 15C조선통신사).
② 이학규(李學逵,1770~1835)의 낙하생집에서 '거제부는 변진 때 소국이 있었는데 ‘독로(瀆盧)’라 일컬었다가 후에 여기에 상군(裳郡)을 설치하였다'라고 기록하였으며[巨濟府 弁辰時有小國 曰瀆盧 後置爲裳郡是已], ③ 청나라 학자 정겸(丁謙)이 말하기를 '독로는 경상도 남쪽 거제도이며 이 섬은 동서 거리가 멀지 않았고 왜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瀆盧, 當卽今慶尙道南巨濟島. 此島, 東西相距不遠, 故曰接界]고 했다.
④ 또한 양주동의 고가연구, 선석열의 경남대 문헌에서 본 가야와 고대 일본에 대하여 거제도에 독로국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당시 거제 섬은 상당한 세력을 갖춘 해양문화집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후에 변진(弁辰)은 가야, 마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가 계승했는데 당시 변진국에 동래 지역이 포함되지 않았다. ⑤ 중국학자들은 예로부터 모두 ‘瀆盧’를 거제도로 비정하였다. 瀆盧를 중국어로 읽으면 ‘두루’라고 발음하며 고대어 ‘섬’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학자가 모두 거제도로 주장하는 이유이다. 고대에는 오늘날 사용하는 ‘섬’이란 단어가 없었고 대신 ‘두루(두로)’라고 불렀다.
⑥ 독로국의 또 다른 거제도 지명인 ‘주노국(周奴國)’은 ‘두루’ 周에 종 奴를 써서, ‘섬놈 나라’라고 비하하는 말이다. 이후 설치된 상군(裳郡 섬 고을)은 치마 裳을 써, 빙 두른 섬이라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지명은 모두 한자어 뜻을 가져다 사용한, ‘훈독(訓讀, 訓借)‘으로 표기한 것이고 ‘독로(瀆盧)’는 음을 빌려다 사용한, ‘음차(音借)‘로 표현한 것이다. 근현대의 학자들은 중국어나 고대어를 잘 모르면서, 앞서 발표된 논문을 참고하여 인용하다 보니 ’동래‘라고 주장한 글들이 더 많이 양산되었는데, 지금에야 ‘瀆盧’를 모두 거제도로 인정하고 있다. 현재 거제도에는 ‘裳’자 명문 기와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또한 ‘상군’(裳郡)과 ‘독로’(瀆盧)의 의미에 대하여 허재영 건국대 교수 기고문을 살펴보자. / 거제도(巨濟島)는 남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이 섬 이름이 한 때는 ‘상군’(裳郡)이라 불렸다. 뜻으로 본다면 ‘치마’인 셈인데, 이 섬을 ‘치마’와 연관지어 부를 만한 연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남선의 <동경통지>에서는 거제를 상군으로 부른 연유를 두고 한 구절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치마’를 뜻하는 속어로 ‘두룽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두룽이’라는 말을 문헌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비가 올 때 입는 ‘도롱이’는 짚이나 띠로 만들어 허리에 매어 입었으므로 ‘치마’를 뜻하는 ‘두룽이’가 속어로 쓰였다는 이야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두룽이’의 한자 표기는 ‘독로’(瀆盧)인데 우리말의 ‘도랑’에 해당하는 말이다.(실제 중국어로 '두루'라 읽는다) ‘도랑’이나 ‘두룽이’, 그리고 ‘도롱이’는 모두 ‘두르다’ 또는 ‘돌다’에서 파생된 명사다. 우리말에서 ‘두르다’에서 나온 명사는 흔치 않지만 ‘돌다’에서 파생된 말은 비교적 자주 쓰인다. 예를 들어 ‘도리’는 ‘둘레’를 뜻할 때와 ‘주기’를 뜻할 때 쓰인다. ‘도리 기둥’이나 ‘두리 기둥’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돌려 얹히는 나무를 뜻한다.
거제도의 땅이름이 치마나 비옷을 뜻하는 ‘두룽이’ 또는 ‘도롱이’였던 까닭은 섬 주위로 물길이 돌아들기 때문이었다. 외형상으로 전혀 무관해 보이는 ‘독로’, ‘상군’, ‘거제’가 모두 섬의 지형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러한 말이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도 고유어와 한자어의 대응 관계가 성립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 이 자료는 현재까지 10 여년 동안 학계의 정설로 굳어진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