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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가외(六可畏)
육가외(六可畏)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6.02.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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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경영하는 이들이 두려워해야할 여섯 가지
고영화

유헌(遊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은 1548년 거제도로 이배되어 1560년 사망할 때까지 거제시 고현동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1554년 갑인년(甲寅年)에 유독 많은 시편을 남겼는데 그 중에 중국 후당(後唐)시대 ‘강징(康澄)’의 ‘여섯 가지 두려운 것(六可畏)’을 제시해 놓고, 오언고시(五言古詩) 6가외(六可畏)를 서술하며 자신의 생각을 읊었다. 나라를 경영하는 고위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 당부하는 글인데, 강징(康澄)이 살던 1000년 전이나, 정황(丁熿)이 살던 460년 전이나,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놀랍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교훈적인 글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자에게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다섯 가지가 있고, 깊이 두려워해야 할 여섯 가지가 있다. 즉, 우주와 자연의 재해, 그리고 잘못 전해진 말(訛言)은 두려워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할 대상이다. ①해와 달과 별이 그 궤도를 벗어나는 것은 가히 두려워할 것이 못되고, ②천상에 변괴가 보이는 것을 두고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③간사한 사람들의 와언(訛言)도 두려울 것이 없다. ④산이 무너지고 냇물이 마르더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⑤수해와 한재 황충의 피해인들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러한 반면에, 옛날 후당(後唐) 명종(明宗) 때 대리소경(大理少卿) ‘강징(康澄)’의 6외(六畏), 즉 깊이 두려워해야 하는 6가지(六可畏)는 꼭 새겨야할 만고(萬古)의 진리이다.

 

①'현사장닉(賢士藏匿)' 어진선비가 자취를 감추고 숨는다.

②'사민천업(四民遷業)' 사민(백성)이 자신의 본업을 바꾼다.

③'상하상순(上下相徇)'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잘못을 서로 감춰준다.

④'염치도상(廉恥道喪)' 사람들의 염치와 도의가 사라진다.

⑤'훼예란진(毀譽亂眞)' 비방과 칭찬에 공정하지 못해 본질을 잃어버린다.

⑥'직언불문(直言不聞)' 직언(바른말)이 들리지 않는다.

 

정황 선생은 천년 뒤에는 우리나라가 깨끗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적고 있다. 오늘날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은 물론 국가경영에 몸을 담고 있는 모든 이들은 꼭 살펴보아야할 교훈이다.

 

"오대(당말에서 송초 기간) 당나라 '강징(강증)'이란 사람이 있었다. 말(言)로는 당나라의 부족함을 구할 수 없으니 어찌하랴. 아마도 두려움에는 조심성이 부족함이겠지? 또 하나 신중히 경계해야 할 것은 맑고 깨끗한 말(言)을 쓰게 함은 말이 부족한 신하는 이에 두려워함이라. 말이란 보이는 무늬가 아니다. 어찌 홀로 맑고 깨끗한 슬픔이 되었단 말인가? 하·상·주 삼대의 말엽 이하 수십여 년 순식간에, 한, 당, 송나라가 자칭 국운이 흥성할 때에도, 또한 아닌게 아니라 두려워해야할 여섯 가지가 있었다. 가령 한 가지 일로써 나타낸다면 한고조가 상산사호를 머물게 하지 못했고 또 양생을 이르게 하지 못했으며 후한 광무제는 엄자릉을 신하로 삼지 못했다. 당태종이 예덕이라고 남에게 비평을 당한 것 같은 것에 이르러서도 또한 이런 반열에 들지 아니할까! 비록 문명한 송나라이지만 진희이가 화산에서 늙어죽고 주염계와 정자 같은 군자들도 인종의 세대에 쓰이지 못한 것이 '현자를 감추고 숨겼다'는 것이 없다고 하겠는가! 한 일이 이와 같으니 그 남은 일을 알 수가 있다. 성시에도 이럴진대 기타 등등은 짐작이 간다. 세상이 더욱 말세가 될수록 풍도(풍채와 태도)는 더욱 낮아지니 그 6가지 두려움을 천년 뒤에 없게 하여 강징 같은 사람의 눈을 구천에서 감게 할 수 있으랴. 황하가 맑아 성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나 기약할 수가 없고 의뢰할 데가 없음이 심하여, 6가지 두려움을 나열하여 두니, 대개 강증(강징)의 뜻을 슬퍼하면서 구구한 나의 감정이 일어남도 실제로는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唐有康澄者 言之不能救唐祚之短 何也 五代 其畏有不足畏乎 抑有深可畏者 如澄之言 言不足使之 是畏而然也 言之不見采 豈獨澄爲可哀也 三季以下 俯仰數千餘年 漢, 唐, 宋自謂盛時 亦未嘗無六之畏也 借以一事見之 高帝不能留四皓 又不能致兩生 光武不得臣嚴子陵 至如太宗穢德之拒人 又不在是班 雖以文明之宋 陳希夷老終於華山 濂洛君子不用於仁宗之世 則得謂之無賢者之蔵匿乎 一事如此 其餘事可知 盛時如是 其他時可知 世益末而風益下 其可得無六者之畏於千載之後 而庶幾瞑如澄者之目於九泉乎 竢河之淸 其未期 無賴之甚 列六畏而存之 蓋悲澄之志 而區區之發 實切於有不能自已之地云]

 

그리고 정황(丁熿) 선생은 다음과 같이 당부 하셨다. "출세를 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잠깐사이에 보통은 인품이 변한다. 이때는 다시 뒤돌아봄이 좋다. 모두의 마음이 떠나가기 때문이다. 혹독하고 황폐한 사회가 될 때에는 백성들이 직업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를 살펴야 하며 또한 당장의 편안함만을 꾀하는 일시적인 방편인 고식지계(姑息之計),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는 뜻인 하석상대(下石上臺), 어떤 일을 임시변통으로 해결하는 방책인 미봉책(彌縫策)을 남발할 때 아래 윗사람이 잘못을 서로 감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실과 예의가 사라지면 염치와 도의가 사라지고 파리 모기떼가 모여든다. 사실 이상으로 헐뜯거나 지나치게 칭찬하면 본질을 잃게 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경계하지 않으면 바른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또한 “즐김은 한 때의 즐거움이고 우직함은 만세(萬世)의 어리석음이 아니다. 좋은 선비는 만세(萬世)를 두려워하고 현명한 임금(賢君)은 한 시대를 경계한다.”

 

<육가외 갑인년(六可畏甲寅)> 五言古詩 / 정황(丁熿 1512~1560) 1554년 作, 거제도.

凡見就所及 무릇 견식을 따르다가 이르는 바,

庸識便舊習 어찌 구습만 알고는 떳떳한 식견이라 하리까.

坐此無復回 이것만 알고 앉아서, 돌아봄이 없으면서

白駒長在谷 현자가 골짜기에 은거해 세월만 보내리오.

大度如乃翁 유방이 항우에게 큰 도량(度量)으로, 네 부친이 내 부친이다 말하였고

且陷叔孫通 잠깐 사이에 숙손통은 한나라 의례(儀禮)를 제정하였다.

寄生若靈獻 후한 영제와 헌제시대에 부쳐 산다면

夫豈知伏龍 어떻게 엎드려 있는 용(賢者)을 알아볼 수 있으랴.

千年三顧帝 천년 동안 삼고초려한 황제

微爾道終廢 미미해지더니 마침내 도가 피폐해졌다.

稀轍久已荒 그렇게 희소한 자취도 오래되니 황폐해 졌으니

吁嗟乎斯世 아~ 이 세상이여!

이는 현사가 자취를 감추고 숨어 지내게 된다.(右賢士蔵匿)

 

爭雄戰國時 영웅호걸이 다투던 전국시대,

自奉秦帝餘 스스로 받들던 진시황 이후로

干戈血已漂 방패와 창을 물에 이미 떠 보내고

漁取民其魚 백성의 물고기를 그물질하여 취하였다.

況經劉項際 하물며 유방과 항우의 시대를 거치면서

窮黷迄太初 태초와 같이 매우 혼탁해졌다.

非復太平象 다시는 태평의 형상이 없었으니

四方同丘墟 사방이 모두 언덕과 빈터가 되었다.

縱有安集者 설령 편안히 지낸 자가 있어도

不久其何如 오래가지 못했으니 이를 어쩌랴.

誰知民有嚴 누가 백성들의 혹독한 시달림을 알까

天監爲非虛 하늘의 살핌이 헛말이 아니었다.

이로써 사민(士工農商)들이 직업을 바꾸게 되었다.(右四民遷業)

 

聖孫昔居衛 자사께서 예전에 위나라에 계실 적에

已言君臣蔽 이미 군신(君臣)의 폐단을 말했다.

豈獨救衛事 어찌 홀로 위나라 일을 구원하리까.

實是垂後世 실로 이는 후세에 수훈이 되었다.

斯高一已多 진(秦)대의 이사(李斯)와 조고(趙高)는 한결같이 사심만 많았고

獨夫方誰何 포악무도한 독부(獨夫) 또한 누구였더냐.

汲直僅免誅 급직(汲直) 같은 강직한 이도 겨우 베임을 면했는데

況復論餘波 하물며 다시 그 여파를 논하랴.

姑息上下安 고식지계를 상하(上下) 모두 편히 여기니

有識心爲寒 유식자들이 한심하게 여긴다.

君看是非間 그대는 시비 사이를 살펴서

大知執兩端 큰 지혜로 양쪽의 중심을 잡아라.

이는 상하 간에 편안함만 따진다.(右上下相徇)

 

介氏入綿上 개자추는 면산(綿山)으로 들어가고

秀子居延陸 개자(秀子)는 연릉(延陵)에 살았다.

淸風百代下 백대 이후까지 유풍(遺風)을 내려오니

頑懦皆可興 완고한 자나 나약한 자, 모두 흥기하게 되었다.

如何四維絶 어찌하여 예의와 염치가 끊어져

苟狗而營蠅 구차한 개와 미련한 파리와 같은가?

誠趨利所在 진실로 이익이 있는 곳만 향하면서

豈言義不應 어찌 의리에 맞지 않다 말하랴.

荀裵奉魏晉 조조의 순욱(筍彧)과 진(晋) 무제의 배수(裵秀)는 위진(魏晉)시대를 받들었는데

長樂敍可憎 한(漢)의 궁궐 장락궁은 밉기만 하구나.

蚩蚩不曾怪 치치한 이들이야 일찍이 괴이하지도 않지만

末俗徒因仍 한갓 말세의 타락한 풍속 그것에 말미암아 간다네.

이는 염치와 도리가 소멸되어 감이다.(右廉恥道消)

 

仲尼言毁譽 공자께서 훼예(毁譽)에게 말하니

毁譽歸其理 훼예가 그 이치로 돌아가게 되었다.

庶幾奉周旋 그것을 받들어 주선하길 바라는데

嗟嗟爾多士 아~ 너희들 여러 선비들아

有甚侮聖言 심히 성인을 모욕하는 말이 있으니

柰何自其已 어찌 스스로 그만두질 못하느냐.

迕我賢且愚 나를 보고 어질다 어리석다 말하는 사람들도

同我非乃是 나와 함께 시비하는 이들이다.

力排司馬公 사마공을 힘써 배척하였으나

心許福建子 나의 마음은 송나라 복건자(福建子)를 이해한다.

豈徒鍾山爲 어찌 왕안석이 거주하는 종산서원 때문일까?

古今滔滔爾 예나 지금이나 그런 것이 도도했음 따름이다.

이는 공정치 못한 훼예(毁譽)가 본질을 잃었음이다.(右毁譽喪眞)

 

逄干非愛身 충신 용방(龍逢)과 비간(比干)은 자신을 아끼지 않아 죽었고

韋廉非愛君 위(韋)와 염(廉)은 임금을 아끼지 않았다.

鮮避悅已至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찾아온 사람을 피함은 드문 일이고

多忌逆耳聞 귀에 거슬리는 소문을 꺼리는 이는 많았다.

逄干一何愚 용방과 비간은 하나같이 어찌 그리도 우직했을까?

韋廉一何娛 위와 염은 하나같이 어찌 그리 즐겼는가?

娛是一時娛 즐김은 한 때의 즐거움이고

愚非萬世愚 우직함은 만세의 어리석음이 아니다.

良士畏萬期 좋은 선비는 만세를 두려워하고

賢君戒一時 현군(賢君)은 한 시대를 경계한다.

君臣契合難 이러한 군신이 만나기 어려우니

括口也其宜 마땅히 입을 단속하라.

이는 직언이 들리지 않는다.(右直言不聞)

 

우리나라 고려 의종 때 사신(史臣) 김양경(金良鏡)이 강징(康澄)을 글을 인용해, 소를 올려 말하길, “나랏돈을 함부로 징수해 부처와 신령을 섬기고 간신배와 소인배 술사(術士)는 물론, 애첩 무비(無比)가 궁궐 안에서 모든 일을 도맡아 왕의 비위를 맞추고 생각을 유도하면서 온갖 요사를 부렸는데도, 입에 발린 말만 분분히 떠돌고 올바른 충언은 단절되어버린 결과 변란의 기미가 바로 임금의 처소에서 나타났어도 끝내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막상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무신정변이 일어났다. 이때 단 한 사람도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가 없었으니 참으로 탄식할 만한 일이다.”라고 했다. 송(宋) 나라의 학자 ‘구양수(歐陽脩, 歐陽公)‘도 이 말을 적어두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로서 어찌 이를 경계하지 않으랴? 육가외(六可畏)가 참으로 옳은 말이다.”라고 감탄했다.

또한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이 1693년 임금께 올리는 소에서 말하길, “조정에 있는 신하들 중에 상하가 서로 영합하기에 급급하여 직언이 아뢰어지지 않으며 염치가 땅에 떨어져 비방과 찬사가 실정을 흐리는 것을 염려하여, 강징(康澄)이 후당(後唐)의 명종(明宗)에게 고했던 것처럼 전하의 곁에서 간언해 주는 자가 있습니까? 천변(天變)에 관해 말한 것을 들어 보면 모두 오랑캐의 추장에게만 탓을 돌리니, 이는 불충(不忠) 중에서도 큰 것입니다.”라고 했다.

오늘날 세계의 형세를 보면, 사회 지도층과 국민들이 서로 합심하여 천명을 맞아들여, 국운을 이어 가야 할 시기인데도, 세월만 보내니 어찌 통탄치 않으리. 또한 고위층은 권세 있는 자에게 빌붙어 자신의 요행만 바라는 천박한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질 않는다. 대기업 총수나 고위층 모두가 순박한 백성들의 노고와 세금으로 먹고 사는 줄 모르고 군림하려드니, 어찌 국민들이 분노치 않으리까. 국민의 안위를 고려치 않고 남 탓만 연일 돌리고 충언을 간하는 자를 멀리하는 지금, 어찌 나라의 미래가 밝다 하리오. 자본주의 세상에서, 세계적 수준의 첨단 기술력과 과학은 물론, 철학과 문화가 뒷받침 되어야만 하는데도 겉치레만 요란하고 소위 학자•연구원이라는 사람들은 권위에 갇혀, 세계가 알아주는 창의적인 연구하나 내놓지 못하는 나라의 현실에, 옛날 강징(康澄)과 정황(丁熿)의 육가외(六可畏)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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