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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의 전설 ‘바주카포’ 윌프레도 고메즈…⑨
푸에르토리코의 전설 ‘바주카포’ 윌프레도 고메즈…⑨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5.1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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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8월 21일 미국 라스베가스, ‘영원한 절대자’ 푸에르토리코의 전설이 무너지고 있었다. 한 체급 위의 WBC 세계페더급 챔피언 ‘영건’ 살바도르 산체스는 너무도 영악했다. 1회 불의의 카운터를 맞고 8회 침몰하는 그 순간까지 강호에 전설이 되어 버린 그 유명한 ‘산체스존(Sanchez Zone)’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메즈의 다(多)체급 석권의 대야망(大野望)을 잠시 미뤄야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전무후무한 기록인 17차 연속 KO방어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윌프레도 고메즈는 1956년 10월 29일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미국의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풍족한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1974년 아마추어 최고의 무대인 세계선수권 밴텀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그해 11월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18세였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호시노 푸엔테스와 난타전 끝에 6회 무승부를 기록한다. 고메즈 스스로도 ‘수치스런 시합이었다’며 통렬한 반성과 동시 맹훈에 돌입한다.

첫 시합이 치르고 난 한 달 후인 1974년 12월부터 윌프레도 고메즈는 위대한 절대자의 길을 개척해 간다.

1977년 2월 세계랭커 죤 메자를 2회 캔버스에 패대기 칠 때까지 파죽의 15연속 KO승을 거둔다. 그 중 10명은 3회안에 링 바닥을 엉금엄금 기어야 했다.

염동균에게 라이트를 적중시키고 있다.
1977년 5월, 고메즈에게 천하제패의 첫 기회가 찾아온다. 상대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WBC 슈퍼밴텀급 세계챔피언 염동균이었다.

당시 챔피언 염동균은 일본이 자랑하는 ‘하드펀치’ 로얄 고바야시를 난타전 끝에 15회 판정으로 제압하고 맹주에 등극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의 선수였다. 그때까지 챔피언의 전적은 58전 50승(18KO) 2무 6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후안, 고메즈는 자국민의 압도적인 성원을 등에 업고 시합에 나선다.

1회, 고메즈는 홈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는 결연함이 화를 부른다. 무리하게 파고들다 챔피언의 레프트훅 카운터에 걸려 다운을 당한다. 꽤 큰 데미지를 입었지만 그 날 주심은 카운터 8을 세는데 무려 22초를 소비한다.

다운 후 1회전을 이리 저리 피해 다닌 고메즈는 2회부터 완전하게 다른 선수로 탈바꿈한다. 챔피언의 카운터를 조심하며 그의 별명 그대로 ‘바주카포’를 난사한다.

체력을 앞세운 젊은 도전자는 차근차근 챔피언을 공략한다. 12회 결국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킨다. 챔피언은 그 자리에서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쉰다. 새로운 맹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은 세계 최고의 텃세를 자랑하는 악명 높은 장소였다. 주심의 느린 카운터만 없었다면 1회가 챔피언에게 유일한 기회였는지 모른다.

왕좌에 등극한지 2개월 후 고메즈는 라울 티라도를 홈으로 불러 5회에 요절내고 1차 방어를 가볍게 통과하고 2차 방어를 위해 적지 일본으로 날아간다.

상대는 염동균에게 왕좌를 넘겨준 로얄 고바야시. 강타자간의 시합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너무도 싱겁게 끝난다. 3회 고메즈의 레프트 한방에 앞으로 꼬꾸라진 도전자를 뭔가라로 해봐야 일본 팬들에게 체면이라도 서겠다고 오판한(?) 주심은 강제로 흐느적거리는 도전자를 일으켜 세워 시합을 재개시키지만 고메즈의 주먹은 추호도 인정을 두지 않는다. 하마터면 도전자를 산송장으로 만들 뻔하였다. 챔피언의 3회 KO승.

절대자 고메즈는 거침없이 진군한다. 후안 로페즈를 7회에 박살내고 3차 방어에 성공하고 사카드 페친데를 적지 태국에서 3회에 날려버린다. 레오나르도 크루즈를 홈으로 불려 13회에 내동댕이치고 5차 방어 임무를 마친다. 이때까지 13회는 고메즈 자신이 소화한 가장 긴 라운드였다.

1978년 10월 28일. 6차 방어 상대는 한 체급 아래 멕시코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위대한 전설 WBC 밴텀급 세계챔피언 카를로스 자라테였다.

카를로스 자라테가 무너지고 있다.
당시 고메즈는 21전승(21KO) 1무, 자라테는 52전승(51KO)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양자 모두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자라테는 WBA 밴텀급 왕좌 자모라와 더불어 경량급 황금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주역이었다. 그래서 세인들은 그들 둘의 이름을 따서 ‘위대한 Z-Boys시대’라고 칭송했다.

자모라는 단신에 해맑은 어린아이의 모습과는 달리 사납고 날렵했지만 조급하고 패턴이 단순했다. 하지만 자라테는 경량급 치고는 178센티의 장신에 여유를 가지고 침착하게 경기에 임하는 스타일에다가 가공할 파괴력까지 갖고 있었다.

고메즈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사나운 맹수였고 자라테는 능숙한 사냥꾼이었다.

당시 미국 극장에서 두 사람의 경기를 생중계 할 정도로 강호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경기였다. 하지만 설사병을 만나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자라테는 특유의 침착함도 잃고 초반부터 난타전을 전개하다 5회 고메즈의 직사포에 장렬하게 산화해 갔다. 프로, 아마를 통틀어 생애 최초의 패배였다.

이 시합 후 고메즈는 천하에 이름을 알리게 되고 루벤 올리바레즈, 카를로스 자라테, 알폰소 자모라와 더불어 경량급 강타자 계보에 이정표를 새긴다. 고메즈는 푸에르토리코를 떠나 복싱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진출한다.

1981년 6월 20일까지 위대한 절대자 고메즈는 논타이틀 3회, 세계타이틀매치 7회에 걸린시간은 불과 144분이었다. 한마디로 경이 그 자체였다.

13차 방어 전(全) 시합 KO승.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고메즈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체급에서는 상대가 없다고 단언하고 오랜 세월 동안 가슴속에 묻어 둔 야욕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그 첫 단추가 자신의 체급보다 한 체급 위인 WBC 페더급 세계챔피언 멕시코의 자존심 영건 링 위의 연주자 ‘아마데우스’ 살바도르 산체스였다.

1981년 8월 21일 미국 라스베가스 시저스 팰리스 특설링, 챔피언 산체스는 42전 40승(32KO) 1무 1패, 도전자 고메즈는 33전 32승(32KO) 1무승부를 기록하고 있었다.

산체스에게 무너지는 고메즈
산체스는 대니 로페즈를 제압하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22세였다. 도박사들은 산체스가 과연 몇 회까지 버틸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될 만큼 고메즈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세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회 챔피언의 전광석화 같은 불의의 카운터를 허용하고 8회까지 흐느적거리는 위대한 절대자 고메즈를 보며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챔피언 산체스는 어떤 유형의 선수도 상대할 수 있는 자신만의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물러서고 반대로 상대가 물러서면 거침없이 전진하여 상대방의 숨통을 조인다. 그것을 전문가들은 ‘드나듦의 예술’ 강호인들에게 전설이 된 공포의 무공 ‘산체스존(sanchez Zone)’이라 불렸다.

그렇게 위대한 절대자 고메즈의 시대는 막이 내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다(多) 체급 석권 야망을 뒤로 하고 자신의 체급으로 돌아온다.

산체스에게 꿈이 좌절 된지 5개월 후, 그는 두 차례에 걸친 논타이틀전으로 일단 숨고르기를 한다. 호세 곤잘레스를 7회, 호세 루이스 소토를 2회에 각각 요절내고 다음 방어전을 준비한다.

1982년 3월에서 8월까지 챔피언 고메즈는 3번의 방어전을 치른다. 후안 메자를 6회, 후안 안토니오 로페즈를 10회, 로베르토 루발디노를 8회에 차례로 캔버스에 내동댕이치고 16차 방어까지 KO로 장식한다.

절대자 고메즈에게 또 한명의 절세고수가 도전장을 내민다. 상대는 밴텀급을 평정하고 자신의 체급에선 더 이상 적수를 찾지 못해 한 체급 위인 고메즈를 초대한 멕시코의 과달루페 핀토르였다.

핀토르는 들판의 잡초처럼 살아 온 복서였다. 파괴자 카를로스 자라테의 스파링 파트너로 출발하여 결국 자신의 영웅 자라테에게 도전하여 15회 판정으로 꺾고 왕좌에 오른 전사였다.

왕좌에 오른 후 우리나라의 이승훈과도 대전한 바 있으며 특히 3차 방어전 상대 영국의 조지 오웬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는 8차 방어까지 완료하고 절대자 고메즈에게 진검승부를 요청하게 된다.

1982년 한해가 저물어 가는 12월 3일 미국의 뉴올리언스, 당시 도전자 핀토르는 55전 49승(38KO) 1무 5패, 챔피언 고메즈가 39전 37승(37KO) 1무 1패의 전적이었다.

그날 양자의 대결은 웰터급 토마스 헌즈와 윌프레도 베니테스의 오픈 경기로 열렸다. 세월이 흘러 고메즈와 핀토르와의 혈투는 1996년 ‘링’지 선정 올 타임 파이터 100선에 꼽히는 명승부로 기록된다.

이 시합은 절대자 고메즈에 맞서 절대 기죽지 않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시종일관 난타전으로 일관한다. 그 만큼 핀토르의 투지가 빛나는 시합이기도 했다.

3회부터 고메즈가 매섭게 몰아치자 핀토르는 로프를 이용 고메즈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면서 끊임없이 왼손을 내밀면서 완강하게 저항한다.

매회 초반은 고메즈가 쉴 세 없이 공격하고 후반은 핀토르가 추격하는 양상으로 대혈투를 전개하다 11회부터 시합은 절대자 고메즈에게 기울더니 14회 고메즈의 강력한 레프트훅에 장렬하게 산화해 갔다. 영원한 전설로 남을 전무후무한 17차 연속 KO방어의 대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핀토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산을 넘은 고메즈는 1983년 논타이틀전으로 이반 사무코를 3회, 에라디오 산타나를 2회에 박살내고 일단 숨고르기를 한다.

1984년 3월 31일 고메즈는 다시 한 번 한 체급위인 WBC 페더급 세계챔피언 루안 라포르테에 도전장을 내민다.

페더급의 절대 맹주 산체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숨을 죽이고 숲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하이에나(?)들은 서로 물어뜯기를 반복하며 처절한 사투를 벌여 왕좌는 우여곡절을 거쳐 라포르테의 품으로 가 있었다.

라포르테는 26전 22승(13KO) 4패의 그저 그런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그는 악바리 근성 하나는 모든 강호인들이 인정해 주었다.

난타전 끝에 고메즈는 2체급을 석권하지만 챔피언의 근성에 밀려 데뷔전 이 후 최초로 마지막 라운드 공을 경험하게 된다.

1984년 12월 8일, 고메즈는 1차 방어전에서 가나의 신성 아주마 넬슨에게 11회 충격적인 KO패로 페더급 왕좌의 자리에서 내몰리고 만다.

넬슨에게 패한 지 6개월 후, 고메즈는 또 다시 한 체급 위인 WBA 슈퍼 페더급 챔피언인 로키 록클리지에 도전 15회 판정으로 3체급 석권에 성공하지만 시합내용을 보면 예전의 절대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왕좌에 오른 후 1년 뒤 고메즈는 무명의 알프레도 레인에게 1차 방어전에서 허무하게 9회 TKO로 패하고 만다. 그렇게 위대한 절대자 고메즈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 후 두 차례 시합에서 모두 KO승을 거두지만 이제 그에게 화려했던 과거의 세기(勢氣)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더는 미련을 두지 않고 1989년 파란만장했던 모든 세월을 뒤로 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날카로운 매의 눈을 연상케 하는 눈,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로 링에 올라오기 전부터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링의 절대자 윌프레도 고메즈, 화려한 경력과 실력에 비해 인기가 부족했던 어찌 보면 고독한 왕좌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노린 먹잇감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가공할 공격력과 집중력은 인파이터의 교과서로 오래오래 세인들의 뇌리에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17차 연속 KO방어 대기록은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영원한 불멸로 남을 가능이 높다.

은퇴 후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41세가 되던 해 미국 캐롤라이나 해변에서 해안가를 순찰 중이던 경찰에게 차안에서 코카인 6봉지가 나와 기소되기도 했다.

화려했던 선수시절과 달리 벌어 놓은 자금관리를 잘 못해 불우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윌프레도 고메즈 생애 통산 전적 48전 44승(42KO) 1무 3패.

복싱계의 거물 돈 킹이 산체스와 고메즈와의 시합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후안 안토니오 로페즈를 몰아 부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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