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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좌우하는 생기
운명을 좌우하는 생기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5.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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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리는 맑았다. 잡념이 끼어들지 않았으며 혼신을 다한 어떤 열정과 영혼의 속삭임이 있었다. 소리 끝마다, 못생긴 촌년이, 소리잠 한다고 부끄럽소 하는 소리가 곁들여졌다.

그 소리 또한 재미있었다. 된장 속에 묻은 고춧잎, 혹은 마늘종 마냥. 소리 명창 따로 귀 명창 따로 라는 말이 있거니와 그의 소리의 미덕은 귀 명창이라는 다소 현란한 수사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소리를 듣는 순간 그 소리가 노니는 들과 강과 산으로 우리의 귀를, 시간을, 신명을 저절로 끌고 갔다.

곽재구(郭在九)시인이 진도에 사는 칠십 객 명창 조공례 할머니의 육자배기를 들은 감회이다. 그의 윗입술에는 양쪽에 떨판이 붙어 있는데 이 떨판은 그의 남편이 소리에 미친 그녀의 입술을 돌로 찧어 생긴 상처라고 한다. 그의 소리는 영혼의 생기를 품은 채 오늘도 칼칼하게 터져 나와 듣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한다. 생기의 충만한 떨림이다.

풍수는 오향음행론을 바탕으로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종의 자연과학이다. 복(福)을 구하고 화(禍)를 피한다는 목적 때문에 다소 초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본질은 자연환경적 경험을 바탕으로 기후가 변화와 땅의 이용에 따른 다양한 사례를 일정한 확률로 통찰함으로써 보다 좋은 거주 환경(양택, 음택)을 선택하자는 진보된 학문이지 결코 미신은 아니다.

앞장에서 풍수가 세 종류로 적용됨을 설명한 바 있다.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는 충효를 사람이 지녀야 할 가장 커다란 덕목으로 여겼기 때문에 음택론이 발전하고, 화장이 일반화된 일본은 양택론이 발전했다.

동기감응론을 설명하면서도 언급했듯이 주택 풍수(양택론)보다는 묘지 풍수(음택론)가 사람의 운명에 한층 직접적이며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하면 묘지는 조상의 거주지이고 주택은 후손의 거택으로, 하나는 땅 속에 있고 하나는 땅 위에 있다. 조상과 후손의 관계는 마치 뿌리, 중기와 가지, 잎의 관계와 같다.

가지와 잎이 번성하려면 그 자체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보다는 뿌리와 줄기에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지엽(枝葉)에 해당하는 주택이 후손이 행복에 기여하는 효과보다는 근간(根幹)에 해당하는 조상의 묘지를 길지에 정함으로써 그 발복(영향력)이 보다 직접적이고 신속하게 후손에게 미친다는 뜻이다.

풍수는 동기감응론을 바탕으로 해서 주거 환경이나 묘터를 인위적으로 바꾼다면 개인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동기감응론을 일으키는 기, 즉 운명을 지배하는 생기를 인위적으로 이용해 불행한 운명을 수동적인 자세로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풍수는 그래서 적극적인 운명 개척론이기도 하다.

97년 9월, 한 일간지에 난 기사를 읽고 풍수를 공부하는 학인으로서 매우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서울 고법 판사직을 그만두고 지난달 25일 개업한 P변호사는 95년 노모가 위암을 진단받은 뒤 부인과 둘째 동생마저 잇달아 암 선고를 받았고 자신도 지난해 대장암이란 통보를 받았다.

1년간 휴직계를 내고 항암치료를 한 그는 자신과 가족3명의 치료비를 대기에 판사 봉급은 역부족이었기에 사표를 쓴 것. 그는 중3때 학업을 중단 할 정도로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검정고시로 대학을 들어간 뒤 81년 사법 고시에 합격, 83년 임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어서 더욱 주변의 안타까움을 샀다.

암은 의학적으로 병균에 의해 전염되는 병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가족 전원이 소화기 계통에 잇달아 암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는다. 남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하늘이 너무 가혹한 시련을 준 것은 아닌가! 그러나 불행한 가족사 앞에서 하늘과 숙명만을 탓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풍수는 이런 경우 생기가 부족하거나 생기를 받지 못한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로부터 차가운 북풍이나 수해를 피하고, 연료와 물 그리고 곡식을 채취하기 쉬운 땅을 택해 살았다. 모두 비슷한 자연환경에서 자라고 또 비슷한 음식을 먹고 살았다.

그렇지만 각 개인의 능력이나 건강은 각양각색이다. 같은 부모의 자식이라도 생기를 받는 정도에 따라 그 운명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각종의 사주팔자론과 관상론 등이 세상에 횡행하지만 모든 의문을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풍수는 어려서 죽은 사람은 성장의 원동력인 생기의 누림이 적고, 오래 사는 사람은 생기의 누림이 크다고 설명한다. 건강하거나 병드는 것 역시 생기를 받는 과소(過小)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으로 본다.

98년 6월, 미래의 전기공학도를 꿈꾸던 C씨가 전깃줄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는 명문대학에서 전기공학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과학기술원에 입학한 인재로 가을 학기부터는 박사과정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C씨의 아버지는 경찰 조사에서 아들이 가난을 비관해 자살한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경기불황으로 동네 단골손님을 상대하던 양복점 운영이 힘들어지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일자리를 얻어 가계를 돕던 둘째까지 실직해 맏아들이 C씨에게 공부를 그만두고 취직할 것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이의 죽음을 ‘가난의 비관’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는 가난 때문에 목숨을 끊을 만한 나약한 성격도 아니었다고 한다.

평소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스스로 조달하면서도 집안 사정을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공부한 하던 성실한 친구였다는 것이다.

풍수는 그의 생기가 사라져 목숨이 다했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생기는 공기, 영양소, 물 등과 같은 생리적 요소도 있지만 꿈과 야망, 그리고 영감(靈鑑)같은 형이상학적인 요소도 있다. 동물 중에서 자살을 하는 동물은 오직 사람뿐이다. 즉 다른 생명체는 생리적인 조건만 갖추어지면 성장하고 번식하나 영혼을 가진 사람만은 신령적인 생기까지 갖추어야 살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영혼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하던 생기가 언제부터인가 끊어져 그런 결과가 초래됐다고 말할 수 있다.

J씨는 유능한 교사로 늘 자신을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아내P씨는 동네에서도 소문난 살림꾼으로 한 푼 두 푼 알뜰하게 모아 결혼한 지 6년 만에 집도 마련했다. 밝은 성격의 딸은 공부도 곧잘 했고, 4대 독자인 아들은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았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J씨의 집엔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친 ‘병마’가 단란했던 가정을 산산조각 냈다.

아침에 일어난 J씨는 자꾸 눈을 비볐다. 아른아른한게 바로 앞의 물건도 잘 보이지 않았다. 혹시 눈곱이 끼었나 하고 눈을 씻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신경과에서 정밀 진단을 받은 J씨는 담당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애기를 들었다.

“소뇌신경위축증입니다. 소뇌에서 내려오는 모든 신경이 마르는 증세입니다. 먼저 시력을 잃고 점점 중추신경에까지 영향을 미쳐 끝내는 서지도 걷지도 못 합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실제 국내에서도 한 번도 발병한 적이 없는 희귀병이었다. J씨는 아내와 함께 전국의 유명한 한의원을 다 찾아다녔다. 하지만 병세는 오히려 더욱 악화되어 시력을 상실하더니 끝내는 다리마저 못 쓰게 됐다.

그렇게 2년이 흐른 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학교 칠판이 보이지 않는다며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설마 하며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아버지와 같은 병인 ‘소뇌신경위축증’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앓기 시작한 아들마저도 지난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리고 성장까지 멈추었다. 모 대학 한의대 교수와 학생들이 그들의 딱한 처지를 듣고 의술을 펼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확률 상 백반 분의 일인 병에 가족 4명 중 2명이 걸렸으니 더 이상 발병할 확률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확률은 거짓말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집안의 분위기를 살리던 큰딸마저도 같은 병에 걸린 것이다. 체념이 몸에 밴 아내 P씨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신은 과연 있는 것일까요.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해서 두 아이의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증조부, 조부의 묏자리도 옮겼습니다. 전생의 업보(業報) 때문이란 애기가 있어 아들을 2년간이나 절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모두 헛일이었습니다. 저도 매일 성당에 나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지쳤습니다. 신은 저희들을 버린 것이겠지요”

생기를 인위적으로 이용해 식물을 성장시키는 것이 수경 재배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빛, 온도, 공기, 물 등이 필요한데, 사람은 흙 없이도 수경 재배를 통해 생기를 적절히 공급함으로써 식물의 성장과 발육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을 알았다. 과일의 출하시기를 앞당기려고 온도를 높이거나 계란을 얻기 위해 밤새 닭장에 불을 밝히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사람의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생기가 왕성한 땅에 거처를 정하면 좋은 생기를 받아 인생이 행복 할 것이고 쇠잔한 운명도 다시 일어서고 병든 생명도 건강을 되찾을 것이다.

지리학이 산에서 연료와 곡식을 구하기 위한 학문이라면, 풍수는 산과 물에서 사람의 행복과 번영을 갖는 학문이다. 증조부, 조부의 묏자리를 옮겼다 하나 과연 그곳이 생기가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옮긴 자리마저도 생기를 받을 수 없는 곳이라면 그것 또한 이 가족의 운명인가!

세상이 미궁에 빠지면 빠질수록 풍수는 할 일이 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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