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입지, 무엇이 좋은가?
은행나무에 얽힌 설화들
그러자 백성들은 나무 때문에 수탈에 시달린다며 나무를 몹시 원망했다. 그 후 열렸던 은행이 하루아침에 썩어 떨어지고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분포한 은행나무는 한국사람 누구에게나 아득한 그리움으로 마음속에 자리잡은 나무이다. 소풍을 유서깊은 향교로 갔었다면, 그곳에는 언제나 늙은 은행나무가 있고, 샛노랗게 단풍 든 은행잎을 한두 잎 주워 책갈피에 끼워 둔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은행나무는 천 년을 사는 나무이니, 향교 역시 천 년을 두고 기능을 다하도록 기원해 심은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 중에서 중생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진화되지 않은 채 본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도롱뇽, 바퀴벌레, 그리고 은행나무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으로 부른다.
은행나무는 사람에게 여러모로 유용한 나무이다. 넓은 그늘은 사람들이 쉬기가 적당한 장소이고, 잎은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징크민이란 물질이 함유되어 귀한 약재로 쓰이고, 은행은 신선로 요리에 필수품이고, 나무 역시 최고급 목재이다. 특히 바둑판을 만들 경우, 은행나무는 충격을 흡수하는 탄력이 매우 뛰어나다.
바둑돌을 판 위에 칠 때 그 충격 때문에 바둑판이 순간적으로 오목하게 내려가 곰보가 되는데, 하룻밤만 지나면 원상으로 회복된다. 그리고 은행나무는 암수가 별개라 금실 좋은 부부처럼 가까이에 제짝이 있어야 은행이 열리며, 은행나무를 우물가나 못가에 심으면 물속에 비친 그림자와 서로 교배해 은행이 열린다고도 한다.
은행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수령이 더 오래되고 수령이 큰 것들이 대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것은 은행나무가 종자로 묘목을 양성시키거나, 삽목이나 꺽꽂이로도 번식이 잘 될뿐만 아니라, 특히 병충해가 없고 화재에 강할 만큼 껍질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치수나 가로수로 많이 심어왔다.
오랜 세월동안 모진 풍상을 해치며 살아 남은 늙은 나무에서 우리는 고장의 전설과 조상의 극잔한 보살핌을 배우는데, 모두가 신령이 깃들인 영험한 나무라 전설도 가지각색으로 전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제30호) : 신라의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은 채 금강산에 입산하는 도중에 심었다거나,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간 것이 자란 것이라 한다. 세종대왕은 이 나무에 정3품의 당상관 벼슬을 하사했는데, 나라에 큰 일이 있을때마다 윙윙하는 소리를 내 천왕목이라 불린다. 광복을 맞았을때. 6‧25사변이 일어났을때, 10‧26사태 때도 울었고, 일제때 왜놈들이 베려고 하자 붉은 피가 솟구치며 뇌성벽력이 쳐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고 한다. 밑동에는 나랑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울어서인지 어리고 서린 옹이가 큼직하게 달려있다.
금상 행정의 은행나무(제84호) :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신목으로, 잎을 삶아 먹으면 해수병이 치유된다고 한다. 이나무 역시 나라에 변고가 있을때마다 큰 소리로 울어 알려 주는데, 마을에서는 정월 초사흗날 자정에 소원 성취를 비는 기도를 드린다. 나무 곁에는 ‘행정헌’이란 정자가 있어 휴식처로 이용된다.
읍내리의 은행나무(제165호) : 고려 성종 때에 선정을 베푼 성주가 있었고, 그는 청당이란 연못을 파고 그 둘레에 여러 나무를 심었다. 성주가 죽자, 백성들은 고인의 선정을 기리며 그가 심은 나무를 정성을 다해 가꿨는데, 그 중의 하나라 전한다. 나무에는 귀가 달린 뱀이 산다고 해 모두들 두려워하며 보호하고 있다.
반계리의 은행나무(제167호) : 옛날 어떤 고승이 길을 가는데, 목이 말랐다. 그래서 물을 마신 다음에 짚고 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란것이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큰 백사가 사는 나무라 여겨 손을 대지 못한다. 단풍이 일시에 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용계의 은행나무(제175호) : 조선 선조 때에 탁순창이 이곳으로 낙향해 여러 벗들과 이 나무 아래에서 담소를 즐겼다고 한다. 한국 은행나무 중에서 굵기가 가장 굵는데,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 위기에 처했으나 1990~1994년에 걸쳐 이 나무를 들어올려 심는 상식 공사가 벌어졌고, 20억원의 경비가 들었다고 한다.
청도 이서면의 은행나무(제301호) : 약 1300년전, 지금의 은행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 우물이 있었고, 한 도사가 물을 마시려다가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은행나무가 자라났다. 또 한 여자가 물을 마시려다 빠져 죽었는데, 그 여자가 가지고 있던 은행이 싹이 터 지금의 나무가 됐다는 전설도 있다. 한꺼번에 낙엽지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강진 병영면의 은행나무(제385호) : 옛날에 병마절도사가 폭풍으로 부러진 은행나무 가지로 목침을 만들어 베고 잤더니 병이 생겼다. 전국의 명의를 찾아도 소용없었으나, 하루는 노인이 은행나무에 제사를 올리고 목침을 나무에 붙여주면 병이 나을 것이라 말했다. 노인의 말을 쫒아 그대로 행하니 신기하게 병이 나았다.
함양 운곡리의 은행나무(제406호) : 수령이 1000년이 되었다고 하며 마을도 나무를 따라 ‘은행정’이라 지었다. 이 마을은 배의 형상에 해당되어 우물을 파면 배의 밑창을 뚫는 꼴이니 배가 가라앉는다하여 우물을 파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어느날 은행나무가 섰던 자리에 우물을 팠더니 송아지가 빠져 죽어, 부랴부랴 우물을 메웠더니 다시 자라 오늘의 거목이 되었다 한다. 또 나무 앞을 지날 때면 예를 표해야 재앙이 없다는데, 일제 때 나무를 베려고 한 뒤로 흉한 일이 끊이질 않아 그만 두었다고 한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