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1-26 14:51 (금)
〈기자의 눈〉 ‘백마 탄 왕자는 없다’
〈기자의 눈〉 ‘백마 탄 왕자는 없다’
  • 이재준
  • 승인 2021.09.23 14: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준 기자

1960년대 중반쯤의 일이다. 경상도 어느 지역 국회의원 선거 유세장에는 동네에서 모여든 청중들로 왁자지껄 했다. 한 중년 후보가 단상에 올라 유세를 시작하자 한 청년이 “아버지 그만 내려 오이소”라며 소리쳤다. 이후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기자가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들었던 기억의 한 조각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감’이 안 되는 후보자들의 출마를 희화화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게 사실이라면, 아들은 왜 아버지를 공개적으로 남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을까. 아버지가 명예와 권력을 쫓는 동네 졸부였는가. 아니면 아버지는 당선돼 어깨에 힘 좀 주고, 죽고 난 이후 묘소 앞 비석에 갓이라도 씌우고 싶어 출마했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어떨 결에 남 따라 장에 간’ 아버지가 그냥 창피했던 것일까.

거제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 뜻을 둔 인물들이 지역 언론 매체에 얼굴을 내민다. 주로 시장후보자들의 면면이다.지금까지 어떤 당은 후보자가 3명, 또 어떤 당은 후보자 10 여 명 정도가 거론된다. 웬만한 관심으로는 후보자들의 면면을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다. 후보자들은 언론 매체와 인터뷰 등 각종 홍보를 통해 얼굴 알리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어떤 이는 언론에 기고를 통해 자신의 식견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유권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설 요량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본선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탓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 인물이 그 인물이다”는 중론이다. 이들은 어제의 ‘용사’들이 오늘도 ‘용사’인양 얼굴을 들이밀고 ‘거제의 미래’를 논한다는 자체에 믿음이 안 간다고 꼬집는다. 또 ‘구관이 명관’이라는 논리로 시민들에게 그만 읍소하고, ‘있을 때 잘하지 못한’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무엇보다 일부 후보자들의 출사표에서 정치철학과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분석을 내 놓는다. 그들이 밝힌 거제발전에 대한 비전과 출마의 동기를 보면 아무렇게나 갈겨 쓴 메모장이나 일기장 같다고 평가절하 했다. 비전은 오늘과 내일을 연결시켜 주는 희망적 다리인데, 고민의 흔적과 의지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그저 정부나 지자체에서 밝힌 내용과 계획을 각색하는 수준에 불과하고 창의적인 큰 그림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매번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식상함에 입맛을 잃는 유권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먼저 우리는 광야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을 고래에게 쫓기는 멸치 떼 취급하는 후보자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아야 한다. 소위 꾼들을 기용해 유권자들을 멸치 떼 몰 듯 하면 당선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못하도록 말이다.

유권자들은 감정에 약하다. 흥분도 잘하고 눈물도 잘 흘린다. 그것은 감정이 풍부하고 정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에 약하다는 것과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과 다르다. 우리는 거제의 내일을 위해 일할 제대로 된 후보를 골라내는 매의 눈을 가져야 한다. 흔히 선거는 최선이 아니면 차악이라한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오직 명예와 권력을 쫓아 유세 단상에 오른 ‘아버지’를 뽑을 것인가.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