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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씨름선수로 살아온 이다현의 인생스토리
(특별기고)씨름선수로 살아온 이다현의 인생스토리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22.11.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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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청씨름단 이다현 천하장사
민속여자씨름 최초 전관왕 차지...소녀장사에서 여제(女帝)로

요즘 우리고유의 민속경기씨름이 남북공동으로 유네스코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된 후로 여러 예능프로그램이나 SNS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여자씨름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한국여자씨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선수를 소개한다. ‘씨름의 여제’ 이다현이다. 모래판 위에서는 패기와 당당한 체구로 누구한테도 질 것 같지 않은 카리스마를 뿜어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긴장한 듯 수줍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다현에게 씨름은 운명이자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씨름선수출신 아버지 밑에서 씨름을 보고 자랐다. 아버지이대우(현 부산광명고 체육교사)는 1980년대 한라급스타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부터 조기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냥 운동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그는“아버지께서 저를 운동 시키고 싶어 하셨던 것은 맞아요.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싶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생활체육에 여자씨름이 있으니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셨어요. “한번 해볼게요.”대답했죠. 그러자 아버지께서 “운동을 할 거면 똑바로 해서 1등을 해야 한다.”며 씨름에 매진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고등학교3학년 때 처음으로 대회에 나갔는데 한번 이기고 하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그 뒤로 여기까지 왔어요.“라며 활짝 웃는다.

2010년대 한국여자씨름에는 임수정이 있었다. 2019년까지는 임수정의 시대였다 그리고 2020년 이다현이 여자씨름여제로 등장하면서 천하무적이 됐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여자 강호동', ’무궁화급저격수’, ‘거제시청씨름단 에이스’다. 그는 씨름을 시작한지 12년 만에 한국여자씨름사상최초로 무궁화급전관왕타이틀(여자천하장사포함)을 차지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2020년 구례여자천하장사씨름대회 때의 여자천하장사결승 상대는 임수정(콜핑)장사였다. 누구의 승리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 접전을 예상했으나 이다현이 두 판을 모두덧거리로 가볍게 성공시키며2-0으로 제압해 생애 첫 여자천하장사트로피를 품에 안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구례여자천하장사씨름대회가 그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한 선수’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는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여자씨름 각 팀 감독들을 비롯해 숱한 전문가들이“후배들이 이다현을 멘토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는 이유다.

그는 올해마지막 메이저대회인 11월8일 울산광역시울주군 작천정운동장 씨름특설경기장에서 열린‘2022천하장사대축제 여자부개인전’에 출전하여 최희화(안산시청)선수를 상대로 2-0 완승을 거두고 올 시즌10관왕(개인통산17번째 무궁화장사)를 차지하며 천하무적임을 입증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으니 실패한 씨름인생은 아니었다.”고 담담히 소회하는 ‘우리거제의 영웅’ 이다현의 삶을 ‘짧게 쓰는 자서전’ 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거제시청씨름선수 ‘이다현’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그가 전관왕의 대기록을 향해 나아갈 때 씨름장에 나타난 80Kg 거구의 활기 넘치는 세레머니를 생각 할 것이고 누군가는 구례군청에서 거제시청으로 이적 한 후 짧은 기간이었지만 슬럼프의 늪에서 헤매던 초라했던 모습이 스쳐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이다현은 스스로 씨름선수를 선택한 길에서 매순간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당당히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경남거제시 계룡로 125번지. 거제시청씨름단의 주소다. 여기에는 한 선수가 있다. 이다현.

시작부터 팀의 에이스였다. 이후 그의 씨름 삶을 관통하는 ‘여자 강호동’이 됐다. 씨름선수의 이름 앞에 ‘여자 강호동’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이다현 앞에 ‘여자 이만기’로 불린 임수정이 있었으나 ‘여자 강호동’의 호칭을 따낸 건 처음이다. 이다현은 분명씨름선수의 범주를 넘어선 선수, 그 이상의 선수였다.

무엇이 그를 ‘여자 강호동’으로 만들었을까. 민속씨름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이다현의 씨름인생을 풀어봤다. ‘진실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의 좌우명은 그의 삶에 오롯이 배어있다.

“여고2학년 때인 2009년 여름, 부산자갈치시장에 놀러갔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찾아가는 씨름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시장아줌마들을 눕히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상대는 왜소한 체격의 여대생으로 당시여자씨름의 간판스타였던 임수정 장사였다. 무참하게 패한 나는 왠지 모를 서러움에 한참을 펑펑 울었다. 그때씨름선수가 되고 싶다고 아버지를 졸랐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드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지도하며 성적이 나든 안 나든 꾸준히 훈련하면 성적이 나온다. 다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자고 했다. 막상씨름을 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설 내가 아니다. 난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 결국 내가 해냈다. 난 이제 씨름선수다."(2012년8월 제7회 구례국민생활체육여자천하장사씨름대회)

“여고졸업 후 생활체육선수에서 실업팀구례군청선수를 거쳐 거제시청씨름선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틈만 나면 숙소 밖으로 나가 혼신의 힘을 다해 개인훈련에 돌입했다. 체중감량과 지구력 그리고 정신력을 보강하기 위한 훈련을 더 할 필요가 있으면 여지없이 나갔다. 경기에서 지면 더 연습했다. 새벽에 숙소뒷산에 올라 트레이닝튜브를 당기다가 해 뜨는 것을 본적도 있다. 당기고 또 당겼다.

2018년 거제시청입단 초기인 ‘횡성설날장사씨름대회’여자부 무궁화급결승전에서 같은 팀 소속 정지원과 맞붙어1대1 팽팽한 경기를 펼친 끝에 세 번째 판에서 밀어치기 공격을 당해 패한 게 치명적이었다. 쉽게 갈 수 있는 경기였지만 안일한 플레이가 나왔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멘봉이 왔다. 경험은 사람을 크게 만든다. 쫓기는 기분은 없다. 스트레스강도는 더 심하지만..."(2018년2월, 횡성설날장사씨름대회)

“2019년6월, 횡성단오장사씨름대회 여자부단체전에서 결승에 오른 강팀 콜핑을 맞아 2-2동률을 이룬 절체절명의 순간 마지막주자로 나선 나는 정지원을상대로 안다리와 밀어치기로 제압하며 3-2 단체전우승을 차지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곧 이어 벌어진 제11회 구례여자천하장사씨름대회 결승전에서 최희화(안산시청)에게 2-0완패를 당한 뒤 돌아서자 일부 관중석에서 야유가 날아왔다. 그럴 만도 했다. 내 생각에도 정신력도 중요하지만 경기에서는 부상투혼을 발휘해도 안 통한다는 걸 절감했다.

여자천하장사등극은 거제의 영광이요 가문의 영광이기도하지만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다. 거제시청관계자분들과 명예부단장, 감독, 팀 동료들에게도 너무 미안하다.”(2019년8월, 제11회 구례여자천하장사씨름대회))

“2020년 최석이 감독님이 거제시청 팀 지도자로 부임해왔다. 최 감독님은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나에게 모든 열정을 다해 씨름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뭐든 해보고 씨름을 그만둔다는 마음으로 재활센터에서 몸 관리를 하며 운동을 했고 쉬는 날인 주말에는 부산반송동에 있는 중학교 씨름 부에서 기본자세와 씨름훈련에 매진했다.

씨름인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최석이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2020무궁화급전관왕 달성과 생에 첫 여자천하장사등극이라는 행운을 동시에 거머쥔 일이다. 씨름을 막 시작할 무렵인 12년 전, 한 스포츠신문 인터뷰에서 ‘아빠의 못 이룬 꿈을 이뤄서 집안장식장을 황소트로피로 가득 채울 것’이라고 아버지에게 약속했다. 지금까지의 성적으로 보면 아버지와 약속은 충분히 지킨 셈 이다.(2020년12월 전북정읍 천하장사씨름대축제)

“씨름여제 이다현. 스포츠신문을 중심으로 어느 순간 나를 ‘씨름여제 이다현으로 부르고 있다. 부담스럽다. 씨름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오전6시에도 전화가 온다. 자다가 전화를 받고는 한다. 경기에 쏠리는 눈 때문에 동료들에게도 미안하다. 연승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욕심으로 무리했던지 단오시합에서 부상을 입었는데 재활치료가 잘 된 터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내년 시즌을 준비했다.

2021년과 올해는 아쉽게도 여자천하장사등극을 못한 채 무궁화급전관왕을 한 비운의 장사(?)가 되었지만 내년시즌을 더 차분하고 들뜨지 않으며 말보다는 결과로 팀원들에게 모범이 되는 선수로 남고 싶다.(2022년 11월 울산광역시 울주군천하장사씨름대축제)

“거제시청감독으로 부임하던 해인 2020년. 이다현은 현재샅바를 잡은 지 12년 만에 한국의 여자씨름사상최초로 무궁화급전관왕과 생애 첫 여자천하장사에 이름을 올리며 대기록을 달성했다. 임수정 선수가 세운 여자천하장사 8회 등극기록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거제시청입단3년 만에 쟁취한 여자천하장사는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 영웅을 갈구하는 거제사회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며 이다현은 거제인 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줬다. 스타덤에 오르면 이기적으로 변하는 다른 선수들에 반해 이다현은 깨끗하고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 대견스럽다.”(최석이 거제시청씨름단 감독)

“거제시청 씨름단주장선수가 한국의 국기라는 씨름종목에서 그것도 민속여자씨름의 발상지인 구례라는 전통명가에서 여자천하장사를 거머쥐었을 때 전율이 일었다. 당시조선업계 구조조정바람이 불어 현실을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고 진로도 막막했는데 이다현 선수가 여자천하장시꽃가마를 탔을 때 ‘언젠가 나에게도 빛이 오겠지’하면서 응원했던 기억이 있다. 이다현은 씨름선수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50대 조선소 근로자․ 씨름 팬 김동규씨)

“창단해인 2017년 겨울, 전남나주에서 펼쳐진 ‘전국천하장사씨름대축제’때 본 이다현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날카로우면서도 또릿또릿 했다.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고 물으니 ‘여자천하장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네가 하기 에 달렸다’고 말해 줬다. 어느 날 우연히 부산에서 활동 중인 한 씨름인 을 만났다. 이다현이 주말휴가일에는 부산반송동의 모 중학교씨름 부를 찾아서 보충훈련을 한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그때 참 대단한 아이구나라고 느꼈다. 한번 마음먹으면 해내고야마는 근성과 집념이 강한 선수였다.”(손영민 거제시청씨름단 명예부단장)

“한국여자씨름 사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이다현은 씨름의 트로이카를 이끌었던 3인방(이 만기, 이 봉걸, 이준희)을 연상케 했다 가공한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면서 많은 대중에게 여자씨름의 매력을 느끼게 했다. 이다현이라는 인물을 계기로 다른 종목에 비해 좀 더 씨름이라는 종목이 국민적인 스포츠로 올라오게 됐으면 한다. 남자선수가 많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다현은 여자선수로 민속씨름발전의 진정한 의미 또한 던져줬다. 이다현은 거제시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넘어 전국구스타였다.”(황경수 대한씨름협회장)

“이다현은 ‘2022천하장사대축제’여자부경기에서 임정수(화성시청), 최희화(안산시청)등 여자씨름 최강자들을 상대로 드라마틱한 경기를 하면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 큰 경기에 잘하는 팀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였다. 거제시청, 화성시청, 안산시청, 괴산군청, 영동군청등 잇단 신생 여자팀 창단으로 민속씨름 인기가 치솟았는데 현재 민속씨름 붐의 초석을 이다현이 다졌다고도 할 수 있다.”(이 기수 MBC 스포츠플러스해설위원)

글․사진 손영민/거제시청씨름단 명예부단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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