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당시 거제군 A면사무소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 여보세요 A면사무소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제 갓 공무원이 된 ㄱ씨는 평소와 같이 친절하게 전화를 받는다. 그러자 상대편에서 목소리를 진하게 깔고 “나, XXX에 김(金)이야.” 그 시절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최고의 권력기관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하지만 순진한 ㄱ씨 “예, 어디라고요,” 하고 반문하자 잔득 개폼을 잡고 전화한 상대편은 자존심이 상한 듯 목소리를 높이며 “나, XXX에 김(金)이라니까.” 하며 짜증을 낸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ㄱ씨 “아, 어딘지 알겠는데 무슨 민원이 있습니까.”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배짱이 남다른지 ㄱ씨는 계속해서 상대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 닭 보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은 계장은 상대가 누군지 눈치 채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보통 “나, XXX에 누구야.” 하면 쫄기 마련인데 이 친구는 평상시 민원인을 대하듯 하니까 상대쪽에서 맥이 빠져 결국 본론으로 들어간다.
“○○마을에 123번지에 집을 신축 할 테니까 그 쪽에서 허가를 받아봐.” 하니 ㄱ씨 “아, 거기 말입니까,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땅 주인이 다녀갔는데 길이 없어 안 됩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너, 이 자식 뭐라고 죽고 싶어.” 하니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글쎄 길이 없어 안 된다니까요.” 그 순간 옆에 있던 계장을 포함하여 전 직원은 면사무소 밖으로 도망친다.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ㄱ씨는 계속해서 “안 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열이 오를 때로 오른 XXX에 김(金)은 “이 새끼, 너희 면장 바꿔.” 하니 이 친구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한다. “아, 우리 면장님 말입니까. 아침에 논에 나락(벼) 새로 가서 아직 안 왔는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상대편은 열이 받아 숨이 넘어 갈 지경인데 9급 면서기 ㄱ씨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결국 9급 면서기와 통화하다 지친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에서 먼저 전화를 끊고 만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ㄱ씨는 사무관으로 승진해 열심히 시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지금도 “XXX 잡는 9급 면서기” ㄱ씨는 전설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