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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에는 명당이 없다.
명산에는 명당이 없다.
  • 원용태 기자
  • 승인 2014.01.09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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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씨는 종놈의 차지다.

모 일간지에 인기리에 연재되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장택상 가(家) 와 박정희 가(家)의 뒤바뀐 가운(家運)을 다룬 적이 있다.

1930년 당시 박정희 집안은 칠곡에 사는 장택상 집안의 소작농으로, 그것도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천수답(天水沓) 다섯마지기를 소작하며 살았다. 어느 가을 박정희의 둘째형이 지게에 쌀 가마를 싣고 소작료를 내러 가는데, 지게 위에 닭 한 마리가 새끼줄에 묶여 있었다. 둘째형의 아들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부지예, 닭은 와 가져갑니꺼?”

“소작료 검사하는 사람한데 줄 거야.”

소작료 검사하는 장씨네 하인에게조차 뇌물(?)을 바쳐야 될 정도였으니, 박씨네의 신분이 얼마나 미천하였는가 알 수 있다. 가을마다 소작인들이 싣고 온 쌀가마니가 십만석에 이를 정도로 부자였던 장씨네와 일개 소작농에 불과한 박씨네는 그 후 일제 식민지와 동족상잔을 거치면서 영화가 역전되었다.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 부국강병을 부르짖다가 부하의 흉탄에 숨지고, 한 사람은 정치에 투신했다가 재산을 모두 거덜내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당대 최고의 부자로 떵떵거리던 장씨네는 본가(本家) 마저 지키지 못하고 빚에 넘어가고 말았으니 인간사는 그 무엇 하나 장담할 것이 못된다. 그 후 미국에 사는 장씨의 딸이 칠곡의 본가를 다시 사들이려다 돈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눈물만 떨구고 돌아갔다는 일화도 전한다. 지금 그집은 남화사(南華寺)란 절로 바뀌었다.

반면 일개 미천한 소작농의 집안인 박씨네로부터 일국의 대통령이 나온 것을 두고 풍수 연구가 C씨는 박 대통령의 조모 묘를 ‘호랑이가 잠을 자는 명당’에 모셔 그렇다고 주장한다.

풍수 설화 중에는 종놈이 조상의 묘를 명당에 써 나중에 주인댁보다 더 훌륭한 가문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만물의 성장, 발육시키는 생기 에너지가 최대한으로 응집된 장소를 풍수는 혈(穴)이라 부른다. 명당은 혈을 포함한 주변의 평평한 땅을 일컫는 넓은 의미의 용어이다.
운명학이나 점성술은 사람의 길흉화복을 미리 알아보는 것에 그쳐 운명에 소극적인 대처인 반면, 풍수론은 사는 터와 조상의 터와 조상의 묘터를 길지에 정해 그 발복으로 개인의 행복과 번영을 꾀하자는 운명 개척의 적극적인 모색이기도 하다.

풍수에 괴혈(怪穴)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명당이 갖추어야 할 제반 조건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기가 응결된 진혈(眞穴)을 말한다.

암석으로 이루어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돌산에 시신 한 구를 안장할 만한 고운 흙이 갑자기 나타난다거나, 첩첩산중 산봉 우리속에 느닷없이 평지가 나타나며 아래쪽에 물이 고여 있다면 그 위쪽을 바로 괴혈로 본다.

괴혈은 후손에게 발복의 폭이 클 뿐만 아니라, 그 힘도 매우 강력하여 어떤 풍수사는 괴혈만을 찾아 산천을 헤맨다고 한다. 하지만 괴혈은 인위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주 우연히 얻어지는 터로 괴혈로 인해서 변변치 못한 집안에서 훌륭한 자손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주 집안은 선영에 조상을 정성스럽게 모시지만, 땅 한 평 가지지 못한 머슴은 부모의 시신을 지게에 얹고 주인 없는 바위산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만약 그곳에 시신을 묻을 한 평의 흙이라도 있다면 무조건 봉분도 없이 평장을 해버렸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그곳이 괴혈이라 발복을 하게 된것이다.

충남 서천의 한산에는 한산 이씨(韓山李氏)의 조상 묘(組墓)가 있다. 이 묘는 사환이던 사람이 조상의 뼈를 길지에 묻어 그 후손 중에 고관이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 때의 일이다. 한산 이씨의 조상은 가난하고 신분이 낮아 관아의 심부름이나 하면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관아에는 연중행사처럼 행해지는 일이 있었다. 관아의 대청마루에 깔아놓은 널빤지가 해마다 썩어 늘새 나무로 바꿔 끼우는 일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보니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만은 유독 그 이유가 궁금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학식있는 사람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관아의 터는 길지로 널빤지가 썩는 자리가 바로 땅 속의 생기가 넘쳐 나오는 자리이다.”

그 말을 듣고 그는 곧바로 조상의 뼈를 남몰래 관아의 마루 밑에 암장하였다. 그 후로 한산 이씨 가문은 번성하였다. 훗날 한산 이씨 후손이 그 지방을 순찰하던 도중 관아의 마루 밑을 파보았다더니 소문대로 진짜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는 즉시 관아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를 한산 이씨의 시조 묘로 삼았다. 이처럼 괴혈을 차지한 관아 심부름꾼의 후손은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렸다.

풍수의 효과가 실증되지 않았다면 민간신앙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 풍수가 널리 보급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미 풍수의 소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이론 보다는 법술의 실제적 가능성, 즉 효과가 있다는 실증에 의하여 풍수가 민간의 사상에 뿌리박게 된 것이다.

풍수에 ‘작대기 풍수’라는 말은 나무꾼이 명당을 잘 잡는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머슴이라면 으레 농번기에는 논밭에서 일하고 겨울이면 나무를 하러 산을 돌아다닌다. 산을 헤매던 도중 한겨울에도 온기가 가시지 않아 눈이 쌓여도 곧 녹아버리는 장소를 점찍어 두었다가 훗날 조상을 모셔 발복하는 것이다. 괴혈을 차지하여 머슴의 집안에서 일약 사업가의 가문으로 변신한 일화가 현대에도 전한다.

충북 괴산의 제월리에는 두 기의 묘가 이상한 형태로 자리잡아 눈이 휘둥그래진다. 아래 묘가 위쪽의 묘에 바짝 붙여 자리잡았는데, 맨 위쪽에는 아래 묘가 이장되면서 파진 웅덩이가 그대로 남겨져 있다. 위 묘는 모 기업 회장인 K씨의 고조 묘이고, 아래 묘는 Y씨의 조상 묘이다.

K씨의 조상은 대대로 Y씨 집안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K씨의 부친은 대단히 부지런하고 성실했다고 한다. 그는 매일같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니다 Y씨 소유의 산 속에서 천하의 명당터를 발견하였다. 하루는 주인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렸다.

“저의 증조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싶은데, 그곳으로 이장을 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래, 그래라.”

주인은 별 생각없이 허락을 하였고, K씨의 부친은 그날 밤으로 증조부의 묘를 미리 점찍어 둔 곳으로 이장하였다. 그 후부터 발복이 시작되었다. 머슴의 자식들은 승승장구하면서 출세가도를 달리더니, 한 아들은 사업으로 성공하고 한 아들은 중앙정보부의 간부까지 되어 주인집의 위세를 저만치 뛰어넘었다.

뒤늦게 그 터가 명당임을 알아 챈 Y씨는 조상의 한 분을 K씨 고조 묘의 위쪽에 쓰고는 발복을 기다렸다. 그런데 발복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세까지 점차 기울어가는데, 머슴이던 K씨네는 날로 번창해가고 있었다. 배가 아프고 속이 뒤틀렸음은 인지상정이다. 참다 못한 Y씨가 K씨에게 고조 묘를 파 옮기라고 요구하자, 이 사건은 급기야 법정 소송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유전명당 무전흉지(有錢明堂 無錢凶地)이다. K씨 측은 동네 노인들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유리한 증언을 얻어냈다.

"K 머슴이 Y 주인에게 묏자리를 청하자 Y씨가 흔쾌히 ‘그곳에 써라’라고 했다는 말을 어렸을 적에 들었습니다.“

묘를 이장하기는 커녕 도리어 K씨 집안의 묘터에 대한 연고권만 인정해준 셈이 되었다. 약이 바짝 오른 Y씨는 즉시 위쪽의 조상 묘를 다시 K씨 고조 묘의 아래쪽으로 이장했는데, 진혈에 좀 더 가까이 가고자 머슴의 발 아래에 주인이 머리를 조아린 꼴이 되고 말았다. 현재 K씨 조상 묘는 봉분도 근사하고 묘비까지 위엄 있게 서 있어 후손이 명당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Y씨 조상 묘는 여전히 초라해 보여 간절히 바라는 발복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이 실화는 명당의 위력이 어떠한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K씨 집안 후손들은 예전에는 쳐다볼 수도 없었을 양가댁 규수를 부인으로 맞이했을 것이니, ‘아기씨는 종놈의 차지’라는 옛말은 헛된 소리가 아니다.

명산에는 명당이 없다.

풍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명산에 오를 때마다 마음 한편으로 심마니가 산삼을 캐듯이 위대한 지도자를 배출할 명당 터가 자신의 눈에 띄기를 바랄 것이다.

“산삼은 워낙 영초(靈草)이어서 눈에 잘 보이지 않아. 모습을 이리저리 바꾸기 때문에 밟고 지나가도 몰라. 덕(德)을 쌓아야 캐는거야.”

열네 살부터 설악산 줄기를 누비며 심마니 생활을 했다는 79세 고령 백성봉(百成鳳)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는 현재 살아 있는 심마니 중 최고의 어인마니(고참마니)로 65년 동안 100뿌리가 넘는 산삼을 캐서, 농토와 살림을 장만하고 자식들 공부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괴석이 천태만상의 조화를 부린 설악산을 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저절로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문득, 산삼이 자랄 정도의 영산(靈山)이라면 산속 어딘가에 큰 터(명당)도 있지 않을까 고개를 들어 이곳 저곳을 살펴보게 된다. 깍아지른 절벽에는 용 비늘을 덮어쓴 노송이 멋들어지게 걸터 서 있고,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차고 넘친다. 그때, 이름 모를 암자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가 어느 사이 ‘명당 나 여기 있지’하는 청아(淸雅)한 메아리로 변해 귀까지 솔깃해진다. 절경속 어딘가에 꼭 명당이 숨어 있는 듯 싶다. 심지어 신기루의 허상을 쫒듯이 명당의 환상까지 보이기도 한다.

“산 속을 끝없이 헤매다가 산삼을 발견하고는, ‘심봤다!’세번을 외칠 때가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이다. 혼자 발견하면(독메)눈에 들어오는 산삼마다 모두 표시를 하지. 그 다음에 동료들에게 ‘삼메보시오(산삼캐시오)’하고 나머지를 캐도록 하는거야.”

과욕(過慾)은 금물이다. 명당을 어디서나 흔하게 발견하리라는 기대 역시 마찬가지다.

평생을 하루같이 산에 오르는 심마니도 운좋게 산삼을 발견하리라는 기대는 언감생심(焉敢生心)으로 여긴다. 부정하지 않은 날짜를 택하고 산에 오르고, 치성으로 산신령께 제물을 올린다. 산삼은 산신령이 꿈에 점지해준다고 믿기 때문에 잠을 자야 한다. 꿈을 위해서라면 허리가 끊어지듯 아파도 수고를 아끼지 않고 계속해서 자야 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지 못했다면 좋은 꿈을 꾼 사람에게 돈이나 물건을 주고 그 꿈을 사야 한다. 산삼을 캐는 데도 이처럼 지극 정성이 필요한데 하물며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명달을 요행수로 찾으려 한다면 하늘도 성낼 일이다. 예로부터 명당은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차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풍수 격언의 1장 1절은 ‘명산에는 명당이 없다’이다. 사람의 얄팍한 욕심을 넘어선 자연의 이치를 말했을 뿐이다. 무슨 소리냐고 따질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물줄기가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명산에 오를 때면 명당을 얻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접어두고 오로지 심신 수련에만 힘써라.

먼저 ‘설심부(雪心賦)‘의 주장을 들어보자. ‘설심부’는 당나라의 복응천(卜應天)이 지은 책으로 충수 경전(經典)의 하나이다.

산이 험준하고 암석은 거칠고 물이 급히 쏟아져 흐른다면 어찌 참된 용(龍)이 있으리요.

‘용’이란 산줄기를 가리키는 풍수적 용어로, 일어섰다 엎드렸다 하는 산줄기를 용이 꿈틀거리며 달려가는 모습으로 본 것이다.

‘명산에 명당이 없다’란 말의 진실된 의미는 명산은 명당이란 열매가 달리는 가지의 끝이 아니라 열매를 맺게 하는 뿌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간단하다. 수박이 달리는 위치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될 일이다. 수박은 넝쿨의 뿌리나 굵은 줄기에는 달리지 않는다. 굵은 줄기에서 나온 가지 끝에 새순이 돋고, 그곳에 핀 꽃이 핀 다음에 수박이 열린다. 즉 뿌리에서 생성된 생기(生氣)라는 에너지는 줄기라는 통로를 지나서 가지의 끝에 모이고, 그 생기의 발산으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비단 수박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과일의 거의가 그렇다.

만물의 성장, 발육시키는 생기 에너지가 최대한으로 응집된 장소를 풍수는 혈(穴)이라 부른다. 명당은 혈을 포함한 주변의 평평한 땅을 일컫는 넓은 의미의 용어이다.

태조산(太祖山)은 혈의 발원이 되며 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위용이 빼어난 산을 가리킨다. 한국 전체를 하나의 국(局)으로 보면-국이란 혈을 둘러싼 형세를 하나의 우주로 본 것이고, 혈은 그 우주의 중심에 해당한다-한국의 태조산은 백두산이다. 한 지방만을 이야기할 때면 설악산,속리산,칠현산,지리산 등도 태조산이 될 수 있다.

중조산(中組山)은 태조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풍수는 산줄기를 용맥(龍脈)이라 부른다-혈 쪽으로 내려오면서 태조산 다음으로 웅장함을 갖춘 산이다. 그리고 혈을 만들기 위해 최종적으로 생기 에너지를 응결시킨 입수(入首)가 있기 직전의 산을 소조산(小組山),혹은 주산(主山)이라 부른다. 풍수에서 생기가 모여 발산하는 혈을 가정에서 쓰는 전깃불에 비유해보면,

태조산=발전소(수박의 뿌리)

중조산=변전소(수박의 넝쿨)

소조산=변압기(수박의 가지)

이고, 두꺼비집이라는 안전장치-풍수는 입수-를 거쳐 비로소 불이 들어온다. 전구가 바로 혈인 셈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은 대게가 중조산에 해당된다. 변전소의 전기를 가정에서 직접 쓰지 못하고 전압을 낮추어야만 쓸 수 있듯이 명산에서 발하는 생기 역시 혈로 흘러들어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자연현상은 일정한 순환을 반복한다. 수박이 가지 끝에 달리는 이치는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도 그렇다. 따라서 생기 에너지가 모인 명당은 명산의 깊은 산 속에 숨어 있지 않고 용맥이 물을 만나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고 멈춰 선 그곳에 있다. 그러니 명산을 찾아 나선다면 경관이 수려한 명산에 오르거나 혹은 바구니를 들고 산나물 뜯던 깊은 산 속으로 갈 것이 아니라 마을의 야트막한 뒷산이나 높은 산에서 논밭으로 내려뻗은 산줄기의 끝지점으로 가야 할 것이다. 돌 치우며 가재 잡던 도랑물이 졸졸 흐르는 시내가 있는 앞산이거나 아니면 조 선달과 허 생원이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가며 걷던 그 길 어느 야산에 명당은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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