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공사 당시 대체임도조성 약속은 어디 갔나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18일 오후. 한 중년의 남자가 신문사 문을 박차고 불쑥 들어왔다.
머리에는 헬멧을 쓰고 자전거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런 세찬 빗줄기에 자전거를 타는 그를 보면서 한 눈에 자전거 마니아라는 사실을 짐작케 했다.
“이 비에도 자전거를 탑니까?” 기자의 인사치레에 그의 답은 다소 의아스러웠다. 퉁명스러웠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기자도 일순간 긴장했다.
“여기 신문사 맞지요. 그런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의 말은 신문사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처럼 항의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지난 11일 본지가 보도했던 거제뷰CC 골프장으로 인해 막혀버린 계룡산임도에 대한 내용 이었다.
“기사는 잘 보았는데, 뭔가 개선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바로잡을 방법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임도 통제를 알리는 표지판을 세운 명의자가 거제시장과 거제뷰골프장 공동으로 되어있는데, 거제시장이 이래도 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며 짜증섞인 모습으로 몸에서 뚝뚝 흐르는 빗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그는 “공익의 목적으로 개설된 임도를 (골프장측이) 영업상 이유로 함부로 폐쇄하는데도 행정이 이를 묵과하는 것 같다. 누굴 위해 존재하는 행정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끌끌 찼다.
지난해 10월 가사용승인만 받고 영업에 들어간 거제뷰CC골프장(이하 거제뷰골프장)이 영업방해와 사고위험을 이유로 거제면 서정리~옥산리간 1.8㎞ 임도를 막아버리면서 터져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목소리에도 거제시나 거제뷰 골프장이나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제뷰골프장측의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시민들에게 피해 주는 것도 없고, 할 만큼 했는데, 골프장이라는 이유로 이러는 건지 도대체 이해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대로라면 골프장이 마치 무슨 일만 있으면 책임이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는 ‘동네북’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골프장이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이다.
거제시에 따르면 당초 거제시는 골프장 허가신청 당시 골프장 조성으로 인해 단절되는 1.8㎞구간에 대해서는 대체임도를 조성하는 조건으로 허가 했다.
따라서 골프장측이 이 조건대로 대체 임도를 조성했더라면 시민들로부터 이런 불만을 들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공사 진행 과정에서 대체임도를 조성할 공간이 없어 대안으로 내 놓은 것이 골프장에서 이용하는 카트 통행로를 임도로 함께 쓰는 조건으로 변경하면서 이런 사단이 생긴 것이다. 임기응변식 상황 모면의 냄새가 너무 짙게 풍긴다.
애시 당초 대체할 임도를 조성할 여력이 없는데도 공사에 급급한 나머지 행정에 거짓말을 한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거제시 행정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골프장 조성 설계도를 좀 더 꼼꼼히 챙겼더라면 공사 당시에 대체임도 조성 여부를 쉽게 파악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다른 해법을 내 놓고 골프장측을 압박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어물쩍 넘어간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행정이 시민의 편의보다는 업자 편에서 일을 처리 했다는 ‘봐주기’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골프장측이 개설된 임도가 자신의 소유라는 이유로 시민들이 이용할 때에는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그럼 공사 과정에서 대체임도를 조성하겠다는 약속한 것은 무엇인가. 골프장 공사 이전에 개설된 임도는 산불 방지 및 진화와 시민의 등산로 목적으로 수억 원의 혈세가 들어갔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공사 과정에서는 거제시가 요구하는 사항을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목적이 달성되고 난 뒤에는 임도의 소유권을 내세워 ‘사용시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운운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이렇게 보면 거제시도 골프장측의 얄팍한 꼼수에 넘은 간 꼴이 된다. 결국 ‘뒤통수’를 맞은 꼴과 다름이 없다. 어름한 행정의 한 단면이다.
더욱이 임도를 가로막는 볼라드(차량진입용 말뚝)앞에 세워진 “영업방해 및 사고위험이 있어 통제 한다”는 문구가 쓰여진 표지판에 거제시장 이름을 올려놓은 것은 무엇으로 해명할 것인가. 거제시가 임도통제에 들러리 선 꼴이 된 것이다.
권민호시장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서민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자신의 포부를 밝힌바 있다.
‘서민시장’의 첫 걸음은 시민이 겪는 불합리한 작은 일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권시장의 이 작은 바램이 작은 곳에서부터 구멍이 뚫리고 있다.
임도를 통제하는 길목에 세워진 표지판이 ‘거제시장’ 명의로 돼있는 것을 보는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리고 권시장은 자신의 권위가 이토록 남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까. 덤으로 보탠다. ‘작은 행정’이 때로는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