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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과 악어
타잔과 악어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5.09.0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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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은 거제면 죽림이다. 초등학교 4학년, 12살이 되던 해 전기가 들어왔다. 참고로 보통 여덟 살 때 입학을 하지만 어머니께서 밭매러(김을 매러)가신다고 필자의 입학식을 깜박하는 바람에 1년을 더디게 입학하였다. 여하튼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니 집집마다 기쁨에 들떠 대낮처럼 불을 환하게 밝혀 놓기도 한 적이 있었다. 역시 문명이 좋긴 좋았다.

당시 죽림은 굴양식 어업과 연근해 어업으로 다른 동네에 비해 비교적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속된 말로 지나가는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 할 정도였다. 그래서 전기의 힘으로 너도나도 가전제품을 사들였다. 그 중에서도 텔레비전이 구매 일 순위였다.

당시 읍내는 일찍 전기가 들어와 돈푼깨나 있는 집은 텔레비전은 기본이었다. 바보상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프로레슬링, 프로복싱, 만화영화, 연속극, 외화가 필자와 고만고만한 또래들에게는 인기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프로레슬링은 박치기 왕 김일, 당수의 달인 천규덕, 수평 박치기의 여건부, 풍차돌리기 전문 장영실 등 그 시절 우리들에게 비친 그들은 영웅이었다. 그리고 프로복싱의 홍수환과 염동균은 복싱 신드롬을 일으키게 하여 동네 어른들은 글로버 두 개를 장만하여 꼬맹이들을 줄을 세워 시합을 붙였다. 그때 필자는 항상 대진 운이 없어 나보다 머리 한 개쯤은 더 큰 상대와 붙어 맞기도 참 많이 맞았다. 또 우주소년 아톰과 마징가 제트는 어린 우리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였다.

연속극으로는 연화, 소명, 추풍령, 어머니 등이 있었고 주말 드라마로는 수사반장, 113수사본부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바보상자 앞으로 끌어들였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외화였다.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방영되는 타잔은 우리들에겐 ‘감동’ 그 자체였다.

어릴 적 밀림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 난 타잔은 원숭이가 주는 젖을 먹고 자라 성인이 되어 광활한 밀림에서 어여쁜 제인과 영리한 치타와 함께 생활하며 밀렵꾼들을 골탕 먹이고 때로는 사나운 맹수와 진검승부를 하기도 하고 빼어난 수영실력을 겸비, 물속의 제왕인 악어와 맞붙어 악어를 영원히 물속에 가라앉히기도 했다. 또 상대수가 많으면 높은 나무에 올라가 “아아아~아아아” 하고 목소리를 높이면 코끼리가 벌떼처럼 달려와 지원사격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은 시골 어느 마을이라도 대개 한 명 정도의 골통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또래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면서 네 댓살 어린 동생들에게 와서 왕 노릇을 하였다.

놀이에 사사건건 끼어들며 자신이 싫증이 나면 다른 종목으로 변경한다. 총싸움, 칼싸움을 해도 그는 죽지 않는 불사신이었다.

우리들은 총에 맞거나 칼에 베이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군이 와서 손에 터치를 하면 살아나서 다시 놀이에 임할 수 있는데 그는 총에 맞아도 칼에 베여도 왼팔에 상처를 입었으니 싸울 수 있다고 우긴다. 물론 그가 법이므로 감히 대항 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항상 그쪽 편에 서면 승률 100%였다.

방학 때 우리들은 아침밥을 먹고 갯가에 나가면 어둠이 짙어 올 때까지 그 곳에서 놀고먹었다. 물론 우리가 노는 곳엔 항상 그가 지켜보았다. 밥 때가 되면 오전 내내 채취한 각종 해물들과 밥을 진상한 다음 남은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 물길이 썰물에서 밀물로 바뀔 쯤 꼬맹이들의 눈에는 공포가 어리어있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주변을 돌아본다. 그때 그가 언덕에서 힘차게 뛰어 내려온다. 타잔놀이의 시작이었다.

우리들은 조용히 돌아서서 가위 바이 보를 한다. 눈빛은 하나같이 이겨야 된다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이겨야 치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진 나머지 무리들은 악어였다. 치타는 박수만 치면 되지만 악어는 물속에서 타잔과 붙어야 했다. 승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일부 악어는 타잔의 발에 밟혀 있고 일부는 타잔의 단도에 찔려 물위에 뒤로 동동 뜨다녀야 했고 또 나머지는 물속으로 도망쳐야 했다. 그게 타잔이 정한 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악어들이 모여 의기투합한다. 타잔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민함을 발휘한다.

타잔이 공격을 시작했다. 먼저 가까이 있는 악어를 잡아 머리를 누른다. 예전엔 무조건 위로 솟구치다가 물을 먹었지만 오랜 전투에서 영민해진 악어들은 수면위로 오르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가 뿔뿔이 흩어졌다. 악어들의 작전에 당황한 타잔은 내내 꽁무니만 따라가다 지쳐 먼저 뭍으로 올라간다. 악어들은 환호성을 질렸다. 마침내 포악한 타잔을 이긴 것이었다.

이후 몇 차례 반복하다 지친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타잔놀이를 삭제하였다. 타잔 덕분에 몇 년 후 악어들 무리 중 일부는 학교의 명예를 위해 수영선수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고인이 된 타잔과 그에 맞선 악어들이 때로는 그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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