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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장평오거리, 신호등은 있으나 신호는 없다
[르포]장평오거리, 신호등은 있으나 신호는 없다
  • 원용태 기자
  • 승인 2014.05.14 09: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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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무시·정지선 이탈은 일상“삼성이 원래 그렇지예”

장평오거리 삼성중공업 앞 출·퇴근길은 교통지옥을 연상케 한다. 넘쳐나는 차량들 사이로 등·하굣길 학생들이 이리저리 드나들고, 정지선을 이탈하고 신호를 무시한 대형차량들은 보행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12일 오후 4시, 삼성직원들의 퇴근 1시간여를 남겨두고 삼성중공업 정문으로 들어가는 횡단보도에 섰다. 버젓이 대기시간이 10여초가 더 남은 파란불이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자마자 삼성중공업으로 총알같이 튀어 나가는 차량들.

신호주기를 측정한 결과, 파란불은 35초, 빨간불은 115초였다. 한 시간에 보행자 파란불이 24번 바뀌었으며 평균 3대 이상의 차량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삼성중공업으로 들어갔다. 즉 한 시간에 72대, 하루에 1728대가 신호위반 하는 셈이 나온다. 5개의 횡단보도 중 단 한군데의 수치이다. 이 차량들은 모두 삼성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일반 차량들이 아니다. 각종 조선기자재와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트레일러, 대형트럭, 퇴근 시간에 맞춰 미리 들어가는 통근버스, 삼성중공업 직원들의 오토바이와 자전거들. 주황색 작업복을 입고 승용차를 이용해 삼성으로 들어가는 외국인 감독관들까지. 외국인들까지도 신호 위반이 일상인 것이었다. 게다가 삼성중공업 유니폼을 착용한 직원이 간간이 무단횡단 하는 것도 심심찮게 목격됐다.

장평오거리 중심에는 장평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인근에는 삼성중공업 사원아파트 단지와 장평주공1·2단지 아파트 및 대한 1·2차아파트, 성원아파트 등이 장평오거리를 에워싸고 있다.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대다수의 사람은 장평초등학교 학생들과 유모차를 이끌거나 돌도 안돼 보이는 애기를 안고 어린이집을 막 마치고 엄마 손을 붙잡고 집으로 향하는 4~6세가량의 어린이들과 학부모였다.

오후 4시에서 5시까지, 한 시간 가량 지켜본 결과,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길지 않은 횡단보도에 파란불 35초의 넉넉한 시간까지 주어졌지만 반 이상이 급하게 건너는 장면이 보였다. 유모차를 밀거나 어린 자녀의 손을 이끈 어머니가 10여초 이상의 파란불 대기시간이 남았음에도 황급히 지나는 모습이었다.

다시 찬찬히 둘러보니 정지선을 이탈한 대형화물차가 횡단보도 코앞까지 튀어 나와 있어 '빨리 건너가라'는 무언의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그 뒤가 더 가관이었다. 한 어머니가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대형트레일러가 자연스레 신호위반을 하며 삼성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황당하고 아찔한 장면이었다.

오후 5시 정각이다. 퇴근전쟁이 시작됐다. 삼성중공업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들이 경주를 하듯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주행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일제히 전력질주 하기 시작했다.

순간 역한 6~70여대의 오토바이 매연가스냄새가 확 풍겨져 나왔다. 한 대만 지나가도 코를 막기 일쑨데 수 십대의 오토바이가 동시다발적으로 뱉어내는 유독성 냄새는 군대서 받은 화생방 훈련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눈과 코가 따갑고 머리는 어지럽고 약간의 메스꺼움까지 동반했다.

1·2차로를 넘나들며 곡예 운전하는 훌륭한 오토바이 운전솜씨는 인정한다. 하지만 자전거, 일반 차량들과 뒤엉켜 무법자처럼 질주하는 모습은 목숨이 여러 개라도 붙어 있나 싶을 정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움찔하게 만들었다. 사고가 안 나는게 신기할 정도다.

물론 퇴근시간에도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이용하는 오토바이라든지 차량으로 인한 신호위반이라든지 정지선 이탈은 안 볼래야 안볼 수가 없었다. 무법천지, 장평오거리 이들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이탈하거나 아예 넘어섰다
곡예운전 오토바이 도로위의 무법자처럼 질주
횡단보도는 조선기자재 실은 대형화물차가 점령
“무서워요. 차들도 크고 ‘빵빵’소리도 커 겁이나요”
13일 오전 7시14분. 어제와 같은 장평오거리를 또 찾았다. 이번엔 아침부터 출근전쟁이다. 4~50여대의 오토바이들이 횡단보도 선을 밟거나 아예 횡단보도를 넘어섰다. 파란색 주행 신호로 바뀌자마자 일제히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 오토바이, 승용차, 통근버스, 대형 화물차량 할 것 없이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삼성속으로 진입했다. 전쟁 피난민처럼 무언가에 쫒기 듯 서로 앞 다투어 신호고 정지선이고 할 것 없이 큰 목소리와 욕설이 난무하고 고막이 찢어질듯 한 경적을 울려대며 활개를 치고 다녔다.

오전 7시30분이 지나자 ‘거제시 노인 일자리 사업단’에서 나온 교통 봉사자들이 노란색 자킷을 입고 노란 교통안전 깃발을 들며 오거리 횡단보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70세가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 차량 과 횡단보도 보행자들을 신호에 맞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장평초등학교에서 20대 초반의 신임 여교사가 교통안전 깃발을 들고 자리 잡았고 그 뒤를 이어 학부모 어머니 한분도 담당 횡단보도에 섰다.

▲초등학교 등교시간과 맞물려 대형화물차량들이 운행되고 있다
삼성관계자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은 대형 차량들이 삼성 사내로 진입을 못하게 돼있다. 즉, 출근시간인 8시까지는 출·퇴근 차량을 제외한 화물차량들은 장평오거리에서 주행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오전 7시25분부터 조선기자재를 주황색 천 덮개와 비닐로 가려 실은 대형트럭 한 대를 시작으로 대형 화물차들이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성 정문입구에서 막히는지 장평오거리 한가운데까지 대형화물차량으로 밀려 있었다. 삼성 사원아파트에서 장평초등학교로 건너가는 횡단보도는 조선기자재를 가득 실은 화물차량에 ‘점령’ 된지 오래다.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8시10분까지 약 150여대 이상의 대형화물차량들이 장평오거리를 통해 삼성으로 들어갔다.

오전 7시50분이 되자 장평초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기 시작했다. 잠이 들깨 부스스한 어린 학생이 있고, 양치질 마무리를 제대로 안 한 듯 뺨 한쪽에 치약이 마른 흔적이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00아 안녕? 잘잤어?”라는 아침인사를 전하는 순수한 어린이들도 말끔한 모습으로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교통위험을 우려했는지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의 손을 잡고 등교시키고 있었다. 3학년 자녀를 두고 있는 박모(39·인근아파트 거주)씨는 “많이 위험하지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불안해서 꼭 학교까지 데려다 줘야돼예”라고 찡그리며 말했다. 장평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김모(11)양도 “무서워요. 차들이 크고 소리도 빵빵 내서 겁이 많이 나요”라며 말했다.

학생들이 본격적인 등교를 시작했는데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어중간한 신호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횡단보도를 점령한 대형 차량들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 건너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아침등교시간. 파란불에도 대형트레일러가 정체돼 있어 사실상 건너기 불가능하다
교통 봉사자들이 노란 깃발을 들고 신호에 맞게 통제를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아니 무시당하고 있는 표현이 적절했다. 보행자 파란불에 노란깃발로 차량을 막고 있지만 차량들은 교통 통제 및 신호를 무시하고 출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기만 하면 여지없이 신호를 무시하고 삼성으로 들어갔다. 오히려 일부 차량들은 보행자 신호가 파란불임에도 불구하고 앞차가 안지나간다며 시끄러운 경적을 수차례 눌러댔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운전기사의 입에서는 욕이 나오고 있었다.

거제시 노인 일자리 사업단에서 나온 한 할머니 교통봉사자분은 “여기는 예전부터 교통질서 안지켰으예. 제가 학생들을 위해 앞에까지 나가서 교통깃발로 막아도 다 지나갑니더”라며 “항상 위험해예, 이젠 신호무시는 일상입니더. 삼성이 원래 그렇지예”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8시 30분이 지나자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교통봉사자분도 철수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무법교통전쟁이 치러지는 이 상황을 학교측에서는 알고 있는지, 대책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장평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입구 경비실에 도착하니 8시 50분.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경비원에게 부탁해 교무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침 교무회의중이라 잠시 경비실에 기다렸다.

경비원은 거제에서 경찰업무 30년의 정년을 마치고 이 학교에 근무 중이었다. 장평오거리에서 일어나는 위험천만한 교통상황을 아느냐는 질문에 “알긴 알지만 학교에서 알아서 하겠지예”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경찰 한 명이라도 등·하굣길에만 통제를 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개인적인 질문에 “제가 30여년을 경찰 근무를 해서 잘 알지만 거제 경찰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 여기까지 인원을 배치할 수 없습니더”라고 말했다.

9시 10분이 되자 안중안교사(교무주임)가 경비실로 내려왔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이 상황을 아느냐, 대책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안교사는 “장평오거리가 학생들 등굣길에 위험한 것을 알지만 학부모들이 학교로 이 건에 대해 전화 온 적이 없었습니다”라며 “삼성중공업 총무팀 파트장이 장평초등학교 운영위원장입니다. 출·퇴근 차량 신호 준수, 대형화물차 횡단보도 침범 등 학생 안전을 위한 교통문제에 대한 협조를 부탁해보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삼성관계자는 “직원들 출·퇴근 시 신호 및 정지선 준수를 확실히 교육하겠다”며 “특히 화물차량들은 화물연대 소속이어서 교육이 쉽진 않겠지만 장평오거리 교통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교통신호 무시가 일상인 장평오거리에서 교통봉사자들과 함께 1시간여 동안 초등학생들의 등교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숨 막히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현장 목격 후 오전 10시도 안됐지만 어젯밤 철야 근무를 한 듯 몸은 천근만근 축 쳐져 기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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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동 2014-05-15 09:22:47
저도 장평에 살지만 정말 이 구간 문제가 많습니다.
해결책이 있어야 될겁니다.

장평토박이 2014-05-14 10:43:17
항상 가슴졸이며 애들 등교시켰는데... 지금이라도 안전하게 학생들이 등교할수 있게끔 바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