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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청렴사회와 ‘김영란 법’
[기고]청렴사회와 ‘김영란 법’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6.10.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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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영민/ 칼럼니스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 법)이 지난달 28일 시행됐다. 김영란 법은 ‘그랜저 검사’(2010년), ‘벤츠 여검사’(2011년), 김광준 부장검사 뇌물수수(2012년) 등 검사 비리사건이 불거지면서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12년 8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제정안을 발표했다. 그 후 이해관계와 충돌하며 우여곡절을 겪는 등 논의와 내용수정을 거쳐 국회를 통과한지 1년 반이 지나 마침내 실시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는 인정이라는 것이 대단한 덕목이었다. 지금 세상에다 비하면 논밭뙈기에다 씨를 뿌리고 거기서 거두는 것이 생산의 전부였다. 물론 그동안 인구도 많이 늘어났지만 인구증가를 훨씬 웃도는 생산증가로 지금은 상당히 풍요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 시절에는 인당 국민총생산량이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근근이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는 것은 바로 그 인정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진 자의 횡포야 어느 시절인들 없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의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모자라면 모자라는 데로 나누어먹는 미덕이 있었다.

모처럼 집에 온 사람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정 줄 것이 없으면 보리 한 됫박이라도 싸서 보냈다. 여기서 싸서 보낸 보리 한 됫박이 바로 ‘촌지(寸志)’다. 촌지란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고마운 그런 것이다.

학부모가 아이의 선생님을 찾아갈 때 양말 두어 켤레, 고기 한두 근 사가지고 가는 것이 촌지다. 미리 그런 것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봉투에 소주 한잔 값이나 넣고 나오는 것이 촌지다. 교사는 사양해도 좋겠지만 성의로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두어도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런 우리 전통사회의 미덕은 현대사회에 와서도 얼마든지 살려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지 촌지라는 것이 내 자식을 잘 봐달라는 이유로, 나에게 무슨 특혜를 달라는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또한 거액의 부조금이나 용돈, 향응을 대접받았더라도 직접적인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은 사례가 비일비재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해관계자 모두의 감사한마음을 함께 모아서 당당하게 전달하려는 촌지가 어느새 내 개인만의 이득을 위해 남몰래 전달하는 뇌물의 변명거리로 전락하여 이젠 본래의 뜻을 되살려 내기가 어렵게 되어 버린 것 같다.

공직자들의 부패와 부정청탁 문화를 근절하고자 도입한 김영란 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에 관계없이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 처벌하는 내용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고 인기 있는 직업은 아마도 교사와 공무원일 것이다. 이는 직업의 안정성 뿐 만 아니라 연금을 포함한 경제적인 처우에 있어서도 일부 전문직이나 글로벌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결코 낮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식사 등 음식물에 대해서는 3만원, 금전 및 음식물을 제외한 선물에 대해서는 5만원으로 정해진 한도는 국민모두에게 적용하기에는 다소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행되기도 전에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을 받은 ‘김영란법’이니 우선은 시행하고 이로 인한 폐해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 차차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 사이에는 김영란법 시행에 대해 사회적약자를 삶의 터전에서 내모는 등 부작용이 속출, 후속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약간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부작용만 강조해 김영란법을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이러한 경제적 여파는 김영란법 취지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이는 달리 말하면 부정한 금품수수를 조정해서라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든 부분이라는 얘기다.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여 대한민국의 국력을 전 세계에 드높은 시기였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급행료와 뇌물이 횡행해졌고 지금까지의 모든 민주화정권에서 권력 핵심층의 부정과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제 21세기 전반의 대한민국의 부패가 사라진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초석이 뿌리내려졌다는 역사적인 성취가 이룩된 시기로 후세대에 기억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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