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10:53 (월)
홍성민(洪聖民) 거제도 한시(漢詩)
홍성민(洪聖民) 거제도 한시(漢詩)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6.24 0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민(洪聖民, 1536년~1594년)은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시가(時可), 호는 졸옹(拙翁). 윤덕(潤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계정(係貞)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춘경(春卿)이며, 어머니는 고성군(固城君) 군수 이맹우(李孟友)의 딸이다.

선생은 경상도관찰사로서, 1581년(선조14년) 봄 음력 2월에 웅천 안골포에서 배를 타고 가덕도 영등포(구영등) 수영지를 거쳐 율포(구율포) 옥포 지세포 조라포(구조라) 오아포 진영, 거제의 각종 누정과 각종 관아 건물(고현성), 명진리을 모두 순행하고 느낀 점을 시로 남겼다.

돌아오는 길에는 당포를 거쳐 고성으로 돌아갔다. 이후 재차 임명된 경상도관찰사 1590년, 거제도 순행 때(時)에도 여러 편의 한시를 남겼다. 함경도 부령에서 귀양살이 도중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특사로 풀려나 대제학·호조판서를 역임하다가 전란 중 병사했다.

저서로 〈졸옹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홍성민은 시를 지을 때 표현에 치중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문장은 경서를 근거로 삼고 옛 사적을 해박하게 인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거제도와 깊은 인연을 가진 분임에 틀림없다.

선생의 거제 관련시는 '옥포 수관루 운[玉浦受款樓韻]', '제거제황취루(고현성)[題巨濟黃翠樓, ]', '차 거제 황취루[次巨濟黃翠樓]', '율포운[栗浦韻]', '차우수영 오아포(가배량)[次右水營]', '차우수영 오아포(가배량)[次右水營]', '차우병영동헌운 오아포(가배량)동헌[次右兵營東軒韻]', '차우병영운 오아포(가배량)[次右兵營韻]', '영등포 구영등[永登浦]', '영등포[永登浦](舊永登장목면)', '지세포잡시[知世浦雜詩]', '구조라에서[助羅浦韻]', '거제 명진현[巨濟溟珍縣]', '거제동헌운 고현성 관아[巨濟東軒韻]' 등이 있다. 우리 거제도를 사랑하고 기억해주신 홍성민 선생께 삼가 존경의 념(念)을 바친다.

홍성민(洪聖民)의 사상을 살펴보자. 그는 학(學)과 시(詩)는 일치한다는 입장에서, 학은 의리(義理)를 궁구하여 몸소 체인(體認)하고 마음으로 이해하여 자득(自得)하는 것이라 하고, 시는 사물에 접촉해서 성음(聲音)에 감발(感發)하는 것이라 하여, 성정(性情)이 발하는 것은 시이고 정의(精義)가 융회(融會)함은 학이라 하였다.

또한 사람의 생(生)은 직(直)하다는 입장에서 직은 정리(正理)이지만 기품의 구애와 물욕의 은폐로 손실되므로 정리(正理)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예악론(禮樂論)에서 서(序)와 화(和)를 중히 여겨 조두(俎豆:祭器)와 종고(鐘鼓:악기)의 갖춤만이 예악이 아니라 하고, 악(樂)은 화(和)가 중(中)에 있고 깨끗이 정(正)에서 하나로 나오게 됨으로써 일마다 서를 얻고 사물마다 화를 얻게 된다고 하였다.

또 서와 화를 얻게 되면 삼대(三代:夏殷周)의 예악이라 할 수 있다고 하고, 하나라는 충(忠), 은나라는 경(敬), 주나라는 문(文), 제갈량(諸葛亮)은 윤기(倫紀)라 하면서 각 시대의 예악을 규정하였다. 

홍성민(洪聖民)의 《졸옹집(拙翁集)》에 쓴 머리말에는, “홍성민이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되었다. 종손(宗孫) 홍명구(洪命耈)가 홍성민의 문집을 간행하고 장유에게 머리말을 부탁했다.”고 쓰여있다.

홍성민은 시를 지을 때 표현에 치중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문장은 경서를 근거로 삼고 옛 사적을 해박하게 인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① 옥포 수관루[玉浦受款樓]

滄溟萬里一孤島 만 리 먼 넓은 바다, 한 외딴섬에

殘堞蕭條臨古道 고요하니 퇴잔 된 무너진 성벽이 옛 길가에 접해 있다.

風角數聲客倚樓 바람보고 길흉을 점치는 두 세 소리에 나그네는 누각에 기대어

茫茫煙渚迷春草 아득히 망망한 안개 낀 물가에서 봄풀에 미혹된다.

◯ 홍성민 선생이 옛 옥포부두에서 내려 옥포성벽을 따라 객관으로 향하는데 110 여년 된 성벽이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다. 이윽고 도착한 옥포성에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수관루(受款樓)’라는 누각에 잠시 기대어, 저 멀리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보며 서울가족을 떠올린다. 옥포에 있었던 수관루(受款樓)는 임진난 때 불타 없어졌다. 선생은 옥포에서 위 시와 아래 <옥포수관루 운[玉浦受款樓韻]> 2편을 지어 전한다. ‘受款‘이란 “정성을 다해 이루어내자”라는 의미이다.

② 옥포 수관루 운[玉浦受款樓韻]

孤影飄來海上島 외로운 그림자, 해상의 섬으로 나부껴 올 때는

殘魂每向長安道 잔약해진 내 마음 매번 장안 길로 향한다.

分明丹渥看如花 분명히 붉은 벽이 꽃같이 보이는데

踊躍微情還似草 자그마한 정에 이끌러 기뻐하니 도리어 풀을 닮았구나.

仙山何處蓬萊島 신선의 산, 봉래 섬은 어디에 있는가?

雲際微茫明鳥道 높은 구름 아스라이 험한 길을 밝히는데

安得乘風此中去 어찌하면 쉬이 바람 타고 이곳을 떠나갈까?

手携玉杖拾瑤草 옥 지팡이 손에 들고 아름다운 꽃 풀을 줍는다.

③ 제거제황취루[題 巨濟黃翠樓] 고현성 북문 1581년作.

無窮滄海碧玻瓈 무궁한 넓은 바다 푸른 수정 펼쳐있고

拍盡天端限地倪 손뼉 치듯, 하늘 끝이 다하여 땅의 경계 지운다.

高下兩間爲物大 위아래 둘 사이, 만물이 훌륭하다 생각되어도

孤城自是一丸泥 외딴 성은 본래부터 여기 한 덩이 진흙이었네

 

④ 차 거제 황취루[次巨濟黃翠樓] 

天南尾卽海東頭 하늘 남쪽 꼬리 즉, 바다 동쪽 머리에서

甘苦平生說此遊 즐거움과 괴로움에 평생 이 놀음으로 달랜다.

作惡瘴雲渾似墨 습한 구름에 지은 악업은 흡사 먹물을 흐린 것과 같은데

亂陰春日半如秋 해 그림자 어지러워 봄날이 가을처럼 쓸쓸하네.

三更風雨聲傳幌 삼경에 비바람 휘장을 휘날려 노래 하니

萬里滄溟影入樓 만 리 푸른 바다에서 누각으로 그림자 들어오네.

物色猶堪寬逆旅 자연의 경치는 너그러움을 견딘 나그네를 맞이하여

橘橙林下且遲留 귤나무 수풀아래 오랫동안 머뭇거린다.

◯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집을 '누정(樓亭)'이라 부르는데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거제도는 대부분 바닷가 8진영과 읍치, 교통요지에 누정이 위치했다. 특히 관아시설 중 객사에도 누각을 만들어 접대·향연 및 풍속에 따른 의식을 가졌다.

황취루(黃翠樓)는 1453년에 끝난 당시 거제치소 고현성 축조에 황취루 누각이 객관과 마주하며 북쪽에 위치했고, 고현성 서문 북쪽 편에 거제향교가 있었다.

1548년 거제도로 이배된 정황(丁熿) 선생은 거제향교(서문골)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계룡사(초가)에서 제를 올리고 서울서 면회 오는 지인들을 만나면서 많은 기록을 남기셨다.

1560년 거제에서 사망 때까지 선생이 불모지 거제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조선전기 거제민초에게 유교와 학문을 전파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황취루 누각에서 귀양살이 서러움과 기약 없는 세월에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여러 편의 시(詩)에다 담아내고 있다.

'황취(黃翠)'란 황금빛과 푸른(비취)색을 형상화한 말인데 푸른 비취색 바다에 황금빛 구름과 더불어, 반쯤 익은 유자와 귤을 동시에 일컫는 말이다.

"橘林翠黃疎 귤 숲에는 푸르고 누런빛이 성글다."는 옛 글이 전하는 바, 거제의 늦가을 풍경을 함축한 말로써, '황취루'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편액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황취루(黃翠樓)는 고현성 객관(客館) 북쪽(북문)에 있다" 거제부읍지 1756년에는 "황취루는 예전 읍치 고현성의 객관에 마주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임진난 소실)"고 전한다.

⑤ 율포[栗浦] 거제시 장목면 율천리. 七言絶句 1581년 선조14년. 

殘堞蕭條尙粉痕 고요하고 조용한 퇴잔한 치첩엔 아직 분 자국이 남아있는데

遙臨海口傍山根 멀리 해구(海口)가 내려 보이는 곳, 산줄기 부리 가까이 있구나.  

瘴雲作雨隨風下 어둡고 습한 구름에 비 오고 바람 잔잔할 때

打盡行旌濕不飜 새털 깃발이 줄지어, 모조리 물에 젖어 나부끼지 못하네.

◯ 율포성(구율포)은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 바다 입구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며, 하얗게 칠을 한 성첩(성가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에는 깃발이 줄지어 서 있다.

하지만 비에 온통 깃발이 젖어 나부끼지는 못한다. 이런 성(城)의 모습을 통해, 비바람으로 배가 출발하지 못하는 작가의 심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시(詩)다.

⑥ 율포운[栗浦韻]. 거제시 장목면 율천리 七言絶句 1581년 선조14년. 

孤城尙帶太平痕 외딴성은 오히려 태평한 자취를 풍기며

無數魚舟繫石根 수없는 고깃배만 돌 뿌리에 매어 있네

閱盡城池環海去 성 밖 수로는 세월을 겪어 사방이 바다인 여기 사라져가고

夕陽殘角入雲飜 석양 속에 쇠잔한 나팔소리에 구름 나부끼네.

◯ 구 율포(舊 栗浦), 율천성 : 장목면 구율포(율천성)은 아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1450년 거제 해안방위의 필요성에 의해 처음으로 목책(木柵)을 설치하고 군관 2(각 1명씩 순회근무)인 선군50명 (30/20, 순회 근무)으로 수자리를 살았던게 최초의 진영이었다.

그 후 성종(成宗) 원년(原年:1470) 거제칠진(巨濟七鎭)중, 율포보(栗浦堡) 설치와 함께 율포성(栗浦城)을 쌓았는데 둘레 340m 높이 3.2m 석축(石築)을 쌓았으며 권관 무종구품(權管 武從九品)이 관리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쇠퇴하여 현종(顯宗) 5年(1664) 갑진(甲辰)에 동부면(東部面) 가배량(加背梁)의 옛 수영(水營)으로 철수하였고 숙종(肅宗) 14年(1688) 무진(戊辰)에 다시 율포리(栗浦里)로 옮겼으니 고종(高宗) 26年(1889) 율천리(栗川里)로 개칭하고 구율포(舊栗浦)라 부르게 되었다. 

◯ 아래 시(詩) ⑦~⑩편은 경상우수영이 거제현 오아포(吾兒浦, 가배량)에 있을 때 홍성민 선생이 왕명에 따라 1581년 순행 때(時) 지은 한시(漢詩)이다.

 경상도우수영은 본시 ‘우수군절도영(右水軍節度營)’이라 하여 웅천(熊川)의 제포(薺浦)에 있었는데 뒤에 창원(昌原)의 합포(合浦)와 거제(巨濟)의 산련포(山連浦)로 옮겼고, 다시 탑포(塔浦)와 오아포(吾兒浦)로 옮겨 ‘경상우수영’이라 개명하여 거제현 오아포(吾兒浦,가배량)에 영을 개설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원균 통제사 재직 약 7개월간, 우수영이 통제영과 잠시 병합되어 있었다. 임란 후, 선조 갑진년 1604년 체찰사(體察使) 이덕형의 장계로 인하여 고성현 두룡포(頭龍浦,지금의 통영)로 옮기고 이때부터 정식으로 통제사가 겸하였다.

오아포에는 우수영이 떠난 자리에 가배량진영을 설치하고 만호가 관장했다. 경상도우수영은 33개 읍진을 관할했는데, 소속 읍진에는 전선 24척, 거북선 12척, 병선 36척, 사후선(伺候船) 70척, 장졸 8,638명, 영·진(營鎭)의 방수군(防水軍) 2만 2,932명, 첨격사부(添格射夫) 2,532명, 선후운사부(先後運射夫) 5,804명, 차비군(差備軍) 100명 등이 있었다. 1907년(융희 1) 군대해산령에 의해 폐지되었다.

⑦ 차우수영[次右水營] 오아포(가배량) 칠언절구 1581년 作.

只今東海淸如鏡 지금 동해는 거울같이 맑고

耀盡將軍劍戟明 모든 장군의 창칼이 선명하게 빛난다.

號令風霆指顧裏 호령하는 바람과 천둥소리 지시하는 가운데,

樓頭畫角兩三聲 누각 위 피리소리 두세 소리 울린다.

- 右贈水使 우수영 수군절도사에게 바친다.(임진왜란 전까지는 경상우수영 오아포에 존속)

萬頃滄波一葉舟 한없이 넓은 바다 물결, 한 잎사귀 같은 조각배

靑眸相對意悠悠 기쁜 눈으로 마주하니 생각이 많아지네.

無端短棹分南北 무단히 젖는 짧은 노가 남북을 갈라놓고

岸草汀花也自愁 언덕의 풀과 물가의 꽃, 절로 시름겹도다.

 

⑧ 차우수영[次右水營] 오아포(가배량) 칠언율시.

粉堞光飜細柳煙 성첩에 나부끼는 빛에 세버들 연기 같고

俯臨靑海傍山巓 산꼭대기 옆에서 고개 숙여 푸른 바다를 내려 본다.

雲樓要豁褰珠箔 탁 트인 구름 누각에서 주렴(구슬로 만든 발)을 걷어 올리니

氷簟須溫設錦筵 차가운 대자리 따뜻하게 되어 아름다운 자리 되었다네.

劍戟當階宜白日 칼과 창이 섬돌에 줄지은, 아리따운 대낮에

風花入座媚晴天 꽃이 바람 따라 자리에 들어와 맑은 하늘 향해 아양 떤다.

將軍帳裏無餘事 장군은 휘장 속에서 남은 일이 없어

把酒留人未覺偏 술잔을 쥐고 사람을 머물게 하니 실례인지 깨닫지 못하네.

⑨ 차 우병영 동헌운[次右兵營東軒韻] 오아포(가배량) 동헌 칠언율시.

春風細柳太平年 봄바람에 세버들도 태평세월이지만

多少邊籌摠得便 변방의 경계에는 어느 정도라도 줄곧 형편을 살핀다네.

河絶東漁人是寶 동쪽 고기잡이는 막힌 바다로 인해 곧 보물일진대,

國無南顧將其賢 남쪽을 돌아보니 그 넉넉함이 나라 어디에도 없도다.

森森劍戟明滄海 수많은 창과 칼이 창해를 밝히고

簌簌煙花亂管絃 무성한 불꽃놀이에 관현악기 어지럽네.

樽酒合供談笑裏 통술을 함께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當筵休怕醉狂顚 자리가 편안하니 취한 술에 미쳐 날뛴다.

임진왜란 전에는 오아포(가배랑)에 경상우수영이 개설되어 있었고 고현성 읍치 또한 안정을 찾아, 거제현민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510년 삼포왜란 이후 중앙정부는 변방인 거제도의 세금을 면제해 주었고, 거제관리들의 노력으로 많은 농토가 확보되었으며 해상은 평화로워, 어부는 넉넉한 바다의 혜택을 받으니 거제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고 있었다.

⑩ 차우병영운[次右兵營韻] 오아포(가배량) 칠언율시.

左右兵廂抵四年 좌우 병영의 행랑에서 4년째 다다르니

輕車熟路事多便 일이 숙달되어 막힘이 없어 편안하다.

寇當鎖鑰餘非可 왜적이 들어와도 자물쇠를 충분히 열 수 없고  

李較長城倍覺賢 이 성은 비교적 둘레가 길어 곱절 더 넉넉하다.

細柳人閑開翠幕 하늘거리는 버들가지, 한가한 사람들, 푸른 장막을 늘어놓고

綵花春爛映朱絃 비단 꽃, 찬란한 봄, 햇살은 붉은 줄을 비춘다.

臨機堪着將軍手 그때마다 장군의 손에 맡길 만하니

劍吐寒霜馬白顚 서릿발 같은 칼을 뽑아들고 이마에 흰털 난 말을 이끈다.

- 時兵使邊國韓纔遞左還鎭右 今抵四年 故及之 병마절도사 변국한은 아주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연이어 좌수영을 돌아 우수영 진영 [오아포(가배량)]에 왔다. 이제 4년이나 지나, 언급한 것이다.

 

⑪ 영등포[永登浦] 구영등(舊永登 장목면) 庚辰年 1581년 선조14년2월(음).

樓上登如天上登 망루 위로 오르니 하늘로 오르는 것 같아

壓來煙浪碧千層 안개물결 널리 밀려 와 수많은 층층이 푸르다.

此身倘無仙家分 이 몸이 뛰어나지 못해 선가(仙家)를 베푸니

兩度淸遊辦不能 두 차례나 유람하여도 능하지 못해 힘 쓰인다.

羽可化來仙可登 깃털이 교화되어 돌아오니 가히 신선이 오르는 듯

玻瓈披盡碧層層 수정이 쪼개어 없어지듯 층층이 푸르구나.

空中一棹眞渠力 공중에 노(棹) 하나 진실로 큰 힘이로다.

滄海飛騰我不能 넓고 푸른 바다 날아올라도 나는 할 게 없구나.

 

十回年際再回登 열 번째 돌아오는 신년 즈음에 두 번이나 오르니

樓下銀山碧幾層 망루 아래 은빛 돌이 몇 겹으로 푸르다.

滿眼風煙眞舊面 눈 앞 가득한 저 먼 흐릿한 모습 참으로 구면이라

問渠魚鳥記吾能 물고기와 새에게 묻노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기록한다네.

[주] 선가(仙家) : 신선(神仙)이 산다는 집. 선관(仙館). 선장(仙莊) or 선도(仙道)를 닦는 사람, or 선인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 등.

 

⑫ 영등포[永登浦] 구영등(舊永登 장목면) 七言絶句.

舟自熊川到永登 배가 웅천으로부터 와 영등포에 도달하여 보니

玻瓈萬頃碧層層 수정같이 한없이 넓고 층층이 푸르고 푸르네.

回頭欲指曾經地 머리를 돌이켜 인도하려니 이미 그 땅을 지나가고

雲海微茫辨未能 구름 낀 바다는 희미하고 아련하여 능히 분별 할 수 없구나.

 

⑬ 지세포 잡시[知世浦 雜詩] 3首                           

畫戟森森海上營 지세진영 해상은 화극의 그림같이 삼삼하며,

春波初暖麗暉明 초봄 바다 물결 위 밝은 빛이 아름답고 따스하구나.

沙汀鷗鷺渠休怕 갯가 모래톱의 갈매기와 해오라기는 개천가에 담담하게 쉬고 있고

邊靜無煩洗甲兵 변방의 갑옷 입은 병사도 성가시게 씻을 필요 없구나.

 

令嚴轅門鼓角催 진중의 고각소리로 엄한 군령을 재촉하고

散天飛雹作奔雷 휘날리는 우박과 세찬 천둥이 천지에 흩어지네.

書生枉踏鰲頭去 서생은 자라(거북) 머리를 밟아서 미친 듯이 내몰고

泝盡滄溟萬頃回 푸른바다를 거슬러 간 배는 넓은 바다로부터 다시 돌아온다.

 

小島蒼茫曉角催 넓고 푸른 작은 섬에 호각소리 재촉하고

枕邊驚夢海中雷 바다의 천둥소리에 베게머리 꿈을 깨는구나.

問渠今夜寒潮水 묻노니, 오늘밤에 조수 한창 들어오는 때인지라,

打罷孤城幾度廻 외딴 성을 몇 번이나 돌아야 적을 막을 수 있을까?

[주1] 화극 : 색칠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은 창의 하나, 의장용

[주2] 삼삼하다 : 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무성한 그런 모습이다. 은근히 좋다.

[주3] 잡시(雜詩) : 정형에 구애를 받지 않거나, 제목이 없는 시.

[주4]고각소리 : 군중을 호령할 때 쓰던 북과 나팔소리.

[주5] 서생 : 유학을 닦는 사람

⑭ 구조라城 청심각에서[助羅浦淸心閣]. 

滄溟三面亂山橫 넓은 바다 삼면에 수많은 산이 가로 놓여 있고

小閣高臨粉堞明 높게 위치한 작은 누각, 흰 성가퀴 밝게 빛난다.

海戍煙消春雨歇 변방 해상에 운무 사라지니 봄비 걷히고

風花無數撲行旌 무수히 날리는 가랑눈 나열한 오색 깃발 때리네.

[주1] 성가퀴 :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장.

[주2] 운무 : 구름과 안개.

[주3] 청심각(淸心閣) : 구조라성 위쪽 작은 누각 이름. 

16세기 말엽 구조라성 진영의 초봄 어느 날, 작은 진영 누각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변덕스런 날씨를 시각적으로 아주 아름답게 표현했고 당시 그 상황이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로 훌륭하고 감동적인 詩 임이 틀림없다.

 

⑮ 구조라에서[助羅浦韻] 1590년 作.

煙花搖堞碧波明 성가퀴를 흔드는 봄날, 새하얀 푸른 물결,

靑眼還從海岳橫 정다운 눈짓으로 다시 따라와 바다와 산을 가로 지른다.

十一年回春二月 십일 년 만에 돌아 온 초봄 2월인데

天敎於此駐行旌 하늘은 어쨌든 줄지어 선 오색 깃발에 머물라 하네.

◯ 맑은 봄날 햇빛에 일렁거리는 물결 빛이 성곽 위 석회로 분칠한 성가퀴에 반사되어 작가에게 기쁜 마음으로 눈짓 하는 것 같다.

1580년에 조라성에 왔다가 이번 11년만에 다시 방문한 조라(구조라)성의 멋진 봄 풍경에 발길을 옮기지 못하는 작가의 심정을 나타냈다. 그리고 구조라 城에는 누각의 현판에 적힌 "청심각"이 있을 것이고, 성곽 둘레에 오색 깃발이 걸려 있는 성위에는 하얗게 석회로 바른 성가퀴가 성을 한 바퀴를 돌아 멀리서도 그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참 멋지지 않는가?

선조 32년 1599년, 정철·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는 구조라 성주(만호)로 부임해 군사력 배양을 꾀하고 선정을 베풀어 사졸들이 유애비(遺愛碑,善政碑)를 세워 덕을 기렸다.

이때 당시 만호란 벼슬은 녹봉이나 토지가 주어지지 않아 생활기반인 둔전도 대부분 권력자에게 빼앗겨 그의 생활은 궁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구조라 유애비(遺愛碑) 내용은 '행만호박공인로유애비(行萬戶朴公仁老遺愛碑)'이며, 1600년 경자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흔적조차 없으나 당시 항리 마을에 있었다.

구조라에서 임기를 마치고 올라 온지 약 1년 후, 41세 때 향리에서 만난 한음 이덕형이 접대로 내놓은 감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조홍시가 早紅枾歌〉를 지었는데, 이 시조에서 나오는 '유자'는 회귤(懷橘) 고사(故事)는 물론, 거제시 구조라에서 맛본 고운 거제유자를 떠 올려 지은 시임에 틀림없다.

["盤中(반중) 早紅(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柚子(유자) 안이라도 품음즉도 하다마난,

품어 가 반기리 업슬서 글로 설워하나이다"]

원문을 풀이하면, "소반에 놓인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비록 유자가 아니라도 품어갈 마음이 있지마는, 품어가도 반가와 해 주실 부모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더욱 서러워한답니다."

⑯ 거제 명진현[巨濟溟珍縣] 거제시 거제면 명진리. 1581년.

거제 명진현은 신라시대 독립된 행정을 가진 고을이었다가 이후 거제현의 속현이 되었던 유서 깊은 지역이다. 선생은 배를 타고 거제도 전 지역을 순행하던 中, 거제면에 이르렀다. 바닷가 비릿한 내음이 온 마을을 뒤덮고 나그네 하룻밤은 길기만하다. 육지에서는 외딴 변경인 거제도로 귀양 가는 남편을 보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리라 체념하며, 사랑의 상사곡도 부르지 않는 먼 변방으로 읊고 있다.

雲黑滄溟風滿堂 어두운 먹구름 덮인 푸른 바다의 바람이 집안에 가득하고

孤燈明滅夜何長 외딴 등불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밤은 길기만 하네.

佳人休唱相思曲 아름다운 여인이 상사곡도 부르지 않는다하니

楚客聞來斷盡腸 귀양 가는 사람은 이런 소문에 애간장만 끊는다.

아래 시는 1590년 홍성민 선생께서 거제도 두 번째 순행 길에, 읍치 고현성 관청이 있는 동헌에 앉아서 주위 풍경을 바라보며 느낌을 적은 글이다. "거제가 신선이 사는 곳인지? 삶의 고뇌가 표연히 씻겨 진다"하시며, 고달픈 직무를 내려놓고 오랜만에 장부의 기개를 읊는다. 또한 이 한시는 소리의 장단과 고저를 최대한 이용했으며, 압운 先(邊, 天, 仙, 然) 자를 두 번이나 되풀이하여, 흥겨운 운율의 리듬감을 살리니 가요 2절을 노래하듯, 재미를 이끌어내는 시체(詩體)라 하겠다.

⑰ 거제동헌운[巨濟東軒韻] 고현성 관아 詩○五言律詩.

維舟黃橘樹 황귤 나무에 배를 매고

把酒白鷗邊 술잔을 드니 흰 갈매기가 곁에 있네

渺靄無窮地 아득한 아지랑이 이 무궁한 곳에서

層波欲缺天 층층 파도는 하늘을 이지러지게 한다.

馭風疑換骨 바람을 부리며 신선이 될까 헛갈리는데

駕鶴便登仙 학을 타고 신선이 되어 올라가면 편할까?

快濯塵煩盡 씻는 즐거움에 티끌 번뇌가 다하면

胸襟自灑然 가슴속 품은 생각이 저절로 시원하게 되네.

小島滄環裏 작은 섬은 둘레 가운데가 검푸르고

孤城地盡邊 외딴성은 변방 끝에 있구나

窓明山吐月 창이 밝아오니 산이 달을 토하고

簷豁水涵天 처마는 물에 비췬 하늘로 통하네.

壇上玉童子 단상에 귀한 아들

雲端金骨仙 구름 끝 서쪽 편에 신선(부처님)의 유골이 있겠지.

相望儻相見 서로 바라보며 상견하니 기개가 보이고

衣袂便飄然 옷소매 바람에 나부끼듯 편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