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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안 된 ‘진실의 입’ 이 왜 이렇게 많은 사회가 됐나
검증 안 된 ‘진실의 입’ 이 왜 이렇게 많은 사회가 됐나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5.06.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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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기니 교통사고를 되짚어보며...
정순국 거제시민뉴스 대표

A.헵번(Audrey Hepburn)과 G.펙(Gregory Peck) 주연의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은 1953년에 제작된 흑백영화다.

기자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헵번과 펙이 로마의 보카델라베리타 광장을 찾았다가 펙이 마리가(街) 산타마리아델라 교회 입구의 한쪽 벽면에 있는 ’진실의 입‘에 손을 넣는 장면이다.

펙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며 손이 잘린 듯 고통스러워하자 헵번이 펙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울부짖는 모습이다. 그리고 펙이 천연덕스럽게 손을 옷소매에 감추었다 손을 빼자 헵번이 기겁을 한다. 어느 나라의 공주로 분장했던 헵번의 그 깜직하고 발랄했던 모습은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이 ’진실의 입‘이 있는 보카델라베리타 광장의 보카는 ’입‘, 베리타는 ’진실‘을 뜻한다고 한다.

이 ’진실의 입‘은 거짓말을 한 사람이 손을 집어넣으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기자가 지난 14일 거제시 고현동에서 발생한 람보르기니와 SM7 차량의 추돌사고 이후 일어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이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오는 ‘진실의 입’을 떠 올린다.

그것은 일부 언론들과 SNS상 네티즌들이 사고에 대한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려는 그 어떤 노력보다는 자신들 스스로 ‘진실의 입’이 되어 당사자의 손을 그 속으로 억지로 구겨 넣고 잘라버리는 성급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진실의 입’이 되어 달라고 보챈 일이 없는데 이 사고에 대한 경찰조사 결과에 따라 ‘진실의 주둥이’로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일각에서는 전형적인 ‘마녀사냥’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네티즌과 일부 언론들은 처음에 이 사고를 보는 관점은 흔하지 않은 고가의 외제 차량과 국산 차의 추돌이었다. 더구나 국산차가 외제차와 사고를 냈다하면 집안의 기둥뿌리가 흔들 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그것도 대도시에서나 봄직한 람보르기니가 이 소도시에서 접촉사고를 냈으니 언론과 네티즌에게는 흥미로운 뉴스거리다. 사실대로 쓰고 접하면 될 사고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부터다.

일부언론사 간의 기사 경쟁으로 확인 안 되고, 잘못 알려진 사실이 도배질되고, 여기에 네티즌까지 덩달아 가세하면서 이 사고 내용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는 사실이다. 특히 언론보도를 보면 람보르기니 차주의 사고와 관련된 멘트는 눈을 씻고 찾아 볼 수 없었고, 당사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적사항 조차 오보가 이어졌다. 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에 의문을 주기에 충분했다.

실제 창원에서 한 회사에 근무하는 가해차량 SM7 차량 소유주가 조선소에 근무하는 ‘용접공’ 신분으로 알려진 사실이 그랬다. 또한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은 ‘일개 조선소 다니는 근로자가 1억 4천 여 원 만원에 달하는 수리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는 식의 ‘동정론’을 불러일으키면서, 람보르기니 차주는 은연중에 ‘공공의 적’으로 변모했다.

취재 결과, 수리비 1억4천 여 만 원에 대한 산출근거는 추측성에 불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람보르기니 소유주는 정상적으로 보험금 산정은 물론 차량 파손에 대한 견적서를 받은 사실도 없었다.

이런 중에 사고를 낸 람보르기니와 SM7 차주가 지인관계였고, 고의적인 사고였다는 말이 떠돌더니, 사고 발생 불과 며칠이 안 돼 거액의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한 ‘보험 사기극’이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람보르기니 차주 A모씨에 따르면 D보험사의 사고처리팀장을 포함, 지인 등 4명이 함께 한 자리에서 이 사고접수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보험청구 포기서’를 작성했는데, 그 자술서에 ‘고의성이 있었다’는 문구가 있어 이를 빼 달라고 항의 했으나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말에 그냥 서명을 했다고 억울해 했다.

그리고 이 서명을 한 뒤 2~3시간이 지나 자신이 ‘보험 사기꾼’이 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가령 보험사기를 계획했던 자가 미수에 그친 이후 자술서에 ‘고의성이 있었다’는 문구를 쓰고 서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언론들과 네티즌들은 흥분했다. 언론은 누군가 건넨 자료를 가지고 ‘람보르기니 보험사기극’이라는 타이틀을 달며 독자들의 눈을 현혹했고 네티즌들도 당사자들을 ‘죽일 놈’으로 몰았다.

여기서 당사자의 설명과 해명은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없었다.

하물며 중앙 유력 방송사들은 소위 전문 패널들까지 초청, 이 사고를 사건으로 둔갑시켜, 당사자들을 자기 입맛대로 예단하고 난도질했다. 외제 차의 보험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 ‘람보르기니 사고’를 입맛에 맞는 사건으로 다루었다. 시쳇말로 장사 좀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떠들었던 이들 방송사가 경찰조사에서 뒤집히는 결과가 나온다면 어떤 자세를 취할지도 흥미롭다.

취재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당초 이 사고(람보르기니 추돌)는 일부 언론들의 사실 확인 없는 ‘베껴 쓰기’와 네티즌들의 ‘카더라 통신’과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함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고의 본말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현상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 취재원을 찾아 최소한 해명의 기회를 주는 기사의 원칙조차 없었다. 그저 언론이 책상머리에서 ‘진실의 입’ 행세를 하며 기사를 양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언론은 또 하나의 눈 또는 안경에 비유된다. 독자들이 언론에 고도의 정확성과 공정성, 균형감각, 정직성, 책임성, 도덕성, 투명성 등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네티즌들도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 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고통을 지켜보며 자살충동까지 일으켰다”는 당사자의 말은 아직도 섬뜩하다.

이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고 당사자들과 보험회사 간에 진실 공방도 예상되고, 경찰조사도 남아 있다. 결론은 지켜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고의 결론에 대해 ‘내가 옳았고’ ‘네가 옳았고’를 따지기에 앞서 우리는 중요한 한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예단하고 결론 내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한번 쯤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그리고 이 사회에는 검증 안 된 ‘진실의 입’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도 이참에 느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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