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하면 풍수상 좋습니까? 나쁩니까?”
흔하게 듣는 질문이다. 풍수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만은 끝장난다고 말한다. 화장을 하여 좋은 경우는 시신을 매장할 장소가 불행히 흉지라면 후손들 중에 기형아, 장애인 또는 무서운 질병에 걸릴 근원을 없앤 점이고, 또 나쁜 경우는 길지에 부모를 모심으로 인해 후손이 발복할 기회가 상실된다는 점이다.
화장을 하게 되면 고온을 거쳐 가루가 되는 과정에서 인체의 모든 조직 원소가 새로운 원소로 변화된다. 그러면 부모와 자식 간에 감응을 일으킬 동일한 유전인자의 파장까지 바뀌어 서로 감응할 수 가 없다. 결국은 부자간에 연결된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묘지 면적은 전 국토의 1%에 해당하는 982평방킬로미터이고, 매년 20여만 기의 묘가 새로 생긴다고 한다. 매년 여의도의 1.2배에 해당하는 국토가 잠식당하는 꼴이다.
이는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의 측면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사실 그 동안 묘지 정책은 환경 위생적인 측면에서만 접근되었고, 국토 이용이란 측면은 소홀히 하였다.
서울을 약간만 벗어나도 산등성은 온통 공원묘원으로 뒤덮여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된 것을 볼 수 있다. 그 자체가 혐오시설로 간주 되어 어느 마을의 입구에는 ‘영구차 절대 진입 불가’ 라는 푯말이 나붙었을 정도이다. 그러고도 묘지의 수용 능력이 한계점에 달해 새로운 묘지를 구하기도 어렵다. 이는 묘지를 쓰기 위한 토지의 수요가 경제적 생산성보다는 정신적 및 관습적인 효용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화장이 매장의 한 형태로 발전한 것은 불교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속세와 인연을 끊은 스님은 사후에 제사를 지내주거나 묘를 관리할 후손이 없다. 시신의 처리가 문제되자 석가모니를 본받겠다는 뜻에서 화장이 일반화된 것이다.
스님이 입적하면 먼저 시신을 목욕시킨 후 화장을 한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다비(茶毘)라 부르며, 더러운 육체를 불로 깨끗이 태워 영혼이 다시 태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본다. 화장 후 수습된 사리(舍利)는 탑이나 부도에 넣어 봉안 한다. 사리는 수행의 과정에서 스님의 몸에 응결된 정수(精髓)로 스님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스님이 아닌 일반인이 매장 아닌 화장을 한 것은 1912년 일제 강점기에 제정된 ‘묘지‧화장‧화장장에 관한 취체규칙’에 근거한다.
일제는 산이나 선영에 조상을 모시는 것을 금지시키는 대신 공동묘지를 설치해 강제로 매장케 하거나 화장을 권장하였다. 하지만 이 규칙은 공동묘지에 매장하면 공자(孔子)의 벌을 받고, 화장하면 영혼이 재생하지 못한다고 믿는 풍습 때문에 몰래 장사를 지내는 암장을 유행시켰다.
현대에 와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화장도 좋다는 인식이 널리 번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화장률이 낮은 이유는 국민의 매장 선호 사상 때문이다. 화장은 사고를 당해 육신이 망가졌거나 혹은 몹쓸 병에 걸려 죽은 경우에만 시행되고, 정상적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여전히 매장이 선호된다. 본인이 원해 화장한 경우는 전체 화장 중에서 22%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 국민의 70%이상은 묘지의 확산이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며, 화장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인식 한다. 그렇지만 막상 자기의 일로 닥쳐 장례를 치를 때면 생각과 실제 행동과는 큰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1994년도의 화장률은 전국적으로 21%이며, 묘지난이 심각한 서울과 부산 지역은 30%에 달해 전국의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매장 문화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41%가 화장을 찬성하고, 34%가 반대를 해서 대체로 화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사람도 25%나 됐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묘를 쓰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이기 때문이란 대답이 가장 많았고, 두 번 죽는 것 같다는 대답이 다음이었다. 선산이 있으니 당연히 선영에 모셔야 한다거나,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유교 사상을 내세우거나, 종교상의 이유를 든 경우도 있다. 풍수와 관련지어 묘를 잘 써야 후손이 잘 된다고 믿는 사람은 5%에 불과했다.
매장하는 풍습은 우리나라보다 대만이 더 심각한 수준이다. 매장하는 날짜와 시간까지 꼼꼼히 따지기로 유명하다. 몇 년 전에 국민당 정부에 몸을 담았던 한 장성(將星)이 사망했는데,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장례를 치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풍수적으로 매장하기 좋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기 위해서이다. 심지어 매장을 위해 빈의관(殯儀館:영안실)냉동실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는 시신이 허다하다고 한다.
시신을 오래도록 방치하기로는 99%가 화장을 하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에는 매년 100만 명이상이 사망하는데, 화장터의 예약이 보통 일주일은 밀려 드라이아이스에 시신을 넣고는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유골은 대부분 집 부근의 영묘원(靈廟園) 납골당에 안치된다.
그런데 납골당도 만원이다. 최근에는 1층은 편의점, 2층은 슈퍼 등 상점이 있는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고층 납골당도 등장 했다. 도쿄에서 제대로 된 화장 장례를 치르려면 300만 엔 이상이 필요하다.
특히 유족들은 사찰에 67만 엔을 기증하고 망자가 천국에 가기 위해 필요하다는 시호(諡號:죽은 뒤에 짓는 이름)를 지어 받는다. 일본 정부는 장례비용을 끌어내리고 납골당의 면적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가족을 합장하는 납골당의 설치까지도 검토 중이고, 또 가능하면 유골을 산이나 바다에 뿌리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장례식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일본 불교계의 반발과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전통 장례 풍습 때문에 효과는 미지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계가 불교 고유의 장법인 화장을 장려하기 위해 납골당(納骨堂)과 영탑공원(靈塔公園)건립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이 제도는 정부 또한 국토의 묘지화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크게 장려하고 있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전남 장성의 백양사는 사찰 경내에 2층 규모의 납골당을 건립중이다. 이 납골당은 현재 사용 중인 명부전(冥俯殿)을 개축하는 것으로 모두 3천기를 수용할 수 있고 신도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까지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제도는 불교 사상과 현실적인 풍습을 양립시킬 수 있고, 1기당 면적이 3평으로 기존 묘지의 5분의 1밖에 안되어 묘지 해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영탑(靈塔)은 탑 아래 부분에 유골이나 위패를 설치하는 매장의 방법으로 주위 경관과 어울리는 다양한 모양의 탑을 세울 수 있다. 가족탑, 문중탑, 동호인탑, 회사탑 등 여러 종류를 선택할 수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현재 허가제인 납골당 건립이 앞으로 신고제로 바뀌면 납골당과 영탑공원은 한층 활성화 될 것으로 보인다.
시대에 따라 장묘문화도 변한다. 현재 한국의 묘 중에서 풍수 이론에 맞는 경우는 5%도 안된다. 따라서 훌륭한 풍수가를 모시고 진혈에 좋은 좌향을 택하여 모시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화장해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게 좋은 방법이다. 부모에게 큰 죄를 짓는 행위라 여겨 화장을 기피하나 흉지에 매장한다면 그것보다 더 불효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따라서 화장을 통해 고통을 덜어 주는 것도 자식의 도리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무덤은 한 사람이 이 땅에 살았다는 확실한 흔적이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에겐 추모할 여지를 남겨 주는 최소한의 유품이다. 화장의 경우 대개는 뼈를 땅에 묻거나 가루로 만들어 산이나 강물에 뿌린다. 문제는 화장했다 하더라도 그 유골을 산이나 강물에 뿌려버리는 것만은 삼가야 옳다. 이미 화장 하여 가루를 산천에 뿌렸다면 신위(神位)만이라도 봉안하라고 권하고 싶다.
신위는 혼령이 깃든다고 여겨져 왔으며, 역사적으로는 시신이 없는 경우에는 신위만이라도 묻었다.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에 붙잡혀가 순절한 삼학사의 묘가 그러하다. 모두 옷과 머리카락, 그리고 신위를 매장한 의발묘(衣髮墓)이다.
묘로 모시든, 화장한 뒤에 납골당이나 영탑에 모시든 그분을 추념할 여지는 후손에게 남겨야 한다.
효 사상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요즘, 다른 것은 다 양보하더라도 이것만은 우리가 지켜야할 도리이며 후손에게 영원히 전해야만 하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풍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