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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해촌 회포(巨濟海村懷抱)
거제해촌 회포(巨濟海村懷抱)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4.1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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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촌(海村)에 빌붙어 날 저물면 외로이 사립문 닫는데, 때때로 보이는 강가 갯벌에는 고기 잡는 배 절로 오가는 것을, 신당의 언덕에는 뭇 꽃들 향기 풍기고 갯벌 옆 염전에 갈매기 절로 모여든다. 창해 물가에 돛을 드날려도 맑은 하늘아래 물결이 일지 않고 대숲의 까마귀 홀로 사는 나를 모른 척하니 누구와 이야기할꼬. 선비란 본래 세 번 패배 있어야 혹시 한 가지 이룰 수 있다하니 짧은 생애 마음 닦아 뜻 가짐과 의리 바름 보존하려 이욕 생겨남을 억누르고 세운 바를 귀히 다짐한다.

송(宋)의 소식(蘇軾)이 호주(湖州)에서 귀양살이 할 때, 고향 아미산(峨眉山)이 이곳의 산과 닮아 아미산이라 이름 붙였다는데 거제 계룡산도 어찌 이와 같을꼬. 밤이 길어도 잠 못 들고 초승달이 성긴 등불 대신할 즈음에, 어드메서 어부들의 노랫소리 바람타고 들려와 귀양살이 나그네의 향수를 일으킨다. 바닷가 향화(香花), 백 가지 꽃 다 꺾어 봐도 우리 집 꽃만 못해 보임은 꽃이 달라서가 아니라 다만 우리 집에서 피기 때문이겠지. 꽃바람아 즐겨 떠나 머무를 생각 말거라. 인간 사이에 오래 있으면 시비만 배운다네.

초택(우거하는 초가집)에 자주 비를 뿌리니 서울의 소식 전할 인편 드물고 안부를 묻고 파도 방도가 없으니 북으로 돌아가는 애 궂은 기러기 불러보는데, 눈바람이 뜰을 메운 굶주린 까마귀만 떠들어 댄다. 차가운 등불 깜박깜박 잠 못 이루고 시름할 제, 이별의 시름에 놀란 나그네 꿈, 고향 땅이 아련하기만 하여라.

죽천(竹泉) 우물이 큰길가에 있지 않고 오목한 반곡(盤谷)골짝 끝에, 귀양살이 하는 자들이 있는 곳에 있으니 그 바탕과 쓰임새가 참으로 유배인의 처지와 비슷하오. 쓰이거나 버림을 받거나 어차피 우물과 나는 거의 같은 신세로다. 애당초 하늘의 뜻에 매인 것일진대, 북인(유배인)이 마시고 빨래하고 노니는 생명의 원천이로세.

세상일의 성쇠는 원래 운수가 있다지만 서글퍼라! 년래엔 또 귀양살이를 하누나. 북쪽을 바라보니 어버이 생각 많이 나고 처자식은 눈에 삼삼한데, 이게 다 무언일이람! 변방의 귀양살이가 모두 나의 잘못이라나.. 뭐라나.. 유유한 세상일이 뜬구름 같고 인간 삶이 부평초라 해도, 만약 귀양살이에서 사환(賜環)된다면 산 위에서 도포 옷을 하늘 향해 펼쳐보리라. 달빛 아래 노니는 바다갈매기가 부끄러우니, 천 리 먼 곳 임이시여~ 초객의 넋을 불러주소서.

1) 저물녘 봄비는 흩어져 내리고.[暮春雨中漫賦] / 김진규(金鎭圭), 사첩(四疊) 중 일부분.

집에서 바라본 거제만 앞바다에는 한산도를 포함한 수많은 섬들이 뒤섞여 있다. 저 섬들이 문득 나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 하다가, 마침 봄비오자 썰물 빠지고 여남은 꽃들이 땅에 떨어져 가득한데, 온 누리 푸른 봄빛 속에, 물가 갈매기 떼 지어 있고, 집 주위 대숲도 여전히 아름답다. 시름겨운 귀양살이 봄날,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은 마음을 담담히 표현했다.

柴門咫尺海冥冥 사립문이 지척인데 바다는 아득하고

孤嶼渾如水上萍 외로운 작은 섬들이 물 위 부평초같이 뒤섞여 있구나.

急雨驅潮天漸黑 급한 비에 조수 몰아내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殘花滿地樹皆靑 떨어진 꽃이 온 땅에 가득해도 온통 푸른 나무.

幽居無事樂沉冥 궁벽하게 살면서 별 일없이 편히 은거하며

流落何須歎梗萍 유랑했는데, 어찌 구태여 부평초가 막히었다 탄식할까나

泛渚羣鷗憐皎皎 물가에 떠있는 갈매기 무리, 흰 빛깔 곱고 어여쁘고

照盃叢竹愛靑靑 잔에 비친 대나무 숲, 푸릇푸릇 아름답네.

◯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선생은 당시 조선에서 최고의 갑부 중에 한사람이었다. 고종의 총애를 받고 있는 터라 거제 유배생활은, 총500 여명의 거제 유배자 중에서 가장 호사스런 귀양살이를 했다. 다시 복권이 확실시 되는 분인지라, 거제부사 윤석원(尹錫元)의 비호 아래 그는 거제 곳곳을 여행하며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금석문에 상당한 관심이 있어 거제 해금강 '서불과차' 마애각도 직접 하인을 시켜 탁본할 수 있었다. 그 자료가 지금까지 거제에 전하는 유일한 '서불과차' 금석문 古 자료로써 남아 전하고 있다.  

2) 해촌[海村] / 이유원(李裕元,1881년) 

水雲石氣上簾凉 물구름 돌 기운이 발 위에 서늘하고

古墨輕斫滿几香 옛 먹을 가벼이 때리니 책상에 향기 가득하다.

李花村落絲絲雨 오얏(자두)꽃 마을에 보슬비 내리는데

偏惹詩人午睡長 시인(詩人) 곁에 이끌러 낮잠만 길어지네.

◯ 거제도 봄빛 가득한 바닷가 풍경은 황홀하지 못해 몽환적이다. 1690년 김진규(金鎭圭)선생은 거제도의 봄 풍경에 감탄하여, 두보(杜甫)시 '봄날의 강촌'을 차운하여(次杜詩春日江村)에 시제를 붙여 ‘거제도의 봄’을 노래했다. [ 바다 같이 맑은 청주(淸酒)에 취한 봄꽃이 불그스레 붉힌다. 벼슬아치 검은 모자에다 헤진 옷을 입고, 봄비 속에 살랑이는 바람 살피며 체면을 앞세우는데, 어디선가 어부의 흥겨운 뱃노래가 들린다. 이 소리에 나를 살펴보니 벌써 반백(半白)의 중늙은이 되어, 뒷간만 나대게 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又 화사한 봄날, 지저귀는 새소리 흥겹고, 푸르른 봄날이다. 경치 좋고 아름다운 곳에서 낚시나 하면서 살라는 건지, 조정에서는 소식이 없다. 외로운 거제도 타향살이에서, 봄의 제철음식에 감응하여, 현실에 안주하는 자신에게 깜짝 놀란다 ].

3). 거제도의 봄. [次杜詩春日江村]

江較淸樽綠 맑은 술통처럼 푸른 바다,

花同醉面紅 꽃은 취한 얼굴같이 불그스레,

墊巾迎好雨 사모(墊角巾)쓰고 반가운 비를 맞으며

披裌試和風 헤진 옷에 온화한 바람 살핀다.

棹曲詶漁子 노 젖으며 뱃노래 읊는 어부,

農談問野翁 농사일 담소하는 시골 노인,

所慙黃髮暮 누렇게 된 머리에 말년이 부끄러워

還廁碧油中 푸른 잎 사이 뒷간을 돌아본다.

鳥語聲聲滑 지저귀는 새, 소리마다 곱고

花房樹樹深 꽃방 나무마다 무성하다.

靑春遣興地 푸른 봄엔 흥겨운 땅인데

白首未歸心 백발에 못 돌아가는 마음만 있을 뿐.

漁釣猶堪老 낚시하며 노년을 보낼 만하니

鄕園已莫尋 고향 동산을 찾지 말라 하네.

流離拚此世 유랑하며 손뼉 치는 이승의

節物感于今 철 따른 산물에, 현실에 감응하누나.

[주] 점건(墊巾) : 점각건(墊角巾)의 준말이다. 점(墊)은 처진다는 뜻인데, 《후한서(後漢書)》 곽태전(郭泰傳)에, “곽태가 군국(郡國)을 두루 노닐면서 일찍이 진(陳)ㆍ양(梁)의 사이에서 비를 만나 사모 줄 하나가 밑으로 처졌는데, 그때 사람이 보고서 일부러 사모 뿔 하나를 휘어서 쓰고 임종건(林宗巾)이라 칭하였다.” 한다.

4) 해촌[海村] / 홍세태(洪世泰,1653~1725년)  

大口今冬絶不來 올 겨울 대구가 돌아오질 않으니

漁磯上下莫爭隈 낚시터 아래위 굽이굽이 다툼이 없도다.

猶看藿葉生能早 오히려 미역을 보더니만 싱싱함에 서둘러,

但使商船稛載廻 거리낌 없이 상선에다 선회하며 묶어 싣는구나.

5) 거제도 저물녘에 읊조린다[岐城晩詠] / 이범(李範,1535~?).

群山揷海淺還深 여러 산이 바다에 꽂힌 듯 얕았다가 깊었다가

頃刻能晴又易陰 잠깐 사이 개였다가 또 쉽게 그늘지네.

誰倚船窓夜吹笛 누군가 밤에 선창(船窓)에 기대어 피리 부는지,

滿船風雨老龍吟 배에 가득한 비바람에 늙은 용이 읊조리는 듯.

조선초기 학자이자 문신인 이범(李範)선생은 거제도 순행 길에 나선다. 어둑한 저녁나절에 배를 타고가면서 창문을 통해 거제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 변화무상한 바다 물결과 수평선, 그리고 줄 이은 섬, 허상이 가득 찬 하늘과 땅, 시시각각 달빛에 교차되는 바다, 배를 따라오는 풍경이 장관이었으리라. 바닷바람이 돛대를 치는 소리가 마치 바다를 다스리는 늙은 거제용이 괜찮다고 일러주는 언질로 비유하며 바닷길의 안전을 확신한다.

6) 봄날[春日] / 김진규(金鎭圭) 1691년.

화사한 봄날 거제면 동상리, 짙은 푸른 대숲 주위에 봄꽃이 만발하였다. 벌써 거제에서 두 번째 맞는 봄이다. 산과 바다가 모두 나를 알아보는 듯, 아양을 떤다. 비록 궁핍한 귀양살이지만, 복숭아 살구꽃에서 풍기는 봄날의 정취가 나그네의 고독한 마음을 달랠 것이다.  

迢遰長爲客 언제나 멀리 떨어진 나그네

慇懃再見春 은근(慇懃)히 재차 봄을 맞는다.

海山應識我 바닷가 산들은 당연히 나를 아는데

花竹又宜人 꽃과 대나무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네.

日暖波光媚 따뜻한 날, 물결 위의 햇빛이 아양 떨 때

天晴野色新 맑게 갠 날씨에 들 빛이 새롭다.

窮居亦有樂 궁벽하게 살지만 즐거움이 있으니

時物况怡神 시물이 더욱더 기분 좋게 만드네. 

[주] 시물(時物) : 절기(節氣)에 따라 나오는 산물(産物), 절기마다 변하는 사물.

7) 이른 봄[孟春] 其三 / 김세필(金世弼) 수양동 1506년.

留滯南荒客 남쪽 변방 나그네로 버려져 머물면서

重看海國花 거듭 거제 섬지방의 꽃을 본다네.

朔風吹褐急 북풍이 불어 베옷이 긴요하나

梅興動詩多 매화 흥취에 감응하여 지은시가 쌓인다.

欲訊來春事 봄 정취가 돌아왔는지 물어보니

還持舊歲華 또다시 지난 세월을 견뎌냈다네.

高標天獨賦 높은 가지 끝, 홀로 시를 읊는 하늘엔,

桃李肯交柯 봉숭아 오얏나무 엇갈린 가지 흥겹다.

위 시는 김세필(金世弼)선생이 1506년 음력 정월 5일 날, 동쪽 마을 여러 벗들이 폐단을 핑계 삼아 모였다가 헤어진 후, 갑자기 꽃을 피운 매화나무에 흥이 일었다. 농막집의 한그루 나무가 언제나 앞서 꽃을 피우니 북쪽 대궐에서 좋은 소식이 올꺼라고.. 여러 제군들이 제멋대로 희망을 품는다. 꽃가지를 꺾어 집으로 돌아가다가, 봄날의 정취에 연이은 율시를 지어 화답했다.

8) 술 취해 노닐며 부르는 노래[醉遊歌] / 고영화(高永和)

故人邀我春花時 옛 친구가 날 초청해 준 꽃피는 봄의 계절, 尊酒童說興不違 동이 술에 어린 시절 흥취가 다르진 않았어라. 醉後却忘他鄕險 술 취한 뒤 험한 타향인 곳 깜박 잊어버린 채 大醉放歌曜月暉 고주망태 고성방가에 달빛만 빛나네.

갑자기 통영 삼천포 사는 50년 지기 고향 친구들이 내일 일찍 내려 오라한다. 새조개 굴 해삼 안주에 동동주가 너무 맛나서, 니 생각하니 도저히 안 되겠단다. 벌써 시원한 막걸리에 생선회가 떠오르고, 온 얼굴이 불그스름한 내 모습이 보인다. 남의 동네인줄도 모르고 떠들썩 떠들썩 담소하고 있을, 우리들의 하늘에는, 달빛만 빙그레 웃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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