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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예비노인’을 위하여
[기고]‘예비노인’을 위하여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5.10.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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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민/ 거제의 삶..꿈...저자·칼럼니스트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는 말이 요즘 들어 피부에 와 닿아 실감이 난다. 필자가 군 제대를 한지 엊그제 같고 거제에 온지 어제 같은 세월이 벌써 37년과 30년이라는 세월로 손가락이 꼽혀 물처럼 흘러갔다. 그러고 보니 장승포행 여객선을 탈 때 간난 아기였던 아이들이 어언 30대가 된 것을 보고 내 나이도 손꼽아 보게 된다. 거제에 온지 30년. 순식간에 앞으로 10년이면 노인이라는 중압감이 엄습해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유교적 경로사상에 젖어 어른들을 잘 모시고 인생에 관한 덕담을 들으며 항상 공경해 마지않았다. 어른들에게는 항상 그들이 격어 왔던 경험이 풍부하여 자손들에게 교훈처럼 언행을 엄히 가르쳤고 아랫사람들은 겸손히 들으며 이를 명심보감으로 삼았던 것이다.

어른들의 커다란 낙(樂)중 하나가 손자나 아들에게 덕담을 해주며 조언을 하는 것이었으리라. 21세기에 들어가 사회적 변화는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아 노년은 그렇다 치고 장년의 50대 사람들은 아이들보다 이 변화를 따라가기가 힘이 들어 차라리 포기한다. 사회변화의 속도가 느리던 시기에는 연장자가 경험과 지식 면에서 연소자 보다 대게 뛰어나게 마련이지만 이제는 나이가 많다는 것이 오히려 연소자들에게 무식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특히 컴퓨터와 전산화된 통신 분야가 일상화된 지금, 연소자들과의 대화의 폭은 한정되게 마련이다. 어른이라고 그 분야에 대해서 조언해 줄 말이 전혀 없다. 더구나 아이들 보다 말(영어)을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바보가 된 듯도 싶다.

이러한 경우는 가사를 돌보는 안방 여인보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바깥남성에게 더욱 내면적인 사회적 열등감과 가정적인 외로움으로 변해, 가끔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의 세월을 비교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이럴 때 같이 나이 먹어가는 마누라가 아이들 앞에서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줄 때면 더 더욱 힘이 빠진다.

옛날 자원이 부족했던 우리 조상들뿐만 아니라 에스키모족, 중국,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는 노인이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되기 전에 스스로 사회를 떠나는 전통을 갖고 있다. 그처럼 우리 한 민족은 남에게 특히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국민대학교 문화 인류학자인 한 경구 박사는 글을 통해 장년층에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 풍습 상 남자들은 50이 될 때 까지 뒤도 보지 않고 줄곧 앞으로만 달리다 힘이 빠지면 어느 민족보다 빨리 주저앉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장년층은 이제 달리던 숨 가쁜 호흡을 멈추어 가다듬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에 역점을 두어 장고(長考)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세대문화는 신세대의 것이지 우리 장년층의 것이 아니기에, 더 이상 심각한 도전이나 좌절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우리세대는 고생도 많이 했고 책임도 무거웠지만 그 만큼 많은 것을 누리지 않았는가. 일도 많았지만 권위도 있었다. 우리 솔직히 그리고 마음 편히 시인하자. 지금의 장년층에는 다음 세대 인생설계의 모델이 되지 못한다. 그저 건강하게 그들이 원하는 분야에서 우뚝 서 있길 바랄 뿐, 그 분야에 대해서 문외한이 되어 버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년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하면 남에게 짐이 되지 않고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장년층 위에는 노년층이 있다.

중국에서도 나이 지긋한 노부(할아버지)를 수레에 실어 깊은 산 속에 버리는 시절이 있었다. 손자로 하여금 장년의 아버지가 노년의 할아버지를 버리라고 시켰는데 이 손자 놈이 수레를 끌고 가서 할아버지를 버리고 난 후 빈 수레를 끌고 돌아 왔다. 장년의 아버지가 함께 버리지 않고 왜 수레를 끌고 왔느냐고 묻자 손자 놈 말이 나중에 아버님을 버리기 위해 빈 수레를 끌고 왔다고 대꾸했다. 이후 아버지는 크게 뉘우치고 버린 아버지를 업고 돌아와 극진히 모셨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람이 젊건 어리건 그 모두가 예비노인이다. 유년과 청소년 그리고 청년과 장년 모두가 예비노인이며 그들이 뿌린 씨만큼 거두게 됨은 하늘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말하는 ‘세대차이’를 우리 장년층은 여하히 슬기롭게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을 위한 장고의 시간을 가질 때라는 생각이 든다.

10월2일은 노인의 날이다. 노인의 존엄을 생각하는 풍요로운 10월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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