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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아, 비켜라! 이 언니가 나가신다!
운명아, 비켜라! 이 언니가 나가신다!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6.02.01 16:3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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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마흔아홉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불과 스물세 살이었던 나는 그야말로 철부지였다. 나는 그때 내가 홀로서기가 가능한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생애가 짧았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의 그 나이가 되었다. 한창 바쁘고 팔팔하게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가 참으로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리고는 자주 ‘엄마…’ 라고, 나지막이 불러보곤 한다. 그렇게 엄마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면, 짧아서 더욱 아쉬웠던 어머니의 생애가 안타까움이 되어 가슴에 전해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는 새해 아침이면 가족들의 사주를 봐 오셨다. 그 당시 ‘국민학교’라고 불렸던 초등학생 시절, 나는 해마다 어머니가 뽑아내는 내 사주에 꼭 등장하는 두 가지 내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것 때문에 여태껏 운명한테 오기를 부리며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반드시 등장했던 나의 사주 중 하나는 수명이 몹시 길다는 것이었다. 시쳇말로,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산다는 것. 다른 한 가지는 결혼을 일찍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혼을 일찍 하면 몇 번이나 이혼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 예언은 들을 때마다 불쾌했다. 그것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인생에 대한 가혹한 선언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뽑아다 주신 점괘는 다른 어떤 점술가나 철학관에서 보아도 항상 똑같았다. 그러다 보니 믿지 않던 것이 뇌리 속에서 점점 자리를 굳혀갔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 수명이 길다는 것은 좋은 것일 테고, 결혼을 일찍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나쁜 점괘일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와 반대였다. 벽에 똥칠을 할 만큼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았고, 결혼은 가능하면 빨리 하고 싶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나를 계속 따라다니는 두 점괘에 심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

 

점괘대로 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궁리 끝에 자구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있었으니, 우선 오래 살지 않기 위해 몸에 좋지 않은 음식만 골라서 먹고 운동이라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나는 건강하지 못해서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가까운 지인들이 걱정할 정도로 몸에 좋지 않다는 것들을 위주로 과식을 일삼았다. 일테면 각종 주류와 안주류들을 섭렵하고, 맵고 짠 음식들, 인스턴트 식품 및 기름진 음식, 단 음식들을 위주로 내 긴 수명을 단축시켜보고자 했다.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중년에 와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나는 심할 정도로 건강에 좋다는 것들을 피해 해롭다는 음식만 골라서 먹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운동이라곤 매일하는 숨쉬기운동이 고작이었다. 장담할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매우 건강하다. 건강해도 너무 건강하다.

 

두 번째는 그와 반대였다. 운명의 남자를 만나 일찍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배우자가 될 사람인지 눈여겨봐오던 남자들이 있었다. 이 사람이 진짜 나의 결혼 상대인가 싶었던 남자들도 몇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못 산다고 했었던 이들도 나와 이별 후, 순식간에 여우같은 여자들을 하나씩 꿰차고 결혼을 했고, 토끼같은 자식들 낳고 행복하게 잘 살기만 했다.

그러한 몇 번의 일들로 인해 나는 남자들의 달콤한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아니, 믿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운명을 거스르며 살아보겠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우 늦어진 나이임에도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 게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나이가 되었는데도, 사주의 예언대로 무척이나 오래 살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다면 결국 타고난 운명을 거스르기는 힘들다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실 작년까지는 이런 생각이 나의 삶을 지배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운명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개척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이 봐왔다.

2016년 병신년 원숭이띠의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도 새로운 마음을 갖기로 결심했다. 어릴 때부터 나를 따라다녔던 정해진 운명이 이제 시효가 다 됐다고 믿기로 했다.

 

나는 원하지 않지만, 운명에 정해진 대로 오래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 결혼은 이미 늦어졌다. 그렇다면 몇 번이나 이혼해야 할 걱정은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제 늦은 사랑이 시작될 것이고, 그 사랑을 아름답게 꽃 피우며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을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몸에 좋다는 것도 잘 챙겨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남자들의 달콤한 거짓말에도 슬쩍 속아줘 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운명 앞에 자신 있게 외칠 것이다.

운명아, 비켜라! 이 언니가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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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이 2016-03-11 14:32:03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지요 ㅋㅋ

공중에사는남자 2016-02-02 16:12:38
인생 거 별거 아니다. 기쁘게 삶을 즐기고 운명 같은거 주 차피라.
길지 않은 인생. 고민하지말고 재밌게 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