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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슴이 뭉클해지는 얘기
[기고]가슴이 뭉클해지는 얘기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6.05.2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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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영민/ 칼럼니스트
 

〈내가 어린 시절, 자장면은 엄마 따라 시장에 나왔다가 엄마를 졸라야만 먹을 수 있었던 고급 중에서도 아주 최고급 음식이었다. 누나와 함께 엄마를 따라 장에 나오면 어김없이 중국집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엄마는 조금만 참았다가 집에 가서 밥 먹자고 달랬다가 결국은 늘 사주시곤 하셨다. 그러나 엄마는 자장면을 드시지 않았다. 매번 중국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며 허급지급 급히 먹던 우리에게 단무지만 집어주곤 하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던가. 그래도 철이 좀 들었다고 어릴 적처럼 엄마를 붙잡고 조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중국집 앞을 지나며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그것이 오히려 마음이 아프셨는지 웃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한 시간이나 버스를 기다리기 지루하지? 자장면 사줄까?” 나와 누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중국집으로 앞 다투어 들어갔다. 늘 앉았던 자리에 가서 앉고는 누나가 익숙하게 말했다. “아저씨 자장면 두 그릇이요!”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엄마도 먹지, 엄마가 한 번도 안 먹어봐서 그렇지, 자장면 맛있어. 오늘은 세 그릇 시키면 안돼?”

“아니야 엄마는 됐어” “그러면 우리가 같이 한 그릇을 먹을 테니 한 그릇은 엄마가 드세요” 엄마는 이제 우리 아들이 철이 드는구나 싶으셨는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내가 엄마 앞으로 한 그릇을 놓아 드리자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씀하셨다. “둘이 먹고 있거라, 엄만 시장 덜 본 게 있어서 마저 보고 올게”

엄마가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정말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정말 자장면이 싫은 줄로만 알았다. 몇 년 뒤 중학생이 된 나는 엄마와 함께 시장에 나왔다가 친척 아주머니를 만났다. 마침 밥 때가 되었으니 점심을 사겠다며 호의를 베푸시는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간 중국집에서 나는 자장면 한 그릇을 맛있게 다 비우는 엄마를 보았다. 순간 맛있었던 자장면이 가슴에 꽉 메어오는 느낌이었다.〉

지난 16일, 언어장애1급의 불편한 몸으로 2003년 여름, 태풍매미 때 태풍피해로 터전을 잃은 거제수재민에게 남몰래 3천만의 상당의 수재의연금을 내놓은 개그맨 조 정현(57세)씨가 거제시를 방문하면서 그의 비서 장 철은 씨를 통해 필자에게 털어 놓은 얘기 한토막이다.

그때의 철없던 어린 아들이 이제는 엄마에게 마음 놓고 자장면을 사드릴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고 기뻐한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던 우리가 다시 자장면 한 그릇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한 어머니처럼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고 살아가야 한다.

원래가 우리는 단 한 번도 여봐란 듯이 잘 살아본 적도, 마음 편히 살아본 적도 없는 나라였다.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와 “진지 잡수셨습니까?”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살아오던 우리였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어린 아들에게 기탁한 꿈이 있었다.

조 씨의 얘기가 필자에게 그처럼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단순히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수첩에는 이런 이원수의 동시가 적혀 있었다. 〈달달달달...어머니가 돌리는 미싱소리를 들으며 저는 먼저 잡니다. 책 덮어놓고 어서주무세요, 네?/자다가 깨어보면 달달달 그 소리, 어머니는 혼자서 밤이 깊도록 잠 안 자고 삯바느질하고 계셔요/돌리시던 재봉틀을 멈추시고“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외풍이 센 윗목 추위를 이기려고 옷을 껴입고 밤늦도록 재봉틀을 돌리면서도 어머니는 조금도 서럽지가 않았다. 그것은 어린 아들 딸이 어른이 되는 날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어린이들이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된 지금 또 다시 우리에게는 살림을 걱정해야 할 만큼 쪼들리게 됐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겨낼 수 없던 가난을 우리가 못 이겨낼 까닭이 없다. 우리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희망의 상실이다.

“저 역시 취임 후 지속적으로 출‧퇴근길에 경차를 직접 운전하고, 닫혀 있던 시장실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시민의 고충과 아픔을 함께하고 있지만 조 선생님께 숭고한 사랑은 물론이고 봉사의 정신을 많이 배웠습니다. 저 역시 보릿고개시절 멸치 배 선원생활을 하며 독학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권 민호시장이 나눔의 천사, 조 정현 씨를 시청 문밖까지 손수 배웅하면서 던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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