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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민요 길쌈, 물레•베틀타령>
<거제민요 길쌈, 물레•베틀타령>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7.0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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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여인네들이 집안일을 온통 감당하는 동안, 생활의 애환을 표현한 노래인 김쌈민요는 ‘부녀노동요‘이다. 이에 김쌈 노래를 통하여 고난을 하소연하고 희망을 노래하니 그 사설이 다채롭고 풍부하였다.

특히 여성들이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표현이 절실하고 상황설정이 풍부하다. 민요는 직업적인 소리패가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패가 맡아서 부르는 노래는 잡가여서 민요와 구별된다.

근대에 이르러, 민요를 운율에 맞추니 민요풍의 시가 이루어졌고, 민요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따라, 근대적 의미의 민중문학 또는 민족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이룬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베틀은 각 원료에서 실을 뽑아낸 다음 피륙을 짜는 마지막 단계에서 사용하는 도구이다. 어떤 원료로 피륙을 만드는가에 따라 직기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명주 무명 모시 삼베를 짤 때에는 공통적으로 베틀을 사용한다.

물레는 목화의 솜이나 고치에서 무명이나 명주실을 잣는 연장으로 섬유를 자아서 실을 만드는 수공업적인 도구이다.

회전축을 이용 용도에 따라서 방차(紡車)·도차(陶車)·선륜차(旋輪車) 등으로 부른다. 지름이 50~60cm되는 바퀴에 줄을 걸어 빠른 속도로 가락을 돌리면서 거기에 솜을 먹여 실을 잣는 길쌈연장의 하나이다.

삼베의 시작은 신석기 궁산패총에서 뼈로 된 바늘에, 마사가 감긴 것이 출토 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삼베를 짜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되어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옛날처럼 사람의 손으로 직접 직조하는 전통방식의 삼베 한 폭을 얻기까지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삼베를 베어 쪄서 삼껍질을 이어 실을 만드는 '삼기'를 하고 무릎에 비벼가며 실을 꼬아 질기게 하는 물레질을 한다. 잿물에 삼껍질을 담가 껍질을 씻어내는 '이기기'를 하고 씨줄과 날줄을 만드는 '나르기'를 한다.

여기에 습한 날에는 화로도 사용해야 하는 씨줄에 풀을 매기는 '베매기'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베틀에 씨줄을 걸고 날줄을 북에 넣어 두 손과 한발을 이용하여 짜게 된다. 베틀에 앉으면 허리에 부테를 매고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일해야 한다.

낮에는 습도가 낮아 날실이 끊어지기 때문에 주로 이른 새벽과 밤에 베를 짜야 했다. 낮엔 들에 나가 일하고, 삼시 세끼를 챙기며 새벽과 밤에 베를 짜는 삶은 참으로 고달팠다.

물레타령은 지난날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삶을 대표하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누구나가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육아와 가사, 그리고 생계까지 꾸려가야 했던 여인들의 한숨과 애환이 담긴 소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재배해 무명을 짜기 시작한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이후, 근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전통직물인 무명, 의복의 재료 이외에도 이불 재료나 기타 생활용구를 만드는 재료로 가장 많이 이용됐다.

제작과정은 목화재배와 수확, 씨앗기와 솜타기, 고치말기, 실잣기, 무명날기, 베매기, 무명짜기 순으로 나뉜다. 씨앗기와 솜타기는 목화에서 씨를 빼내고 솜활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솜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이다.

고치말기는 솜을 말판 위에 펴놓고 말대로 비비는 과정이며, 실잣기는 물레를 이용해 실을 뽑고, 뽑은 실을 가락에 감는다.

무명날기는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것이다. 무명날기가 끝난 날실을 팽팽하게 하는 베매기와 풀 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해 무명을 짠다.

4월 하순 곡우를 전후해 목화씨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해 5월에 목화를 솎고 김매기를 하고, 6월에 목화순을 잘라주고 다시 김매기를 한 후 10월 초에 목화송이를 수확한다.

9월 중순이면 목화솜이 터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밭에서 딴 목화는 11월에 고르기와 씨앗기, 12월에 솜타기와 고치말기, 이듬해 정월에 실잣기, 3~4월에 실뽑기, 날기, 매기, 꾸리감기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베를 짤 준비가 끝난다. 농사는 농한기라도 있지만 길쌈은 한가할 여가가 없는 고된 노동이었다.

 

1) 거제민요 '거제베틀타령'

옛 거제도 여인들은 베를 짤 때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민요(民謠)를 불렀다. 날마다 밤새 옷 짜는 베틀의 고된 작업이 고달파서, 베틀과 비슷하게 생긴, 현악기 거문고는 보기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나 생황악기의 일종인 우생에는 그 화음이 아름다워, 좋아했다고 한다.

'베틀가'는 여인들이 베틀에서 베 짜는 일을 소재로 한 길쌈민요이자,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부녀 노동요다. 그 사설이 대부분 일정하게 짜여 있으며, 부녀자의 애환이 서린 노동요(勞動謠)인지라, 고된 삶이 응축되어진 애수 어린 민요다.

또한 베틀의 여러 부분을 형용한다거나 그 기능을 그린 비유가 뛰어나고 그 묘사가 절묘하다. '거제베틀가'는 반드시 베틀질을 할 때만 부른 것이 아니라 길쌈질과 관계없는 모내기, 삼삼기나 한가로울 때, 또는 다른 가벼운 일을 할 때에도 불렀다.

따라서 '베틀가'는 베틀질을 소재로 삼았을 뿐, 베틀질과 반드시 밀착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정교한 사설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서민여성의 삶의 애환과 개인적 감정을 안정적 4음보 율격으로 전개하였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시아버지, 남편, 시동생과 시누이, 아이들의 옷가지 하나만을 걱정한 채, 오직 씨실 속에 시름 담고 날실 속에 인생을 담아 용기와 희망, 그리고 인내를 잃지 않았다.

(1) "베틀가" / 김방자 옥포 조라. 

어얼시고 저얼시고 / 아니놀지를 못하리라 / 하늘잡아 베틀채리 / 구름잡아 잉애걸어 / 참나무야 보대집아 / 살랑쳐도 소리나네 / 베잘짜는 영애애기 / 베잘짜는 소리듣고 / 만고한량 길못간다 / 만고한량 길못간들 / 짜던베를 걷을소냐 / 얼시고나좋네 지화자좋네 / 아니놀지를 못하리라.

(2) "베짜기노래" / 현순금 일운면 망치리. 

찔거덕찔거덕 짜는베로 / 언제짜고도 일어낫고 / 저해가 떨어진다 / 밥하로 일어나자 / 어서짜고 일어나자 / 어서짜고도 일어나자 / 이베로짜서 골베로짜서 / 울오마니 옷을해여 / 바지하고 처매하고해서로 / 홍두깨방망이 두딜어서 / 옷을해서 걸어놓고있이면 / 오만사람이 치사로안하겄나 / 어서짜자 어서짜자 / 어서짜고도 일어나자.

(3) "베틀노래" / 박갑순, 학산리 큰마을.

한림학사 전고래(翰林學士 傳古來) / 세상살이가 막심해 / 옥난강(玉蘭干)에다 베틀로채리 / 베틀다리가 네다리 / 동서남북을 갈라놓고 / 앉일깨 돋은양은 / 그우에 앉은양은 / 노양각시가 자기(坐其)하고 / 몰키로 덩이차고 / 신나무 저신줄은 / 오른발에다 들끼차고 / 보디기깡깡 치는양은 / 봉봉산천이 뛰논다 / 요리조리 가는북 / 황금두건을 디리씨고 / 신중(身中, 베틀 속)을 돌아든다 / 요게조게 꼽는채똑(쳇발) / 남해남촌 무조개바람에 / 불칼받던 경이야 / 자질개(베에 물을 적시는 기구) 물을 요리조리 기리는양은 / 견우직녀 오실작에 / 화장을 기리던형이야 / 도토마리 미는양은 / 소박하다 다시님이 / 둥을밀치면 형이야 / 잉앳대 셈형지(잉앗대는 삼 형제) / 놀붓대 호부래비 / 강대봉을 띠를띄고 / 높은봉 구경가는 형이야 / 나부손 노는양은 / 홍문안(鴻門之會, 鴻門宴)이 높은잔치 / 불칼받던 형이야 / 깻대(벱댕이)톡톡 뛰는양은 / 우리나래 식년(式年)할 때 / 활촉싸던 형이야 / 도토마리 미는양은 / 소박하다 다시님이 / 둥을밀치던 형이야.

 

(4) "베틀노래" / 손찬언, 연초면 오비리 당산몰 

시방세상 할 일없어 / 옥문간에다 베틀채리 / 베틀다리 네다리는 / 동서남북을 갈라놓고 / 가리새를 조아매고 / 앉을개를 돋이놓고 / 그우게 앉은양은 / 어루어 감사하야 / 시계추에 앉인듯허다 / 허랑개 두린양은 / 북도칠성을 내둘렀고 / 채똥옷 꼽은양은 / 남해산 무지갯발 / 두린듯 허고 / 자질개 물을주어 / 이리저리 씻인양은 / 천상에 은하수요 / 백가사 물을준듯허다 / 저북나드는 형용은(북, 배 모양으로 생긴 씨실을 푸는 기구) / 왕소군이 알을안고 / 백운간을 넘나든다 / 눌림대는 호부래비요 / 미침대는 두형지요 / 잉애대는 셈형지요 / 잉애대 셈형지는 / 차리차리로 갈아들고 / 저나우손 노는형용 / 날오라고 손짓헌 / 형용 분명허고 / 용두마리 우는소리는 / 청천어 외기러기 / 임을잃고 임그리는소리겉고 / 뵈기미 두다리는양은 / 용마군중을 들어간다 / 정절쿵 도토마리 / 정절쿵 넘어오고 / 쿵절쿵 도투마리가 / 쿵절쿵 넘어가니 / 저잔뱃대 흐르난형용은 / 좌우용 자두날 때 / 화살이 분명허고 / 신나무 노는형용은 / 강태공어 낚싯대요 / 대동강에 텃지 놓고 / 고기낚는 형용이데.

베틀은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가 번갈아 가며 ‘북’ 속의 ‘씨실’과 ‘틀’ 위의 ‘날실’을 엮어 우리의 의상(衣裳) 자료인 ‘베’를 짜던 기구였다.

‘베틀’의 구조는 크게 ‘부태허리’, ‘앉을 개(앉을깨)’, ‘눌림대’, ‘선다리(앞다리)’, ‘도투마리’, ‘뱁댕이’, ‘시치미’, ‘누운다리’, ‘말코’, ‘북’, '부티', '속대', ‘바디’, '잉앗대(잉애)', '용두머리' 등 순목재(純木材)로 이뤄졌으며,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개발해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틀은 조선 재래의 삼베, 명주, 모시, 무명 등의 ‘씨줄’과 ‘날줄’로 옷감을 짜는 조립식(組立式) 기구이다.

거제베틀가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거제만의 향토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산 너머 마을사이에도 가사내용이 다른 점은 자신의 상황과 구전가사를 새로이 각색하여 부르기 때문이다.

또한 베틀기구의 각 부분들을 의태화(擬態化)하곤, 자신의 이야기와 엮어서 익살스럽게 노래했다. 농업의 중심에 있던 여인들에게 있어 일상의 하나였던 베 짜기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지워진 노동의 고통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2) 거제도의 물레타령

거제도의 물레타령은 남도민요의 한 갈래로서 아낙네들이 주로 물레질을 하면서 부르는 여성노동요이다. 언제나 고달픈 몸을 안고 사랑과 해학 그리고 여성의 한(恨)을 노래하고 있다.

여성화자는 물레를 통하여 잘 풀리지 않는 인생의 애상과 애달픈 정서를 물레가 돌아, 실마리가 풀리고 하는 물레의 모습과 시름을 연결시킨, 연상 방법에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또한 옛 여성들의 한의 정조는 물론, 정서적으로 우리 민요의 애상감을 바탕으로 상실과 체념의 미학을 해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1) 물레 노래 / 김옥란. 하청면 어은리 장곶.

"물레씨가 병이나서 어만네집에 이고가니

미쳔년아 기든년아 찍는 방애 강새 말고

음중(陰中)에 깨국을 볼라서 해씨고 비씨보재

물레가 고장나서 방앗간집으로 이고 가보니

미친년아 한심한 년아 찍는 방아 질투 말고

음부에 참기름을 발라서 헤치고 비비나 보지"

위 노래를 부르는 도중, 끝나기도 전에 벌써 얼굴이 화끈거리고 웃음이 나온다. 마지막 행, ‘헤치고 비비나 보지’라는 뜻이 여자의 성기와 연상되어서 더욱 난감하다. 어린 시절 옆집 욕쟁이 할매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왠지 친근한 거제도의 풍경이 그려진다.

(2) 물레 노래 / 김재연 거제면 내간리.  

"물레야 뺑뺑 제질로 돌아라

넘으집 귀동자 밤이실 맞는다

물레야 뺑뺑 제질로 돌아라"

삼을 삼기 할 때나 물레를 돌리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남의 집 귀동자 밤이슬 맞는다'는 남편이 바람피우러 다닌다는 뜻이며, 밤늦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물레를 잣는 아내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사랑을 맺고 결실을 이루지 못하는 남편이 빨리 제자리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화자의 반복구는 민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3) 물레 노래 / 현순금, 일운면 망치.

"부룽부룽 잣는 미영은 우리영감이 어디갔노

볼안게가서 볼안게갔다 우리영감은 볼안게갔다

보롱보롱 미영잣자 우리염감 볼안게갔다

보롱보롱 잣아보자 우리영감 볼안게갔다

우리영감 오도록잣아보자"

거제도에서 물레질하는 것을 ‘미영 잣는다’라고 한다. 그리고 '볼안게갔다'는 ‘마을에 놀러 갔다’라는 뜻이다. 밤늦도록 물레질하는데도 돌아올 기미가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물레를 돌리는 옛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위에 소개한 민요 외에도 사등리 성내의 김또악이(金又岳伊)할머니의 "물레노래"와 사등리 성내 김미생 할머니의 "물레돌 잠든 처녀야" 등이 있다. 우리 거제도의 옛 어머님들은 고달픈 삶을 민요에 담아 해학으로 승화시키고자 직설적이고 야한언어 구사가 많다.

"우리문전 사랑 앞에 임노는 것도 뵈기가 좋다", "깨꾹시로 꼭직어 볼라라", "꽁달꿍 꽁달꿍 찍는방애"등 아낙네들이 모여서 주로 이런 상사지정(相思之情)을 많이 노래했는데 왠지 어디서 들었던 노래 같아 정감이 간다.

(4) 시골 한밤중에 지은 즉흥시[村夜卽事] / 七言絶句, 장유(張維, 1587~ 1638년)

索索繅車隔壁鳴 스르륵 스르륵 벽 사이로 들려오는 물레 소리

夜深燈火有餘淸 이슥한 밤 등잔불 아직도 맑게 빛나는데

寒齋擁褐初成睡 누더기 여미고 찬 방에서 금방 잠이 들었다가

驚起隣家逐虎聲 호랑이 쫓는 이웃집 소리에 벌떡 놀라 일어났소.

 

3) 이웃집 옷 짜는 베틀소리 들린다(聞隣家織聲) 거제도 베틀소리. / 김진규(金鎭圭) 1690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札札復札札 "찰카닥 찰각" 다시 "찰각 찰카닥"

卧聽隣家織布聲 이웃집 베 짜는 소리 누워 듣는데

不知機中誰氏女 옷 짜는 여인은 어느 성씨인지 알지 못하나

側耳想像辛勤情 귀 기울어 상상하니 참으로 고된 일이로다

海島地瘠木綿稀 거제도 땅은 메말라 목면이 귀하여

居人被服多不贏 거제주민의 의복이 모자라서 포개 입는데

夫壻無衣兒無袴 남편은 웃옷이 없고 아이는 바지가 없다네.

妾身雖寒猶可輕 며느리는 비록 몸이 차가워도 오히려 가벼이 여기나

經冬已蓄紡績工 지난겨울 길쌈한 실은 이미 쌓여있다네.

盡日催將機杼鳴 진종일 베틀 북 소리를 재촉하는데

夜深人靜響轉急 밤이 깊어 사람소리 조용하니 더욱 급히 울리는구나.

映壁松炬當燈明 관솔불로 벽을 비추며 당연히 등불로 삼았는데

手倦脚疲眉幾嚬 손이 느려지고 발도 피곤하여 눈썹을 얼마나 찡그리는지..

十日未能一匹成 10일 동안 아직 한 필도 만들지 못했는데

翻驚節序又蠶月 도리어 바뀐 절서에 놀라 돌아보니 누에치는 3월 달이라,

柔桑漸綠鳴倉庚 어린 뽕잎 점점 짙어지고 꾀꼬리 울고나.

年年女紅長如此 해마다 길쌈하는 여인, 늘 이러한데도

不見衣裳箱篋盈 상자 속에 가득 찬 의복, 보지 못했다.

吁嗟民生各有職 아~슬프다 백성의 생활이여, 각기 직분이 있는데

女事繅織男耘耕 여인은 고치 켜서 옷을 짜고 남자는 김매고 밭을 갈구나.

願將此聲遍人耳 원컨대, 이런 소리 사람 귀에 두루 퍼지니

輟却琴瑟停竽笙 거문고에는 물러나 버리나 우생엔 머무른다.

聞來可識身上衣 몸 위에 입을 옷임을 알고 소문 듣고 왔지만

一絲成處千愁生 한 가닥 실 만드는 곳엔 갖은 수심 어린다네.

 

[주1] 여홍(女紅) : 여인들이 하는 바느질 등의 일을 가리킨다.

[주2] 우생(竽笙) : 삼국시대부터 널리 쓰던 관악기의 하나로 생황이나 소(簫)와 비슷한 악기. 처음에는 죽관이 36개였으나 뒤에 19개로 바뀌었다.

당시 거제여인들은 밤늦도록 고된 옷 짜는 베틀 작업에 고달파, 베틀과 비슷하게 생긴, 현악기 거문고는 보기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나 생황악기의 일종인 우생에는 그 화음이 아름다워 좋아했다고 김진규 선생이 시구를 통해 비유하고 있다.

민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각 지역에서 언제나 같은 기능을 하면서 전승되는 민요를 ‘고정민요’ ‘토속민요’라고 한다면,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 넘어 널리 불리고 기능이 일정하지 않는 민요를 ‘유동민요’ ‘유행민요’ ‘통속민요‘라고 할 수 있다.

‘고정민요’는 향토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발생하여 전수된 것으로 향토 문화성이 농후하고 음악적 특성에 있어서 유행민요보다 더욱 민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어느 한 지역에 한정되어 불려지고 있으니, 사설이나 가락이 비교적 소박한 대신 향토적인 특성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유행민요’는 이미 넓은 지역에 퍼져서 음악적으로 많이 세련되어있는 민요를 말한다.

음악적인 짜임새나 사설의 구성이 잘 되어서 주로 전문 소리꾼들이 부르기를 좋아하였고 이에 따라 더욱 널리 전파되었다. 또한 대부분 고정민요에서 유행민요가 파생되어 나오지만, 조선후기에는 전문적인 놀이패가 많아지면서 유행민요가 전국적인 노래로 탄생하기에 이른다.

‘경복궁 중건’ ‘동학혁명’ ‘신작로 개설’ ‘여객선 운항’ 등의 전국적인 교통망의 발달도 한 몫을 해, 여러 지역 민요가 서로 연결되니, 새로운 ‘유행민요’가 탄생하기도 하였고 또한 어떤 지역의 고정민요가 유행민요로 변하기도 했다.

이에 한민족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유행민요가 재탄생되기에 이르렀으며 민요를 통하여 시대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새로운 창조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거제도의 민요는 이러한 시대변화를 통하여 육지로부터 유입된 민요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 내용이 지역에 맞는 사설로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거제민요가 육지에서 유입된 민요가 많다지만, 사설이 어느 한가지로 고정되어 전하지는 않는다. 오랜 문구에다, 지역상황과 구연자에 맞는 새로운 창작이 더해졌고 구절에 따라 작중 화자가 바뀌기도 했다.

거제도에는 적은 수이지만 순수하게 지역에서 발생한 민요와, 육지의 영향을 받은 많은 민요들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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