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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백영호, 주목받는 변호사로 ‘우뚝 서다’
[사람들]백영호, 주목받는 변호사로 ‘우뚝 서다’
  • 배종근 기자
  • 승인 2014.07.21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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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대법원 파기환송 끌어 내
고향 거제 위해 법조인 길 걸으며 개업 3년만에 ‘괄목상대’
백영호 변호사(집무실에서)

쭉 뻗은 날씬한 키(191cm)에 부리부리한 눈. 얼핏 보면 배구나 농구 등 큰 키에 걸맞는 운동선수 아니면 모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하는 그 남자. 그러나 알고 보면 강남 사모님들의 사위감 1순위 법조인이다.

백영호 변호사(43)가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남다른 외모가 회자의 대상은 아니다. 그의 실력이 주목받고 있음이다.

올 들어 백영호 변호사가 수임한 민사 소송건이 대부분 승소하면서 그의 가치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특히 변호사 개업 3년차를 맞는 그에게 특별한 일도 일어났다.

배당의 문제로 불거진 소송건을 맡은 백 변호사는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이에 상대측에서 고등법원에 항소해 2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다시 대법원 상고를 통해 파기환송 시키며 결과를 완전 뒤집었다.

대법원에서 2심 결과에 대해 ‘원고 전부 승소’의 취지로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1심에서의 원고 일부 승소를 넘어서는 결과였다.

백영호 변호사는 “그 소송건을 생각하면 기분이 매우 좋다. 이기는 것이 확정됐기 때문이다”면서 “이런 경우가 형사소송에서는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민사소송에서는 거의 없었던 일로 알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이처럼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이제는 변호사로서의 자신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확실하게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다.

‘개꼬리 3년 묵는다고 소꼬리 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3년의 경험을 중요한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다.

기자가 비로소 기자라는 소리를 듣는데 3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을 보통 ‘사슴알이’라 표현하는 것처럼 백영호 변호사의 경우에서 보면 변호사도 제대로 역할을 하기까지는 3년이 걸리는 듯하다.

이처럼 개업 3년차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진가(眞價)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백영호 변호사의 법조인으로서의 길은 우여곡절이 깊다.

거제시 수월동이 고향인 백 변호사는 고현중학교를 거쳐 마산의 창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이공계 대학에 진학했다.

백 변호사가 서울에서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갑자기 법학을 선택한 것은 고향인 거제를 위해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당시만 해도 거제에 변호사가 많지 않아 법률적 문제로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군대를 제대한 뒤 다시 공부를 해서 부산대학교 법대에 진학했지만 법조인의 길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사법고시라는 게 아무나 쉽게 덜컥 붙을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대 초반에 만나 사랑을 키우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면서 당장의 생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더욱 공부를 힘들게 했을 터. 말은 안했지만 진중하게 진로에 대한 고민도 했을 법했다.

그런 그가 다시 법공부에 전념하게 된 계기는 첫째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느슨했던 자신을 다잡고 열심히 전념한 결과 지난 2009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연수원 생활을 거쳐 2012년에 ‘변호사 백영호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고도 고민은 있었다. 자신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무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인물이 지금의 사무장이다.

자신의 고등학교 1년 후배이며 같은 고시생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시험운이 없어 2차 시험만 몇 번을 보다가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그를 ‘삼고초려(三顧草廬)’한 끝에 모셔왔다.

“법과 관련된 일은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던 사무장을 몇 번을 찾아가서 설득시킨 것을 보면 백영호 변호사의 고집도 남다른 면이 있다. 그가 변호사가 되고 개업 3년만에 눈부신 성과를 내는 것도 그의 남다른 의지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백영호 변호사가 다른 모든 면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가고 있듯 처음 거제를 위해 법을 공부하겠다던 그 의지를 실천할 일이 남았다. 그리고 그 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 권민호 거제시장으로부터 '거제시 경계결정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받고 있는 백영호 변호사.

“변호사는 내가 선택한 일이고 하는 역할이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스트레스가 많다. 어느 정도 시간(경력)이 지나면 남의 일로 치부될 줄 알았는데, 잘 안된다.”

백 변호사는 아직도 의뢰인들의 고민을 자신의 일처럼 고민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고 했다. 주변의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는 건 의뢰인들의 일을 객관적으로 못 보기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건 아닌 것 같다. 항상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한다. 고민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스로가 말했듯 백영호 변호사의 스트레스는 의뢰인의 일을 항상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고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에게 변호를 의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거제 시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제를 위한 현재 진행형의 일은 또 있다. 그가 거제시를 위해 벌이는 다양한 활동이다.

그는 현재 ▲거제시의회 고문변호사 ▲거제문화예술재단 고문변호사 ▲거제시경계결정위원회 위원 ▲건강보험공단 판정위원회 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백영호 변호사가 이공계 학문의 보장된 길을 버리고 법을 선택하게 된 동기, ‘거제를 위한 봉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길을 위해 그는 그동안의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딛고 우뚝 섰다.

그런 백영호 변호사가 거제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지켜볼 일이다.

▲ 거제시 경계결정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회의 후 기념사진 촬영(왼쪽 두번째가 백영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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