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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를 거스르는 ‘천옥의 땅’ 상동들판
풍수를 거스르는 ‘천옥의 땅’ 상동들판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3.12.2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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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좋은 땅의 조건

마을이나 도시가 들어설 터를 정하고자 한다면 우선 두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산을 등진 평야의 터로 소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다.

마을의 뒷산은 ‘양기(陽氣)를 보호하는 산’이란 의미로 진산(鎭山)이라 부르고,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산다고 믿었다. 즉, 생기가 흘러드는 터에 마을이 입지해야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생기는 산줄기를 따라 흘러들기 때문에 뒤쪽에 산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산이 없는 평야나 진산이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라면 늙은 거목 ‘노거수’를 당산목으로 삼아 하늘의 가호를 받고자 했다. 따라서 생활의 안녕을 바라는 사람들은 산을 등진 땅을 주거의 터로 삼음으로써 신의 보호를 받고자 하였다.

산을 등진 터는 겨울에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고, 숲은 물과 흙을 보호해 미기후를 조절하며, 땔감인 연료까지 쉽게 얻을 수 있다. 또 앞쪽에 넓은 들과 강이 있다면, 여름에 바람이 시원히 불고, 관개용수뿐만 아니라 물고기까지 얻는다. 또한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완만한 경사도는 홍수의 피해를 줄이고, 양호한 일조량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농업, 임업, 어업 등의 산업에 있어 양호한 생태순환과 자연을 취한 곳을 최상의 복지(福地)로 여긴다.

다른 조건은 국세가 좋아 장풍(藏風)이 잘 된 곳이다. 부지의 뒤쪽에는 주산이 버티어 서 생기를 공급하고, 좌우에는 청룡과 백호가 유정히 감싸 안고, 전면에는 구불구불한 하천이 쉼 없이 흐르고, 그 너머로 안산이 자리해 바람을 막아주면 좋은 국세이다.

마을의 축이 되는 선은 북에서 남을 향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국세를 갖춘 곳이라면 축선이 다른 방향이 되어도 무방하다. 또 자연은 어떤 형상이든 생기가 응집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나 동물과 같이 어떤 물형에 비유될 때만 풍수는 기가 응집한 것으로 본다.

만약 자연 형세가 헝클어졌거나 산만해 보여 어떤 물형에도 비유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면 기가 없거나 쇠약한 터로 여긴다. 그러므로 국세와 함께 마을의 터가 어떤 유형과 비슷한 모양을 취하는 가를 중요시 보는데, 평양을 행주형으로 태안은 금계포란형으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상동 들판은 어떤 물형에 비유되는 곳일까?

상동 들판과 풍수

상동 들판과 풍수

살기 좋은 터란 삼면을 산이 에워싸되 주산은 높아도 상관없고, 좌우의 청룡과 백호는 터에 위압감을 주지 않을 만큼의 어깨 높이로 부지를 유정히 감싸안은 형국이 좋다. 즉, 청룡과 백호가 양쪽에서 손을 벌려 껴안듯한 모습으로. 입구인 수구산(水口山)으로 인해 부지의 내외가 격리된 채 공간이 안과 밖으로 대비되도록 한다.

따라서 부지 안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경관이 확트여 별천지에 왔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또 강 너머의 안산은 초승달 또는 일(一)자의 모양으로 높으면 눈썹이요, 낮으면 심장 사이의 높이로 가지런 한 것이 좋은데, 너무 높으면 터의 기운을 눌러 지기가 발동치 못하고, 낮으면 살풍이 불어 생기를 흩트려 버린다.

그런데 사방이 높은 산으로 가려져 있어 마치 함지박 속에 들어앉은 듯한 터를 풍수는 천옥(天獄, 하늘의 지옥)의 땅이라 부르는데, 이런 곳은 아침에 해가 늦게 뜨고 저녁에는 일찍 진다. 당연히 일조량은 적으며, 이곳저곳의 계곡에서 흘러든 물 때문에 공기는 습하고, 밤과 낮의 기온차로 높은 산과 계곡 사이에는 언제나 찬바람이 분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자연형세로 이런 천옥의 땅에는 사찰 터가 의외로 많다. 산속에 위치한 절은 물이 양 옆의 계곡에서 흘러내리고, 두 물이 서로 합쳐진 부근의 위쪽에 위치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넓은 들판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영혼이 모셔진 절터라면 양명한 기운보다는 음습한 기운이 서려야 제격이다. 그 결과 스님 중에는 호흡기나 신경계통에서 질병을 앓는 경우가 많고, 나이 든 스님이 암자에 기거하는 이유는 일조량과 통풍이 보다 좋기 때문이다.

상동 들판은 계룡산이 남서방에서 길게 병풍을 쳤고, 멀리서 북병산이 남쪽을 막아섰고, 북동방을 독봉산이 에워싸 삼면이 높은 산으로 막힌 답답한 곳이다.

또 서북방에 진해만은 열려있으나, 그 북쪽은 앵산이 가로막아 사면이 막힌 함지박 속에 들어간 느낌이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천옥의 땅에 가깝다. 하지만 거제의 진산인 계룡산은 물결이 일어날 듯한 수성체(水星體)이고 진산이라 높아도 흉하지 않다. 이런 산세라면 미적 감각이 뛰어난 예술가나 청렴한 선비가 배출된다. 하동주(河東州)의 서예, 유치환(柳致環)의 시, 양달석(梁達錫)의 그림은 ‘인걸은 지령’으로 계룡산의 정기로 태어나 고장을 빛낸 사람들이다.

하지만 말 잔등처럼 쌍봉이 우뚝 솟은 독봉산은 하동의 지세에 길하지 못하다. 독봉산은 북병산의 지맥이 문동리에서 땅 속으로 숨어든 후 평지룡이 재차 솟구친 산이다.

마치 물 가운데 홀로 핀 연꽃과도 같아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부른다. 하지만 독봉산은 해발 320미터의 높은 산으로, 상동 들판에서 보면 북동방을 가로막아 소위 압혈인 안산이다.

부지의 지기를 눌러 생기의 발동을 막으니 풍수적으로 불길해 비보책(裨補策)이 필요하다. 또 남동방의 문동저수지 쪽에서 생겨난 바람 역시 상동 들판을 통로삼아 진해만으로 빠지는데, 양 옆이 높은 산이라 낮과 밤으로 생긴 바람이 상동리를 휘감고서 세차게 불어온다.

결국 상동 들판은 일조량은 적고 바람이 세찬 자연적 결함을 가졌으니, 지명을 고쳐 부르거나 숲을 조성해 결함을 보완해 주는 풍수적 염승(厭勝)이 필요하다.

이것은 마을의 경우 풍수적 효과가 비록 불길해도 쉽게 이주할 수 없는 상황을 비보로써 문제를 보완하는 것으로 우리 조상들이 오랜 세월동안 터득한 삶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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