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3:23 (금)
거제민요 ‘어업노동요 1‘
거제민요 ‘어업노동요 1‘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8.12 1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요는 그 지역의 역사 지리 산업 풍습 제도 종교 등을 저변에 깔고 있기에 지역적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거제도는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환경을 고려할 때 ‘어업노동요’는 무엇보다 먼저 연구되어야할 대상이다.

거제도의 어업노동요(漁業勞動謠)는 남성들이 하는 ‘고기잡이요‘와 여성들이 하는 ’해물채취요’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렇게 구분하는 근거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집단의 성격차이 외에도 작업의 성격과 양상에서 어부어업과 채취어업이 서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업노동의 구분은 어업노동요를 기능상의 종류별로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나라 해안가 어촌에는 ‘배젓기 노래’ ‘멸치 후리기 놀래’ ‘그물당기기 노래’ 등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물당기기 노래의 경우 그물을 손으로 당기며 부르는 노래와 기계로 당기며 부르는 노래를 포함해, 배내릴 때, 닻을 올릴 때, 입출항 할 때, 그물을 당길 때, 그물의 고기를 퍼 올릴 때, 그물에서 고기를 털 때 등 작업에 따라 다양하게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어업현장에서 부르는 노동요는 매우 다양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런데 바다라는 지역은 초지역성을 띠기 때문에 어업노동요를 통하여 지역적 차별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업노동요는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어부들이 다 같이 뒷소리를 받는데 선소리는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하며 선소리꾼은 작업의 선도자이면서 지휘자 역할을 담당한다.

주로 여러 사람이 행동을 통일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율격을 지키는 선후창으로 불린다. 일이 빠르면 노래도 빠르고, 일이 느리면 노래도 느리다. 이렇다 보니 일의 종류마다, 일의 과정마다 노래가 뒤따르는 것이다.

사면이 바다인 거제도는 원래 여성요에 비하여 남자들의 주업인 뱃노래가 더 많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전해져 오는 남요(男謠)는 아주 적다. 이는 노래가 남성보다 여성의 전유물인 까닭인지라, 어업에 관한 민요도 대부분 여성들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다.

노동요(勞動謠)는 민중들이 노동의 고됨을 덜고,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부르는 민요를 일컫는다. 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써 노래를 활용해, 우리가 어떤 일을 효과적으로 해내고자할 때 알맞은 연장을 활용하는 것과 같은 시각에서 이해해도 좋다.

노동요의 노래들은 각각 그 일의 성격, 곧 기능에 알맞도록 형성되어 있다. 작업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알맞도록 구성된다. 어업노동요는 남성들이 하는 어부어업과 여성들의 갯가어업으로 나눌 수 있고, 어업민요에는 '그물당기기·배닦는소리·닻감는소리·노젓는소리·그물올리는소리·고기푸는소리·배치기소리·해녀의 노래' 등이 있다.

어업노동요는 어민들의 생활공간인 바다에서 바닷일과 함께 전승되는 노래다. 일노래가 대부분 그렇듯이 일의 종류와 과정에 따라 어로요(漁勞謠)도 다양하게 불리어진다. 노래만 따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어업노동요가 어민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잡이는 종류가 대단히 많지만,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내려 잡는 방식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 위에서 파도와 싸우며 작업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집단성이 강조된다. 일을 위한 행동의 통일이 곧 공동의 장(場)을 형성하고, 나아가 생명공동체를 만든다. 이로부터 비로소 동질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어로요(漁勞謠)를 통해 이루어지거나 강화된다. 우리 거제도는 예로부터 많은 부분을 바다에 의존해 살아왔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정서가 어린 어업노동요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설이 단조로워도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고기잡이 노래를 보존하고 계승발전 시켜야하겠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어구였던 어량(漁梁) 또는 어전(漁箭)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등 여러 문헌에서 많이 기록되어 있다. ‘어전(漁箭)’은 고기가 들도록 물속에 싸리·참대·장목 등을 둘러 꽂아 둔 ‘올(魚兒)‘로써, ‘어량(漁梁)’ 또는 어사(魚沙)이라고도 한다.

'어전(漁箭)'은 '어살'(魚沙兒)로 음차 표기되는 단어로 대나무를 물속에 심어 물고기를 몰아 잡는 방법을 말하며, 어조(漁條) '올'(魚兒)로 음차 되는 '어조'는 물고기가 다니는 통로에 그물을 설치하는 것을 일컫는다.

조선시대의 어업인 어전(漁箭), 방염(防簾), 주목망(柱木網), 수조망(水繰網), 안강망(鮟鱇網), 유망(流網), 대부망(大敷網), 각망(角網), 호망(壺網), 소태망(小台網), 양조망(楊繰網)등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사용하였던 어구이다.

따라서 거제도에도 이와 유사한 어업이 발달하였을 것이다. 조선초기 거제도는 대구, 숭어, 문어, 청어 미역, 우무, 전복, 홍어, 준치, 조기, 농어, 낙지를 토산물로 지정하여 진상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속찬지리지 등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런 수산물이 대체적으로 많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어구로서 명태는 자망(刺網), 연승(延繩 주낙)을, 조기는 지예망(地曳網), 안강망(鮟鱇網)을 사용하였고, 대구는 어장(漁場 정치망)에서, 멸치는 경사가 완만하고 해저가 평탄한 연안에 그물을 쳐서 바로 해변으로 끌어당겨 고기를 잡는 지인망(地引網)을 각각 사용하였다.

조선 영조 때 간행한 경상도 어업에 관한 설명서 "균역사목 (均役事目)"에서 살펴보면 영남의 고기잡이 방법인 ‘어채(漁採)’에는 어장(漁場 정치망의 일종), 어조(漁條), 방렴(防簾) 세 가지가 있었다.

물고기가 모여드는 수십 리 사이를 어선이 둘러싸는 곳은 어장(漁場), 그물을 설치하여 물고기를 기다리면서 어획하는 ‘어장조(漁場條)’, 그리고 방렴(防簾)이란 대나무를 엮어 발(簾)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기둥을 삼아 울타리를 만들어 어로를 가로 막아 고기를 잡는 방법이었다.

한편 어군(魚群)이 먼 바다로부터 폭주하는 길이 있어 노조(路條)와 같은데, 여기에 배를 대어 그물을 설치하고 고기를 잡는 것을 어조(漁條)라 한다. 경상도지방에서는 주로 대구나 청어를 어획한 정치망이었던 어장(漁帳)을 설치하는 어업을 어조라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의 자료에 의하면 그러한 어업을 한 어장(漁場)에는 내강조(內江條)·외포조(外浦條) 등의 고유의 명칭이 붙어 있었다.

정조(1777년) 5월15일 좌의정 김상철이 아뢰기를, “웅천(熊川 진해) 지방에서는 바다에 발을 쳐서 물고기를 잡고, 거제(巨濟) 지방에서는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배로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다.”고 하였다.

이 당시 거제도는 ‘어장조(漁場條)’ 즉 ‘정치망(定置網)’, 어장(漁場)의 일종으로, 배를 이용해서 일정한 자리에 그물을 쳐 놓고, 고기떼를 그 안으로 끌어들여 잡는 어업 방법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거제도 지역의 어업방법 ‘줄살‘은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 경상도지방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대규모의 정치망(定置網)인데 줄시(乼嵬)라고도 한다.

1905년에 발행된 〈한국수산업조사보고〉에는 부장(浮帳)이라 칭하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지어진 〈균역해세(均役海稅)〉의 <균역사목(均役事目)>에는 영남지방에서 고기잡이에 쓰던 대표적인 어법의 하나로 어조(漁條)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조는 정치망을 설치해놓고 어선이 어망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고기떼가 망중(網中)에 들어가는 기회를 보아 양망(揚網)하여 어류를 잡는 것을 말한다.

1908년에 간행된 〈한국수산지 韓國水産誌〉에는 전통적인 주요 어구(漁具)와 어법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 줄시의 구조와 어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줄시는 주로 대구와 청어를 잡기 위해 경상도 연해, 특히 거제도와 가덕도 부근에서 많이 설치되었으며, 사용한 배는 노와 돛에 의해 이동하는 "떼배" "통구미"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다.

어망(그물)은 원망(垣網)·수망(袖網)·어포망(漁捕網)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포망은 갈피류(칡)로 제조된 망사, 원망은 새끼(짚), 수망은 갈피와 짚으로 제조되었으며, 어망은 밧줄과 닻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19세기 말엽부터 일본인들의 지역 내 어업활동이 시작되면서 우리나라 어업은 개항 이전에 비하여 양상이 상당히 달라졌으며 주로 일본식 어구, 어법을 도입하기 시작하여 재래식 어업법이 쇠퇴해져 갔다.

어망(그물)도 우수한 면사망(麻絲網)으로 대체되기 시작하였고, 어선의 동력화 기계화를 계기로, 기선건착망, 기선저인망, 등의 근대적 어구가 꾸준히 증가하였다. 1921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건착망(巾着網), 타뢰망(打瀨網), 권현망(權現網), 시자망(施刺網) 잠수기(潛水器) 등도 새로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가장 많이 보급된 것은 안강망(鮟鱇網)이었는데 10년 만에 4.5배 이상으로 증가되었다. 이에 일본풍의 후렴구는 안강망(鮟鱇網)어선이 일본에서 들어와 보급되면서 함께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서해바다의 조기잡이, 남해바다의 멸치잡이, 동해바다의 명태잡이는 각 바다를 대표하는 3대 전통어업으로서 이를 배경으로 어업노동요가 대부분 발생했다.

특히 조기잡이가 왕성하던 시절의 서해바다는 풍부한 노동요의 모태였다. 거제도의 어업노동요는 대구와 청어를 잡기 위한 정치망(定置網)과 멸치를 잡는 지인망(地引網)에서 풍부한 어업노동요가 발생 발전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 [일본풍 후렴구 : 세노야(せえの), 시매야(しめる), 마이다(まい(だ)る), 도고야(とうごう) 등이 있다]

● 자료 내용 中에, ‘민요’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8집>에서 발췌한 것과 직접 녹취한 부분을 함께 실었고, 더하여 해설 논평 편집하여 재구성했습니다.

1) 거제민요 "챗배 노래"

거제어업노동요 챗배노래 中, "애야 애이디야" 소리는 그물 당길 때도 부르고 노를 저을 때도 불러 그 기능이 둘 이상인 경우이다. 여럿이 공동작업 할 때 행동을 통일시켜 일의 능률을 극대화한다.

"받어라 받어라 연방연방" "받어라 받어라 물캉살캉 실어도라" "받어라 받어라가운데 조아줘라" 노래하는 가운데 사설을 통해 작업을 지시하고 필요한 사항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일하는 요령을 쉽게 터득할 수 있어 편하다.

작업의 성과를 높이는데 실질적으로 기여를 하는 것으로, 이것이 노동요의 실무적 기능이다. 앞소리꾼(선창자)이 "올리라, 저어라, 불넣어라, 내리라"등의 작업에 꼭 필요한 말로써 지시하면, 뒷소리꾼이 이를 받아 "어어이" 등으로 화답하며 지시에 따른다. 규칙적인 리듬감이 선원들의 행동에 일체감을 심어준다.

노래의 리듬이 서로의 행동을 맞추도록 해주는 구령과 같은 구실을 해주기 때문이며, 일꾼들이 일을 보다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노래는 기본적으로 놀이의 일종이라, 일상적인 삶의 밖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놀이 공간은 삶의 긴장이 차단된다.

현실적 삶의 긴장을 벗어날 때 우리 마음은 여유와 즐거움을 맛볼 수가 있다. 몸은 삶의 현장에 있으나 기분은 놀이의 공간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어업노동요는 빠른 동작을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 선후창이 같은 길이로 주고받는 1가보격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농업노동요는 2가보격을 많이 쓴다.

1가2가보격 노래는 후렴이 반드시 있다. 아래 두 번째 노래 '만선하여 마을로 오며 부르는 노래'에는 농업 노동요가 유입 혼재되어 있다. 어민들은 민요를 부르는 동안 생산의 즐거움을 듬뿍 누리는 한편, 부딪힌 현실과 피어오르는 희망을 노래로써 드러내, 음악과 문학을 동시에 맞보는 희열을 느낀다.

< 챗배 노래 > / 앞소리 최태운, 뒷소리 설정규 김덕문 김정식, 일운면 망치리 망치.

① 멸치를 퍼 올리면서 부르는 노래.

[앞소리군] 받어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받아만 실어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연방연방(빨리빨리)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자꾸우 받어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물캉살캉 실어도라(수면과 뱃전과 가지런 하도록 멸치를 많이 잡아 싣도록 해 달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받어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연해연방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조아라. 가운데 조아줘라(그물을 조여서 올려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연해연방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올리라 [뒷소리군] 어어이.

 

② 만선하여 마을로 오며 부르는 노래

[앞소리군] 아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동무는작아도 소리는크네에(‘에’가 저음으로 변하고 여음처럼 소리낸다).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일락서산에 해떨어지고 월출동풍에 달솟는다아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저어라. 이 사람들아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저어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관보야, 불 넣어라. 관보야, 불 넣어라.(관보는 선주 이름. 멸치를 삶아 건포하기 위해서 불을 넣어라). 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동해동천 돋은불에 이슬깨줄 내몰랐네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오늘해가 다젓는가 골골마다 연기나네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관보야, 미수리 산대미 다 내라라. 불 많이 옇어라. 솥에 다 옇어라. 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우리네선주가 자수가좋아 대끝에다 기를달았네(우리 선주가 재수가 좋아서 멸치를 많이 잡아 돗대 끝에 만선의 표시인 봉기를 달았네).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애야디야디야 디이~야.

'챗배'란 횃불(뒤에는 카바이트 가스 불로 바뀜)을 켜서 멸치를 모아 키(채이) 같은 들망이란 그물을 놓아서 고기를 잡는 배인데, 오십 년 전까지 망치 마을 앞 바다에서 성행하던 어로 방법이다.

횃불을 달아서 물속에 멸치가 모인 것이 보이면, 선장이 ‘이유하자’하는 명령에 따라 7,8명의 선원이 뱃전을 굴려서 물결을 일게 하여 고기를 몬다.

그 다음 ‘채를 놓아라’하고 고함을 치면, 그물을 놓고, ‘불을 돌려라’하고 명령을 하면, 횃불을 그물 놓은 곳으로 옮기면서 어군(魚群)을 유인하는 한편, 맞은 편 배에 반디라는 잔 그물을 놓고 ‘깃대를 빼라’고하면 채 그물에 꽂혔던 장대를 빼고, ‘그물을 조아라’라고 하면 선원이 모두 그물을 잡아당겨 올리면서 족대로 멸치를 퍼 담는다.

〈챗배노래〉 어업노동요는 주로 멸치를 잡는 챗배에서 그 절차에 따라 부르는 노래이다. 그물을 당길 때 부르는 노래는 주로 여음으로만 구성된 2박자의 빠른 노래이다. 멸치를 퍼담는 노래도 “받어라 받어라 연해연방 받어라”고 하는 사설이 단조로운 노래이다.

사설 마지막의 ‘크네에’와 ‘달 솟는다아’에서 ‘에’·‘아’가 갑자기 저음으로 변하고 여음처럼 소리내는 특징이 있다. “아애야 애이디야 애야 애이디야 / 동무는 작아도 소리는 크네에 / 애야 애이디야 / 일락서산에 해떨어지고 월출동풍에 달 솟는다아”에서와 같은 여음은 어업노동요의 것이다.

앞소리군은 보통 멸치 몰이꾼 선장이 부르는데 가창력이 뛰어나며, 뒷소리군은 그물을 당기는 사람들이 동작에 맞춰 후렴구를 힘차게 부른다.

이 작업은 낮에도 하지만 보통 자정쯤, 밀물 때, 그물을 놓고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업은 동이 틀 때까지 이어진다. 1960년 이후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현재는 일과 분리된 민요만이 전승되고 있다.

 

2) 조기잡이 그물질 소리 / 장종천, 둔덕면 학산리 큰마을

이 민요는 망선(網船)에서 그물을 당길 때 부르는 노래로, 그물을 당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르기 시작한다. 그물을 거의 다 잡아당길 때까지 이 민요의 전반부는 계속 되풀이 되며, 사설이 약간씩 바뀌어 계속 부른다.

그물의 고기를 퍼 올릴 때, “담아대라 담아대라” “한배실었다 어야디야 네싣고가고 딴넘오이라이” 마지막 부분에서, 운반선에 생선을 가득 채우고 다른 배에 다시 싣는 만선의 기쁨이 전해오는 듯하다. 선창 즉, 앞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뒷소리를 받는 식으로 부른다.

이 민요는 전라도 칠산 앞바다에서 조기잡이하면서 배운 것이라고 구연자(제보자) 장종천씨가 전한다.

후렴구 ‘어야디야(어야듸야)’는 ‘어기야디야’의 준말로, 뱃사람들이 노를 저으며 흥겨울 때 내는 소리인데 농사나 무거운 돌을 운반할 때 여럿이서 호흡을 맞추는 소리이기도 하다.

'세노야(せえの)'는 그물을 당길 때나 노를 저을 때 부르는 소리인데 일본말의 변형이다. 인부들이 힘을 모아 물건을 옮길 때 내는 소리로, 우리나라 ‘영차’와 같은 뜻이다. 후렴구로 사용되는 또 다른 일본말 '시매야‘는 ’しめる(죄다. 조르다)'의 변형이고, '마이다'는 '감다'라는 일본어 'まい(だ)る'가 차용되어 유입된 후렴구이다.

[앞소리꾼] 어야디야 어~헤 땡볕에 다녹는다. 그물깨자 그래 가~ 그물 쌔리보자.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허 어야디야 오호 (그물을 당기기 시작함)

[앞소리꾼] 이그물로 때리거등 억수만대 올라오고 (그물을 당기거든 억수만의 고기가 올라오고)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오호

[앞소리꾼] 오동추야 달밝은데 (梧桐秋夜明月 오동나무 잎이지는 가을밤에 달은 밝은데)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허 어야디야

[앞소리꾼] 고기가안들먼 임생각안날낀데 고기가 든께 임 생각난다.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허 어야디야

[앞소리꾼] 이고기로 싣고서는 짐대끝에다 봉기달고 (돛대 끝에 봉기(鳳旗)를 달고)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앞소리꾼] 그물로 다대리다 간다 조라보자~ (조여 보자. 여기서부터 급템포로 노래한다. 고기가 바다 위에 보일 정도로 그물을 올렸을 때다)

<여기부터 앞뒤 소리꾼이 계속 빠른 템포로 이어 부른다>

[두 패로 나뉘어 다함께]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세노야 세노야 (세노야(せえの)는 우리나라 ‘영차’와 같은 뜻)

[앞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담아대라 담아대라 담아대라 저거전부싣자

[두 패로 나뉘어 다함께]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앞소리꾼] 한배실었다 어야디야 네싣고가고 딴넘오이라 (너는 싣고 가고 딴 놈이 오너라)

[두 패로 나뉘어 다함께 반복]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호어~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 어로작업 현장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되고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다. 파도와 같은 외부적 조건의 극복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기떼를 그물로 가두고 건져 올리는 긴박한 작업은 어업노동요의 사설을 빈곤하게 하기도 하고, 소리를 만들어내는 절대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그물을 당기거나 조이거나 싣거나 털 때에는 단순 반복구를 이어가며 지속적인 흥겨운 리듬이 필요하다. 작업현장을 독려하기 위해 앞소리꾼이 그때그때마다 작업 지시 사설을 힘차게 외치기도 해야 한다.

후렴구가 끊기었다가 이어지기도 하며 나중에는 누가 선소리꾼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고, 선후의 소리가 혼합되어 율동을 맞추기도 한다. 작업자가 많아 각자의 일이 따로 있는 경우에는, 앞뒤 소리가 겹쳐 불러져 마치 이중창, 삼중창의 아름다운 화음이 바다에 울려 퍼지기도 한다.

 

3) 그물 당기는 소리(세노 시매 소리) / 연초면 서승재 외.

앞소리꾼 서승재씨가 먼저 선창하면 뒷소리꾼 7인이 ‘세노야(せえの 영차)‘를 외치며 합창을 했다. 역동적인 가락으로 부르는 후렴구 ’세노야‘는 박자가 정확하고, 선율이 밝으며 명랑하다.

또한 후렴구 ’시매헤‘는 일본말 しめる(죄다. 조르다)의 변형이다. <그물 당기는 소리>는 <멸치 후리는 소리>로도 정리 할 수 있으며, 계속되는 반복구를 되풀이 하다가 가끔 사설이 들어가는데 이 사설은 단조로운 내용일 뿐이고, 그 내용도 작업 지시에 그치고 있다.

[앞소리꾼] 에~요 세노야 어~어~요 [뒷소리꾼 후렴구] 세노야(せえの)

[앞소리꾼] 어어~어~야~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어~어~야~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어~어~야~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에~야 어~허~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어 어~헤~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헤 시매~ 어~헤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헤 시매~ 어~헤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오~이~라 [뒷소리꾼] 오이라

[앞소리꾼] 오~이~라 [뒷소리꾼] 오이라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에~헤 [후렴] 시매~헤 [앞소리꾼] 어~샤 [후렴] 시매~헤(しめる)

[앞소리꾼] 요~하 [후렴] 시매~헤 [앞소리꾼] 요~하 [후렴] 시매~헤

<이후 앞뒤 소리가 계속 겹쳐져 부른다.>

[앞소리꾼] 오이~야 [뒷소리꾼] 오~이~야 [앞소리꾼] 해넘어간다 [뒷소리꾼] 오~이~야

[앞소리꾼] 아이구야 [뒷소리꾼] 아이구야 [앞소리꾼] 아이구야 [뒷소리꾼] 아이구야

[앞소리꾼]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요~하 시매~헤

[앞소리꾼]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요~하 시매~헤

[앞소리꾼] 오~이~야 [뒷소리꾼] 오~이~야

[앞소리꾼] 오~이~야 [뒷소리꾼] 오~이~야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빨리 노~오~세~ [다함께] 어~~어~~ 시매~에

4) 그물 당기는 소리(도고 소리) / 연초면 서승재 외.

‘도~고야‘는 일본말 ’とうごう‘ 통일 투합, 즉 ’서로 맞추어라’라는 지시어가 후렴구로 변형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물을 조으는 과정에서는 특히 이러한 현상이 심한데, 이때는 앞소리꾼이나 뒷소리꾼의 구분 없이 저마다 뒷소리를 따라 하거나 순차를 어기면서 후렴을 부르게 된다. 그래서 소리가 뒤섞이면서 다성적(多聲的) 선율(旋律) 현상을 자아낸다.

이러한 현상은 작업의 순간성과 집중성, 그리고 통일성의 복합적인 상황을 요구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작업의 특성 때문에 빚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긴박하고 힘든 작업 상황에서는 누구나 저마다 한 소절씩의 소리를 하기 때문에 앞소리꾼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과정에서 소리가 섞이고, 한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소리가 미리 나오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농업노동요에서 선소리꾼이 뒷소리를 물고 앞 사설을 전개하는 현상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앞소리꾼] 어~허야 [뒷소리꾼] 어~허야

[앞소리꾼] 어~허 어~야 어에~어이 어쌰! 나가거라 [뒷소리꾼] 어쌰! 어쌰!

[앞소리꾼] 쭉 나가거라 [뒷소리꾼] 어쌰! 어쌰!

[앞소리꾼] 어이~야 어기야야 어~이~여 [뒷소리꾼] 어기~야~야

(여기부터 뒷소리꾼이 계속 앞소리를 물고가고 앞소리꾼도 뒷소리꾼의 소리를 물고 이어간다)

[앞소리꾼] 어기야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앞소리꾼] 어기~야야 어~어~어~야~ [뒷소리꾼] 어~허 어이야

[앞소리꾼] 어서 몰아라 어~허 어이야 [뒷소리꾼] 어~허 어이야

[앞소리꾼] 어기 야야 어~기~어~야 요마이~또 어기야야 [뒷소리꾼] 요마이~또 어~허

[앞소리꾼] 요마이 또 어~허~어 [뒷소리꾼] 어~허 어~이야

(여기부터 계속 앞뒤 소리가 겹쳐 부른다)

[앞소리꾼] 어~샤 어~기자야 (짧고 강하게) [뒷소리꾼] 어~허야~

[앞소리꾼] 쭉~ 잡아주고 어~샤 당겨주고 [뒷소리꾼] 어~허야~ 어~허야~

[앞소리꾼] 어기야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앞소리꾼] 어샤 당기고~ 어샤 댕기고~ [뒷소리꾼] 어~허야~ 어~허야~

[앞소리꾼] 어~어 예~야~ 오기야야 어싸! 댕기주소 [뒷소리꾼] 어~허야 어~허야

[앞소리꾼] 어싸! 댕기주소 나주기가 나간다 [뒷소리꾼] 어~헤야~

[앞소리꾼] 이쭈기 나간다 탈탈 털어주고 [뒷소리꾼] 어~헤야~

[앞소리꾼] 어~헤야 어어 어허야 어헤야~ 어~어 어~어~ 이히~헤야 [뒷소리꾼] 이히~헤야

[앞소리꾼] 어기야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반복이 이어지면서 앞뒤 소리가 겹쳐 불린다)

[앞소리꾼] 어~허야 어어 어허야 [뒷소리꾼] 어허헤야~

[앞소리꾼] 어~어 어~어~ [뒷소리꾼] 어허헤야~

[앞소리꾼] 어~이 잘 잡고 [뒷소리꾼] 어허헤야~

[앞소리꾼] 얼씨고 좋다 어헤야 [뒷소리꾼] 어헤야 어기자야

[앞소리꾼] 어~어 허야 어~여야~어허허~ 어~허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어허허야

[앞소리꾼] 어허어허 에어헤야 어~어~어헤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어허허야

[앞소리꾼] 에이 얏노 어~기야야 어허얐노 [뒷소리꾼] 어~어 어어~어허 어~어 야야

(앞뒤 소리가 겹쳐 불린다)

[앞뒤 소리꾼이 계속 물고 반복해서 부른다] 어~어 허야 어~어~어헤허~(반복) 어~허야 어기야야~(반복) 에잇! 야야~ 어~어~어허야~어어 야야야~(반복)

5) 그물 조우는 소리(시매 소리) / 연초면 서승재 외.

‘시매다(しめる 죄다 조르다)'는 긴박한 어로 현장에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행동에 주의하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실제 작업 현장에서는 이 순간이 가장 긴박하게 움직이는데, 순간의 실수로 잡은 고기를 다 놓쳐 버리는 수도 있고, 일꾼이 다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시매헤’ 소리는 전체의 조화 속에서 작업을 차분히 진행하는데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어부는 각자 후렴구만을 부르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앞사설은 거의 없고 급박하게 진행되는 일의 박자를 맞추기 위하여 후렴을 지속적으로 부른다.

생선이 많이 잡히는 날에는 하루 8시간 이상을 계속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사용되는 후렴구는 '애이라차 에~야' 이다. 이 소리만을 계속 반복해서 부르는데, 이는 다른 소리와 달리 특히 일의 통일성을 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소리가 없으면 작업이 진행되지 않거나 최소한 작업의 능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앞소리꾼] 어~허 요이라 [뒷소리꾼] 어~허 요이라

[앞소리꾼]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요~하~ 시매~헤

[앞소리꾼] 아이~야 [뒷소리꾼] 아이~야

[앞소리꾼] 아이~야 [뒷소리꾼] 아이~야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이~로 요하~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시매~헤

[앞소리꾼]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시매~헤

[앞소리꾼] 아~아야 시매~헤 [뒷소리꾼] 시매~헤

[앞소리꾼] 어이~타 앞이 볼록 [뒷소리꾼] 어이타~

[앞소리꾼] 상살로 지이고 [뒷소리꾼] 어이타~

[앞소리꾼] 어이~타~ 어이타 어이~타 [뒷소리꾼] 어이타~

[앞소리꾼] 어이~타~ 어이타 어이~타 [뒷소리꾼] 어이타~

[앞소리꾼] 어이타 시매로 에~~이~~

6) 노젓는 소리 / 둔덕면 장종천.

원래 <노젓는소리>는 그물을 싣고 나가 멸치 떼를 둘러싸서 해안으로 돌아오면서 노를 저으며 하는 소리인데, 사공이 뒤에 있는 한 노를 잡고 소리를 메긴다. 노는 모두 다섯 개로 뒤에 한 노가 있고 양옆에 두개씩 있었다.

이때 노젓는 소리는 선후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사설은 선창자가 뒤 후렴구(“어여차 어여차“)를 후창자 여러 명이 함께 합창하였다. 1970년대에 기계선이 나왔지만 경제적으로 모두 기계선을 탈 수는 없어서 그 뒤에까지 노젓는 배가 남아 있었다.

장종찬씨가 구연한 이 노래는 노가 하나 있는 나룻배를 몰고 갈 때나 근해 연안 어업을 할 때 사공이 독창(獨唱)으로 부르는 민요이다.

책만 아는 서생보다 우리새끼 배불리 먹이는 노젓는 일이 훨씬 낫다고 사설에서 암시하고 있다. 이 노젓는 사설은 정해진 것이 없어, 사공마다 전혀 다르게 부른다고 전한다. 또한 2음보의 사설과 함께 노래 곡조가 경쾌하고 동적이라 신명이 났다.

“샛바람아 불어라 우리재주 들어간다 이어~샤 이어~샤 어~야샤 어~허 어~야

저기 가는 저 할멈 어~야 어~야차 어야차 어야차 허~야 허~야

저 양반은 책을 갖고 어~야 어야차 어야차 어여차

저거 할라꼬 저거친다 어~야 어야차 어야차 어여차

매~이~ 저어라 어~야 어~야 저아라 어야차 어야차 어야차 어야차

우리 새끼 얼릉가자 쌔기 저어라 어~야 어야차 어~야 어야차 어야차

우리 재주 어서가자 어~야 어야차 어야차 어여차 어야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