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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상징 문어(文魚)
선비의 상징 문어(文魚)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9.1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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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文魚)는 한자어로는 8개의 발을 의미하는 팔초어(八梢魚)라 하였고 그 밖에 장어(章魚)·팔대어(八帶魚)라고도 하였다. 참문어와 구별하기 위해 물문어(水文魚)라고도 부른다.

두족류 중에서 가장 크며 몸길이 3m, 몸무게 30kg인 세계 최대형 문어도 있다. 외투막은 짧은 달걀 모양으로 몸 표면에 작은 유두(乳頭)가 많다.

거제도의 문어낚시는 묵직한 손맛을 볼 수 있는 선상 최고의 희열이며, 문어숙회는 입 속에서 씹히는 감미로운 맛과 더불어 간단한 초장만 있음, 술안주꺼리로는 안성맞춤이다.

문어라는 말은 어찌하여 글월 "文"자를 쓴 '文魚'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결코 글 쓰는 물고기는 아니다. 문어는 먹물 통을 가지고 다닌다하여 문방사우와 관련지어 문어라 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어는 그물과 같은 얼룩무늬가 온몸에 둘러 있다.

그래서 무늬가 있는 물고기라 하여 무늬 '文'자를 써서 '문어(文魚)‘ 라고 이름 한 것이다. 글월 '文'자는 원래 무늬 '文'자였다. 웃옷에 무늬가 그려진 모양을 형상한 자(字)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이 편찬한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원나라의 문헌 <여황일소(艅艎日疏)>를 인용하여, “문어가 사람의 머리와 닮아서 문어라 한다”고 했다.

이 짧은 구절의 해설로 문어의 생긴 모습이 사람의 민머리처럼 생겨서 ‘믠어’라 부르다가 한자로 '문어'라 쓰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조선 후기의 홍만선이 저술한 <산림경제>의 구급편에는 “산후에 발열할 때는 문어를 가루로 만들어 콩잎국(藿羹)에 타서 먹인다”는 민간 처방이 나와 있다.

19세기 초의 <규합총서>에는 “문어 알은 머리, 배, 보혈에 귀한 약이므로 토하고 설사하는 데 특효하며 쇠고기를 먹고 체한 데는 문어 대가리를 고아 먹으면 낫는다”고도 한다.

문어는 선비의 상징이다. 우리 조상은 문어(文魚)란 이름에 ‘글월 문(文)’ 자를 달아주었다. ‘글 좀 읊을 줄 아는, 즉 상식과 양식을 갖춘 물고기’라는 뜻이다. 큼지막한 (대)머리는 영리한 두뇌를 상징하고, 위협을 느낄 때 내뿜는 먹물은 탄소 가루 성분의 붓글씨용 먹물과 연관 지었을 수도 있겠다.

중국에서 장위(章魚)라고 부르는 문어는 한국의 고유한 작명이다. 여기에서 우리 조상들의 유머도 동시에 보인다. 문어의 그 큰 머리통에서 '지성'을 상상하고, 성질난 문어가 발사하는 그 시커먼 먹물에서 '잉크'를 연상하여 새삼 어족魚族에게도 문자 文을 붙여 해학을 즐겼다.

또한 옛 선조들은 문어 대가리가 스님과 닮았다며 ‘스님 낙지(僧絡蹄)’, 또는 ‘고승어(高僧魚)’라고 부르기도 했다.

문어는 지극히 자식을 사랑하며 성애를 즐기지 않는다. 금욕파인 것이다. 다만 후손을 잇기 위해 딱 한 번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3년여의 짧은 생애를 마치는데 짝짓기를 한 암놈은 수천~수만 개의 알을 낳은 뒤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며 알을 노리는 적들을 끝까지 물리친다.

그런 후 힘을 잃고 숨을 거둔다. 수컷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쇠약해져 죽는다. 이렇게 죽음에까지 이르는 문어의 자식사랑은 정녕 한량없다고 할 수 있다.

문어는 외줄낚시와 문어단지를 사용해 잡는데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 등지에서 조업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은 문어단지를 이용하는데 긴 모릿줄에 여러 개의 문어단지를 매달아 해저에 투입하여 문어를 잡는 어구이다.

문어의 어둡고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습성을 이용해 문어단지가 고안되었다. 미끼도 없이 해저에 가라 앉혀 놓으면 문어는 자기 집으로 생각하고 들어가 있다.

원래는 큰 대나무를 잘라 만들었으나 점차 질그릇으로 만든 단지를 사용했고, 1960년대 후반부터 플라스틱 문어단지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이것으로 문어를 잡는다. 질그릇 문어단지는 높이가 20cm 내외이고 입구의 직경은 10cm 정도이며, 밑바닥에는 3cm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모릿줄의 길이는 300m 정도이며, 3m 간격으로 약 100여개의 문어단지를 매달았다. 보통 소형어선에 1,000~1,500여개를 실고 다니며 조업을 한다. 문어는 주로 밤에 활동하므로 오후에 문어단지를 투입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가서 걷어 올려 단지안의 문어를 잡아낸다.

옛날 선조들은 제사나 선조의 사당에 문어를 올렸고, 또한 술안주로는 문어가 최고였던 모양이다. 각종 많은 시(詩)에 맛나는 안주꺼리로 등장한다.

 

1) 짠 문어를 주신 은혜에 사례하다[謝咸留後惠文魚] / 성석린(成石璘 1338~1423).

海魚紛鉅細 바다 물고기는 크기가 다양하며

此物最佳哉 참으로 아름답도다.

聞說巾尤美 들으니 두건머리(문어)가 특히 맛나다는데

誰敎露頂來 누가 매우 좋은 술에 오라고 하리오?

2) 문어(文魚) / 이응희(李應禧 1579∼1651)

圓頭長數尺 둥근 머리에 길이는 두어 자,

形色異難知 모양은 이상해 알기 어렵네.

斫罷生金液 칼로 썰면 금빛 액이 나오고

炮成泣玉脂 불에 구우면 흰 기름 지글지글.

烹龍何足貴 용을 삶은들 무어 귀하리오.

湯鳳亦無奇 봉을 끓여도 대수로울 게 없어라.

擧世張高宴 온 세상이 잔치를 열 때마다

佳肴必汝期 좋은 안주로 이것이 꼭 필요하지.

조선 중기의 문인 이응희는 옥담시집(玉潭詩集)에 물고기에 대한 오언시를 수록하고 있다(玉潭私集, 萬物篇 魚物類). 조정에서는 그의 학식이 고명함을 알고 중용하려 했으나 거듭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선조인 안양군(安陽君)이 연산군 때 원사(寃死)를 당하면서 유언으로 관직에 나아가지 말라고 하여 그 유훈을 따른 것이라 한다. 옥담사집의 만물편(萬物篇)은 시인이 접한 각종 사물을 오언 시(詩)로 적어 묘사하고 있다.

사물을 25종으로 나누었으며, 꽃과 과일 곡물 채소 어류 의복 가축 새 곤충 음식 등의 사물을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특히 어물류(魚物類)에는 동해에서 생산되는 종류(東海産類), 서해에서 생산되는 종류(西海産類), 강어류(江魚類), 천어류(川魚類)로 나누어 총 25종의 물고기를 연작시로 남겨 전한다.

3) 예전에 보낸 문어에 사례하며[又謝惠古之文魚] / 신광한(申光漢, 1484~1555).

應憐老子口無齒 노자가 입에 이빨이 없음을 가엾게 여겨

爲寄珍鮮腹裏腴 귀한 생선을 보내오니 배가 든든하다

加餐味過張蒼乳 장창의 젖보다 맛이 좋아 밥이 더 먹히고

兼嚼文魚病自蘇 문어를 씹어 먹으면 병든 몸이 되살아난다네.

[주] 장창(張蒼) : 옛날에 장창(張蒼)이란 사람이 이빨이 없어 유모 수십명을 두고 젖만 먹으니 100여 세가 지나도록 비백한 것이 박속과 같고 사물을 관찰하는데 정신이 소년 때 보다 더 좋고 슬하에 자녀 까지 여럿을 두었으니 이것은 조양(調養)의 묘(妙)인 것이다.

4) 정ㆍ팔초ㆍ교력(蟶八梢鮫) / <성호사설 만물문(萬物門)> 이익(李瀷 1681-1763).

우리나라에서는 조수(鳥獸)와 충어(虫魚)에 대한 글자의 뜻을 대부분 몰랐다. 임진년 난리 때 천장(天將)이 편지를 보내서 맛살조개를 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맛살조개가 가리합(嘉里蛤)인 줄을 모르고 다만 대답하기를, “우리나라에는 이런 물건이 생산되지 않는다.”라고 했던 바, 천장은 자기를 속인다고 몹시 성을 내기까지 하였다.

하루는 천장이 계두(桂蠹)를 바쳤는데, 이는 바로 계수나무 속에서 생긴 좀벌레로서 빛깔은 붉고 맛은 맵고 향기로웠다. 남월왕(南越王)이 중국에 공물(貢物)을 바칠 때 비취(翡翠)는 40쌍까지 바쳐도 계두는 겨우 한 그릇 밖에 바치지 않았다 하니, 그 계두란 희귀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주상(主上)은 오래도록 주저하고 젓가락 대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조금 후에 문어갱(文魚羹)을 올렸는데, 문어란 것은 바로 팔초어(八梢魚)다. 그런데 천장도 역시 난처한 빛을 보이고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이 문어는 우리나라에만 생산되는 까닭에 천장이 처음 보게 된 것이다.”고 한다. 내가 천사 동월(董越)이 지은 조선부(朝鮮賦)를 보니, 그의 자주(自註)에, “문에는 바로 중국 절강(浙江)에서 나는 망조어(望潮魚)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임진년 난리 때 이여송(李如松) 무리들은 대부분 중국 북쪽 지방의 사람인지라, 남북 거리가 동떨어지게 멀기 때문에 강회(江淮)의 어물을 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본초(本草)》 오적어(烏賊魚) 조에 상고하니, “어족(魚族) 중에 뼈없는 고기는 이름을 유어(柔魚)라 하고, 또 장거(章擧)와 석거(石距)라는 두 종류가 있다.”하였다.

이는 문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조금 크고 맛은 썩 좋아서 귀중한 식품으로 꼽히게 되고, 오적어도 역시 팔초어와 비슷한데 다리가 아주 짧기 때문에 약간 구별된다. 추측컨대, 이 장거와 석거란 것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문어와 낙제(絡蹄) 따위처럼 생긴 것인 듯한데, 중국서도 역시 진귀(珍貴)하게 여긴다.

낙제는 속명 소팔초어(小八梢魚)라는 것이다. 인묘(仁廟) 정해년에 중국사람 임인관(林寅觀)ㆍ진득(陳得) 등이 풍파에 표류되어 제주(濟州)에 정박하자, 우리나라에선 연경(燕京)으로 돌려보내 주었던 것이다.

그들이 섬 속에 오래 머무르면서 속명 도미어(道尾魚)라는 것을 보고 이르기를, “이것이 교력어(鮫魚 상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본초(本草)》에 상고해 봐도 이런 종류가 없으니, 그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

[주1] 정ㆍ팔초ㆍ교력(蟶八梢鮫) : 정(蟶)은 맛살조개, 팔초(八梢)는 문어, 교력(鮫)은 도미어의 일종. 《類選》 卷10中 萬物篇 禽獸門.[주1]천장(天將) : 사대사상에서 명 나라 장수를 천장이라 하였음.

[주2] 남월왕(南越王) : 한(漢) 나라 때 조타(趙佗).

[주3] 주상(主上) : 여기서는 선조 대왕을 말함.

[주4] 오적어(烏賊魚) : 오징어.

[주5] 인묘(仁廟) : 인조 대왕. 

[주6] 낙지 : 낙지과에 속하는 연체동물. 한자어로는 보통 석거(石距)라 하고, 소팔초어(小八梢魚)·장어(章魚)·장거어(章擧魚)·낙제(絡蹄)·낙체(絡締)라고도 했다. <자산어보>와 <동의보감> 등에 언급되어 있다. 

5) 세찬을 받고 짓다[宣賜歲饌] 하나의 맛에 시 한수를 권하니 영화로운 마음을 느끼며. 계묘년 1783년 1월 3일(一味侑一詩 以志榮感 歲癸卯之正月初三日也) / 유득공(柳得恭 1749~1807년) 고금체시(古今體詩).

坡愛江瑤柱 강요주(살조개)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於鰒獨瑕疵 전복에는 그 허물이 있다하네

試問三韓使 삼한의 사신에게 물어보아도

誰堪配荔支 누가 여지를 나누어 주리오.

전복이 생산되는 울산 바다에 강요(江珧)가 보배다(鰒産蔚山海中者珍於江珧).

文魚卽章擧 문어는 즉 낙지와 비슷하고

其冠似革囊 그 머리는 가죽주머니와 닮았다

君今有八股 그것에는 여덟 개의 다리가 있으며

亦足稱文章 또한 문장으로 칭하기에 족하다.

"문어"의 또 다른 이름은 "팔초어"(文魚亦名八梢魚).

無人讀魚䟽 어보를 읽는 사람은 없는지

太半從俗呼 태반이 속된 이름으로 부르네.

春風洛水岸 봄바람은 낙수 기슭에 불어오는데

可憐檀板圖 아름답구나, 단판의 구름이여.

치어(숭어)의 속명은 수어다(鯔魚俗名秀魚).

髯尺而軀寸 짧은 수염에 작은 몸으로

參軍主簿流 참군(參軍)과 주부(主簿)되어 떠돌며,

本非封侯骨 본디 봉후골이 아닌데도

云何曲如鉤 이 같이 어찌 갈고리처럼 굽었는가?

대하(큰새우) (大鰕).

[주1] 강요(江珧) : 정삼각형 모양의 검은 색 바다 조개이다. 살조개

[주2] 여지(荔支) : 과일의 이름. 중국 복건(福建)ㆍ광동(廣東)ㆍ사천(四川) 등지에서 생산되는 과일로 살은 희고 맛은 달고 즙(汁)이 많으며 모양은 용안의 열매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양귀비가 즐겨 먹었다고 한다.

[주3] 봉후골(封侯骨) : 먼 변방에서 큰 공을 세워 귀하게 될 골상(骨相)을 말한다. 

6) 『영남악부』의「철문어(鐵文魚)」는 고려 말 계림부윤 원룡(元龍)의 학정(虐政)을 풍자하였다. 서민의 절규를 옮긴 듯한 화법으로 되어있다. 원용은 계림부윤으로 있을 때 탐학하여 농기구인 철파 곧 쇠스랑까지도 걷어갔다. 백성들은 그를 철문어부윤(鐵文魚府尹) 이라고 불렀다. 문어는 팔초어(八梢魚)라고도 한다.

<철문어(鐵文魚)> 이학규(李學逵).

고려 말에 배원룡이라는 자가 있었다. 계림부윤이 되어 백성을 침탈하여 농기구 철파, 쇠스랑까지 거두기에 이르렀고, 가족을 핍박하여 싣고 갔다. 부민들은 "철문어부윤"이라고 불렀다. 팔초어, 속명 문어다. 철파의 모양이 이와 비슷한 까닭이라 전한다.

철문어야 어찌 묵은 밭은 고르지 않고 도리어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빼앗는가. 세 갈래 굽은 손톱으로 백성의 살을 파내고 기름을 빨아 너희들의 시골집에 실어가 우리 소와 말까지 부수는 구나. 계림에는 이제 남은 쇠라고는 없어 활을 가기고 가서 수문어를 쏘는구나.

[麗季有裵元龍者 爲鷄林府尹 侵漁百姓 至斂民鐵杷 載敀家 府民目爲鐵文魚府尹 八梢魚 俗名文魚 鐵杷之形似之故云 鐵文魚何不杷人命 而反爲人漁 三叉屈折如指爪 爬民之肉吮民膄 而輸爾田廬 又敝我牛車 鷄林自此鐵無餘 抨弓去射(音碩)水文魚]

 

7) 이사랑(이상고)가 보낸 4수의 시에 차운하다.[次李侍郞 (尙古) 寄示韻四首] (峴山錄) / 조위한(趙緯韓, 1567~1649).

口厭南烹不可嘗 입을 가리고 남쪽의 삶은 음식 가히 맛보지 아니하랴

殊形詭狀白而黃 특이한 모양과 기이한 형상에 흰 듯 누렇도다.

紫蝦石首長相憶 곤쟁이(자하), 조기를 오랫동안 기억한다네.

幾日投簪去此襄 며칠 동안 이런 겉치레를 벗고, 벼슬을 박차고 싶구나.

其二

文魚大口豈堪嘗 문어 대구, 어찌 이리 맛이 뛰어날까?

比目王餘色又黃 가자미 뱅어 색 또한 누렇구나.

斫鯪鱠鯨眞快意 천산갑 벵어 고래를 잘라내니 참으로 유쾌한 마음이라,

玉堂金馬不如襄 옥당과 금마도 공(功)이 있는 일만 못하다.

其三

海錯腥羶已備嘗 바다의 각종 해물은 비린내와 노린내에 그지없다.

懷愁對案馘全黃 밥상을 마주하니 품은 생각에 낯빛이 전부 누렇다.

君今擇肉魚何用 그대는 이제 골라낸 물고기를 무엇에 쓰리오.

不貴嘉魚去自襄 곤들매기는 귀하지 않아 절로 치워버렸다네.

其四

高潔夫君似孟嘗 고결한 부군은 맹상군과 같고

每臨多事不蒼黃 매번 임하는 많은 일에도 아주 바쁘지는 않도다.

如今闊步靑雲上 지금은 활보하며 청운의 뜻을 펼치지만,

誰念故人老一襄 늙어 오직 탈것에 의지하는 고인을 누가 생각하리오.

부원운(附元韻) 석문(石門)

團圓須大小何嘗 둥글고 모름지기 큰데도 근본이 작다 하는가?

味好無鹽色必黃 좋은 맛에 짜지도 않고 색은 꼭 누렇다

來佐酒家爲第一 이후로 주막에서 권하는 음식중 제일이 되어

須看美惡占治襄 아름다움과 추함을 결국 보이더니 성히 차치하였다네.

 

魚腹臟如玉可嘗 물고기 배때기 내장은 맛이 가히 훌륭하여

不宜乾貼不宜黃 건조하여 붙일 일이 아니며 누렇다고 적당한건 아니다.

竹箱包葉堅封寄 대나무 상자에 잎으로 싸서 단단히 봉하여 보내며

致遠無傷況近襄 멀리 보내도 상함이 없으니 하물며 가까운 곳은 말해 무엇하리.

 

魚有中腸亦可嘗 물고기의 가운데 창자는 역시 맛이 좋은데

登盤最厭細而黃 소반에 올리면 모조리 물리니 장황하면서 어이없다

大須如腕肥須厚 본바탕은 모름지기 팔뚝같이 살쪄서 두툼하여

把酒堪誇至自襄 한손에 술잔 들어 자랑할 만하며 너무나 과분하다.

 

人言赬尾不堪嘗 소문엔 붉은 꼬리가 불감당이라는데

吾嗜臍邊膩且黃 나는 배꼽 주위가 즐겁고 반드르르하며 또한 누렇다.

暫餒多鹽醉不好 소금기가 많아 졸지에 굶주리더라도 취한 술에는 좋지 않다.

儻非鮮味且嗔襄 혹여 신선한 맛이 아닐지라도 원망하랴.

[주] 玉堂金馬(옥당금마) 한(漢) 나라 대궐의 옥당전(玉堂殿)과 금마문(金馬門), 한림원. 금마옥당(金馬玉堂). 우리나라는 홍문관을 옥당이라 했다. 

8) 경성어랑[鏡城漁郞](地名). 유생 등이 폐처한 곳에 극심한 기근이 들었다고 알러준다. 힘을 합쳐 가는 삼베 한필과 문어 두미를 갖추어 보내왔다.

삼베는 난삼 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물고기는 사당의 제사를 올리기 위해서다. 양 절구의 시를 지어 감사를 표한다.(儒生等 聞余廢處飢窮 合力備細布一匹文魚二尾送來 布則裁爲襴衫 魚則將助祠祭 仍賦兩絶以謝之) / 이단하(李端夏, 1625~1689), 외재집(畏齋集).

一匹麻絲細織成 한필의 삼실(마실)로 가늘게 짜서 만들어

諸君遠寄表深情 여러분들께 멀리 보내며 깊은 정을 표하도다.

襴衫新制催刀尺 난삼을 새로 만들고자 의복에 재봉을 서두른다.

庶稱先人錫以名 선인들도 고운 삼베의 명성에 칭찬이 자자하였다.

其二

憐渠北海八梢魚 북녘 바다에서는 팔초어를 어여삐 여기며

帶得漁郞塞下書 어부가 취하게 된, 변방에 내린 글월이라네.

歸我宗家薦祠廟 종가에 돌아온 나는 사당에다 올리고

諸生情貺更誰如 여러 유생에게 정을 담아 선사하니 무엇이 이만한 게 있으랴.

9) 강릉 고을원이 방어와 백문어를 보낸 은혜에 사례하며 2수를 짓는다.[謝江陵倅惠魴魚及白文魚二首] / 이현석(李玄錫,1647~ 1703), 유재선생집(游齋先生集), 시은록(市隱錄)은 庚午(1690년) 이후에 기록한 것이며(以後所錄) 문소록(聞韶錄)은 임신년(1692년) 춘천부 임소에서 기록한 것이다.(壬申在春川府任所時所錄).

食魚何必要河魴 물고기를 먹는데는 하필 하수의 방어가 요긴하다지만

川鯽溪鰌摠可嘗 하천의 붕어나 시내의 미꾸라지 모두 맛나다.

承貺忽思頳尾諷 이어 선사하다 갑자기 생각하니 붉은 꼬리 언저리를 보며

老陶歸計十分忙 늙어 고향에 돌아갈 계획에 어수선히 바쁘네.

峽守今朝不殺猪 오늘 아침 골짜기에 머문 돼지를 잡지 못했는데

盤中喜得八梢魚 소반 위의 팔초어를 보니 즐겁구나.

全身白質文爲號 온몸이 흰 바탕이라 부르게 된 이름이 문(文)이로다.

笑汝虛名政類余 우스운 너의 허명(헛된 이름)이지만 벼슬아치 무리와는 다르다네.

10) 간성포 마을[杆城浦村] / 박윤묵(朴允默, 1771~1849).

盡日路沿滄海濱 진종일 창해 물가 길을 따라

棠花無數雨餘新 무수한 해당화 비온 뒤 새롭구나.

날씨가 매우 따뜻하고 해당화가 가을인데도 또 꽃을 피운다.(日氣甚暄 海棠當秋又發)

蹄鳴沙浦難行馬 말굽소리 울리는 모래 바닷가는 말이 다니기 어렵고

耳慣風濤不怕人 바람과 큰 물결소리가 귀에 익어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曬網踈籬千細目 성긴 울타리에 그물을 햇볕에 말리는데 수많은 가는 그물구멍 위에

掛魚層架八梢身 층층이 얽어 매달린 물고기, 여덟 개 긴 다리를 가진 몸이구나.

문어를 팔초어라 한다(文魚謂之八梢魚)

可憐漁箭塩盆處 소금 굽는 곳, 어살에 잡혀 가련하다.

空有遺基稅及民 공허한 옛터에는 세금과 백성만이 있다네.

11) 어채명색(漁採名色) 물고기 잡는 방법 / 만기요람 1808년.

대개 어채(漁採)의 명목(名目)이 세 가지가 있으니, ‘어장(漁場)’, ‘어조(漁條)’, ‘방렴(防簾)’이다. 발[簾]을 설치하는 것을 방렴이라 이르고, 배를 두는 것을 어조라 이른다.

어장은 바다에는 대구(大口)ㆍ청어(靑魚)ㆍ문어(文魚) 등의 어장이 있고, 강에는 강어휘리장(江魚揮罹場)이 있었다. 방렴 또한 강과 바다에 따라 다른 명칭이 있는데 바다에 있어서는 염(簾)이라 하고, 강에 있어서는 전(箭)이라 한다.

어조(漁條)는 오직 바다에만 있는 것인데 또한 어기(漁基)ㆍ망기(網基 그물치는 터)ㆍ온돌(溫堗)ㆍ통발[扈桶]ㆍ토전(土箭)ㆍ망선(網船)ㆍ휘리(揮罹) 등의 이름이 있고, 망(網)에도 또한 면휘망(綿揮網 무명실로 뜬 후릿그물)ㆍ면변망(綿邊網 무명실로 가장자리를 뜬 그물)ㆍ큰 그물[大罟]ㆍ갈망(葛網 칡으로 뜬 그물)ㆍ행망(行網)ㆍ주박(注泊 고삭망(槀索網)으로 조수(潮水)의 진퇴(進退)하는 곳에 환포(還布)하는 것)의 칭호가 있어서 한결같이 그 장소[基址]의 편리함과 그렇지 못한 것과 어리(漁利)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등수를 나누어 세금을 정했다.

어장(漁場)은 청어휘리(靑魚揮罹)가 15냥, 세망(細網)이 5냥, 문어(文魚)ㆍ강어장(江魚場)에서는 모두 5분의 1을 세로 거두어들인다. 그 이익의 많고 적은 것을 계산하여서 돈으로 세를 받아들였다.

 

12) 동경(東京)의 윤공(尹公)이 전운(前韻)에 화답하면서 문어(文魚)를 보내왔기에 붓을 달려 답하다. / 이색(李穡 1328~1396)

用兵同鷙鳥 군대를 부릴 때는 지조를 연상시킨다면

掃賊似羊群 적을 소탕할 땐 맹호가 양 떼를 습격하듯

一境皆承蔭 한 경내가 그 그늘에 의지함은 물론이요

三韓共揖芬 삼한이 모두 그 공적에 고개를 숙인다오.

日生天接海 해가 떠오르나니 하늘이 바다에 잇닿았고

山近樹浮雲 산이 가깝나니 나무가 구름에 떠 있는 곳

偃革今茲兆 전쟁을 종식할 계기가 이제 마련됐는지라

來魚號曰文 보내오신 고기 이름도 바로 문이로구려

[주1] 군대 지조(鷙鳥)를 연상 :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신중하게 기회를 살피다가 한 번 공격하여 적에게 치명타를 가한다는 말이다. 지조(鷙鳥)는 독수리나 매와 같은 맹금(猛禽)을 말하는데, 《육도(六韜)》 발계(發啓)에 “지조가 공격할 때에는 먼저 낮게 날면서 날개를 거두는 법이다.[鷙鳥將擊 卑飛斂翼]”라는 말이 나온다.

[주2] 전쟁을 …… 문(文)이로구려 : 무비(武備)를 그만두고 문교(文敎)에 중점을 둔다는 뜻의 ‘언혁상문(偃革尙文)’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13) 이양구가 보낸 바다의 맛좋은 음식에 사례하며[謝李養久惠海味] / 이득윤(李得胤,1553~1630년)

二脚文魚卅箇蔘 문어 다리 두 개는 삼십 개의 인삼과 같고

題封遠寄意何深 제목을 써 봉해서 멀리 보낸, 깊은 뜻 담겼구나.

白頭病客元無取 백발의 병든 나그네 본디 취할 것이 없으니

賴是從前許寸心 이제까지 이런 것에 의지하며 마음속 작은 뜻 허락했다네.

14) 제 만곡 절필고[題晩谷絶筆稿] / 후계집권지오(后溪集卷之五) 풍양(豐壤), 조유수(趙裕壽, 1663∼1741년)

斷爛溪西草 빛이 끊어진 시내의 서쪽 풀숲에

人詩恐並亡 사람들이 시를 읊다 두려워 모두 도망가네.

梵文魚未卞 불경에선 문어가 법도가 아닌지라,

仙字蠧偏傷 선자(仙字)의 한쪽에 나무좀이 상하게 만든 것이리라.

有妾能裒拾 번갈아 모을 수 있는 첩이 있다고

其誰爲表章 그 누가 표창 하겠는가?

佛恩如欲報 부처의 거룩한 은혜 갚고자 한다면

玆稿盍看詳 이에 원고를 어찌 자세히 살피지 아니하랴.

15) 종남산에 우거하는 집에[終南寓舍] 정림당(유길)이 찾아와(鄭林塘 (惟吉)來訪) 시로써 사례하며(詩以謝之) / 송인수(宋麟壽,1487~1547년), 규암선생문집(圭菴先生文集).

玉人乘月訪幽居 아름다운 이가 달밤에 외딴집을 찾아와

柴戶推來樹影疏 나무 그림자 통해 사립문 밀고 부르네.

邨釀暫開千日酒 시골에서 빚은 천일주를 잠시 열었는데

盤肴偶得八梢魚 우연히 얻은 소반 위의 안주가 팔초어구나.

狂詩不用傳驚俗 광시(狂詩)를 쓰지 않으니 세속을 놀라게 했다 전하며

淸話方知勝讀書 맑고 좋은 말을 사방에 알리는데 독서가 최고라 하네.

明日送君山下路 내일 산 아래 길로 그댈 보낸 후면

小齋寥落似逃虛 쓸쓸한 오막살이 도허(逃虛)와 같으리.

[주] 도허(逃虛) : 虛의 세계로 달아남. 道家적 의미로 은둔하여 도를 닦음을 비유.

16) 팔초어[八梢魚] 문어(文魚). / 김려(金鑢, 1766~1822).

문어를 잡을 때에 이곳 사람들은 깊은 밤에 소나무 횃불을 들고 바다 안쪽을 따라 물이 얇고 돌이 많은 곳까지 몰이를 한다.

그리고 이곳에 불을 비추면 문어들이 모두 돌밑 돌 위에 앉아 잠을 자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고지[鰝(魚+虒)]는 부처를 닮아, 문어와 비슷하고 스님 낙지(僧絡蹄)와 비슷하며 고승(高僧)과도 비슷하다”고 하는데, 그 말들이 아주 재미있다.

고지는 쇠작살로 찔러서 잡기 때문에 문어를 잡는 사람들도 잡을 수 있다. 산채로 썰어 먹거나 조리해 먹거나 포를 만들어 먹거나 모두 맛있다고 한다. [土人捕八梢魚者 夜深持松明火 遵海隩至水淺石多處照之 則魚皆坐水底石上而眠 土人言鰝(魚+虒)似佛 文魚似僧 絡蹄似闍梨 語極好笑 以銕叉刺而獲之 故捕八梢魚者 有時而得鮮食 或胞或膎 皆佳云]

<우산잡곡(牛山雜曲)> “문어롱영(文魚弄影)‘’ / 김려(金鑢).

夜靜谿沉月色微 밤은 고요하고 계곡엔 달빛이 희미하니

鰝蹄弄影閙苔磯 문어가 요란스레 이끼 낀 바위에 그림자 흔든다.

村丫錯認情僧到 어촌 계집이 정분난 땡중이 온 줄 알고서

忙下空床啓竹扉 황급히 침상에서 내려와 사립문을 열어주네.

◯ 김려(金鑢)는 1766(영조 42)~ 1822(순조 22),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악부시의 대가였으며, 전이라고 빙자한 단편소설을 지어 불우한 인물의 행적을 서술하기도 하였다.

강이천(姜彝天)의 비어사건(飛語事件)에 연좌되어 1797년 부령으로 유배당했고,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진해(창원시 진동면)로 이배되어 10여년간 귀양살이 했다. 만년에 아들의 노력으로 1806년에 유배에서 풀려나 함양군수로 있다가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김려(金鑢)는 자기 시(詩)에서 버림받고 천대 받던 최하층 백성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예민한 감수성과 기질을 바탕으로, 그들의 아름답고 고상한 정신세계를 그림으로써, 우리의 시가문학을 더욱 풍부히 하는데 기여하였다.

김려가 유숙하고 있던 진해현(창원시 진동면)의 집에는 자그마한 고깃배 한 척이 있었는데, 이에 의거하여 고기들의 생김새, 습성, 용도, 그 이름의 유래 등에 대하여 쓸 수 있었다. 경이로운 어류의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우해이어보’를 저술할 수 있었다.

또한 ‘우산잡곡’의 경우처럼 한 지역의 특이한 어류들을 집중 조명하여 시재(詩材)로 삼은 것은 이전에는 전례가 없었던 소재이며 한문학의 외연과 한시사(漢詩史)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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