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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반곡서원문학 3.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한문학 첫번째 편
거제 반곡서원문학 3.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한문학 첫번째 편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3.12.3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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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견화유사(見花有思)" 꽃을 보니 생각나네.

梅花半落杏花開 매화꽃 반쯤 지니 살구꽃 피고

海外春光客裏催 바다 멀리 봄빛은 나그네 마음 재촉하네.

遙憶故園墻北角 멀리 고향의 우리 집 담 북쪽 모퉁이

數株芳樹手曾栽 내가 심은 몇 그루 나무도 꽃 피어났으리. 

거제도에 봄날이 돌아 왔다. 매화꽃이 막 지고 살구꽃이 피는, 찬란하고 화사한 봄빛은 바닷물결에도 닿아 살랑살랑 반짝인다. 멀리 고향집 정원에도 거제도처럼 꽃이 활짝 피기를 소원한다. 선생의 마음속엔 돌아 온 봄처럼, 다시 고향집에 돌아가고픈 희망과 설레임, 그리고 조바심을 함께 표현한 노래이다.

② "야경(夜景)" 밤의 경치

輕雲華月吐 달을 토해내는 가벼운 구름,

芳樹澹煙沈 꽃나무는 맑은 안개 속에 잠긴다.

夜久孤村靜 밤이 깊어 고요한 외딴 마을, 

淸泉響竹林 맑은 샘물소리 대숲을 울리네.

 밤의 경치를 읊은 서경시(敍景詩)이다. 고요히 비추는 달 빛 아래, 밤늦도록 선생은 홀로 느끼는 바를 소탈하게 묘사해 놓았다.  달을 지나는 엷은 구름, 밤안개가 낮게 걸친 향기로운 숲, 외딴 거제면 동상리 골짜기의 적막감에 낮에는 잘 들리지 않던 죽천(반곡서원 서편 십 수보에 있는 샘물) 샘물 소리 까지도 청아하게 들린다. 거제도의 밤늦은 풍경이라 그런지 한층 정겹게 느껴진다.

③ "주면(晝眠)" 낮잠

卯酒餘醺午睡濃。아침술에 취기가 남아 낮잠을 달게 자는데

離離簷影落窓櫳。드리운 처마 그림자, 격자무늬 창에 떨어진다.

一聲山鳥驚幽夢。한 가락 산새 소리가 그윽한 꿈을 깨워,

起看西峯夕照紅. 일어나 바라본 서산 봉우리, 저녁노을 붉었으랴.

이런저런 생각에 밤새 잠 못 이루다, 아침나절에 먹은 술에 취기가 생겨 잠시 방안에 누웠다가 잠이 든다. 그러다 초가집 바깥에서 둥지로 돌아가는 시끄러운 산새소리에 벌떡 일어나 초가집 격자무늬 창을 열어보니 벌써 서산에 해는 기울고 하늘엔 온통 붉은 노을이 가득하다. 달콤한 지난 세월이 모두 한바탕의 일장춘몽이듯, 깨어보니 덧없는 부귀영화였다. 위 시의 산새소리는 선생이 유배당한 사건인 기사환국을 의미하며, 거제도로 유배와서 뒤늦게 깨닫는 순간 이미 인생의 황혼기가 되었음을 비유하고 있다.

남해도로 유배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서포 김만중은 김진규의 삼촌이다. '당시에 김만중 뿐만 아니라 김만기의 큰아들 김진구는 제주에 유배되었고 둘째 조카 김진규는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셋째 조카 김진서도 진도로 유배가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한 집안이구나 하고 생각될 수 밖에 없다. 그네들에게 두려운 것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불의를 보고도 못 본척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이야 이렇게 의지가 강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말이다.

[주] 시물(時物) : 절기(節氣)에 따라 나오는 산물(産物), 절기마다 변하는 사물.

--이어 김진규(金鎭圭) 한문학 두번째 편 계속--

④ 김진규(金鎭圭)선생께서 유배 첫해인 1689년 겨울에, 거제면 동상리 반곡서원 인근 배소로, 아내가 보내준 옷가지와 편지를 읽고, 그리운 처자식을 생각하며 지은 시이다.

秋氣生深閤 가을 기운이 깊은 누각에 밀려올 때 寒衣寄遠人 겨울옷을 멀리서 누군가 보내왔네. 依依出君手 휘청휘청 나가보니 임의 손이라, 戀戀着吾身 애끓는 그리움에 나도 몰래 입어보네. 映月應砧冷 달빛 들어와 "다듬잇돌은 차다" 하여 挑燈想黛顰 등불 심지 돋우니 눈썹먹에 눈살 찌푸리듯 한다. 偏憐淚痕染 눈물 흔적이 얼굴에 번지니 몹시도 애달파, 衫袖卽湘筠 소매 자락을 풍로(風爐) 가까이 가져간다.  

又 / 余不識生産事 妻兒常衣破衾弊 五六記平日所睹實事 나는 아이가 태어난 일을 몰랐는데 아내가 헤진 이불을 째서 아이 옷을 만들어 입혔다한다. 예전에 평상시 보았던 사실, 대여섯을 적어본다. 想像裁衣苦 애써 옷을 고쳐 만든 일을 상상하니 慇懃托意深 깊은 뜻이 담겨 은근한 정이 느껴지네. 憂寒增着絮 추위 걱정에 솜옷을 겹쳐 입고 憶遠幾停針 기억해보니, 몇 번이나 바늘에 찔러 멈칫거렸다. 身冷無完帔 몸은 차갑고 온전치 못한 치마에다, 兒號擁弊衾 우는 아이를 헤진 이불에 끼고 앉았었지. 都將篋中帛 아~ 문득 상자 속 비단에 쓴 글을 보니 聊寄枕邊心 애오라지 베갯머리에다 마음을 보냈네. 又楚澤非邊戍 가시나무 울타리는 변경의 수자리가 아닌데도 秋衣亦遠來 가을철 옷이 멀리서도 왔구나. 芰荷那復製 수초들이 어찌 다시 자라는가? 篋笥爲親開 버들가지도 새로이 피어난다. 燈火閨中暗 등불은 안방 깊이 숨고 風霜海外催 바람과 서리가 섬을 재촉한다. 摩挲更惆悵 몸을 비비다 보니 다시 마음 서글퍼져 綵服想生埃 떠올린 비단 옷에 먼지만 인다네.  해설 : 첫째 구절(句節)을 살펴보면, 멀리 서울 집에서 아내가 보내온 옷을 보고 "나도 몰래 옷을 입었다"라는 표현은, 집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을 느낄 수 있으며, 달빛에 "다듬이 돌이 차다." "눈썹먹에 눈살 찌푸리듯 하네."라고 늘 걱정스레 늘어놓던 아내를 의인화한 멋진 시구이다. 또한 선생은 잠 못 이루며 오두마니 앉아 등불 심지를 돋우고 있다. 등불 심지가 다 타면 다시 심지를 돋우어 주어야 불이 꺼지지 않는다. 선생은 등불 심지를 돋우어 불을 꺼트리지 않을려고 한다. 등불마저 꺼져버리면 깜깜한 어둠속에서 자신과 함께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가물대는 등불 심지를 돋우다가 혹여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기다림이 느껴진다. 오랜 귀양살이 끝에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 먹을까 괴로워하는 것 같다.   둘째 구절은 귀양 떠난 온 후에 태어난 갓난아이를 돌보며, 남편의 겨울옷을 일일이 바느질 장면을 상상하며 애달픈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셋째 구절에서는 아내가 보내준 겨울옷을 입고 보니 수초나 버들가지가 봄이 아닌데도 새로 피어난다고 선생의 들뜬 심정을 나타내고 있고, 보내온 옷으로 인해, 집밖에는 거제도 겨울추위가 재촉하지만, 방안에는 아내의 사랑이 충만하다. 긴 밤 아내가 그리워 여기 저기 비비고 만져보다가, 보내온 옷은 진작 만져 보지도 못한다. 비단 옷을 아내로 비유해, 떨어져 있어 사랑의 안타까움에, 읽는 독자도 서글프게 한다. 버들가지는 고전시에서 이별의 정표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데, 버들가지를 심으면 뿌리가 다시 내려 새잎이 돋아난다. 헤어졌지만 훗날 재회하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말이다. 부인을 생각하며 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그려냈으며, 눈앞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그리운 사랑을 표현한 명작이다.

⑤ 김진규(金鎭圭)선생이 거제면 동상리에 유배 살 때 유자 맛을 본 후, 귀양살이가 끝난 1694년 초겨울, 서울로 올라온 선생은 대궐 앞에서 공물로 올라 온 '거제 유자'와 함께 임금을 배알하는 심정에, '거제유자찬가(南州柚歌)'를 지은 아름다운 한시가 전하고 있다.

 < 남주유가(南州柚歌) 거제유자찬가 >

南州炎德産柚樹 남녘 고을 더위 덕에 유자나무 자란다네

處處人家種園圃 인가 앞뒤 이곳저곳 울안밭에 심었구나

婆娑株榦閱歲月 세월 지나 나부끼는 유자나무 줄기와

沃若枝條含霧雨 가지에 윤기 바르르, 안개비 머금었다

猗嗟嘉木世所稀 아~ 멋있고 아름다워라, 이 세상에 희귀한 것,

燕棗秦栗非其伍 대추 밤 제수과실 그 다섯은 아니네.

歲暮嚴霜悴草木 세모의 된서리에 초목이 파리해도

滿林佳色獨盈矚 아름다운 빛깔 우거진 유자 숲, 어찌 그리 교만할까?

葉茂森森競翠竹 우거진 잎 삼삼하여 취죽(싱싱한 대나무)과 다투는데

子熟煌煌映黃菊 익은 열매 번쩍번쩍 노란국화 초라하다

望中村落張錦繡 촌락을 보노라니 비단 옷 그림이라,

摘來衣裳襲芬馥 유자 따 와서 보니 옷에 배인 향기 뿐,

乍破香霧爪甲濕 향기 안개 지나가니 손발톱이 축축하고

細嚼流霞膓肺沃 살짝 씹은 신선(神仙)의 술, 마음까지 부드럽다

南州吏民不敢甞 남쪽고을 백성들은 맛보지 아니하고

十襲題封獻君王 열 겹이나 귀히 싸서 군왕께 올린다네.

蓬萊殿上深秋日 깊어가는 가을날, 전각 위 축하 장식,

荊楚包開滿庭香 연회 위해 연 보따리, 궁궐에 향기 가득,

想見天笑一爲新 웃는 하늘 바라보니 온 누리 새로워

頓覺玉食增輝光 맛난 음식 나타나 찬란하게 빛나도다.

君餘仍復徧恩錫 임금의 은혜로 모두에게 나누어,

小臣亦甞霑聖澤 신하도 맛을 보니 두루 미친 성은이네.

豈知流落此相見 이렇게도 만나는데 귀양 간 날 알아줄까?

臨風三嗅淚垂臆 바람 따라 맡은 내음, 가슴속 눈물이라.

聞說昨夜貢使發 어젯밤 소식으론 올린 공물 온다는데

幾時當到長安陌 서울 길거리에 언제 당도하려나?

羨爾遙生瘴海村 부러워라, 생산된 먼 장기 낀 어촌에서

猶得年年近至尊 해마다 지존(임금)께 가히 사랑받으니..

自憐懷中餘舊核 가엾다, 마음속에 예전 그 씨앗 남아

美人天末空嬋媛 거제도 미인의 아름다움 헛되는구나.

欲將丹心比珍果 진귀한 과실보다 참된 정성 으뜸인데

安得伴爾朝天閽 어찌 너와 벗되어 도성 문(門)서 배알할까?

嗚呼安得伴爾朝天閽 아~ 어찌 너와 벗되어 도성 문(門)에서 배알할까?

⑥ 17세기 말 김진규 선생께서는, 그물을 쳐서 대구어를 잡는 거제 어부들의 모습과, 처음 먹어보는 대구 맛에, 고향집 홀로 계신 어머님이 생각날 정도로 대구 맛이 훌륭했음을 "대구를 먹으며..(食大口魚有感)"라는 시(詩)에다 표현했다. 巨口纖鱗世所珍 큰 입에 가는 비늘은 세상에 보배인 바獨於魚鼈逈超倫 생선 중에 홀로 대단히 초륜하다 漁人網集窮滄海 어부들은 푸른 바다에서 힘써 그물을 쳐 잡으면, 驛使星馳貢紫宸 역관이 빨리 달리어 대궐에 올린다. 宿昔微臣每霑賜 예부터 미천한 신하에게도 늘 은혜를 베풀었다했는데 流離絶域此甞新 먼 변방에 정처 없이 떠돌다 이에 새로운 맛을 보는구나. 臨餐更結堂闈戀 밥 먹다 다시금 고향집 문이 그리워지나, 惆悵無因遺老親 서글프게도 이유 없이 늙으신 어르신만 계시겠지.

[주] 초륜(超倫) : 범상함을 넘어서서 뛰어나다.

⑦ 感島中梅花 거제 매화에 감응하여 / 1692년 김진규(金鎭圭).  

窈窕佳人落絶荒 정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변방에서 떨어졌는데

昬昬瘴霧蔽容光 장기 낀 어두운 안개로, 빛이 자취를 감추었구나

忽飛炎海三春雪 거제바닷가 세 번째 맞은 봄에 홀연한 흰 눈 날리니

猶帶金宮五夜香 아직도 금빛 띈 초가집에 새벽녘 공기 향기롭다.

豈爲徵歌裁白苧 지은 흰모시, 어찌 노래를 불러야 할까?

秪緣傷別洗紅粧 다만 이별의 상처로 붉은 화장 지울 뿐,

西隣騷客詩相吊 서쪽 이웃의 시인이 위로하는 시구 중에,

玉骨元宜鐵石腸 굳센 의지에는 매화가 당연히 으뜸이라네.  

[주1] 백저(白苧) : 뉘어서 빛깔이 하얗게 된 모시. 눈모시. 흰모시

[주2] 옥골(玉骨) : 빛이 희고 고결(高潔)한 사람. '매화(梅花)'의 다른 이름. 천자(天子)의 유해(遺骸)

[주3] 철심석장(鐵心石腸) : 쇠 같은 마음에 돌 같은 창자라는 뜻으로, 지조(志操)가 철석같이 견고(堅固)하여 외부(外部)의 유혹(誘惑)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이르는 말.

⑧ 봄날(春日) / 김진규(金鎭圭) 1691년.

화사한 봄날 거제면 동상리, 짙은 푸른 대숲 주위에 봄꽃이 만발하였다. 벌써 거제에서 두 번째 맞는 봄이다. 산과 바다가 모두 나를 알아보는 듯, 아양을 떤다. 비록 궁핍한 귀양살이지만, 복숭아 살구꽃에서 풍기는 봄날의 정취가 나그네의 고독한 마음을 달랠 것이다.  

迢遰長爲客 언제나 멀리 떨어진 나그네

慇懃再見春 은근(慇懃)히 재차 봄을 맞는다.

海山應識我 바닷가 산들은 당연히 나를 아는데

花竹又宜人 꽃과 대나무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네.

日暖波光媚 따뜻한 날, 물결 위의 햇빛이 아양 떨 때

天晴野色新 맑게 갠 날씨에 들 빛이 새롭다.

窮居亦有樂 궁벽하게 살지만 즐거움이 있으니

時物况怡神 시물이 더욱더 기분 좋게 만드네. 

[주] 시물(時物) : 절기(節氣)에 따라 나오는 산물(産物), 절기마다 변하는 사물.

--이어 김진규(金鎭圭) 한문학 두번째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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