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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유배문학 개괄(槪括)
경남 유배문학 개괄(槪括)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10.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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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남유배문학 개요.

경남의 유배문학은 경남지역에 귀양 와서 지은 작품과, 이후 해배 된 후에 유배지 경남지방을 서술한 작품으로 총칭한다.

경남유배문학 작품의 시점은 1910년대까지, 지역은 現 경상남도를 그 범위로 한정지을 수 있고, 경상남도에 유배되어 온 유배자가 겪은 유배적 사실의 직접 체험과 유배 상황에 직면한 정신적 상황을 문학화한 작품이다.

따라서 경남지역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연민의 감정도 적잖이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그들의 유배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가늠해볼 수도 있다.

즉, 유배인들의 교학 사상이나 선비 정신이 지역 사회와 문화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조선시대 선비들의 지조와 의리 도덕정신은 그들만의 세계일뿐이고 텅 빈 나라의 살림과 궁핍한 백성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조선시대 학자관료들의 문학작품은 임금에 대한 충정, 성리학에 대한 이념, 중국의 역사철학에 대한 경의 등이었지, 실제 민중의 삶과 정신생활상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나 먼 지역으로 유배 간 유배객은 하층민 백성과의 어우러진 생활 속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를 몸소 느끼게 되니 유배문학작품에서 현실성이 부여되고 사실적인 묘사가 일어날 수 있어, 한시사의 외연을 넓히고 문학의 시제를 풍요롭게 함으로써 우리나라 고전문학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남긴 유배문학에서 민초들의 실제 삶과 이야기 풍속 역사 문화를 전승하게 된 것은 바로 유배문학의 진수이며 위대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유배역사에서 경상남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대하다. 기록문헌에서 밝혀진 우리나라 첫 유배객은 금관가야 제6대왕인 좌지왕의 첫 왕비 용녀(傭女)이다.

용녀는 자신의 친인척들을 등용하여 정사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하니 국정은 어지러워지고 기강이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좌지왕은 신라의 침공계획이 용녀와 외척들의 국정문란이 빌미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용녀를 김해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추정되는 하산도(荷山島)로 유배 보낸 역사가 기록상 우리나라 최초의 유배인이었다.

또한 도(道)단위 행정구역상으로 볼 때도 ‘최다 유배지’가 경남으로, 지금까지 밝혀진 명단만 1200 여명에 이른다. 이 중에 거제도는 시군구 행정단위 上, 유배객 500 여명의 명단이 밝혀진, 지역단위 최다 유배지이며, 경남지역에서는 그 다음으로 남해군 사천시 창원시 순이다.

또한 우리나라 유배문학의 효시로 알려진 정서의 거제도 창작작품 ‘정과정곡‘이나, 이보다 170년 前 최근 새로이 알려진, 사천현(泗川縣) 유배자 왕욱(王郁 고려현종)이, 호송책임자 내시 고현(高玄)을 돌려보내며 비통한 마음을 담아 지은 7언율시가 최초의 유배문학 작품으로 용인되고 있다.

어찌되었건 경남지역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유배문학작품이 등장한 지역임은 확실해 보인다. 하나 더 덧붙이면 최초의 우리나라 어보(魚譜)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가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유배문학은 개인적 정신과 시대적 정신이 절실히 반영된 것으로 대체로 시대적 정치적 갈등 속에서 정치적 밖으로 밀려나 현실복귀의 재진출을 꿈꾸며 그들의 사상과 염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생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유배지에서 사대부들의 고민과 회환이 담겨있고 당쟁에서 패배했던 실상과 작가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유배자들은 교훈과 자연의 풍류보다는 불우한 자신의 현실을 타계하고 다시 영화의 벼슬길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의 강구가 급선무였을 것이다.

유배지에서 읊은 작품을 살펴보면, 첫째로는 때 늦은 후회라던가 이후 벼슬길에 대한 욕망 그리고 신념이 많이 나타나고 있고, 둘째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회상이, 그리고 험난한 유배 생활은 물론 경남의 자연과 지역에 관한소개로 나눌 수가 있고, 더하여 유배지의 역사 문화 풍속 민요 생활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척박한 먼 변방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잠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외로운 학자들의 작품을 통해 그 마음속을 헤아려 보자. 그 역시 학자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속 깊은 동생이었고, 올바른 스승이었다.

이런 유배작품들을 통하여 치열하게 살아간 한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면서,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남의 형승을 읊은 대부분의 작품은 “밝고 생동감 있는 봄날 화폭에 담은 수채화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외롭고 궁핍한 생활 속의 유배문학은 “몇 겹으로 덧칠한 유화체 늦가을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이에 유배인의 고독과 곤궁함이 질감에 담겨있어, 삶의 성찰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유배문학을 통해서 타자를 이해하고 삶의 다양성을 수용해야 하며 작가 인물과 행동을 사회문화적 상황과 관련지어 창작 동기와 의도를 파악함이 먼저 일 것이다.

작가의 개성은 물론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조건에 비추어 문학작품을 고찰하고 각 작품에 담긴 내용과 주장을 분석한 후 자신의 생각과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배 문학 작품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나온 결핍 에너지가 대부분을 차지함으로 인해, 문학 창작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될 수가 있었다.

 

조선후기 계속되는 암울한 정치현실로 인해 일부 유배문학은 허무주의적 경향을 띠기도 하지만, 대부분 버림받고 천대 받던 최하층 백성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아름답고 고상한 정신세계를 그림으로써, 실학적 지성의 면모를 보이면서 시가문학을 더욱 풍부히 하는데 기여하였다.

먼 타향에서 슬픔과 어려움,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이를 억제하려고 노력하되, 유배현실을 개인의 일로 한정하지 않고 국가와 가족의 문제와 연결시켜 범주를 확장하기도 하였고 현실적인 층위에서 일어난 가족 전체의 일과, 내면화의 방법을 가족으로 정서를 전환하기도 했다.

어떤 매개 대상을 통한 내면화로 남긴 많은 한시들의 바탕이 가족의 유리로 인한 번민이 깔려 있다. 귀양살이의 세월이 흐르면서 경남에서 여러 인물들과 교류를 통하여 느낀 좌절과 고독감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되돌아 볼 기회를 찾는다.

그리하여 자조(自照)의 정서로 가닥을 잡게 되는데. 현실의 불만을 적극적으로 내면화한다는 것은 시적화자가 갈등을 조화롭게 해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시적화자이자 작가가 현실에서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2) 경남지역 한문학 분류, 작가와 유배문학

경남지역 유배문학은 현재 울산광역시 울산군(蔚山郡)과 언양현(彦陽縣), 부산광역시 기장현(機張縣) 동래현(東萊縣)은 예전에는 같은 문화지역이었으나 지금은 행정구역이 나누어진 상태라 제외키로 했다.

또한 조선시대 경남의 단위행정 구역은,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함안군(咸安郡) 거제현(巨濟縣, 府) 고성현(固城縣) 칠원현(漆原縣) 진해현(鎭海縣) 웅천현(熊川縣) 제포(薺浦) 함양군(咸陽郡) 곤양군(昆陽郡) 거창군(居昌郡) 진성현(珍城縣) 사천현(泗川縣) 곤남군(昆南郡) 삼가현(三嘉縣) 의령현(宜寧縣) 하동현(河東縣) 산음현(山陰縣) 단성현(丹城縣) 산청군(山淸郡) 안음현(安陰縣) 진주목(晉州牧) 합천군(陜川郡) 초계군(草溪郡) 창녕현(昌寧縣) 영산현(靈山縣) 양산군(梁山郡) 남해현(南海縣)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경남지역의 한문학을 몇 가지로 분류하기란,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작자가 처한 당시의 상황, 즉 겉으로 드러난 외면적인 모습으로 분류 할 수는 있다.

이에 ‘내방객(來訪客)문학’ ‘토착민(土着民)문학’ ‘관배객(官配客)문학’으로 나누어 본다.

내방객(來訪客)문학은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유람 차 방문 하거나 은둔 우거를 위해 스스로 찾아와 방문하여, 경남의 형승은 물론 경남 지인과의 교류를 통해 표출한 작품들이다. 최치원(崔致遠), 서거정(徐巨正), 이식(李植), 조임도(趙任道), 남효온(南孝溫), 조수삼(趙秀三), 강위(姜瑋), 김창협(金昌協), 정사룡(鄭士龍), 이진상(李震相), 신좌모(申佐模), 장석영(張錫英), 송순(宋純) 등이 있고, 토착민(土着民)문학은 그야말로 경남지역에서 태어나 성장한 분들의 글로써, 경남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을 방문하여 창작한 작품들이 이에 해당된다.

합천 남명 조식(曺植), 진주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와 하진(河溍), 산청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밀양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의령 의암(宜菴) 안덕문(安德文), 거제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남해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 창령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함양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과 유호인(兪好仁)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관배객(官配客) 문학작품이 있다. 이는 크게 두 부분으로 분류되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남지역으로 보내진 이들이 창작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첫째는 벼슬살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왕명에 의해 관리로 부임하여, 경남지역에서 읊은 작품과 경남 지역을 순행하다가 지은 작품으로써, 저자로는 졸옹(拙翁) 홍성민(洪聖民), 채원(茝園) 오횡묵(吳宖默),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허백당(許百堂) 성현(成俔), 백암(柏巖) 김륵(金玏),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겸재(謙齋) 조태억(趙泰億),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등이 이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경남으로 유배 찬축되어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성찰하고 교류하면서 창작한 유배문학작품이다.

대표 유배문인으로는 이첨(李詹), 권근(權近), 이학규(李學逵), 왕욱(王郁), 이지걸(李志傑), 김려(金鑢), 정희량(鄭希良), 송인수(宋麟壽), 송시열(宋時烈), 이행(李荇), 정황(丁潢), 김진규(金鎭圭) 김만중(金萬重), 김구(金絿), 남구만(南九萬), 심광세(沈光世), 성석린(成石璘), 홍언충(洪彦忠), 정서(鄭敍), 최숙생(崔淑生), 성희(成熺), 이이명(李頤命), 고용후(高用厚), 조희일(趙希逸), 정굉필(鄭宏弼), 김세필(金世弼) 등이 있다.

현재 경남지역의 유배문학 작품은 약 4000여 편 이상 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고, 지금까지 경남지역에 유배 온 유배객의 밝혀진 명단은 총 1200 여명에 이르며,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서 그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명단(이름) 없이 숫자로만 경남지역으로 보내진 자는 제외했다. 또한 전남지역이나 제주도로 유배 간 분들의 유배문학과 큰 차이점을 발견하리란 쉽지 않다.

다만 경남지역의 지명과 형승, 지역문화∙역사∙환경∙풍속∙물상을 읊은 점과 지역 內 학자들과 교우한 점은, 다른 지역과 특이할 만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담정유고(藫庭遺藁)⌟ 8권 <우해이어부(牛海異魚譜)>는 담정(藫庭) 김려가 1803년 유배지 경남 창원시 합포구 진동면 고현리에서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이고, <우산잡곡(牛山雜曲)>은 <우해이어부>에 함께 수록된 시집의 명칭이다.

다산 정약용이 1814년 흑산도 유배지에서 지은 <자산어보(현산어보)>보다 11년 앞서 지은 것으로써, <우해이어부><자산어보> 두 편은 근대 이전에 만들어진 어보로는 유일하다.

《사유악부(思牖樂府)》는 김려가 부령에 유배되어 4년간 머무르면서 그 곳 여러 사람들과 나눈 우정을 기억하며 진동에서 지은 악부 290수를 모은 책이다.

낙하생(洛下生) 이학규(李學逵)가 쓴 ≪낙하생전집(洛下生全集)≫ 영남악부(嶺南樂府)는 신라로부터 고려 말까지 영남지역의 역사적 인물과 유적들을 ‘악부(樂府)’체의 시로써 표현한 시문집이며, 수옥집 채화거집 각시재집 등에는 민풍과 토속․전설․민담․고사․민요․역사․풍속 등을 담고 있는, 현실주의적 문학세계의 산물인 경남유배문학의 진수이다.

또한 이학규 선생이 창작한 많은 시편 중에 바다의 물산 즉, 어패류 관련 작품은 거제도와 김해에서 체험한 작품이 함께 섞여 <낙하생집>에 실려 있어, 당시 19세기 초의 경남 해안지방의 물산(物産)과 풍속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집이다.

더하여 이학규선생의 해동악부(海東樂府)는 우리나라 역사를 서술하고 있으며, 24년 유배동안 1400여 편의 유배작품을 남겨 경남을 대표하는 유배문인이다.

억울하게 유배 생활을 했던 이학규는 유배지에서의 체험에 기초하여 당대 사회 현실의 구조적 병폐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가짐으로써 부패한 관리들의 실정을 낱낱이 포착하고 기록해 나간다.

이는 조선조 비판적 지식인의 현실 체감과 적극적인 문학 의식의 한 표명이었고 궁벽한 유배지에서 부른 ‘역사의 노래’였다.

그리고 자암 김구(金絿)가 남해도 승경(勝景)인 화전의 풍경을 노래한, 6장으로 된 경기체가 형식의 노래인 화전별곡[花田別曲]이 있고, 서포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인간 부귀영화가 일장춘몽이라는 주제의 소설 ≪구운몽九雲夢, 선천유배작품≫과 숙종이 계비인 인현왕후를 퇴출하고 궁녀 장희빈을 왕비로 맞아들인데 대해 왕의 마음을 뉘우치게 하려고 지은 작품으로, 일부다처제에서의 사랑싸움, 권선징악 등의 주제의식이 융합되어 있는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는 우리나라 고전한글소설의 귀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거제도 이행(李荇)의 용재집 해도록, 정황(丁潢)의 유헌집, 김진규(金鎭圭)의 죽천집은 궁벽한 먼 변방 거제도 유배지에서 그리움을 읊은 애달픈 노래였다.

 

유배객은 한 단위 지역에서 안치되어 복권 될 때까지 한정된 공간에 머무는 경우도 있고 경남의 여러 지역으로 이배되어 귀양살이 하는 경우도 있어 유배지를 특정 지역으로 한정할 수가 없는 분들이 많다.

성석린(成石璘)은 함안에 유폐되었다가 고성으로 이배되었고, 남구만은 거제에서 남해로, 이첨(李詹)은 하동 합포(마산) 김해 밀양 등지로 이배되거나 관리의 허락을 받고 다른 고을로 방문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학규(李學逵) 심광세(沈光世) 권근(權近) 김려(金鑢)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활동지역은 당시 경상우도 中, 現 경남지역과 경북 성주 현풍 고령지역까지 포함된다.

사천시 곤양 유배객 이지걸(李志傑)은 진주와 고성 갈천 그리고 사천의 곤명면 곤양면 일대를 두루 유람하기도 했고, 심광세(沈光世)는 고성에서 하동까지, 이학규(李學逵) 또한 김해에서 거제도를 비롯한 경남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각 지역의 민속 문화와 형승을 읊었다.

 

3). 마무리

유배문화의 재조명 작업은, 사람이 살아온 섬으로서 무한한 ‘인문과학적’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쾌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배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거기에는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무엇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인생의 격랑을 헤치고 나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감동과 교훈을 준다.

평생을 쉼 없이 공부하고 유배지에서도 강학과 연구를 계속하여, 그 사표(師表)가 되었던 학자적 자세 등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는 참선비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유배는 염치와 명분의 상징이었고 자기완성의 공간이며 자기 성찰의 기회였다. 특권층의 성리학적 문학이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함께한, 진정한 민중의 영혼이 담긴 위대한 유산이니, 유배문화는 분명히 경남의 또 다른 문화자산이다. 특히 인문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경남의 유배문화컨텐츠는 주요 유배지를 따라 광범위하게 조성되어야 한다. 특히 유배문학을 꽃 피운, <김해시> 권근(權近) 이학규(李學逵) 정희량(鄭希良), <고성군> 심광세(沈光世) 성석린(成石璘), <사천시> 이지걸(李志傑) 송인수(宋麟壽) 왕욱(王郁), <하동군> 이첨(李詹), <창원시 진동면> 김려(金鑢), <남해군> 김구(金絿) 김만중(金萬重) 남구만(南九萬), <거제시> 정황(丁熿) 김진규(金鎭圭) 이행(李荇) 정서(鄭敍) 송시열(宋時烈) 등, 각 지역 거점유배문화공간을 조성한 후, 각 지역을 연계하여 경남 남해안 유배문화벨트라인을 구축해야한다.

현재 각 지역마다 발굴 편찬한 경남유배문학을 총집결해 총괄관리 해야 하고 지역마다 특색 있는 유배문화발굴과 경남지역만의 유배문화관광테마상품을 창조해 내야한다.

이를 위해 경남 각 지역의 유배지 배소조성과 유배조형물 그리고 유배문화 아이템, 즉 먹거리(유배주 음식 등), 볼거리, 유배길, 유배민요, 민속음악과 무용, 유배 연극마당, 음식문화, 유배자 배소재현, 시비공원, 유배기념품, 체험관광 등을 지역의 특성에 의거해 조성하면 된다.

유배문화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기 전에 각 지역상황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 정체성 확립과 지역 이야기를 접목시켜 즐길꺼리에다 참여 가능한 스토리텔링을 덧붙여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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