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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 소리(聞鸎)
꾀꼬리 소리(聞鸎)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11.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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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는 한자어로 흔히 앵(鶯)이라 한다. 황조(黃鳥)·황리(黃鸝)·노앵(老鶯)∙황앵(黃鶯)∙여황(鵹黃)·창경(倉庚,鶬鶊)·황백로(黃伯勞)·박서(搏黍)·초작(楚雀)·금의공자(金衣公子)·황포(黃抱)·이황(離黃)·표류(鶹) 등의 다양한 이칭을 가지고 있다.

“꽃 사이 나비춤은 이리저리 흩날리는 눈이요, 버들 위의 꾀꼬리는 조각조각 금이로다.”[花間蝶舞紛紛雪 柳上鶯飛片片金] 〈백련초해(百聯抄解)〉와 <유산가(遊山歌)>에 있는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라.”이라는 구절은 봄철에 버들잎이 새로 피어날 때 그 위를 나는 꾀꼬리 모양을 묘사한 시구로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글귀이기도 하다.

은근히 꾀꼬리가 지저귀는 소리는 고향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그리운 이의 처지가 염려되는 시상(詩想)의 원천이다.

거제도 유배객들은 거제도의 깊은 숲속 꾀꼬리 소리에, 멍하니 바라보며 저 멀리 가족과 만날 수 없는 외로운 귀양살이 신세를 한탄한다. 오직 지난 시절, 다정했던 집안의 떠들썩하고 흥겨운 심상(心想)의 가요(歌謠)로 들렀을 것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전 3장(傳三章)에,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꾀꼴꾀꼴 꾀꼴새는 숲이 무성한 곳에 그친다.[緍蠻黃鳥 止于丘隅]’ 했거늘, 공자가 이르기를(子曰), ”새도 그 그칠 바를 알거니, 사람치고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於止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조그만 미물인 새조차도 능히 제가 마땅히 어디에 머물러야 할 것인가를 알아 머무는 데, 항차 사람이 되어서 도리어 새보다도 현명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라고 했다.

또 《대학장구》에 “머물 곳을 안 뒤에야 지향할 목표가 정해지고, 지향할 목표가 정해진 뒤에야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진 뒤에야 외물에 동요되지 않을 수 있다.

[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는 말이 나온다. 저 숲속의 꾀꼬리를 초야에 묻혀 사는 현인을 비유해 난세를 풍자하면서, 끝없는 오욕을 경계한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은 친구 간의 우정을 노래한 시인데, 그중에 “새들이 정답게 지저귀나니, 각자 자기 벗을 찾는 소리로다.[嚶其鳴矣 求其友聲]”라는 구절과, “저 새들을 보게나. 저들도 벗을 찾지 않나. 하물며 사람인 우리들이 벗을 찾지 않을쏜가.[相彼鳥矣 猶求友聲 矧伊人矣 不求友生]”라며 친구와의 우정을 강조했다.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나고 번식을 위해 고향을 찾아온 꾀꼬리는 가지 끝에 국자처럼 생긴 둥지를 만들고 번식한다. 꾀꼬리는 고구려 유리왕 때 황조가(黃鳥歌)가 지어졌을 만큼 부부금실이 좋다.

거기다가 샛노란 연미복에 검은색 눈가 테두리까지 두르고 멋을 부려, 우리에겐 다정한 새로써, 고향 언덕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많은 문인들이 꾀꼬리를 시제로 한 시편을 남겼다.

2000년을 이어온 우리민족의 정서 속에 꾀꼬리는 그리움과 애타는 심정을 표현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그리운 님에 대한 애타는 정서를 대변하기도 했다.

아무튼 꾀꼬리는 고구려시대부터 오래오래 우리와 역사를 함께한 탓에 한국의 역사를 훤히 꿰고 있는 새이다.

울음소리는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우며, 산란기에는 ‘삣 삐요코 삐요’ 하고 되풀이해서 울고, ‘삐히이~이~오’ ‘케~에~’ 께에~‘ ’쩨에~‘ 등 다양한 소리를 내니 예부터 목소리가 고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꾀꼬리는 “꾀꼴꾀꼴”이라고 노래하지 않는다. 다만 꾀꼬리라는 이름 때문에 생긴 의성어일 뿐이다. “꾀꼬리란 놈은 노래를 잘하니 평양 기생으로 돌려라”라는 민요에서 나타나듯 꾀꼬리는 ’노래를 잘하는 상징성‘을 가진 비유어였다.

지구상에는 꾀꼬리과의 조류가 28종이 알려져 있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열대지방에 주로 분포하고, 유라시아대륙에는 2종만이 서식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단 한 종이 여름새로 도래한다. 중국 남부·인도차이나·버마·말레이반도 등지에서 월동하고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에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꾀꼬리는 심산오지에서 농촌과 도시의 공원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번식한다.

몸길이는 26㎝ 정도이며, 온몸이 선명한 황금빛이다. ≪물명고(物名攷)≫와 ≪재물보(才物譜)≫에서도 꾀꼬리에게는 32가지의 소리 굴림이 있다고 하였다.

꾀꼬리는 울음소리가 매우 맑고 고우며 모양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시가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에 자기의 고독한 처지를 암수의 꾀꼬리가 의좋게 노는 것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고려가요 동동(動動)은 월령체의 시가인데 4월의 정경을 노래한 대목에, “사월 아니니져 아으 오실셔 곳고리 새여 므슴다, 녹사(錄事)님은 옛 나를 잇고신져 아으 동동다리.”

안민영(安玟英 1816~?)의 시조에도 꾀꼬리가 등장한다. “꾀꼬리 고은 노래 나비춤을 시기마라 / 나비춤 아니런들 앵가 너뿐이여니와 / 네곁에 다정타 니를 것은 접무(蝶舞)론가 하노라.” 이처럼 꾀꼬리는 아름다운 모습과 특이한 울음소리가 봄철의 정경과 어울려 인간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꾀꼬리는 특히 버드나무와 친근한 듯하다.

1) 꾀꼬리 소리를 듣고[聞鶯有感] / 고영화(高永和)

園林百囀是何聲 원림의 수다스런 지저귐 이 무슨 소리인가?

海島欣聞睍睆鳴 바다 섬에 아름다운 노래 소리 반겨 듣는데

偸着金衣羽翼嬛 금빛 옷을 입은 몸매에 날개가 새뜻하니

開了千花話舊情 많은 꽃 다 피우고 옛 정담을 나누네.

2)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佳人花底簧千舌 꽃 아래 어여쁜 여인 천개 혀로 생황 부니

韻士樽前柑一雙 시인의 술잔 앞에 빛 좋은 귤 한 쌍이라

歷亂金梭楊柳崖 어지럽게 오가는 금색 북이 버드나무 언덕을 누비며

惹烟和雨織春江 안개와 봄비가 엮어서 봄 강을 직물로 짜고 있네.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속 저 선비는 꾀꼬리 한 마리를 보느라 말고삐를 늘어뜨리고, 학문과 체통을 잠시 잊고, 꾀꼬리 한 쌍의 다정한 모습에 발길을 멈춘 감상적 인물이다.

넋 놓고 바라보는 선비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말 위에 앉아 바라보는 것이 고작 버드나무 위 꾀꼬리 한 마리다.

7언절구 마상청앵[馬上聽鶯] 시구에는, “봄날 활짝 핀 꽃그늘 아래 천개의 다양한 소리로 노래하는 어여쁜 여인, 선비 앞에 술안주로 놓인 노란 귤처럼 쌍쌍의 노란 꾀꼬리, 토툼한 모양의 금빛 베틀 날실과 씨실이 버드나무 사이로 오고간다.

뿌연 안개와 보슬비가 화합하여 직물 짜는 봄날 풍경을 만들고 있다.“ 그림 속 말 위의 선비와 어린 동자 그리고 버드나무와 꾀꼬리는 시각적인 화면에 동적이고 서정적인 봄날 정서를 환하게 표현했다.

3) 문앵유감(聞鸎有感) 꾀꼬리 소리를 듣고 느끼는 바가 있어 / 홍언충(洪彦忠) 거제시 장평동 삼성호텔 부근.

隔年相別又重來 한 해 걸러 이별하고 또 갔다 왔는데

百囀殷勤不自猜 은근히 지저귀는 소리가 거슬리지 않네.

憶昔送人兼送汝 예전에 떠난 분을 떠올리며 너를 보내지만

如何不得與俱回 함께 돌아오지 못한다면 어찌하리까?

淸曉遙聞第一聲 맑은 새벽 멀리서 들려오는 첫 소리에

飛來庭樹更多情 날아 온 정원의 나무, 참 다정스럽다.

寂然終日還無跡 적연한 종일토록 도리어 자취 없었는데

何處欺人午夢驚 어디에 감쪽같이 숨어 대낮 꿈을 깨게 하는가.

○ 홍언충(洪彦忠)은 1504년 갑자사화에 연산군 때 그 많은 국신(國臣) 가운데 연산군에게 학대받고도 연산군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사람은 홍언충(洪彦忠)과 유기창(兪起昌) 두 사람뿐이었는데, 두 분 다 거제도에 유배오신 분들이었다.

거제도에서의 생활은 자신과 세상을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유배의 일상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성찰의 주제를 찾아내곤 했다.

그리고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에 대해 거부·외면이 아닌 순용(順容)을 통해 안으로 누그러뜨리는 방향으로 갔다. 부친의 호 ‘虛白’처럼 주어진 상황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바깥을 경영하기보다 내 ‘빈 방[虛室]’의 진실을 발견하는 일이 그의 궁극적 선택이었다.

홍언충은 해배 후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 병약함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거제도에서의 유배체험을 어떻게 수용하고 생의 어떠한 자료로 삼았는가, 이것이 이후 삶의 행로를 결정했다.

그에게 거제도유배생활에서 시(詩) 짓기는 곧 ‘빈 방의 진실을 찾아 가는 길’이었으며, 이것은 해배 후의 삶으로 분명한 결론이 지어졌다.

4) 문앵(聞鸎) 꾀꼬리 소리 들리네.  / 김진규(金鎭圭)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반곡골짜기.

小窓孤眠起 작은 창에 외로이 잠자다 일어나니

曉鸎喚前林 새벽 꾀꼬리가 앞 숲에서 지저귄다.

裊裊鸎聲遠 간드러지는 꾀꼬리 소리 멀어지고

䓗䓗林木深 푸르고 푸른 수풀나무 무성하다

林深望不見 깊은 숲 바라보아도 만날 수 없으나

但聞送流音 오직 흘러 보낸 소리들만 들리네.

○ 김진규(金鎭圭) 거제도에서 선생은 슬픔과 어려움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이를 억제하려고 노력하되, 유배현실을 개인의 일로 한정하지 않고 국가와 가족의 문제와 연결시켜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현실적인 층위에서 일어난 가족 전체의 일과 내면화의 방법을 가족으로 정서를 전환한 것이다. 거제에서 적은 많은 시편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매개 대상을 통한 내면화로 남긴 많은 한시들의 바탕이 가족의 유리로 인한 번민이 깔려 있다.

죽천의 시 속에는 여유롭고, 거제의 자연과 동화되어 있는 한가로움에서 나온, 가족에 대한 연민이 나타난다. 낯선 객지생활 속에서 느끼는 화자(話者)의 심정은 어느 시대상황을 막론하고 유사했으리라.

5) 꾀꼬리 소리를 듣고[聞鸎] 1~2. / 이건(李健 1614~1662 선조의 손자) 

“앵무새 소리들 교묘하여 귀양객은 수심을 그칠 수 없네. 고향의 번화한 그 곳에서 어느 누가 제주도로 문안 오리까.”[黃鶯舌初巧 遷客不禁愁 故國繁華地 何人問濟州]

“집이 청산 아래라 앵무새 소리 날마다 들려온다. 맑은 새벽 일어나니 여명에 정신이 더욱 맑아지네.”[家住靑山下 鸎聲日日聞 幽人淸曉起 黯黯倍消魂]

6) 문앵시(聞鸎詩) / 이첨(李詹 1345-1405)

三十六宮春樹深 삼십육궐(三十六闕) 후궁에 봄 나무 깊숙하고

蛾眉夢覺午窓陰 미인이 꿈을 깨니 남창이 어둑해라

玲瓏百囀凝愁聽 영롱한 울음소리 수심 엉겨 듣자 하니

盡是香閨望幸心 모두가 향긋한 규방에서 님을 바라는 마음일레.

7) 황조가(黃鳥歌) / 고구려 제2대 유리왕(瑠璃王)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울 사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翩翩黃鳥(편편황조) 雌雄相依(자웅상의) 念我之獨(염아지독) 誰其與歸(수기여귀)] 

 

황조가(黃鳥歌)는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이 BC 17년에 짝을 지어 날아가는 꾀꼬리를 보고 감탄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4언 4구체 원본은 한역시로, 집단적·종교적인 특성을 지니는 원시종합예술 형태에서 점차 벗어나 개인의 서정성을 보여주는 한국 최초의 서정시로 꼽힌다.

이 노래는 같은 원시, 고대의 시가이면서도 집단 가요인 '구지가'와는 달리 개인적 서정 가요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아주 적절한 예가 된다.

'구지가'와 비교해 보면 가요의 형태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활 감정이 복잡해져 감에 따른 예술의 분화 과정(집단 가요 → 개인적 서정 가요)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래의 짜임은 단순하다. 제 1, 2행과 제 3, 4행이 내용상 대칭 구조로 짜여 있으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대비시켜 부각시키고 있다.

사랑을 잃은 처지에서 정다운 쌍을 본다는 것은 그 아픔을 더욱 고조시키는 대비적 소재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이 노래는 그러한 아픔의 원초적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2000년을 넘게 이어온 우리나라 시문학의 큰 줄기인 선경후정(先景後情), 즉 전반부는 공간적 시간적 배경을 묘사하고 후반부는 화자의 정서(감정)을 표현하는 시상전개 방식이다. 정경묘사를 통해 시적화자의 간접적인 쓸쓸한 독백의 어조, 정사를 드러내곤 한다.

8) 꾀꼬리 소리를 듣다(三月二十九日聞鷪) 3월 29일 / 김종직(金宗直)

墮紅殘萼更堪憐  꽃 떨어진 남은 꽃받침 다시 가련하여라

回首名園草似煙 명원에 머리 돌리니 풀은 푸른 연기 같은데

驚殺午窓鄕國夢 낮잠 속에 고향의 꿈, 놀라 깨어 일어나니

鷪聲依舊忽淸圓 꾀꼬리 소리 전같이 어느덧 맑고 부드러워라.

9) 꾀꼬리[鸎] / 권상하(權尙夏 1641~1721)

碧柳千絲細細斜 일천 가닥 푸른 버들 가늘게도 날리는데

黃鸝隔葉好音誇 잎사귀 속의 꾀꼬리 고운 소리 자랑하네.

無端喚罷山窓夢 산속 창가의 단꿈을 까닭 없이 불러 깨워

似訴狂風掃落花 광풍이 낙화 쓸어냄을 하소연 하는 듯.

10) 꾀꼬리 소리 듣고 자경에게 주다[聞鸎贈子敬] / 정희득(鄭希得 1575~1640)

忽聞巧舌又綿蠻 아리땁게 우는 소리 문득 들려오니

春盡天涯客未還 타향의 봄 다 갔건만 나그네는 돌아가지 못하네.

囀報窓間孤枕夢 꿈꾸는 창 앞에 와서 우는 꾀꼬리

覺來歸思滿鄕關 깨어나매 고향에 돌아갈 생각 가득하다.

11) 늦봄 꾀꼬리 소리를 들으며[暮春聞鶯] / 임춘(林椿)

田家葚熟麥將稠 농가에 오디 익고 보리도 익어갈 제

綠樹時聞黃栗留 푸른 나무 때때로 꾀꼬리 머무나니

似識洛陽花下客 꽃 아래 서울 손님 아는 체하며

殷勤百囀未能休 은근히 울고 울어 쉬지를 않네.

고려중기 ‘국순전’ ‘공방전’의 저자 임춘(林椿)은 일찍부터 유교적 교양과 문학으로 입신할 것을 표방하여 무신란 이전에 이미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그러다가 20세 전후에 무신정권을 만나 가문 전체가 화를 입었다. 그는 개경에서 5년간 은신하다가 가족을 이끌고 영남지방으로 피신하였다.

이인로(李仁老)를 비롯한 죽림고회(竹林高會) 벗들과는 시와 술로 서로 즐기며 현실에 대한 불만과 탄식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큰 포부를 문학을 통하여 피력하였다.

그의 문학은 운율이나 음절의 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강한 산문성을 띠고 있다. 관념이나 추상적 사고를 먼저 하지 않고 곧바로 실제의 사물에 관하여 생각하거나 행하는 바, 자신의 현실적 관심을 짙게 드러낸다.

투철한 자아인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상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2) 문앵유감 용원내서운[聞鶯有感 用元內書韻] / 정추(鄭樞 1333∼1382)

夏木陰陰雨乍晴 여름 나무 우거지고 비가 잠깐 갰는데

金夜相喚百般聲 금빛 옷(꾀꼬리)의 서로 부르는 온갖 소리일세

知渠固有驚人喙 보아라! 본래 사람을 놀랠 만한 부리 있건만

齊鳥三年不肯鳴 그 제나라 새는 삼년 동안 울려 하지 않았네.

[주] 제(齊)나라 새 : 제 위왕(齊威王)이 임금이 된 지 3년에 음란한 놀이만 하고 정치는 돌보지 아니하였다. 순우곤(淳于髡)이 왕에게 은어(隱語 수수께끼)를 하기를, “큰 새가 한 마리 있는데 3년 동안이나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하니 왕이 답하기를, “3년 동안 날지 않다가 날면 장차 하늘을 찌를 것이며, 3년 동안 울지 않다가 울면 장차 사람을 놀래게 할 것이다.” 하고 그날부터 정치에 힘을 써서 강국(強國)이 되었다.

13) 여관에서 꾀꼬리소리를 듣다[旅寓聞鸎] / 이숭인(李崇仁 1347~1392)

園林白晝暑風淸 한낮 원림(園林)에 여름 바람 서늘한데

聽得黃鸝第一聲 한마디 꾀꼬리 소리가 들리네.

却憶去年猶此日 문득 지난해 이날을 생각해보니

客中偏覺寸心驚 객중에 치우친 마음 생겨나 놀란다.

 

14) 꾀꼬리 소리[聞鸎] / 소세양(蘇世讓 1486∼1562)

雲暗風微欲雨天 어두운 구름에 약한 바람 하늘에서 비가 올 듯,

一鞭行色正蕭然 채찍 하나의 행색 참으로 쓸쓸한데

歸期好趁淸和節 돌아갈 약속에 잘도 내달린 청화절(淸和節),

綠樹鸎聲擁後先 짙푸른 나무 꾀꼬리 소리 앞뒤로 옹호하네.

15) 꾀꼬리 소리[聞鸎] / 남유용(南有容 1698~1773)

芳樹離離春晝明 꽃나무 우거진 봄날 밝은 대낮에

我來倚杖黃鸝鳴 지팡이에 의지해서 오는데 꾀꼬리가 운다.

與人不作留連意 타인과 함께 행하지 못해 객지에서 머물고 있는데

飛去西林還一聲 서쪽 숲으로 날아가는 꾀꼬리가 다시 한마디 소리 지른다.

16) 꾀꼬리 소리[聞鸎] / 황윤석(黃胤錫 1729~1791)

人世悠悠萬念輕 유유한 인간 세상에 모든 생각이 가벼워지는데

十年何事有虛聲 십년동안 무슨 일인지 터무니없는 소문만 남았구나.

流鸎卻是無涵養 날아다니는 꾀꼬리가 오히려 함양이 없는데도

飛去飛來自道名 날아서 가고오며 스스로 길을 연다네.

17) 꾀꼬리 소리를 듣고 느끼는 바가 있어[聞鸎有感] / 신광한(申光漢 1484~1555)

黃鳥初聞處 꾀꼬리 소리 처음 들리는 곳에서

淸陰獨臥時 나무 그늘에 홀로 누웠을 때,

飛來翻柳岸 나부끼는 버들언덕으로 날아와

啼去戀花枝 그리운 꽃가지에서 울고 가누나.

急喚方殘夢 바야흐로 남은 꿈속에서 급히 지저귀는데

如催未就詩 아직도 시를 짓지 못했느냐 재촉하는 듯,

叮嚀求友意 틀림없이 벗을 구하려는 뜻이리라

曾謂爾無知 이에 이런 무지(無知)를 어찌하랴.

18) 꾀꼬리 소리[聞鸎] / 심동귀(沈東龜 1594~1660)

節物天涯變 계절의 산물(産物)이 먼 변방에도 바뀌고

啼鸎切近人 꾀꼬리 울 제 가까운 사람 소식 없네.

流音漢苑曲 흘리는 소리는 한나라 정원의 곡조,

恨緖楚山春 한스런 마음은 초산의 봄이로세.

病起催詩急 병석에서 일어나 급히 시 짓기를 서두르며

閑聽拭淚頻 한가히 듣노라니 자꾸 눈물을 훔친다.

俄然一枕夢 급작스레 잠든 하룻밤 꿈속에서

烟雨喚歸秦 안개비가 진나라로 돌아가라 외치네.

심동귀(沈東龜)는 1644년 사간(司諫)에 올랐다가 심기원(沈器遠)의 옥사(獄事)에 인척으로서 연좌하여 장흥(長興)에 약 7년간 유배되었다.

먼 변방 장흥에서 계절이 몇 번 바뀌어도 소식이 없자 꾀꼬리 소리를 들으며 귀양살이 고독감을 표현하였다. 한나라 정원은 천리 변방에 전쟁나간 남편에 대한 아녀자의 안타까움을, 초산은 고향동산을, 진나라는 조정을 각각 비유해 읊은 시구이다.

선생이 벼슬살던 인조왕 시기에는 거듭되던 전란으로 피폐해진 나라와 빈궁한 백성의 삶이 황폐해진 참담한 시기였다. 선생은 이후 효종 초기에 석방되어 고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 꾀꼬리는 우리민족의 정서 속에서 수천 년을 함께 어어 온 참새목에 속하는 여름철새이다. 이는 팔색조와 비슷하나, 몸집의 크기가 크고 황금빛 연미복에 검은색 눈가 테두리를 두르고, 붉게 칠한 부리에 멋을 부린, 언제나 우리 곁에서 들렸던 다정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얼마 전 KBS 2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굿거리장단의 국악과 록이 절묘하게 아우러진, 조용필의 '못 찾겠다 꾀꼬리'를 가수 손승연이 편곡해 불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고유의 국악 무대가, 오랜만에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 ’멋진 꾀꼬리 무대‘였다.

수많은 옛 선조들이 꾀꼬리 소리를 듣고 깊은 심연에 빠져 많은 시편을 남겼다. 특히 고려중기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의 저자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해마다 늦봄에 나타나 날씬한 몸매를 황금빛으로 도금하고 공교한 울음소리로 풍악을 연주한다.

오고갈 때를 아는 신의가 있는 영특한 미물이다. 음력 4월을 앵월(鸎月)이라 칭하는 것은 늦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규방의 처녀가 꾀꼬리의 아름다움과 고운 소리에 질투의 눈물 흘린다.“고 읊었다. 아무튼 꾀꼬리의 울음소리는 마음의 심상을 흔드는 원초적인, 친숙한 ‘곡조가(曲調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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