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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반곡서원문학 3.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한문학 두번째 편
거제 반곡서원문학 3.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한문학 두번째 편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1.0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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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저물녘 봄비는 흩어져 내리고.(暮春雨中漫賦) / 사첩(四疊) 중 일부분.

집에서 바라본 거제만 앞바다에는 한산도를 포함한 수많은 섬들이 뒤섞여 있다. 저 섬들이 문득 나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 하다가, 마침 봄비오자 썰물 빠지고 여남은 꽃들이 땅에 떨어져 가득한데, 온 누리 푸른 봄빛 속에, 물가 갈매기 떼 지어 있고, 집 주위 대숲도 여전히 아름답다. 시름겨운 귀양살이 봄날,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은 마음을 담담히 표현했다.

柴門咫尺海冥冥 사립문이 지척인데 바다는 아득하고

孤嶼渾如水上萍 외로운 작은 섬들이 물 위 부평초같이 뒤섞여 있구나.

急雨驅潮天漸黑 급한 비에 조수 몰아내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殘花滿地樹皆靑 떨어진 꽃 온 땅에 가득해도 온통 푸른 나무.

幽居無事樂沉冥 궁벽하게 살면서 별 일없이 편히 은거하며

流落何須歎梗萍 유랑했는데, 어찌 구태여 부평초가 막히었다 탄식할까나

泛渚羣鷗憐皎皎 물가에 떠있는 갈매기 무리, 흰 빛깔 곱고 어여쁘니

照盃叢竹愛靑靑 잔에 비친 대나무 숲, 푸릇푸릇 아름답네.

⑩ 맥랑(麥浪). 보리 물결 / 거제면 들판에서..

荻岸寧爲水 억새가 어찌하여 물같이 되었는가?

平田渺漲波 평지 논에 넘친 물결이 끝없고

雪消藍色活 눈이 녹아 남색 빛이 도드라지니

風偃縠紋多 바람 불어 비단물결 뛰어나다.

雉起疑鷗泛 꿩은 머뭇머뭇, 갈매기는 두리둥실,   

農謳當棹歌 농부의 노래가락, 흥겨운 뱃노래.  

滔滔孟夏後 초여름 이후로 도도(滔滔)하여

猶似見黃河 가히 황하 강을 보는 듯하네.  

[주] 도도히(滔滔-) : ①물이 그들먹하게 퍼져. ②거침없이 물 흐르듯. 순한글 '도도하다'는 거만하다는 뜻이고, 한자어인 '도도(滔滔)하다'는 막힘이 없이 기운차다는 뜻.

드넓게 펼쳐진 들판, 멀리서 바람이 엇갈려 다닌다. 새싹들이 초록물결을 이룬 보리밭은 바람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하다 말고 잠시 허리를 펴며 그 광경을 바라보니 마음은 더없이 흐뭇하다. 보리, 밀, 억새가 굽이치는 늦봄, 거제면 들판에는 일렁이는 보리 물결이 파도처럼 아름다워, 선생께서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짙푸른 보리밭에 굽이치는 보리물결로 풍년을 기약하며, 농부는 흥겨운 뱃노래를 부른다. 거제도의 전형적인 반농반어촌인 해안마을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드넓게 펼쳐진 거제평야, 보리평원은 생명의 젖줄이자 장관이다.

⑪ 새벽에 읊다(曉吟) / 김진규(金鎭圭)

窓外雲峯隔幾重 창밖 구름 덮인 봉우리 몇 겹 저편에

曉天微月透踈松 새벽하늘 희미한 달, 성긴 솔에 사무친다.

翛然一枕禪房夢 서둘러 베개에 누워, 선방(禪房)에서 꿈꾸다가

驚起山僧禮佛鍾 놀라 일어나니, 산중 스님의 예불 종소리네.

절간의 선방(禪房)에서 새벽하늘 저편 봉우리를 바라보니 성긴 소나무 사이로 희미한 달이 비춘다. 뒤척이다가 서둘러 베개에 누워 선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대궐로 들어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다. 예불 종소리에 놀라 일어나보니 산중의 절간이다. 그의 옆에선, 스님이 미소를 지으며 “인생이란 본시 이런 것이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선생은 시구 속에서 “부귀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다. 당나라 심기제의 침중기에 나오는 "일침황량(一枕黃粱)"의 표현을 슬쩍 빌려 와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냈다.

⑫ 국화(菊) / 김진규(金鎭圭).

月移瘦影上窓扉 그림자 희미한 달이 옮겨가 문짝 창 위로 떠오르고

風送寒香入酒卮 바람은 찬 향기를 보내 술잔 속에 들어가네. 

花葉伴人憔悴甚 꽃잎이 사람과 짝하여 심히 초췌한데

與君相慰更相悲 국화와 더불어 서로를 위로하니 더욱더 슬퍼진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거제시는 매년 거제면 농업개발원에서 '거제섬 꽃 축제'를 연다. 모진 서리가 내려 뭇 꽃이 속절없이 다 시든 뒤에도 오롯이 꽃을 피우는 그 꿋꿋한 기상을 기려 옛 선비들은 ‘오상고절(傲霜孤節)’ 또는 ‘오예풍로(傲睨風露)’라고도 했다. 은일과 절조의 상징으로 조선시대 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국화의 은근한 아취를 '거제섬 꽃 축제'에서 맡아보자. 옛사람들이 말하길, '향기를 듣는다'(聞香ㆍ문향)는 멋스러움에 어울릴 만한 꽃이 난초 다음으로 국화일 듯하다. 국화가 지금도 지조와 단아한 품격을 갖춘 옛 선비를 떠올리는 꽃으로 기억되는 것은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덕분이다.

⑬ 붉은 단풍잎 (紅葉). / 김진규(金鎭圭).

霜露醲於酒 서리와 이슬 내려 술 더욱 진해지니

楓林醉色紅 단풍나무 숲이 취해 낯을 붉히누나.

蕭條愁客鬢 시름겨운 나그네 귀밑머리 쓸쓸하니

白髮生秋風 백발이 가을바람을 일으킨다.

찬바람 불고 서리 내릴 쯤 집안에 담근 술은 점점 익어간다. 온통 숲이 술에 취한 듯 붉다. 수심 가득한 귀양살이에 귀밑머리 희게 변해 가는데, 쓸쓸한 가을바람 불어와 백발을 휘날린다. '서리와 이슬'로 인해 '술'이 익어가니 '단풍'이 붉게 물들고, '나그네 수심'이 '백발'로 변해 '가을바람'을 일으킨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대상을 대조(對照)와 대비(對比)로 비유(比喩)해 새로운 연상의 의미를 이끌어 낸다. 선생의 문학적 재치를 엿볼 수 있다.

⑭ 달밤(月夜) / 김진규(金鎭圭).

고요히 잠 못 드는 깊은 밤, 뭇 소리 들려오고 구름 뚫고 나온 달빛에 온 바다가 밝디 밝다. 더럽혀진 내 영혼이 교교한 달빛에 깨끗이 씻기는 듯한데, 이 땅 거제도는 물길이 끝나는 변경에 있으니, 신선이 사는 삼신산과 가깝다고 확신한다.

境絶遺塵慮 막다른 변경에서 세속의 잡념 더하고

宵深閴衆聲 깊은 밤중 고요한 뭇소리.

雲開天宇曠 구름 걷히고 하늘 전체가 트이니

月浴海波明 달이 목욕하고 바다의 물결 밝아온다.

灝氣盈襟爽 청명한 기운이 가득하여 옷깃이 시원하고

浮光溢目淸 떠 있는 달빛 넘쳐 맑아진 눈.

還忘在羅網 물이 돌다 끝난 곳에 나망(羅網)이 있으니

只道近蓬瀛 다만 그 곳이 봉영산과 가까우리라.  

[주1] 나망(羅網) : ① 그물. 새 잡는 그물. 함정. 법률이나 法網(법망)을 일컫기도 함. ② 그물을 씌워 새를 잡듯이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움.

[주2] 봉영(蓬瀛) : 신선들이 산다는 삼신산 가운데 봉래산과 영주산.

⑮ 조선시대에는 사대부의 가문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도, 집사람에 대한 사랑의 직접적인 표현을 금기시하였다. 그러나 죽천 김진규(竹泉 金鎭圭, 1658~1716)선생은 1689년 7월~1694년 4월까지 거제도 유배생활동안 형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물론이거니와, 아내와 자식의 사랑을 구구절절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영조실록 기사에 기술하기를, 선생의 부인인 정씨(鄭氏)는 정철(鄭澈)의 6대 손녀인데 집안에서의 기거하는 의범(懿範)이 일문의 긍식(矜式)이 되었으며 홀로 된 뒤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마음을 먹고 미음도 마시지 않아 결국 남편을 따라 사망해, 이후 영조 28년(1752년) 5월에 정려(旌閭)를 받았다한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아내에 대한 연정(戀情)의 시편을 남겨 전하고 있으니, 부인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지극하신 분이었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과 현대인과의, 사랑의 시구(詩句)를 비교, 상상해서 읽다보면 그 재미가 솔솔하다.

선생이 거제면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아내를 떠올리는 한시 즉, 옛 격식에 맞추어 지은 '의고(擬古)' 中 일부 시편을 감상해 보자.

"물가 모래톱엔 두약꽃이, 깊은 산골엔 어수리꽃 피었네. 캐고 또 캐어 어디에 쓸런가? 부인과는 천리에 막혀있는데. 바람 맞으며 보내주고자 해도 길이 멀어 맡길 심부름꾼 없네. 서로 사랑해도 만날 수 없지만 근심 없는 평온함, 어찌 닮지 않으랴"[汀洲有杜若 幽谷生芳芷 采采亦安用 佳人隔千里 臨風欲相詒 路遠無歸使 愛之而不見 離憂定何似].

옛날 중국 북송시대 소동파 시인이 "드넓은 모래밭에 흐드러진 두약꽃을 보고 여인의 아름다움에 취했다"고 한다. 어수리 꽃은 높은데 살며 귀하신 산채이다. 머나먼 곳, 그리운 부인(佳人)생각에, 두약꽃 어수리꽃 시어를 늘어놓고 사무친 연민을 그리고 있다.

"고운 아내가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데, 알고 보니 눈물에 치마가 젖었다. 가련토다, 하늘에 뜬 맑은 보름달, 선명하게 빛나네[嬋媛夜夜夢 覺來淚盈裳 可憐天上月 三五澄淸光].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난 북쪽지방, 빼어난 자태, 부인 침실의 끈인가. 고운 눈썹은 세상에 다시없고 아름다운 얼굴엔 절로 향기 나구나"[佳人出北方 秀色絙洞房 蛾眉絶代無 玉顔自生香]. 이별의 한(恨)이 얼마나 사무치면 꿈속에서도 눈물바다인가. 선명하게 빛나는 저 보름달마저 가련하게 보인다. 날마다 소식 기다리는 북녘 하늘에서 촛불 켜진 부인 침실을 떠올린다. 아~ 그리운 그대, 내 여인이여~. 아내의 자태가 나긋나긋, 놀라 날아오르는 기러기처럼 나부끼니, 마치 승천하는 용 같아 보였으리라(翩若驚鴻, 宛若游龍).

"아내여 아내여~ 함께 머리 묶어 언약했는데 백년언약 깊은 정이 천리에 떨어졌구나. 남편을 받들면서 함께 굶주리고 목마를 그 언제였던가? 부러워라~ 저 작은 새들도 모두 짝지어 살고나"[有妻有妻共結髮 百年深情千里別 /何時擧案同飢渴 羨彼鳥雀皆雙栖].

"장기 낀 바다에서 먼 이별 중인데, 화장대를 엿 보는 자 누구인가? 미인의 눈썹에 이미 스산한 바람소리 일어, 이 모습 바라보니 다만 슬픔만 더할 뿐"[瘴海遠相別 粧奩誰爲窺 雙蛾已蕭颯 對此秪添悲].

"기다리는 편지는 오지 않고 푸른 구름만 서로 어울리는데, 집사람 소식 어이 그리 아득한고? 미천한 이 몸에 박명한 여자팔자, 감히 원망스러우나 작은 성의(誠意) 바라건대, "그대여 무탈하시라"[靑鳥不來碧雲合 美人消息何茫茫 微軀敢怨妾薄命 寸誠庶幾君無病].

비통한 선생의 시(詩)는 타인의 눈에 아무리 투박하고 모호하게 비추더라도 개의할 필요가 없는 자신만의 처연한 독백이었다.

⑯  1690년 음력 6월에 마침내 김진규(金鎭圭) 선생의 부인이 잠시 머물려고 거제도 배소를 찾았다. 중앙절 9월 9일에도 아내와 함께 하였으나, 두고 온 어린 자식과 모친을 오랫동안 홀로 둘 수가 없어 다음해 봄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조각배 겹겹의 바닷물, 6월 때맞춰 아주 먼 길, 먼 변방으로 누가 나를 찾아왔다. 머리에 쪽을 찌고 상투 튼 정(情)이 끝이 없었지. 밥상을 눈썹위로 받드는 예는 허물이 아닐진대, 괴롭게도 얼굴은 더욱 야위어 가고 슬픔과 근심에 눈물이 얼마나 맺히는지.. 죽을 때까지 마음의 빚을 우러러 보며 단지 서로 가엾게 여길 뿐. 한번 이별 후엔 기약 없이 아득했는데 다시 만나니 참으로 꿈만 같구나. 뺨에 흐른 눈물이 가엾게도 흠뻑 젖어, 근심에 잠긴 사랑스런 눈썹으로 점점 퍼지네"[片舸層溟水 長程六月時 窮荒誰我訪 結髮情無極 齊眉禮不愆 辛苦容逾瘦 悲憂涕幾懸 終身負仰望 相對只相憐 一別杳期斷 重逢眞夢如 淚臉憐猶濕 愁眉愛漸舒].

320년 前, 거제시 거제면에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한 글이다. 금슬상화(琴瑟相和) 즉 '거문고와 비파의 조화로운 음률'처럼 부부의 정(情)이 넘치는 선생이셨다. 예로부터 남정네들은 "집의 닭은 멀리하고 들의 꿩을 사랑한다"(家鷄野雉)라는 사자성어에 물들어 사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세상에 인연으로 맺어진 가장 소중한 내 짝을 귀히 여겨야 함을 당연한 일이다. 선생의 감각적인 사랑이야기를 읽는 동안, 내내 미소 머금으며, 서거정(徐居正)의 '석부사(石婦辭)'를 떠올렸다.

"천지는 끝이 없고 바다는 가이없거니 차라리 돌이 되어 아무것도 몰라버리리. 강가에 홀로 우뚝 서 있음이여, 천추만세토록 마음 변치 않으련다"[天地無窮兮海無涯 寧化爲石兮頑無知 表獨立兮江之湄 千秋萬歲兮心不移].

"부드러운 인정에 옥으로 꾸민 거문고를 주었는데 그 가락을 누가 붙잡아 둘 것인가? 곁눈질로 바라보며 이미 눈빛으로 통했는데, 내 창자가 꼬이도록 너무 젊고 예뻐, 함께 같이 자며 즐기기를 원하니, 띠를 두른 비단 옷을 차고 다니었지"[柔情付瑤琴 中曲爲誰長 眄睞已目成 婉孌結中腸 願爲合歡帶 繫在羅衣裳]. 

"밤마다 잠자리에 생겨나는 근심, 누가 말했나? 흩날리는 꽃잎 주렴에 들어와 독수공방 비웃네. 처마 앞의 무성한 대나무, 고독한 사랑, 한겨울 푸른빛, 딱 맞는 의미네"[誰言夜愁枕席生 入簾飛花笑獨寐 簷前獨愛竹猗猗 此意要譬歲寒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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