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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다 남을 위한 삶 속으로 들어간 '과수 전문가'
나 보다 남을 위한 삶 속으로 들어간 '과수 전문가'
  • 원용태 기자
  • 승인 2014.01.14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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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람사는 이야기④

요즘 ‘힐링’이 대세다. 영영사전에서는 힐링을 ‘몸 혹은 마음의 다친 혹은 여린 곳을 치유해 건강하고 정상적인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TV에서는 ‘힐링캠프’가 방영하고 있고 '슈퍼스타K'에서 로이킴이 ‘힐링이 필요해’라는 노래도 부른 적이 있다. 또한 불교계에서도 혜민스님이 지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은 200만부 이상 팔릴 정도로 힐링에 대한 관심도가 뜨겁다.

이러한 세태에 발맞추어 도시인들의 피로를 날려 줄 ‘힐링 과수 농원’을 계획중인 거제면 옥산리 귀농 늦깎이 허 천(62)씨를 만나 산속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9일 오전, 허씨가 운영하는 농원입구에서부터 전기톱소리가 요란하다. 땅을 고르기 위해 우거진 대나무들을 베기에 전념이 없다.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거제면 둔덕리에 있는 집에서 옥산리 농원까지 산을 넘어 운동 삼아 뛰어 다닐 정도로 건장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서 농사지을 생각이었습니다.”

허씨는 거제면 서정리에서 태어나 거제 수산고등학교(현 거제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부산 동아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1년 진해에서 국가공무원 일을 시작했다. 반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허씨는 2012년 말 32년간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아무 미련 없이 곧바로 거제면 둔덕리로 전입 했다. 30여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던 농사를 본격적으로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허씨는 서른 중반부터 귀농을 계획했다. 그 당시엔 귀농이라기 보다 허씨는 은퇴 후 고향에 가서 그저 농사를 지으며 노후생활을 꾸려 나갈 생각이었다. 허씨는 결심을 굳힌 이후 틈틈이 거제면 옥산리를 찾아 조금씩 땅을 구입했다. 30여년 앞을 내다보고 귀농을 서서히 준비한 것이다. 총 2억 여원의 자비로 구매 했고, 현재는 2800여 평으로 늘어났다.

허씨는 작년 한 해 동안 농업 공부에 전념했다. 지난해 1월 진주농업기술원에서 2주간의 합숙교육을 받았고, 그 해 9월 5일, 부산대 귀농학교(과수전공)를 6개월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2기 수료식을 가졌다. 허씨는 귀농학교 2기 회장을 맡았고, 수료식때 부산대 총장상을 받는 등 농원 꾸미기 공부에 열정적이다.

“거제는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라 귀농하면 지원금이 나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시에서 지원해준 교육 프로그램들은 물질적인 지원보다 훨씬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허씨는 토양의 성질, 구조, EM(Effective Micro-organisms=유용한 미생물)용법, 초생재배(과수원 같은 곳에서 깨끗이 김을 매주는 대신에 목초, 녹비 등을 나무밑에 가꾸는 재배법. 토양 침식방지, 제초노력절감, 지력증진, 수분보존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음) 등 과수 재배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친환경적이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훌륭한 품질의 과실을 수확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땅을 고르고 풀을 솎아내고 2800여평의 농원 땅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과수원을 할 수 있고 사람들도 편히 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힐링 과수 농원’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허씨는 현재 1000여 평의 밭에 비파나무, 앵두나무, 유자나무, 매실나무, 감나무, 헛개나무 등 10여종을 초생재배 하고 있다. 작년 초부터 재배를 시작했지만 적과(나무를 보호하고 좋은 과실을 얻기 위하여 너무 많이 달린 과실을 솎아 내는 일)를 해야 되기 때문에 올해 안에는 수확이 힘들다. 올 4월에 제대로 된 4, 5년 된 과수 묘목을 심어 내년에는 제대로 된 과일을 재배할 예정이다.

허씨는 나머지 1800여 평의 땅에 성토를 통해 언덕을 계단식으로 평평하게 만들어 오토캠핑장 과 족구장을, 대나무밭에는 방갈로를 만들 계획이다. 농원 한켠에는 산에서 조용히 흘러 내려오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키가 크고 날씬하게 빠진 대나무밭은 아늑한 집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농원 입구로 들어오는 길에는 소나무들이 아치형으로 늘어져 있어 마치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풍경도 펼쳐진다.

“농원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오래된 정자나무가 한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합니다.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는 백호봉 산줄기를 따라 흘러온 계곡물이 농원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청량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찾아온 관광객들이 사시사철 마다 열리는 과실을 직접 수확해 먹고 오토캠핑장과 방갈로를 통해 며칠 동안 만이라도 맘껏 자연의 기를 머금고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는 ‘힐링 과수 농원’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허씨는 돈을 버는게 목적이 아니다. 현대인들의 딱딱하고 굳어진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루 빨리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잡초 한 포기 라도 더 뽑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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