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3:23 (금)
거제 반곡서원문학 4. 김창집(金昌集)
거제 반곡서원문학 4. 김창집(金昌集)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1.14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

(1). 김창집(金昌集) 약력

1648(인조 26)~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죽었다. 본관은 안동. 자는 여성(汝成), 호는 몽와(夢窩). 좌의정 상헌(尙憲)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영의정 수항(壽恒)이고 어머니는 안정나씨(安定羅氏)이다. 창협(昌協)과 창흡(昌翕)의 형이다. 1672년(현종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공조좌랑을 거친 뒤, 1684년(숙종 10) 정시문과에 급제하고 정언·병조참의 등을 지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서인이었던 아버지가 남인의 명사를 마구 죽였다는 탄핵을 받아 진도로 유배되고, 이어 사사(賜死)되자 영평(永平)에 은둔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축출된 뒤 복관되고 병조참의를 제수받았으나 사임했다. 그 뒤 철원부사로 있을 때 큰 기근이 들고 도둑이 들끓어 민정이 소란하자 관군을 이끌고 이를 진압했다. 이어 호조·이조·형조의 판서를 거쳐, 지돈녕부사·한성부판윤·우의정·좌의정을 지냈다. 1712년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1717년 영의정이 되었다. 영의정을 맡고 있던 때, 경종이 즉위하여 34세가 되도록 병약하고 자녀가 없자, 후계자 선정문제로 노론·소론이 대립하였다. 이때 영중추부사 이이명(李頤命), 판중추부사 조태채(趙泰采), 좌의정 이건명(李健命) 등과 함께 노론 4대신은 연잉군(延祁君: 영조)을 왕세자로 세우기로 상의하여, 김대비(金大妃: 숙종의 계비)의 후원을 얻었다. 이에 경종의 비 어씨와 아버지 어유구(魚有龜), 사직 유봉휘(柳鳳輝)등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으나 결국 실행하게 되었다. 1721년(경종 1) 다시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상소하여, 처음에 경종은 대소 정사를 세제에게 맡길 것을 허락하였으나 소론의 격렬한 반대로 실패하였다. 수개월 뒤 소론의 극렬한 탄핵으로 노론이 축출되고 소론 일색의 정국이 되었다. 곧 이어 소론의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등이 노론의 반역도모를 무고하여 신임사화가 일어나자, 1721년 12월 거제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이듬해 성주에서 사사되었다. 1722년 5월2일 금부도사(禁府都事)가 죄인 김창집(金昌集)이 지난 달 29일 성주(星州)에 도착하여 사사(賜死)된 일을 장문(狀聞)하였다. 거제유배 기간은 1721년 12월~1722년 4월23일(음)이고 배소는 반곡서원 아래 대숲 속 초가집으로 거제여상건물 터이다.

◎ 귀양길 : 소론의 집권으로 거제도 유배형이 확정되어 1721년 12월12일 남산을 지나 한강을 건너고 용인에 도착, 이어 경북 성산에서 진주 안간역에 도착, 통영거제 사이 견내량 앞 바다 건너 거제면 배소로 향하였다 12월 30일경 거제면 배소에 도착 후 위리안치 되었다. 

◎ 몽와집(夢窩集) : 조선 후기 학자 김창집(金昌集, 1648~1722)의 시문집으로 권1·2에 사(辭)·시가 있고, 권3에는 (연행훈지록(燕行塤聲錄)) 수록. 1705년(숙종 31) 동생 창업(昌業)과 연경에 다녀오는 여정에서 형제가 서로 주고받은 시집. 10권 5책. 

◎ 오재집 : 시에는 김창집(金昌集)·창협(昌協)·창즙(昌緝) 삼형제와 주고받은 것,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것, 국화·영산홍·석류 등 22종의 화훼를 연이어 읊은 것, 두보(杜甫)의 시에 차운한 것, 친지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이별을 슬퍼하여 지은 것 등이 수록. 

(2). 몽와 김창집선생 제문(祭文) 1726년.

다음은 1726년 거제반곡서원에 배향되는 몽와 김창집 선생의 제문(祭文)을 서울에서 보낸 것이다. 간단한 선생의 유배 이유를 알고 읽어야 이해가 빠르다. (1704년 이후 우암 송시열 선생만 배향하다가, 1726년 죽천 김진규 선생과 몽와 김창집 선생이 함께 배향되었다).  

◎"거제서원"에서 봉안하는 몽아선생 제문(巨濟書院奉安夢窩先生祭文) / 丙午.  남당선생문집(南塘先生文集) 한원진(韓元震) 1726년 영조2년 作.  

[氣機推盪(기기추탕) 世不常治(세불상치) 天心仁愛(천심인애) 則未嘗移(즉미상치) 篤生偉人(독생위인) 預擬其時(예의기시) 推古證今(추고증금) 理不僭而(이불참이) 往在先朝(왕재선조) 慶乏螽斯(경핍종사) 主鬯位虛(주창위허) 中外憂危(중외우위) 文子武弟(문자무제) 天所與之(천소여지) 衆慝傍狺(중특방은) 惟懷其私(유회기사) 忘身殉國(망신순국) 擔負其誰(담부기수) 曰有元輔(왈유원보) 受聖考知(수성고지) 同我有忠(동아유충) 聿建大策(율건대책) 負龍出窞(부룡출담) 躋于貳極(제우이극) 萬世之計(만세지계) 定在不日(정재불일) 大勳纔樹(대훈재수) 駭機遽激(해기거격) 戴堯翊舜(대요익순) 反指爲逆(반지위역) 北門潛開(북문잠개) 忠賢幷族(충현병족) 蕃君善類(번군선류) 毒螫最酷(독석최혹) 海島鵩愁(해도복추) 星山鬼泣(성산귀읍) 勳同餘干(훈동여간) 奇禍尤烈(기화우열) 句續竹樹(구속죽수) 哀寃一轍(애원일철) 含笑就盡(함소취진) 尤見正力(우견정력) 氣作山河(기작산하) 光爭日月(광쟁일월) 噫惟先生(억유선생) 所受則有(소수칙유) 文正爲祖(문정위조) 文忠爲考(문충위고) 正氣忠猷(정기충유) 啓佑我後(계우아후) 扛夯在身(항항재신) 不失而守(불실이수) 存君活國(존군활국) 死猶甘樂(사유감락) 成仁取義(성인취의) 我則無怍(아즉무작) 惜賢悲忠(석현비충) 秉彛所同(병이소동) 忠臣雪涕(충신설체) 志士煩胷(지사번흉) 百身之慟(백신지통) 久而愈切(구이유절) 天定有時(천정유시) 無往不復(무왕불복) 日臨下土(일임하토) 光照覆盆(광조부분) 隱卒崇終(은졸숭종) 伸枉雪寃(신왕설원) 王曰表忠(왕왈표충) 不爾何勸(불이하권) 近京而先(근경이선) 聳瞻在遠(용첨재원) 繄此下邑(예차하읍) 程涪屈沅(정부굴원) 儀覿鳳南(의적봉남) 泥痕鴻遵(이흔홍준) 慕義無竆(모의무궁) 最我邦人(최아방인) 豈無揭虔(기무게건) 永寓象賢(영우상현) 睠彼明宮(권피명군) 寔享大老(식향대로) 慍于羣小(온우군소) 以身殉道(이도순신) 有配其廡(유배기무) 竹泉淸風(죽천청풍) 先後遜荒(선후손황) 迹符道同(적부도동) 事光幷侑(사광병유) 不可以他(불가이타) 如水在地(여수재지) 神不我遐(신불아하) 衆謀攸同(중모유동) 感慟惟新(감통유신) 盛儀載擧(성의재거) 籩豆式陳(변두식진) 衮衣赤舃(곤의적석) 髣髴有覩(방불유도) 肴芳醴淸(효방예청) 庶幾歆顧(서기흠고) 毋鄙我邦(무비아방) 永保無斁(영보무두) 惠我光明(혜아광명) 立懦千億(입나천억) ].

기운 찬 권세도 서로 번갈아 나가니 세상에 항상 선정만 베푸는 건 아니다. 천심이 어질고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나 옮겨(귀양)가지 않았다면 위대한 분으로 두터이 탄생 했으리라. 그 때 사전에 헤아려야 하는 것을, 옛 일을 미루어 생각하며 현재 밝혀보니 주제넘지 않는 도리였다. 이따금 예전의 조정을 살펴보니 메뚜기가 죄다 사라진 경사로다. 세자의 빈자리로 안과 밖이 위태롭고 근심스러웠다. 글월 꽤나 읽는 무관인 아우와 하늘의 이치에 더불어 행하였다. 무리들이 사특하여 옆에서 으르렁거리니 그 사욕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 누가 어깨에 짊을 지려 할까? "영의정(김창집)이 있었다"고 말하리라. 선고(영조)의 뜻을 받아 알렸다. 충성이 있는 성심으로 마침내 국왕의 즉위를 이루었다. 구덩이에서 나온 용을 저버릴까, 왕세자로 올리니 만세를 헤아렸다. 몇 일만에 안정이 되었다. 큰 공적으로는 근본을 세우고 기세 있는 권세를 헤아려 갈마드니 요임금을 받들고 순임금을 보좌했었다. 돌이켜 보면, (일이)거스르게 되었다. 북문을 살짝 열어놓아도, 친족은 모두 충성스럽고 현명하다. 그대 집안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아, 벌레가 쏜 독이 가장 괴롭도다. 바다 섬(거제도 유배)에는 올빼미가 시름겹고 성산(경북 성주 사사)에서는 귀신이 곡을 한다. 나머지 천간도 세운 업적이 전한 바와 같다. 이상하게 당한 재앙이 오히려 사나운 법, 글귀를 대나무를 심어 계속 계승하리다. 오직 한가지 길이라, 슬프고 원통해도 함박 웃으며 목숨을 다하였다(사약). 올바름이 애써 더욱 드러나니 그 기백이 산하에 이르고 해와 달의 빛이 서로 다투어, 아~ 선생을 생각하구나. 이어받을 이치가 있다면 선조를 위해 학문을 바르게 함이고, 학문에 정성을 다함은 돌아가신 선친을 위함이다. 바른 기풍은 충성스런 도리라고 내 뒤에서 일깨워 도와준다. 육체가 있어 어깨에 짐을 메고 잃지 않으려고 지킨 임금이 있어 나라를 살린다. 죽음을 오히려 즐거이 여기며 인을 이루고 의를 위해 목숨을 버렸는데도 나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어진 분이 충성을 다했으나 슬프도다. 타고난 천성은 같은 것이라, 충신은 눈물 뿌리고 절개 있는 선비는 마음이 괴롭다. 백 몸이 서럽고 오래도록 더욱 간절하구나.  하늘도 때가 있음을 정해놓았으니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지나간 것은 반드시 돌아 온다") 태양이 아래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억울한 죄에다 빛을 내어 비춘다. 숭고한 죽음에 임금도 애도하며 억울한 죄를 씻게 하였고 임금이 충성의 모범이라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권고했으랴. 가까운 서울에서 앞서 갔는데 발돋움을 하고 보니 멀리 있었구나. 아~ 이 아래 고을에서 굽은 강의 물거품에 가늠되어, 거동을 보니 남녘 봉새를 만난 듯, 진흙 묻은 기러기가 쫓아간다. 의리를 흠모하며 궁함이 없었으니 최고의 우리나라 사람다웠다.  어찌 편액을 걸고 공경하는 않으랴. 영원히 현명함을 본받도록 위탁한다. 저 명궁을 돌아다보며, 진실로 어진 노인을 흠향하도다. 뭇 것들의 미움만 사서 도를 가지고 몸이 따라간 곳, 그 집에 귀양 가 있었던 죽천(대숲 속 샘물을 김진규가 명명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에 맑은 바람 불어, 앞선 김진규, 뒤이은 김창집, 차례로 황야에 숨어드니 뒤따른 자취가 한가지로다. 이런 영예에 (두 분을) 함께 배향해야하며 다른 사람은 불가하다. 물이 있는 땅에 이르니 신(神)도 나와 멀지 않아 시류에 따라 함께 하는 바이다. 서러운 느낌 들어, 생각하니 새삼스럽다. 성대한 의식으로 낱낱이 들어 행하는데 "제사그릇 변과 두를 의식에 사용하고 곤룡포 옷을 입고 임금의 붉은 가죽신을 신어라." "분간함에 있도록 거의 비슷하게 하라." "꽃 같은 안주에 맑은 단술을 사용하고 바라건대, 지난날을 돌아보며 흠향해라." 우리나라는 비루함이 없으니 영원히 지키고 끝없이 유지하라. 은혜는 우리의 광명이니 나약한 사람은 뜻을 세움에 있어서, 수없이 다짐하노라.  

① 渡海(바다를 건너며). 견내량을 건너며..

碧海風恬不起波 푸른 바다가 고요해 물결도 잠잠한데

敢言忠信感蛟鼉 충성과 신의를 감히 말하자면 교룡과 자라와 통하는구나.

輕舟穩涉能無恙 날쌘 배로 편히 건너 응당 무탈한지라,

始驗淸淮異汨羅 예전에 푸른 강물이 증험한 멱라수와는 다르네.

[주] 멱라수(汨羅水) :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미수이 강’을 이르던 말.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 나라가 망하자 투신한 강으로 알려져 있다.

 

② 投宿浦村除夜(섣달 그믐날 갯마을에 투숙) 次唐人韻. 1721년 음 12월30일.

竹屋孤燈耿不眠 대나무집의 외딴 등불이 빛나 잠 못 드는데

海天愁思倍茫然 바다 위 하늘이 근심스러워 더욱 망연하구나

地維歲序窮今夕 대지가 세월 속에 오늘 저녁이 궁벽하여

牢落殊方嘆逝年 의지할 데 없는 이역 땅, 한해 가니 탄식하도다

/ 牢落一作何事 뇌락하여 어떤 일로 한수를 짓다.

 

③ 詠懷(영회) 회포를 읊다.  

蕭然茅屋楚江灣 쓸쓸한 초가집, 초강과 만(灣).

竹下淸泉處地閒 대숲 아래 맑은 샘, 처한 형편이 죄다 한가하기만 한데

南渡歲華新舊際 강 건너 남으로 가다보니 세월은 가는 해와 새해 사이인지라

北來京信吉凶間 북에서 온 서울 소식도 길흉 사이로다.  

思兒欲向山頭望 자식들 생각하면, 산꼭대기 넘어가 바라보고 싶지만  

謝客多從棘外還 찾는 이도 중히 모시며 사례하곤 가시나무 밖으로 돌려보낸다.

採採芳蘭無可贈 향기로운 난초를 따서 주는 것은 어찌할 수 없구나.

且將羈迹滯荊蠻 앞으로 객지살이 자취는 거친 가시나무에 막혀 있겠지..

 

④ 放烏(방오) 까마귀를 놓아주다.

'방오(放烏)'는 몸종이 사로잡은 까마귀 한 마리를 돌려보내면서, 현재 귀양 온 자신의 처지를 까마귀에 투영한다.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나타낸 작품이다.

癡奴縛一烏 어리석은 종이 까마귀 한 마리를 잡아서

本非主人意 본디 주인의 뜻은 아닐진대..

有羽不能飛 날개는 있으나 날아갈 수는 없고

宛轉幾欲死 아름답고 고우나 죽을 지경이 되었구나

羣烏若訴冤 까마귀 떼가 원통하여 하소연 하듯

向人啼不已 사람을 향해 매우 울부짖구나

仁者隱無罪 어진이는 죄도 없이 숨는데

牛羊寧異視 소와 양은 다른 시선으로도 편안한가

好生而惡死 (만물은)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싫어하듯

物我亦同理 물질과 정신(객관과 주관) 또한 한가지 이치니라

呼奴卽解縛 종을 불러, "풀어줘라" (말했지만)

放去任所止 "놓아버림"은 임소(任所)에선 금하구나

去矣愼危機 떠날려니, 참으로 위기라

網羅彌天地 모두 망라해 천지에 두루 미치리라

始焉不能去 갈 수가 없어도 시작해보는데

盤旋庭宇裏 집안의 뜰 가운데를 꾸불꾸불 돌고는

五里一回頭 5리(五里)에 고개 돌려 바라보며

十里始張翅 십리에야 비로소 날개를 벌리는구나

海天極茫茫 바다위의 하늘은 끝없이 아득해도

度越何容易 남보다 뛰어나니 어이 함부로 하리오

羣烏亦隨颺 까마귀 떼는 또한 바람을 타며

啞啞相報喜 "까악까악" 서로 기쁜 소식 건네며

眞同子產魚 새끼 낳는 물고기처럼

圉圉得其水 어릿어릿대고 제멋대로 하는구나

嗟爾止誰屋 자~ 너희들은 누구 집에 머물련가?

北望但長喟 북녘을 바라보니 오직 한숨만 길어지네

[주] 임소(任所) : 지방(地方) 관원(官員)이 근무(勤務)하는 직소(職所)

◯ 해설 : 위의 방오(放烏) 시(詩)는 사로잡은 까마귀 한 마리를 돌려보내면서, 현재 귀양 온 자신의 처지를 까마귀에 비유하여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나타낸 작품이다.

◯ 방오(放烏) : 우리나라에서 전하는 한시 중에는 방오(放烏)를 시제로 올려 지은이는 정황(丁熿)선생과 김창집(金昌集)선생이 유일한데 두 분 다 거제도에 유배 왔다가 돌아가신 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마도 거제 귀양살이에서 가장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미물이었기 때문이다.

⑤ 솔밭(松田) 견내량에 도착하여

一路逶迤大海邊 한줄기 꾸불꾸불 뻗은 길로 가다 큰 해변에 이르러

萬松蒼翠鬱參天 많은 소나무가 푸르게 높이 솟아 늘어서 울창하여

棟樑舟楫均爲用 기둥과 들보, 배와 돛대 모두다 쓰임새라

無負朝家養百年 조정에서 돌보지 않아도 백년이나 자랐어라

一作培養應須閱百年 배양을 제일 잘하여 응당 백년이나 지났다.

⑥ 위리안치(圍籬安置)에 들어가며..(入圍籬)  

栫棘雖高一室寬 가시나무 울타리 아무리 높다 해도 한 집도 넉넉하니  

男兒隨處卽爲安 남아는 이르는 곳마다 편하게 생각해야 하겠지.

甘泉自足供人飮 맛좋은 샘물이라 스스로 여기며, 물 마심을 섬기는 것이라,

珍錯還嫌侈旅餐 해물을 싫어하여 돌려보내니 나그네 음식이 사치하다하구나

無事不妨欹枕臥 무사히 거리낌 없이 베개에 기대어 누워 보곤

有書時或閉門看 혹여 책이 있어도 문을 닦고 보게 되구나

華陽祠廟偏相近 화양의 사모(사당)가 서로 가깝게 쏠리니

懷仰遺風感百端 온갖 실마리에 마음이 움직여 삼가 유풍이 그립도다. 

[주1] 청주 화양동(華陽洞)의 만동묘(萬東廟) : 송시열의 남긴 명으로 건립. '화양동계곡(華陽洞溪谷)'은 송시열이 50대 때 낙향하여 상당기간 머문 곳,  

[주2] 화양서원(華陽書院) : 노론의 본산,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화양리에 있으며.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한 서원으로, 1696년(숙종 22) 9월 사액(賜額)을 받았다.

 

⑦ 사수에게 한 음률을 부쳐(士修寄一律) 走次却寄(차운하여 즉시 보낸다)

絶島如丸簇萬山 절도가 화살 통 같아 겹겹이 깊은 산이 모두 시릿대(조릿대)라,

荊籬繞屋掩柴關 가시나무 울타리로 집을 둘러싸고 사립문은 닫쳐있구나

眞同月暈孤城外 고립된 성 밖 달무리가 참으로 한가하고

尙許天臨小井間 작은 우물 사이에서 하늘은 볼 수 있다네

敢道涪江存定力 일정한 학문의 힘을 보존함에 어이 물거품 이는 강이라 하리오

寧從楚澤作枯顏 차라리 가시나무 덕택에 초췌한 얼굴이 되었다네

多情獨有東門子 동쪽 문지기는 단지 정이 많은 사람일뿐,

虛向南雲望我還 남녘 구름의 공허함에 나를 돌아보게 하구나

/ 道一作擬 (도리에 제일 잘 지었는지 헤아려보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