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3:23 (금)
거제 반곡서원문학 5. 정혼성(鄭渾性)
거제 반곡서원문학 5. 정혼성(鄭渾性)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1.21 0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제학자(巨濟人)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거제학자 정혼성(鄭渾性)은 거제시 거제면 반곡서원(盤谷書院) 內, 동록당에 안치되어 있으며, 매년 춘3월 첫 정일에 거제 유림들이 반곡서원(盤谷書院)의 우암사 송시열과 함께 제사를 올리고 있다. 호는 동록(東麓), 자는 사성(士成), 초계 정씨(草溪 鄭氏)이다. 1881년 거제의 선비들이 사당을 세워, 석채례(釋菜禮)를 행하고 선생의 호로 인하여 "동록당"이라 명명했다.

거제도 역사상, 조선시대까지 거제도가 배출한 최고의 문인 학자이자 지성인이며, 또한 한시(漢詩)로 문집을 남긴 거제도 토박이로는 유일하신 분이다. 정조3년 기해년(己亥年) 1779년3월에 출생하여 계묘년 1843년 3월 65세로 돌아가셨다. 그는 한평생 은사(隱士, 자연과 함께 조용히 사는 선비)로 사시면서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고 많은 글을 남겼다. 그의 글은 대부분 초서(草書)와 행서(行書)로 글씨체가 아름답고 유순하며 지나침이 없는 그의 생활과 닮아 있다. 선생은 학문의 도를 닦는 데는 이성(理性)과 정성을 다하여 물체와 합치되는 조화로움에 그 기반을 두었다. 추사 김정희와는 동시대인(同時代人)으로서 김정희가 동록문집을 읽고 감탄하여 7언절구 시 한편을 남긴 찬사의 글이 전해지고 있고[題鄭東麓渾性文集後], 또한 중국인 심평향(심진沈津)이도 동록의 시와 글씨를 보고 피와 생활이 모두 군자라고 하였다(血食君子).

선생은 거제의 유림이나 사회에서 정군자(鄭君子)라 호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에 대한 많은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의 시(詩)는 자연과 함께한  도가적 냄새가 짙게 풍기는 산수 전원시풍이 느껴진다.  선생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학문의 표준으로 삼았고 육경(六經)에 통달하였는데 경(敬)으로 마음을 곧게 하고 아첨하는 이를 멀리하였으며, 주역(周易)에 심취하여 선경지명이 마치 거울을 비추듯 하였다.

또한 거제면 명진리(明珍里)에 거주했으며, 그가 제자를 가르친 곳은 거제면 녹동(鹿洞) 즉 사슴골이라 전한다. 많은 제자(통영, 고성출신)를 양성했고 글씨가 명필이었으나 벼슬은 못했다. 자손이 없어서 행장을 만들지 아니했다는 것과, 무덤이 신현면 금곡(金谷)에 있다가 독봉산으로 이장했다한다. 도학자였고, 소생이 없었으나 애자(愛子, 양자)는 있었다. 그는 중국의 많은 선인들의 글을 학생 교재로 활용하였으며 시구 하나하나에 해설을 달아 제자들이 쉽게 학문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당시 사용한 교재 중에 두보의 율시 편과, 칡뿌리로 적은 정자(程子) 주자(朱子)의 교훈을 인용한 글이 남아 전하고 있다.

[주] 초사(楚辭) : 중국 초나라 굴원(屈原)의 사부(辭賦)를 주로 하고,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그의 제자 및 후인의 작품을 모아 엮은 책. 전한의 유향(劉向)이 16권으로 편집하였다고 하며, 후한 때에 왕일(王逸)의 〈구사(九思)〉를 더하여 모두 17권이 되었다.
선생의 동록문집(東麓文集)을 살펴보면, 동록 원고(東麓原稿)에는 첫 장이 남아 있지 않아, 남애 안춘근 선생(安春根先生,1926년∼1993년)이 다른 종이쪽지에 써서 앞표지에 붙인 외제(外題), 즉 ① 앞표지를 만들어 붙였다. 다음 장에는 ②자연과 우주 음양의 조화 등을 도교적 관점에서 간략하게 표현한 글이 있고 ③ 遇朝雲墓(우조운묘) 集句(집구), 그리고 ④중국인 崔顥(최호)의 黃鶴樓(황학루) 8수 집고구성지(八首集古句成之), ⑤장가구(張可久) "一半兒[일반아]"2수, 마지막으로 ⑥정혼성(鄭渾性) 시(詩) 산곡(散曲) 7편(8首)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선생께서는 중국 "장가구"시성을 흠모 하시어 그의 동록 문집에 원대(元代) 산곡(散曲) "일반아(一半兒)" 장가구 시를 소개하고 난 후에, 자신이 지은 일반아(一半兒) 산곡 8수를 남겼다. 모두 봄날을 맞아 느끼는 시구를 거침없는 초서(草書)로 썼다. 궁중 가곡이 그 원류이기 때문에 음률과 장단이 시를 읽는데 흥겨움을 더한다. 봄날에 일어나는 정취와 인간의 원초미를 자극적인 운율로 함축하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의 문집 곳곳에 자연의 이치를 도교적인 사상과 접목 시켜 표현하고 있다.

일반아(一半兒)는 옛 곡패(曲牌,곡조의 명칭)의 이름이다. 끝 구절에 가서 반드시 일반아(一半兒)라는 세 글자를 넣거나, 또는 일반아를 두 번 되풀이하여 넣어 구절을 만드는 것이 특색이다.《曲諧》. 놀랍게도 그 흔한 한시의 형식을 쓰지 않고, 접련화(蝶戀花), 작교선(鵲橋仙), 호사근(好事近), 일반아(一半兒) 같은 송사(宋詞)와 원곡(元曲)의 형식을 빌렸다. 수련을 받지 않으면 쓰기 어려운 생소한 형식을 구사한 것은, 큰 학자로부터 교육받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또한 평이하고 통속적이며, 진솔하고 자연스럽다.  한국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원곡을 사용한 것은 혹시 남녀 간의 사랑을 묘사한 『서상기(西廂記)』에 심취한 결과는 아닐까?

동록(東麓) 선생의 문집 中, "우조운묘(遇朝雲墓)"라는 7언 시(詩)를 살펴보자. 선생은 중국 고전한시와 고사성어에 아주 박식하시어, "우조운묘" 한시(漢詩) 속에 차운하고 인용한 중국 문인이 수십 명이나 된다. "소식(蘇軾), 두보(杜甫), 온정균(溫庭筠) 조맹부, 두목(杜牧), 장손좌보(長孫佐輔), 원교(袁郊), 고저(高翥), 백거이(白居易), 許渾(허혼), 방간(方幹), 王安石(왕안석), 이섭(李涉), 임제(林悌), 주부자(朱子), 안기도(晏幾道), 남효온, 사공서(司空曙), 이백(李白), 장중양(張仲陽), 육구몽(陸龜蒙), 이하(李賀), 이상은(李商隱), 황보염(皇甫冉), 위응물(韋應物), 설능(薛能), 유우석(劉禹錫)"등이다. 이 많은 분들의 글귀를 인용하고, 때로는 문장 구성을 위해 직접 글귀를 짓기도 하며, 찬찬히 선생의 느낌을 표현하셨다. 이렇게 글귀를 많이 차용하여 쓴 문장을 찾아보기도 어렵지만, 그 이유는 아마도 "옛것을 빌려서 지금 것을 비유하고 사물을 비유하여 인사를 징험한다"의 묘법을 강조 한 듯하다. 봄날에 밀려오는 만물의 생동과 자연의 풍경을 조목조목 꺼집어내어 자연의 이치와 음양의 조화, 남녀의 원초적인 사랑을 멋지게 나타내었다. 시 절구마다 음률적으로 시구를 배열하여 시가 지닌 장단의 음악적 성질을 절묘하게 나타낸 선생의 감수성과 치밀함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낸다.

선생이 심취한 도가사상(道家思想)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 자연과의 완전한 조화, 다시 말하면 우주와 인간사회의 상호작용, 시간의 주기적 성격과 우주의 리듬, 복귀(反者道之動)의 법칙 등이다. 도가사상은 도(道)를 만물의 근원(萬物之宗)으로 본다. 도와 덕은 “바른 길과 바른 행동” 또는 “도의 이론과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즉 도는 이론을 말하고 덕은 이론을 실천하는 행동을 말한다. 따라서 도의 이론이란 우주만물과 하늘과 땅의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고 조화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의 규범으로서 천지만물의 근본원리이다. 음과 양은 모든 중국철학의 공통된 줄기이다. 음과 양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교대로 일어나는 상호보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2개의 원리 또는 국면이다. 음·양은 우주의 모든 대립쌍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상징이다. 음·양의 변화와 상호작용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선생의 철학은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과 윤리도덕을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오늘에 사는 거제민에게 바라는 큰 교훈이자, 거제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①. 맺고 풀지 말라(속박이나 집착에서 벗어나라) : 莫結脫也(막결탈야).

②. 늘 한가운데 자리 할 때 그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라. : 中虛其心(중허기심).

③. 세상의 이치는 음양의 조화로움에서 기인한다. : 道消化陰陽(도소화음양).

◎ 해설 : ① 노자와 장자는 무위진인에 대해, "인위적인 것을 덜고 덜어서 지음이 없고 할일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하나를 이룬 자유인을 말한다."고 한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어딘가에 집착하지만, 의존과 집착의 초월이 곧 무위진인(無爲眞人)이며 창의성의 근원이다. 남도 인정하는 사람, 자기 일을 통해 새로워지는 공의로운 사람을 이른다.

② 중허기심(中虛其心)은 늘 남에게 배려하고 겸손하라는 교훈이다.

③ 음양(陰陽)의 조화란? 우리가 아는 이성적인 말이 아니라 서로 대립되는 모든 관계를 이른다. 해와 달, 낮과 밤, 남과 여, 물과 불, 현실과 이상, 불행과 행복, 영광과 좌절 등등. 이는 모든 관계가 좋고 나쁨의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음과 양이 그렇듯 서로 보완과 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안다는 것(知)은 대립 관계의 두 현상을 나누어 보는 것을 말함이다. 이는 상당히 편협된 사고를 가질 수가 있다. 두 사물의 이치(理致)를 판별하는 지력(智力) 음양의 조화로움에서 분명히 의심(疑心)할 것이 없이 들어다 보는 것(明)을 명(明)이라 하며, 동록 선생이 거제학생들에게 가르친 음양의 조화로움에 대한 강설(講說)이다.

 한번 음(陰)이 되고 한번 양(陽)이 되는 것은 운수로 보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을 누르고 양을 돕는 것은 도의로 보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자연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일 뿐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을 기다려 행해진다. 사람은 천지의 중심이다. 자연과 사람은 하나이다.

거제 반곡서원에 모셔진 선생의 위패를 그리며, 거제의 정신과 이상을 실천하신 동록 선생께 삼가 존경의 념(念)을 바친다.

① 미인춘수(美人春睡) 미인의 봄 잠. 梨花雲繞錦香亭 구름에 쌓인 배꽃, 금향정(錦香亭)에서 蝴蝶春融軟玉屛 봄빛에 어울린 나비, 아름다운 병풍도 보잘 것 없네. 花外鳥啼三兩聲 꽃 너머 새 울음, 두서 번 소리에 夢幼驚 一半兒昏迷 一半兒醒 꿈속 아이 놀라는데 반은 혼미하고 반은 깨어 있는 듯, [주] 금향정(錦香亭) : 아름답고 향기로운 정자, 중국 고전 연애소설 "금향정기(錦香亭記)" 내용 中, 주인공 남녀가 처음으로 만나 가연을 맺는 후원의 정자를 일컬음.

② 춘야(春夜). 봄 밤

柳綿撲檻晩風輕 버들개지 난간에 늘어져 저녁바람에 살랑이고

花影橫窓淡月明 교창의 꽃 그림자, 으스름한 달빛 밝도다

翠被麝蘭熏夢醒 푸른 덮개에 사향과 목련의 향기, 몽롱한 꿈을 깨 보니

寂關精 몹시 적막한 관문

一半兒溫溫 一半兒冷 반은 훈훈하고, 반은 쓸쓸하네.

③ 춘취(春醉). 취한 봄날

海棠紅暈潤初姸 홍조 띈 해당화, 처음으로 곱게 윤기 흐르고

楊柳纖腰舞自編 버드나무 가냘픈 미인의 허리, 절로 신난 춤을 춘다

笑倚玉奴嬌欲眠 옥노가 기대어 웃으며 요염하게 잠들 듯 한데

粉郞前 임 앞에 화장하니

一半兒支吾 一半兒軟 반은 겨우 버티는 척, 반은 연약한 척,

[주1] 옥노(玉奴) : 여자, 계집, 나비를 가리킴. 당나라 때 양귀비가 자칭 옥노라 하였음.

[주2] 지오(支吾) : 지오(枝吾). 이리저리 둘러 댐, 맞서 겨우 버티어 나감, 어긋나거나 상치(相値)됨. 얼버무리다

◯ 동록문집에 실린 중국 시인, 장가구(張可久,張小山 1270-1348년) "一半兒[일반아]" 2首(총3首)는 칠언절구의 형식을 빌어 궁중 사물의 풍경을 읊은 시(詩)이다. 장가구는 질과 양에서 원대(元代) 산곡(散曲)의 최고봉에 올랐으며 "산곡의 이백과 두보"라는 칭송을 듣기도 하였다. 장가구의 일반아를 읽다보면 알겠지만, 동록선생께서 장가구의 시를 보고 작사(作寫)하셨음을 알 수 있다.

[꽃 옆의 아름다운 달, 고요히 단장한 여인의 거처 ; 잎새 밑의 푸른 물결, 차고 푸른 도랑 ; 못에 부는 좋은 바람, 한가한 대궐 배, 사랑스런 가을 ; 반은 부용이고 반은 버들이로다].

[층층이 휘늘어진 높은 나무, 성긴 독수리 내려앉고 만 꽃송이 채색 구름, 달(玉蟾)을 덮어 가리네. 몇 줄기 밤의 향기, 수놓은 주렴 꿰뚫고는 그 향기 잠잠하니 반은 열린 문이요 반은 닫힌 문이로다].  

[해당화 향긋한 비가 시인의 도포에 떨어지고 벽려의 텅 빈 담 아래 술 바가지 한가롭다. 버들잎 하늘거리며 새벽바람 불어와 들판의 다리 서늘한데 시정(詩情)을 풀어 놓으니 반은 행서요 반은 초서로다].  

 산곡(散曲)은 형식이 자유로운 장단구이자 조구(造句)변화가 심해 원래 그 길이의 변화가 일정치 않으며, 운문의 속성을 지닌 장르로, 운의 사용이 자유롭다. 원대(元代)에 이미 입성(入聲)이 소실되어 삼성(三聲)을 통압(通押)하여 더욱 자유롭게 운을 사용하였다. 민간구어적인 장르로써 일상에 가깝고도 평이하고, 통속적이고 진솔하며 자연스럽다. 一半兒(일반아)의 "兒"자를 넣어, 리듬과 언어를 음률화하여, 곡절이 보다 더 조화되도록 하였다. "一半兒"는 대개 마지막 구에서 측성(仄聲)으로 마무리 한다.

◎ 정동록 혼성문집 뒷면에 쓰다[題鄭東麓渾性文集後] / 추사 김정희 鷓鴣詩格采眞遊 자고의 시격에다 채진의 놀음이라 十尺黃塵不出頭 열 자의 황진 속엔 두각(頭角)을 내지 않아 賴有侯芭傳一瓣 후파(侯芭)를 힘입어서 일판향(一瓣香)을 전수하니 玄亭寂寂古岐州 옛날의 기주에는 현정이 적적하이. [주1] 자고 : 만당(晩唐)의 시인 정곡(鄭谷)의 자고(鷓鴣)를 읊은 시가 일세에 회자하여 마침내 자고의 별칭이 되었으므로 뒷사람이 정씨를 만나면 으레 자고라 하였는데 여기 정씨와 같아 한 말임.

[주2] 채진 : 진실의 이치를 캔다는 뜻.

[주3] 후파(侯芭) : 한 나라 거록(鉅鹿) 사람. 양웅(揚雄)의 제자로 그에게서 태현(太玄)과 법언(法言)을 수학하였음.

[주4] 일판향(一瓣香) : 일주향(一炷香)과 같은 말로서 스승의 연원을 계승하는 것.

[주5] 현정 : 중국의 시인·철학자. 양웅을 말함. 시에서 철학으로 관심을 돌렸는데, 철학에서는 유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 인간의 본성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다고 보았다

④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의 "우조운묘(遇朝雲墓)"라는 7언 시(詩)는 중국 고전 한시와 고사성어를 이용, 자신의 "우조운묘" 한시(漢詩) 속에다 차운하고 인용하였는데 구절마다 인용한 중국 문인이, "소식(蘇軾), 두보(杜甫), 온정균(溫庭筠) 조맹부, 두목(杜牧), 장손좌보(長孫佐輔), 원교(袁郊), 고저(高翥), 백거이(白居易), 許渾(허혼), 방간(方幹), 王安石(왕안석), 이섭(李涉), 임제(林悌), 주부자(朱子), 안기도(晏幾道), 남효온, 사공서(司空曙), 이백(李白), 장중양(張仲陽), 육구몽(陸龜蒙), 이하(李賀), 이상은(李商隱), 황보염(皇甫冉), 위응물(韋應物), 설능(薛能), 유우석(劉禹錫)"등이다. 이 많은 분들의 글귀를 차용하였고, 때로는 문장 구성을 위해 직접 글귀를 짓기도 하면서, 찬찬히 선생의 느낌을 표현하셨다. 이렇게 수많은 글귀를 차용하여 쓴 문장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찾아보기도 어렵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옛것을 빌려서 지금 것을 비유하고 사물을 비유하여 인사를 징험한다.(借古喩今 比物徵事.)"의 묘법을 강조 하신 듯하다. 봄날에 밀려오는 만물의 생동과 자연의 풍경을 조목조목 꺼집어 내어 자연의 이치와 음양의 조화, 남녀의 원초적인 사랑을 멋지게 표현했다. 글을 번역하는 동안 몇 번이나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으나, 막상 끝까지 읽어보니 최소 만권의 책을 읽어보지 않고는 이러한 퍼즐 같은 세밀한 묘사를 꿰맞추어 내기란 불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시(詩) 절구마다 음률에 맞춰 시구를 배열하여 시가 지닌, 장단의 음악적 성질을 절묘하게 나타낸 선생의 감수성과 치밀함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낸다. 아래는 "우조운모우(遇朝雲暮雨)" 집구(集句)라부왕선고(羅浮王仙姑, 매화의 하늘나라 신선 할미) 사용(容) 중에, 일부를 소개한다.

野草拍霜霜拍日 들풀은 서리를 사랑하고 서리는 태양을 사랑하니

月光如水水如天 달빛은 물 같고 물은 하늘같도다.

人間俯仰成今古 인간세상 살다보니 이제가 옛날 되나니

只是當時已惘然 그저 그때부터 이미 망연했다네.

三生石上舊精魂 삼생 돌 위의 옛 넋이여

化作陽臺一片雲 사랑한 남녀의 정교(情交)도 한 조각 뜬 구름인걸,

詞客有靈應識我 사객(문사)이 신령이 있어 나에게 응당 알리는데

碧山如畵又逢君 푸른 산이 마치 그림 같아, 또 그대를 만나네.

花邊古寺翔金雀 꽃이 두른 옛 절에 누른 참새 빙빙 날고

竹裏春愁冷翠裙 대숲 속 봄철 시름에 짙푸른 치마 낯설다

莫向西湖歌此曲 이 노래를 부르니 서호(西湖)로 향하지 말라

淸明時節雨紛紛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東望望春春可憐 동쪽으로 망춘궁을 바라보니 봄이 아름다운데

江籬漠漠行田田 막막한 강가 가다보니 울타리 줄지어 이어있네

繞籬野菜飛黃蝶 울타리 주위, 들나물에 노랑나비 날고

糝逕楊花鋪白氈 버들 꽃이 길가에 가루같이 뿌려져 흰 모포를 펼친 것 같구나

雲近蓬萊常五色 봉래에 가까운 구름 언제나 오색 빛이고

鶴歸華表已千年 학 되어 돌아와 화표에 앉은 세월 이미 천년이다

夢回明月望南浦 밝은 달에 선잠 깨어 남쪽 갯가 바라보니

血淚染成紅杜鵑 흘리는 피눈물 진달래를 물들이네.

浮雲漠漠草離離 떠도는 구름 막막하고 풀 무성한데

氊濕春(祝)䰌脚毛 축축한 담요가 봄을 맞으니 다리털이 흐트러진다

秋水爲神玉爲骨 가을 물처럼 맑은 정신과 옥처럼 고귀한 뼈대를 가졌는데

芙蓉如面柳如眉 연꽃은 귀비의 얼굴 같고 버들은 그녀의 눈썹 같도다.

去日漸多來日少 지나간 날들은 너무 많고 올 날은 적은데

別時害易見時難 헤어질 때는 쉽지만 만나기는 어렵다네

明朝爲約誰先到 내일 아침 맺은 약속, 누가 먼저 도착할까?

靑鳥殷懃爲揮秀 파랑새만 은근히 높이 날아오른다.

杏花踈雨入黃昏 살구꽃에 가랑비 내리니 황혼이 드리우고

奎屋無人見復痕 인적 없이 글 짓는 집은 언제 다시 자취 보일까

短䰌弄星愁有效 흐트러진 머리털에 별이 희롱하며 흉을 봐도, 근심엔 효과가 있어

此身雖異性長存 이 몸이 달라졌지만 본성은 길이 그대로라오.

[주] 삼생석(三生石) 석상정혼(石上精魂) : 당나라 때의 고승(高僧) 원택(圓澤)이 그의 친구 이원(李源)과 함께 삼협(三峽)에 이르러 어느 물 긷는 부인을 보고 이원에게 말하기를, "저 부인이 바로 내 몸을 의탁할 곳이다" "앞으로 12년 뒤에 항주의 천축사 뒷산의 삼생석에서 서로 다시 만나자" 하고는 그날 밤에 원택이 죽었는데, 그 후 12년만에 이원이 약속한대로 그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원택이 재생하여 목동이 되어 노래하기를,"⌈三生石上舊精魂 賞月吟風不要論 慙愧情人遠相訪 此身雖異性長存⌋"삼생석 위의 옛 정혼이 풍월을 읊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네,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 주니, 부끄러워라. 이 몸은 달라졌지만 본성은 길이 그대로라오." 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윗글에 소개한 노래는 바로 그가 처음에 천축사 앞에서 부른 것이다. 또 그가 떠나며 부른 노래는 이러했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일은 아득하여 인연을 얘기하자니 애간장이 끊어질 듯. 오·월의 계곡과 산은 두루 돌아보았으니 뱃길을 돌려 구당협(瞿塘峽)으로 올라가야지."⌈身前身後事茫茫 欲話因緣恐斷腸 吳越溪山尋己遍 却迴烟棹上瞿塘⌋그로부터 3년 뒤에 이원은 간의대부에 제수되었고, 다시 2년 후에 죽었다.

⑤ '황학루(黃鶴樓)'는 당대(唐代)의 시인 최호(崔顥,704~754)가 중국 호북성 무한시(武漢市)에 있는 황학루에 올라 지은 칠언율시로서, 천고의 명작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한시다. 황학루는 동정호 호반에 위치한 아름다운 누각이다. 최호는 옛날에 신선이 이곳에서 누런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로부터 시상을 떠올렸다. 과거에는 신선이 놀았던 괜찮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텅 비었다. 작가의 마음이 이렇게 텅 빈 것은 아니었을까? 푸른 하늘엔 흰 구름만 천년동안 떠다니고, 황학루 주변엔 봄을 맞아 옛날과 다름없이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향기를 품고 있다. 아름다운 인정이 얽힌 옛 전설을 떠올려보니 설화의 주인공들은 다 떠나 버리고 빈껍데기만 남은 황학루에 대한 허무감과 자신의 근심을 드러내었다. 수많은 시인들이 이 작품을 흉내 내어 시를 지었지만 이 작품을 능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이백(李白)도 ”등금릉봉황대“라는 작품을 지었으나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 거제학자 동록 정혼성(鄭渾性)선생께서는 최호(崔顥)시성(詩聖)의 작품을 한구씩 구분하여 시(詩) 속에 시편의 첫 글귀로 늘어놓고, 나머지 시편을 완성했다. 그리고 옛 글귀들을 모아 선생만의 황학루 8편(八首)를 완성한다. [椘中有搢紳分 崔顥 黃鶴樓 詩作 八首 集古句成之].

昔人已乘白雲去 옛사람은 이미 흰 구름 타고 가버리니

江海茫茫何處尋 아득한 강과 바다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芳草連天迷遠望 향기로운 꽃 풀 하늘에 이어져 먼 곳이 희미한데

薄雲籠日弄輕陰 엷은 구름이 해를 싸서 가려, 가벼운 그늘 놀려대네.

一春魚沙無消息 봄 한 계절에도 물고기 소식이 없고

萬里江山自古今 만 리에 뻗은 강산 고금이 그대론데

百尺朱樓閒缺遍 백 척의 붉은 다락은 언제나 한가로워

洞庭橘缺在前林 동정귤이 앞산 숲에 있다하구나.

[주1] 어사(魚沙) : '漁箭'은 '어살'(魚沙兒)로 음차표기되는 언어로 대나무를 물속에 심어 물고기를 몰아잡는 방법을, '올'(魚兒)로 음차되는 '어조'는 물고기가 다니는 통로에 그물을 설치하는 것을 일컫는다.

[주2] 동정귤(洞庭橘) : 귤의 품종에 동정귤이 있는데, 매우 품질이 좋은 귤로 알려져 있다. "임에도 달고 코에도 향기롭다"

此地空餘黃鶴樓 이 땅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아 있고

成仙人去幾千秋 사람들이 신선 되려 떠난지, 얼마나 세월이 흘렀던가?

雲飛雨散知何處 빗줄기 흩어지고 구름 흩날리는 곳 어드메냐

葉落猿啼傍客舟 나뭇잎 떨어지고 원숭이 울 제, 나그네 실은 배 지나가네.

天水混瀜浮太極 하늘의 물은 깊이 섞어 태극(太極)되어 떠다니고

野烟蹤跡似東周 들판 연기의 자취는 춘추전국시대와 같구나.

此時悵望人多少 이때 슬피 바라보는 사람 얼마나 되는고?

仙鶴空成萬古愁 신선의 학은 부질없는 만고의 수심만 쌓았구나.

[주] 태극(太極) : 우주 만물의 근원인 음양이 완전히 결합된 상태, <역경〉에서는 태극을 음·양의 근원이자 통일체로 봄.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은 한번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白雲長在水潺潺 하늘엔 흰 구름 언제나 떠있고 물은 잔잔하다.

如何一諷神仙事 어찌하랴, 오로지 풍자 한 것은 신선의 일인지라,

却望千山草色閑 문득 수많은 산을 바라보니 풀빛만 한가롭네.

城下烟波春拍岸 성 아래 난만한 춘색이 언덕을 두드리고

湖中西日倒銜山 호수 위 석양에 기운 해 함산으로 넘어간다.

佂帆去悼殘春裏 바삐 돛을 달고 가다 마음이 아픈 건, 늦봄 속인데

飛鳥空慙倦來邊 날아다니는 새 고달프게 찾아와 주니 속절없이 부끄럽네.

白雲千載空悠悠  흰 구름만 천년을 한가로이 떠있는데

物換星移度幾秋 세상 바뀌고 세월 흘러 몇 해나 지났던가?

縱酒欲謀良夜飮 즐겁고 기쁜 밤을 기대하며 술을 맘껏 마시고는

放歌曾作昔年游 높은 목소리로 노래하니 예전에도 노닐던 적 있었다네.

長安所望三千里 장안에서 삼천리 곳곳에 소망하는 곳인,

天府南來第一州 경치 좋고 물산이 풍부한 지역, 남쪽에서 제일가는 고을이라지.

前後登臨思無盡 한 가지 일에만 마음 쏟다, 올라 내려다보니 생각에 사무쳐,

思歸時亦賦登樓 돌아가고픈 생각에, 때마다 등루부를 지으리라.

[주] 등루부」(登樓賦) : 한나라 말엽의 왕찬(王粲)이 형주(荊州)의 누대에 올라, 이 세상을 근심하는 걱정을 면하지 못하여 홀로 읊조렸다. 멀리 고향을 떠나온 슬픔에 눈물은 한없이 흘러 멈출 길이 없다. "돌아가리라" 「등루부」(登樓賦)를 지었다.

황학루는 선인(仙人) 자안(子安)이 황학을 타고 이곳을 지나갔다는 전설이 서린 유서 깊은 곳이다. 사연이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오게끔 만드는 힘인 동시에 중국인의 신선사상이 나타나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현실주의적 합리성이 강하나, 항상 현실은 합리적이지 못했다. 현실 정치에서는 다수 백성이 궁핍하고 핍박 받는 생활은 역사 이래 지속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이 현실의 불합리와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를 얻는 방법은 신선이 되는 것이리라. 따라서 이곳 황학루는 이러한 민중의 소망을 만족시켜주는 전설이 하나의 사실처럼 믿어지는 그런 소망어린 장소인 것이다. 시편 속에는 내재된 도교적 사상이 농후하여 무한한 상상력을 일으키게 하는 동시에 불확실한 작가의 암담한 현실과 장래를 생각하게 한다. 다음 작품은 황학루에 올라 바라본 전경을 읊었는데, 멀리 한양성의 숲이 맑은 강물에 또렷하게 비치고 있는 짙푸른 나무를 기술(記述)한 후, 강 가운데 토사가 퇴적하여 형성된 앵무주에 꽃 풀들이 우거져 향기를 뿜어내는 정경을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2편에서는 시인의 생각이 현실속의 자신에게로 돌아와, 지는 해를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한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없고, 벌써 귀밑머리 하얗게 변해 버린 인생의 허무함과 고달픔에 시름겨운 나그네의 심정을 드러내었다. 송나라 엄우(嚴羽)는 "당인(唐人)의 칠언율시는 최호의 '황학루'를 제일로 삼는다"했다. 그리고 황학루의 또 다른 전설을 보면, "한 신선이 있었는데 신씨(辛氏)의 주막에 와서는 술값 대신 벽에 황학을 그렸었다. 주막에 온 손님들이 손뼉을 치면 황학이 박자를 맞추어 춤을 춘다는 소문이 나자, 손님들로 붐볐다. 10년 뒤 그 신선이 와서 황학을 타고 사라지니 후에 신씨가 그 자리에 누각을 세우고 '황학루'라는 현판을 달았다" 한다.

晴川歷歷漢陽樹  맑은 강 건너 한양의 나무숲은 뚜렷이 보이고

却惹空山重曉烟 문득 빈산(空山)의 짙은 새벽안개에 이끌린다.

樓上北風斜卷席 누각 위 북풍 불어 자리가 종이처럼 말리고

洞庭秋月遠連天 동정호 위로는 가을 달빛이 멀리 하늘에 이어져있다.

公車未結王望韈 귀인의 수레 세우지도 못하고 임금의 버선만 바라보며

壯志仍輸組逖鞭 장부의 큰 뜻을 누차 알리나, 한 무리가 두려움에 채찍질만 하구나.

黃鶴樓中吹玉笛 황학루에서 부는 누군가의 옥피리 소리,

水寒烟淡落花前 물은 차갑고 안개는 엷은데 꽃잎만 날릴 뿐.

芳草妻妻鸚鵡洲 향기로운 풀은 강 가운데 앵무주에 무성하게 우거진

謝公此地昔曾遊 이곳은 그 옛날 사령운공이 놀던 곳인데

鳥啼花落人何在 새 울고 꽃 지니 사람들 어디 계신가?

仙去臺空跡尙留 신선은 가고 누각만 남아도,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네.

知愛魯連歸海上 사랑을 아는 노련이 해상에서 돌아오고

共嗟王粲滯荊州 왕찬이 형주에 버려지니 모두 탄식하였다.

高樓怊悵憑欄久 높은 누각 슬프고도 슬프다, 옛 난간에 기대어

惟見長江天際流 보이는 건 하늘가로 흐르는 장강의 물뿐이네.

[주1] 노련(魯連) : 중국 전국시대 노나라 변사, 노중련(魯仲連), 고절의 선비로서 조나라 평원군을 설복하여 진나라를 황제로 섬기지 못하게 하였다.

[주2] 왕찬(王粲) :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시인(177~217). 자는 중선(仲宣). 건안 칠자의 한 사람으로, 조조를 섬겼다. 위나라 시중. 산양 고평인이다. 前에 형주의 유표에 의지했으나 유표가 알아주지 않았다. 유표가 죽자 조조에게 의탁했다.

日暮鄕關何處是  해는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더냐?

杜陵遠客不勝悲 두릉의 먼 나그네 슬픔을 이기지 못한다.

終期直道扶元氣 마침내 기약했네, 바른 도로써 원기를 잡으려 했으나

敢負吾君作楚辭 우리 임금 어이 저버리랴, 초사를 짓는구나.

北極朝廷終不改 장안의 천자자리 바뀔 리 없고

楚天雲雨盡堪疑 초나라 하늘의 구름과 비, 모두가 미혹될 만한데

酒醒往事多興念 술 깨보니 지나간 일에 흥겨운 생각 많이 일어나,

黃鶴樓前吹笛時 황학루 앞에서 때마다 피리를 분다네.

[주] 초사(楚辭) : 중국 초나라 굴원(屈原)의 사부(辭賦)를 주로 하고,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그의 제자 및 후인의 작품을 모아 엮은 책. 전한의 유향(劉向)이 16권으로 편집하였다고 하며, 후한 때에 왕일(王逸)의 〈구사(九思)〉를 더하여 모두 17권이 되었다.

煙波江上使人愁  강 위에 저녁안개 서리고 나그네 시름만 더해져

幾度高吟寄水流 물에 부쳐 흘러가니 몇 번을 소리 높여 읊조린다.

平田花界春渺渺 넓은 밭에는 꽃이 널리 만발하고 봄은 아득한데

銀河一帶水悠悠 은하수 일대에는 물만 넘실거린다.

仙人月待乘黃鶴 신선은 기다릴 사람 있어 황학을 타지만

身外無物任白頭 내 몸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흰머리 오는 대로 맡기리라.

遙望洞庭山水色 멀리서 동정호에 비친 산과 물빛 바라보니

春風一夜辭歸舟 봄바람이 밤새도록 돌아가는 배에다 알려주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