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왕 제우스가 어느 날 여우의 영리함과 민첩함에 감탄해 여우를 동물의 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권력을 거머쥔 여우가 어떻게 처신하는지 몰래 지켜보았다.
여우가 어느 날 가마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며 행차를 하는데, 제우스가 그 앞길에 풍뎅이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풍뎅이가 쉴 새 없이 가마 주위를 돌아다니며 성가시게 하자 여우는 왕의 체면과 위엄을 내팽겨 치고 풍뎅이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날 뛰며 야단법석을 피웠다. 여우의 이런 경망함을 지켜보며 제우스 말했다. “역시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 없군.”
이후 제우스는 여우를 왕의 자리에서 끌어 내렸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자질과 처신의 중요함이 무엇인지 교훈을 얻는다. 또한 지도자의 영리함과 민첩함이 신중하지 못한 경망한 행동으로 나타 날 때 그 끝이 어딘지를 배운다.
선거가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어떤 이는 여당의 공천을 얻기 위해 물밑작업이 한창이고, 또 어떤 이들은 이기는 싸움을 위해 ‘뭉쳐야 한다’고 단일화를 이야기 하지만 현재까지 안개 속이다. 이것도 저것도 접고 필마단기(匹馬單騎)로 나선 무소속 출마예상자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D-day까지 70 여일 남았다.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모두가 ‘벼슬의 길’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솔직히 선거판이 이판이 되던, 사판이 되던 별 관심 없다.
그런데 필자는 이 시점에서 ‘제우스와 여우’의 우화가 딱 맞아 떨어지는 ‘하나의 사건이 새삼 떠오른다. 만약 지역정치사를 정리한다면 충분히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때는 바야흐로 2012년 총선. 정국은 한치 앞을 모를 만큼 격랑 속에 요동을 쳤다.
새누리당의 현역의원인 윤영씨가 공천헌금 파동에 휩싸이면서 당 공천이 멀어져가고, 무소속 김한표씨와 진보신당의 김한주씨가 세를 확산하면서 새누리당을 압박해 왔다.
여기에 오매불망 공천을 위해 ‘논스톱 행보’를 해 왔던 김현철씨가 탈락했고, 그는 새누리당을 향해 울분을 토해냈다. 결국 새누리당의 공천 유력주자로 손꼽히던 윤영씨와 김현철씨가 고배를 마셨고, 틈새공략을 하며 기회를 엿보던 진성진변호사가 공천을 거머쥐었다.
지역정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야권이던, 무소속이던 모두가 ‘진변호사와는 “한 번 해볼만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여당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동요했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실로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누리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소위 ‘풀뿌리 권력’을 거머쥔 도․시의원 6명이 제 집을 걷어차고 나와 난데없이 무소속 후보에게 손을 들어주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명분은 참으로 기막혔다. 이들은 기자회견까지 열고 “진성진후보로는 거제 새누리당의 화합과 소통, 쇄신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김한표의 당선을 위해 노력 할 것”이라고 했다.
영혼 없는 ‘패거리 정치’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역정가는 숨이 멎은 듯 고요했다.
이후 새누리당 후보는 무소속 김한표씨에게 고배를 마셨다. ‘집토끼’조차 지키지 못한 새누리당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정치적인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무소속으로 당선됐던 김한표씨가 새누리당에 입당하자 또 다시 새누리당에 복당했다.
정치적 도의와 신의는 땅에 떨어졌고. 거제시민은 한낱 ‘장기판의 졸’ 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한순간 지역정가는 이들의 행태를 두고 설왕설래 했지만, 이내 잠잠해 졌다.
시간은 흘러 2014년 현재.
김한표씨 세몰이에 앞장섰던 이들 중 한 명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일단 정치판을 떠났고, 나머지 5명은 어김없이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제우스는 이들의 영민함과 민첩함에 감탄할까? 아니면, 이들의 체면과 위엄을 내팽게친 경망함을 탓할까? 신의 왕 제우스가 유권자라면 말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우리는 삶에 지쳐 주변을 돌아 볼 겨를이 없다. 더구나 신물 나는 정치판에 대해서는 시간의 한 조각조차 할애 할 여유가 없다.
그렇다보니 선거철이 다가오면 그 인물의 정치적 소신이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유권자들이 ‘망각의 강’을 건너는 순간이다.
정치인들은 이것을 노린다. 그리고 이들은 제 아무리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도 세월 속에 묻힌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과오’를 인정하기보다 오히려 대의를 위한 ‘정치적 결단’이었다고 떠들며 유권자들을 우롱한다.
유권자들의 십중팔구는 이런 현란한 말투에 넘어간다.
그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별 사람 있느냐”는 자괴감 속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고, 차선이 아니면 차악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우리는 정치인의 ‘세치 혀’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지 않다. 다만 삶이 고달파서 잠시 정치에 대해 관심을 접어 둘 뿐이다. 다가오는 6․4 지방선거에서는 삶이 곧 정치라는 등식을 한번쯤 되새겨 보는 것이 어떨까. 마냥 ‘함량미달’의 정치인들에게 당하고 살 수 만 없지 않은가.